내가 만약 괴로울 때면 때時 일事 (Issues)

윤복희가 불렀고 임재범이 다시 불러서 잘 알려진 노래 '여러분'의 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날 위로해 주지? 바로 여러분.

여러분이란 말은 2인칭 복수 존칭이다. 내가 지금 상대하거나 마주대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 그런데 노래 중에는 주객이 뒤바뀐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께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마지막 대사에서 위로 받는 객체였던 '나'는, 노래 중에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주체가 된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나와 여러분은 어렵고 힘들 때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존재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은 내가 속한 공동체에 함께 소속된 구성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외롭고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공동체에 함께 속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 가장 작은 단위는 가족이 될 테고, 상황에 따라 지역 공동체, 문화 공동체, 종교 공동체 등으로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가면 국가 공동체, 즉 나의 나라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한국인인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나의 국가가 나를 위로하고 돌보아 주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러시아나 모잠비크나 인도네시아가 나를 위로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은 국가 구성원으로서,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국민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일을 담당함으로써 국가가 국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지만, 국가에게 국민이라는 존재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또다른 소중함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왕정 시대에 '짐(왕)이 곧 국가'였다면, 현대 민주 시대에는 국민이 곧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국가를 유지하고, 국가가 위태로울 때 나의 힘을 보탠다. 따라서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국가라는 공동체가 나의 벗이 되고 힘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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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세대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 7.7%뿐

지난 8월에 고등학생 1,051명을 대상으로 하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내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7.7% 뿐이었다. ‘내가 위기에 처할 때 주위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음’도 36.1%로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국가에 대한 신뢰의 정도는 참담한 지경이다.

물론 이것은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 한국이라는 국가, 좀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의 정부가 보인 행태를 반영하는 조사 결과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 특히 젊은 세대가 국가를 나의 벗, 나의 수호자로서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위 표는 미국기업연구소가 취합한 애국심 관련 설문조사 자료 중 해당 부분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단위 %).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임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3분의 1 정도다. 조사 대상 44개국 중 중하위다. 한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2005~06년에 조사한 결과다. 지금 다시 조사한다면 그 숫자가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국가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크나큰 문제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잠재되어 있다: 나라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데, 내가 나라를 지켜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회피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른 나라의 척도에 기대어 살펴보자. 위에 링크한 미국기업연구소 자료에는, 미국인을 상대로 하여 어떤 활동을 애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물어본 조사 결과가 있다(2008년). 뒤집어 말하자면, 애국적인 국민은 어떤 활동을 열심히 하는지 물어본 셈이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애국적이라고 말한 활동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애국적이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

  • 투표 (86%)
  • 충성의 맹세(Pledge of Allegiance) 낭독 (82%)
  • 공동체에서 자원봉사 (81%)
  • 자신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기 (78%)
  • 자신이 내야 할 세금 납부 (74%)
  • 미국 국기 상징물 부착 (65%)
  • 정부의 잘못된 결정에 항의하기 (60%)

말하자면, 국가에 실망하고 애국심을 갖지 않게 될 경우, 국민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자원봉사 같은 일도 하지 않게 되며, 세금은 되도록 회피하고, 정부가 잘못하더라도 신경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여기에 병역을 회피하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을 때, 국민은 이처럼 국가에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의지를 잃게 된다. 더 나아가, 국가와의 관계 자체가 해소되기를 원하게 될 수도 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런 점은 한국에 실망한 한국인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떠나는 양상으로 이미 현실화하고 있기도 하다. 위 표에서도 한국인의 30% 정도는 할 수만 있으면 다른 나라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를 신뢰하는 국민이 매우 소수라는 점, 자부심을 느끼지도 못한다는 점, 심지어 국적을 이탈하고 싶어한다는 점. 이것은 애국심의 쇠락을 넘어, 국가라는 공동체의 심리적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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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자기네 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90% 정도며, 미국보다 더 나은 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또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자기네 나라가 극단적으로/매우 자랑스럽다는 사람이 85%나 됐고,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는 사람은 1%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인의 국가에 대한 강력한 자부심은 여러 가지 배경에서 비롯된다. 광대한 영토, 풍족한 경제, 그를 배경으로 한 막강한 군사력,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 수준 높은 사회 인프라와 제도, 정치적 안정 등. 여기에는 국가가 나라 안팎에서 국민을 챙겨준다고 인식하는 점도 물론 포함된다. 자국민이 억류되면 전직 국가원수를 보내서 빼내오는 나라다. 미국인에게 미국은 '문제가 많지만 여전히 자랑스럽고 믿음직한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인은 국가가 요동치는 큰 사고나 재해를 당하면 국기부터 내건다.


2001년 9/11 때

9/11 때

2005년 카트리나 태풍 때

카트리나 태풍 때

2012년 샌디 태풍 때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

보스턴 마라톤 테러 희생자 장례식

서부지역 산불 현장


이런 국기들은 단순한 애국적 상징물이 아니다. 그런 의미의 국기는 언제나 흔하게 걸려 있다. 외국과 전쟁하는 것도 아닌데, 태풍으로 부서지고 산불로 불탄 곳에 왜 애국적 상징을 걸겠는가. 재해나 사고 현장에 내걸린 국기는, 위급한 순간에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임을 굳게 믿는다는 메시지이며, 그렇게 보호해줄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상징이며, 그런 나라를 중심으로 뭉치자는 결의이기도 하다.

만약 세월호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그 현장에도 틀림없이 성조기부터 내걸렸을 것이다. 나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뒤에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를 눈여겨 봤다. 노란 리본, 검은 휘장, 눈물 젖은 쪽지, 아이가 원하던 나이키 운동화, 피자, 기타, 옷가지... 비극을 상징하거나 위로해 줄 수많은 물품들이 현장으로 뛰쳐나왔으나, 태극기는 단 한 번도 목격할 수 없었다. 미국 사회의 국기에 대한 일반적 태도가 한국과 다르기는 하지만, 그 차이만이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적어도 세월호 현장의 한국은 그 국민이 국기를 내걸며 신뢰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기에는 너무나 한심하고 무능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였기 때문에... 아쉽게도 과거형으로 쓸 수 없다. 너무나 한심하고 무능함은 그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지 다섯 달이나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 한심함과 무능함은 이제 사악함으로 진화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또다른 배가 남해에서, 혹은 서해에서 가라앉는 참사가 벌어진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지경이다.

세월호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지금처럼 뒷처리되는 나라의 국민이 어떻게 나라를 믿고 살 수 있겠는가. 이런 나라를 어떻게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나라의 국기를 어떻게 마음껏 흔들고 목청 높여 애국가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이 사진은 카트리나 태풍으로 참사가 빚어진 지 1년 뒤에, 이 비극을 기억하자며 열린 거리 퍼레이드의 한 장면이 그 지역 신문에 실린 것이다.

내년 4월에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벌어질 행사에서 유가족은 '한국이여, 감사합니다'라는 팻말을 들 수 있을까. 나는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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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스티 2014/09/25 22:33 # 삭제 답글

    "한심함과 무능함" - 현 정부와 대통령입니다. 거기에 '냉혈함'도 추가하고 싶네요...
  • deulpul 2014/09/26 05:03 #

    그게 '냉철함'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행정부와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명색 야당까지 포함하여 한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총체적으로 불신을 넘어 규탄과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 초록불 2014/09/27 07:33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deulpul 2014/09/27 15:21 #

    들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 친일청산 2014/09/29 10:19 # 삭제 답글

    아이들의 휴대폰 속 동영상을 보며 눈물과 함께 끌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저만은 아닐찐대 현 상황을 보면 너무나 참담합니다.

    수구보수 세력의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앞날은 순탄치 못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진실도 안전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시민항쟁이 유일한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 deulpul 2014/09/30 12:34 #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영원한 숙제일 겁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쨌든 생각이 다른 사람이 함께 살 수밖에 없죠. 어떻게 하면 주장이 들리고 반영되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공감을 넓혀갈 수 있을지 하는 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하고 있는가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사회 갈등을 흡수하여 해소하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이 그러한 기능에 완전히 무력하다는 점과, 항의나 저항이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 미스티 2014/09/30 00:13 # 삭제 답글

    제일 마지막에 올려주신 사진을 보면서 저는 사진속의 저 백인 아저씨는 카트리나에 얼마나 피해를 입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카트리나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저소득층의 흑인들도 과연 일년뒤에 'Thank you America"라는 피켓을 들수 있었을까요??
  • deulpul 2014/09/30 14:25 #

    충분히 가능한 질문입니다. 카트리나는 대형 자연 재해로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워낙 피해가 컸지만,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의회의 조사 보고서는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 기능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고 지적하였지요. 해당 지역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상 가난한 흑인들이 피해를 많이 본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가장 피해가 컸던 두 지역의 사망자 85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종보다 연령이 피해 양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흑인 55%, 백인 40%, 히스패닉 2%, 아시안 1%... 희생자 81%가 >51세, http://www.nola.com/hurricane/index.ssf/2009/08/answers_are_scarce_in_study_of.htmlhttp://www.nytimes.com/2006/01/18/opinion/18iht-edyoung.html?_r=0). 인종에 상관없이, 정부의 대처가 미흡한 부분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저 남자가 감사하는 대상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해를 입은 동료 인간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보내준 미국이라는 공동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미국판 서북청년단...
  • 미스티 2014/10/01 07:19 # 삭제 답글

    역시 들풀님의 친절한 설명과 근거에 따른 답변 감사드립니다. 사망자의 연령대로 피해분석을 한다면 당연히 고령들이 많았겠고 이는 당시 몇몇 노인요양병원들에서 환자들을 집단 유기하는 바람에 대규모 사망자가 났던걸로 기억합니다. 단순히 저 아저씨의 사진을 보니 저의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그저 티파티 모임 (미국판 서북청년단)에나 가면 성조기 들고 올만한 사람으로 보이기에 해봤던 소리입니다. :) 사실 카트리나에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즈에서는 흑인인구의 80%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http://www.s4.brown.edu/katrina/report.pdf
  • deulpul 2014/10/02 05:42 #

    자료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시, 흑인 피해가 컸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만, 찾아주신 자료의 요약 네 번째 항목에는 "뉴올리언즈 지역의 피해를 자세히 살펴보면 부유한 백인 거주지역 일부도 큰 피해를 입었다"라고 하네요, 하하. (농담)

    그런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카트리나 재난의 피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평상시의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유사시 어떻게 비극으로 증폭되어 나타나는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흑인 피해가 많이 발생한 것은 사실 카트리나가 흑인만을 선별적으로 하여 피해를 입혔거나 미국 정부의 대응이 흑인들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부실했기 때문이 아니라, 허리케인 등 재해 취약 지구에 흑인이 몰려 살았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1차적인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흑인이 많이 사는 곳에 홍수가 났으니 흑인이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할까요. 말씀하신 뉴올리언즈 흑인 인구의 80%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뉴올리언즈의 80%가 침수되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경제력을 갖춘 백인들은 위험 지역을 벗어난 곳을 거주지로 할 수 있는 반면, 가난한 흑인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주거비용이 저렴한 위험 지역에 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런 종류의 재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흑인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볼 사회구조적 환경이 일찌감치 마련되어 있었던 셈이죠. 소개 명령이 내려졌을 때 집을 떠나 탈출할 여력이 없어 머물러 있던 사람이 많았고 이때문에 피해가 더 크게 발생했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점은 카트리나 재난을 넘어서는 좀더 구조적이고 선차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인종 문제와 관련하여,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 볼 점도 많이 있을 겁니다. 해당 거주지가 백인들이 집중적으로 사는 곳이었다면 재난 당시와는 다른 상시 대비(제방이라든가)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또 일단 재난이 벌어졌을 때에도 주정부나 연방정부가 좀더 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2차적 검토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큰 비극이 벌어진 뒤 전개되는 일의 양상은 한국 사회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카트리나는 그 피해 규모가 세월호보다 훨씬 컸음에도, 재난이 벌어진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의회는 종합 조사보고서(http://www.uscg.mil/history/katrina/docs/USHouseOfRepKatrina2006MainR1eport.pdf)를 만들어냈고, 역시 재난 1주년도 되기 전에 이 사건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책임자를 규명하려는 책이 세 권 이상 나왔습니다. 한국은 세월호 벌어진 지 이제 6개월 다 되었는데,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싶어 참담한 생각이 듭니다. 말씀 덕분에 저도 카트리나의 피해 상황을 다시 훑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 친일청산 2014/10/02 13:06 # 삭제 답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 일베가 오프라인으로 나왔고, 서북청년단을 재창단하겠다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우연인가...?? 현 정권의 방관 혹은 더 나아가 지원에 따른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인 댓글부대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도 또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수구보수 정권은 남북분단의 상황을 철저히 이용해 왔고, 마찬가지로 사회갈등도 해소하기 보다는 수수방관 내지는 이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처럼 지역감정을 유발하며 오히려 분리와 분열을 조장하기도 했죠.

    정치권에 의한 사회통합이나 갈등조정은 우리나라에서 당분간은 요원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들은 분열을 이용해 먹고 사는 집단이니까요.

    제 생각엔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습니다. 세월호 문제도 유가족이 중간에 포기한다면 결코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책은 마련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이 다른 의견을 내는 것도 저들의 이간질에 기인한 것이라 여겨지는데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 deulpul 2014/10/03 12:57 #

    대립과 갈등은 언제나 있어 왔고, (어떤 시각에서 보든 상관없이) 나쁜 놈들도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80년대 군사 독재를 끝장낸 민주화 투쟁의 직접적 성공 요인을 아주 거칠게 정리하면 대개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1) 정권의 비정통성과 패악성 및 이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2) 전위 집단의 치열한 가두 투쟁을 통한 지속적인 이슈 재생산 3) 조직화 및 의식화. 이 세 요인이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갔습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특히 사회가 민주적 체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면 3)이 더욱 결정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투표함에서 나옵니다. 이 단순한 사실에서 많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진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일시적인 한풀이, 선동이라는 지탄을 받아 마땅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매개로 하여 겉으로만 뭉치는 시민, 설익은 분노, 자기편을 자극하기 위한 편견과 증오의 재생산, 자신들에게 권력을 줄 힘을 가진 대중에 대한 폄하와 조롱...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길을 스스로 막는 자충수들입니다. 이런 모습이 퍼질수록 물은 고기를 피하게 되며, 고기는 결국 펄떡이다 자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의와 명분과 조직과 전술이 장강과 같이 유장하게 흐를 때, 간사한 무리들의 쏘삭거림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가 잘 말하여 줍니다. 문제는 우선 자기 자신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더 정리하여 말씀드리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단히 노엄 촘스키가 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http://deulpul.net/641788)를 전해 드립니다:

    "매일 밤마다 나는 많은 편지를 받습니다. 연설이 끝날 때에도 많은 질문이 내게 쏟아집니다. 그들은 모두 질문합니다: "나는 지금의 잘못된 상황을 바꾸고 싶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콜롬비아 남부의 농민들이나 터키 남동부의 쿠르드족 사람들처럼 억압 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결코 묻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말할 뿐입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말은 위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답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질문하는 진정한 뜻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빠르고 쉽게' 아예 '끝장내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급한 태도는 1968년에 나와 논쟁을 벌였던 콜럼비아대 학생들을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이봐, 우리가 딱 두 주일 동안 총장실을 점거했더니 바로 평화와 사랑이 넘쳐 흐르잖아"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늘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건 지난번 시위와 꼭같았지요. 2월15일에 천오백만명의 반전 시위대가 거리거리를 꽉 메웠는데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네요. 이젠 희망이 없어요."

    세상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게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은 매일매일 그 자리에 서서 따분하고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다음과 같은 일을 꾸준한 열정으로 계속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흥미를 가진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고 설득하고, 조금씩 조직을 확장하며, 다음 단계 일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천하며, 때로 화가 나는 것을 억누르고, 결국 어떠한 성과를 얻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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