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품격 제로 섞일雜 끓일湯 (Others)

​내가 교통사고로 응급실로 실려갔을 때다. 진통제​ 먹기보다 끙끙대고 앓기를 선택하는 편이지만, 기절할 정도로 아픈 데에는 도리가 없었다. 몰핀을 두 대 연거​푸​​ 맞​았다. 그러고도 극심한 통증이 누그러지지 않아 혼절을 할까말까 하고 있는데,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오는지, 혼절을 하고 싶어도 창피해서 못하겠더라.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는 기본이었을 거고 마취과, 정형외과, 방사선과 의료진이 연달아 왔다갔다 했을 테니, 무척 많은 사람이 내 침대 주변을 바삐 오가는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다갔다 해 주는 게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몸을 못 움직이게 고정시켜 두어서, 낯선 천장을 배경으로 하여 허여멀금한 사람들의 얼굴만이 몽롱한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희한한 경험을 하​는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움직여 준다는 생각(혹은 착각)은 분명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수술을 하고 입원실로 옮겨졌다. 하루가 지나서 정신이 좀 돌아오자, 간호사가 몇 가지 서류를 들고 왔다. 그 중 한 서류에는 의료진이 수련과 교육의 목적으로 환자를 관찰하는 것을 허용하​겠​​냐는​ ​질문이 있었다. 진료뿐 아니라 교육도​ 담당하는 의료 기관, 이를테면 대학병원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류다. 내가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당연한 듯 허용함에 체크를 했​다. 어쨌든 나는 을(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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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에 아주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위는 <쏘우>, 아래는 <패치 아담스>다. 의대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회진을 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환자는 인간이 아니라 환자로 다루어진다. 인간과 군인이 있는 것처럼, 인간과 환자가 있다네.

인간이 존엄을 박탈당하고 처치나 처분 대상으로 전락하는 가장 대표적인 징후는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영화 속 의사들도 환자의 이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두 장면 모두에서 그런 점을 일깨우는 참견꾼이 등장한다. <쏘우>에서는 병원 청소원이고 <패치 아담스>에서는 의대 초년생이다. 두 영화 모두에서 중요한 모티브 장면인데, 스포일러라서 패스(라기보다 볼 사람은 다 봤...).

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는 동안, 사람이 평소 뒤집어 쓰고 있는 껍데기가 얼마나 쉽게 무력해지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위신, 체면​, 존엄... 이런 것들은 평상복을 벗고 ​홑겹 환자복을 입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사람이 누구든, 병원 침대 위에 올라가면 그저 살과 뼈와 피로 이루어진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침대 위에서 달성되어야 할 목표는 오로지 이 유기체의 물리적 기능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뿐이다. 평상시와 정반대다. 당신이 운동 선수가 아닌 한, 평소에 유기체의 물리적 기능은 (정상 작동하므로) 거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대신 지식, 정서, 감정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병원 침대에 엎어지는 순간, 이러한 관심 구조는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뒤집힌다.

사람을 살리고 병부터 고치고 봐야지, 위신이나 체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병원의 존재 이유로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담당 의사나 수련의가 학생들을 우르르 이끌고 나타날 때는​, 잠깐이지만 편한 기분이 아니었던 게 사실이다. 환자를 관찰하며 학습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한없이 무력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주시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가 중학교 2년 시대에 박물 실험실에서 수염 텁석부리 선생이 청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장을 차례차례로 끌어내서 자는 아기 누이듯이 주정병에 채운 후에 옹위하고 서서 있는 생도들을 돌아다보며 대발견이나 한 듯이,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시오."

하고 뾰죽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중에서)


자 여러분, 이 인간이 이런 사고를 겪고도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시오! 그래, 사람을 살리고 병부터 고치고 봐야지, 위신이나 체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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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발을 삐끗하셔서 병원에 가셨다. 새끼발가락 뼈에 금이 간 것으로 진단이 나왔다. 압박붕대를 단단히 감고 오신 모양이다. 깁스는 1, 2주 뒤에 하기로 하셨단다. 나중에, 깁스를 하지 않고 그냥 압박붕대로 감아두는 편이 선택되었다.

발을 제대로 못 쓰시니 모든 일이 불편하다. 가장 크게 마음 쓰시는 것이 잘 못 씻는다는 것이다.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불편하고 힘들어도 이런 일은 죽어라고 하신다.

어머니의 불만은 발을 잘 못 씻는다는 것이다. 아니, 발에 붕대를 감았으니 못 씻는 것은 당연하잖아. 하지만 어머니는 용납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남에게 추하게 보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남에게는 번듯하게 보이고 싶어하신다. 그래서 몸이 힘들어 병색이 있을수록 더 몸단장을 한다. 그러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드실 때는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병원에는 가야 한다. 애를 쓰긴 썼지만 제대로 못 씻어 마음에 걸리는 발을 갖고 정형외과를 가셨다. 그리고 의사의 말 한 마디에 매우 마음이 상하셨다.

의사가 발의 붕대를 풀다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상반신을 뒤로 물린 것이다. 어머니는 지레 미안해서 말했다. "발에서 냄새가 좀 나죠? 제대로 못 씻었더니..."

의사가 말했다. "그러네요."

자 여러분, 이 인간이 이런 냄새를 피우면서도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시오!

마흔을, 혹은 쉰을 훌쩍 넘긴 남자들은 거짓말을 잘 한다. 그렇잖아. 이렇게 솔직하지 않아도 된다고.

의사의 말은 어머니로 하여금, 그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 약간은 불쾌했으나 응당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간주하고 넘어갔던 것들에 대한 감정을 일제히 일으켜 세웠다. 골다공증 치료제라며 5만원짜리 주사를 맞으라고 계속 강권한 것, 자기 아내(는 옆 병원 의사다)에게 얼마 전에 맞았다고 하니 갑자기 표정이 밝아진 것, 다친 뒤 2주 뒤에 갔더니 새로 찍은 방사선 사진을 보더니 "아니, 이거 뼈 부러진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네!" 해서 기절하게 만든 것(이건 어머니가 "아픈 데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ㅡ.ㅡ).

나는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가 지나치게 신경쓰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인 거겠죠. 냄새가 나서 찡그린 게 아닐 수도 있고... 그렇게 대답한 것도 특별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건성으로 대답한 것일 수도 있고."

소용없다. 나이 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삼복에도 눈보라가 친다. 할 수 없다. 환자인 주제에 품격을 가지려고 한 게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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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혐오류 글이니 식사중인 분들은 통과-.

위에서 말한, 내가 입원해 있을 때다. 화장실을 가지 않았는데, 갈 수도 없었다. 작은 것은 플래스틱 통으로 해결하였으나(남자라서 햄볶아요) 큰 건 참았다.

이거 왜 이러세요. 병원에서는 인간의 품격과 상관없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좀 심하게 아픈 사람이 있어 그의 입원실에서 하룻밤만 지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는데, 마침 그런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를 호출했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 간호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화장실로 갔는데, 그런 정도의 신세를 지는 일이라면 품격 운운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변기에 앉을 수가 없어서 간이 변기를 이용해야 했고, 일을 본 뒤에는 누군가가 이 변기를 씻어내고 정리를 하여야 한다.

지옥 같은 일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겠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맡겨야 하는 내게 더욱 지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든 상황에서 다른 길이 있을 리 없었다.

일을 보고 났더니 간호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 이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마무리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그런 일을 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간호사가 말했다.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입니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고요. 신경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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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쓰신 걸 읽었다. 같은 수술을 동시에 세 사람이 받고, 수술 뒤에도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이 분들도 몸을 자유로이 통제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식기를 반납해야 하는데, 식판을 들고 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식기를 반납했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코믹한 상황일 수 있지만, 또한 매우 가슴 아픈 상황이기도 하다. 병원의 시스템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 앞서, 환자는 도대체 인간의 품격을 지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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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약하다. 몸이 약하니 환자겠지만, 마음까지 약하다는 게 함정이다. 함정이 아니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하지는 않더라도, 몸 상태에 따라서는 기분이 크게 변하고, 때로는 살 의욕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 의욕마저 없어지는 인간을 자르고 깁고 붙여서 물리적으로 살려내려는 것이 병원이다. 그래, 사람을 살리고 병부터 고치고 봐야지, 위신이나 체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환자도 사람이다. 환자(患者), 즉 '아픈 사람'일 뿐이다. 다치거나 병든 사람을 환물(患物)이라고 부르지 않는 한, 사람에 대해 지키고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의 면모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환자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사람이다.

보통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갖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훈련 받은 사람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아파도 여전히 사상과 감정이 있는 존재고, 번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워야 하는 존재인 것을, 나부터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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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김승훈 2014/10/05 12:26 # 삭제 답글

    혹시 사고가 요 몇년 사이에 있었던 일인가요? 한동안 포스팅이 뜸하셔서 아 좀 여유롭게 사시는 구나 싶었는데, 모르겠네요. (일이 많아지면 포스팅 욕구가 늘어나더라구요. 저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 deulpul 2014/10/05 17:19 #

    벌써 몇 년 된 일입니다. 최근 조용했던 것과는 상관없지만, 그 때에도 초기 두어 달은 포스팅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바빠야 생산성이 높아지는 점(http://deulpul.net/738371)에서 저랑 같은 스타일이시군요!
  • 2014/10/06 14:44 # 삭제 답글

    저도 예전에 중환자실에 잠시 있었는데 그때 저에게 기저귀를 씌우려는 거 있죠... 헐. 절대 거부하고 정말 힘들게 간이 화장실에 가서 어렵게 변을 본 기억이... ㅠㅠ 아무리 아파도 그건 차마...
  • deulpul 2014/10/06 17:06 #

    아마 달님의 편의를 위하여 그런 시도를 한 것 같습니다만, 혼수상태도 아닌데 미리 환자의 뜻도 물어보고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도 열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네요.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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