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이 쉽습니까 때時 일事 (Issues)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이 두 휴대기기용 메신저 앱이 왜 나란히 붙어 있는지를 새삼 되새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반민주적 검열 작태가 가져온 풍경이라는 요약으로 충분하다.

최근 텔레그램은 한국어판을 만들기 위해 한국어를 하는 사람까지 구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큰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한국어판을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절대 지나친 투자는 하지 마십시오. 왜 그런지는 한국인을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 이용자가 쇄도하는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다. 이 새로운 이용자들은 매우 유동적이다. 이들은 텔레그램이 당겨서 온 이용자가 아니라 카카오톡이 밀어내서 온 이용자다. 이들 대부분은 카카오톡을 떠나게 한 문제가 어떠한 형식으로든 해소되면, 언제든 텔레그램을 삭제할 사람들이다. 거품에 기대어 투자하다가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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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생각해 보자. 익숙한 카카오톡을 버리고(혹은 카카오톡에 더하여) 텔레그램을 다운받는 한국인들은 누구인가.

1. 텔레그램이 쓰기 편해서 갈아타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2. 대통령 한 마디에 권위주의 시대로 급회귀한 한국 검찰. 그 통신 사찰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어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한국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야당 관계자, 혹은 사회운동가들이 이런 범주에 들겠지만, 이들만으로는 최근 한국의 다운로드 돌풍을 다 설명할 수 없다.

3. 텔레그램을 설치한 한국인 대부분은, 수사기관이 개인의 통신 내용을 언제든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도 있다는 데 대한 우려와 불만과 항의에서 이 앱을 설치하거나 갈아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카카오톡에 대한 불만도 포함될 것이다.

4. 이게 뭐요, 먹는 거요? 유명하다니 나도 한번 깔아보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시작된 지 벌써 꽤 됐다. 검찰이 9월19일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만들면서 비롯됐다. 일주일 뒤에 한국인 텔레그램 이용자는 2만명에서 25만명으로 늘어났다. 10월1일에 노동당 부대표가 카톡 내용을 사찰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했다. 같은 날 통합 법인으로 출발한 다음카카오 경영진은 이런 문제에 대해 모호한 의견을 내놨다.

언론들은 '망명'라는 말을 붙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갑자기 텔레그램으로 몰린 보름 동안 카카오톡 사용량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강조는 내가).


실제로 카톡 이용자들의 사용량은 검찰의 사이버 검열 강화 계획 발표 전후부터 지금까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연적인 증가'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텔레그램이 연일 언론보도로 유명해지면서 호기심 많은 이용자들의 단순 다운로드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제로 국내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결과를 다시 풀어 설명하자면,

1. 정부의 검열에 항의하여 텔레그램으로 옮긴 사람이 전체 카카오톡 사용자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거나,

2. 한국인은 텔레그램으로 몰려가 다운받아 설치는 하였으나 여전히 카카오톡을 쓰고 있다.

는 뜻이 된다.

이런 망명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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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와 같은 결과는 초기 상황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메신저란 혼자만 갖고는 쓸 수 없다. 텔레그램을 설치하는 사람이 늘면 그 이용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카카오톡을 대체할 서비스로서 면모가 드러날 것이다. 텔레그램이 지금 구상중인 것처럼 한국어판까지 나오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카카오톡 경영자들은 정말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카카오톡 자신의 역사가 그런 점을 경계해 준다. 카카오톡은 PC 메신저인 네이트온이 얼토당토않은 5.0 판갈이를 고집하며 어영부영하는 틈을 이용해 PC 메신저 시장을 공략해 순식간에 뒤집어버렸다. 바로 몇 개월 전 이야기다.

하지만 나라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첫째, 지금 텔레그램을 내려받으며 열풍을 조성하고 있는 한국인의 대부분은 카카오톡 대신 다른 메신저 앱을 쓰겠다는 의지가 확고하지 않다. 실질적 위협을 느끼지도 않으며, 그저 모바일 앱을 통해 정부에 항의한다는 쿨하고 힙한 유행에 편승하는 사람도 다수다.

둘째, 이들은 잘 잊는다.

이런 이유로, 텔레그램 열풍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카카오톡으로 돌아갈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들은 불편하다거나 아는 사람이 텔레그램을 쓰지 않는다거나 하는 여러 이유를 들며 카카오톡으로 돌아갈 것이다. 명색 민주 국가의 정부 기관이 개개인의 통신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광범위하게 침해하고 기업이 이에 협조한다는 엄청난 문제는 '내가 불편하다'는 것보다 훨씬 덜 중요한 문제로 곧 전락할 것이다. 카카오톡이 실효는 없더라도 뭔가 말이 되는 듯한 대책을 내놓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보수 신문은 최근의 텔레그램 다운 열풍을 '사이버 망명 소동'이라고 부른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과거를 보면 안다. 물론 그런 과거는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정부 기관이 가장 잘 안다. 역시,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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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싸우려면 안 싸우는 게 낫다. 상대편 좋은 일만 시켜주기 때문이다. 쉽게 싸우면 쉽게 진다. 잔펀치만 던지면 상대방 맷집만 강해진다. 유행처럼 저항하고 유행처럼 항의하는 동안, 싸우는 사람은 왜 싸우는지 잊고, 상대방은 엎드려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저항은 대체로 너무 쉽다는 데 문제의 한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해야 겠다. 대체로 너무 쉽게 한다는 데 문제의 한 측면이 있다. 돌 들고 나서라는 말이 아니다. 싸우기로 했으면 원래 뜻하였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늘어져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은 무서워하는 시늉이라도 낸다. 파르르 끓었다가 피시식 식는 저항과 항의를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나는 이번 검찰의 사이버 검열(이거 뭐 새로운 이슈도 아니다. 4탄, 5탄이라고 할까)과 그에서 비롯된 카카오톡-텔레그램 현상이 다음과 같이 마무리되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즉 카카오톡은 이용자의 개인 정보와 통신 내용을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개발한다. 종종 하는 말이지만, 넷과 CMC를 기반으로 하여 성장한 IT 기업은, 기관에 결탁하며 땅 파서 운영되는 기업과는 좀 다른 경영 철학을 가져야 한다. 물론 모두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한국적 기업 상황이라는 점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가기 쉬운 길은 누구나 갈 수 있고 하기 쉬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방식을 통해 카카오톡의 새로운 보호 장치가 이용자에게 설득력을 발휘하고 실제로도 효과가 있다면, 이용자들은 다시 카카오톡을 신뢰하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정부와 기업에 문제 의식을 가진 이용자들(맨 앞의 텔레그램 다운로드한 사람 중 3번 유형)이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한 저항을 벌여 주권자로서 또 소비자로서 본때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저항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불편함을 조금 참는 정도면 된다. 이런 엄청난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이 글에서, 인용 빼고는 망명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망명은 어렵다. 정말정말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다. 손가락 꾹꾹 눌러 외국의 앱 하나 다운받는 것을 망명이라고 한다면, 실제 망명이 정말 슬퍼할 것이다.

사이버 망명도 어려워야 한다. 그래야 소동이라는 놀림을 받지 않는다. 어렵고 불편할 것을 각오하고 떠나는 게 망명이다. 그래야 망명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망명이 어디 쉽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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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인하르트 2014/10/07 03:28 # 답글

    1. 하긴 인터넷 공간에서 국내 프로그램, 웹사이트, 이메일 안 쓰고 해외업체걸 쓴다고 망명이라고 하긴 힘들죠. 그건 자신이 쓰기 편한 걸 찾아 가는거다 보니까요.

    2. 한국인은 흔히 사소한 사고가 일어나면 유럽사람들이 관계자들에게 편지 보내고 변호사 선임하고 하는 것과 달리 "그냥 액땜이겠지" "뭐 이런거 가지고"하면서 그냥 지나치는게 커진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불만 있으면 따져야 하는거고, 계속 따지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외국에 나와서 다소 배우고 있지요. ;;;
  • deulpul 2014/10/07 09:52 #

    맞습니다. 다만 약간 모호한 부분은 있습니다. 아직까지 한글화도 되어있지 않고 실제로 쓰는 사람도 많지 않은 앱으로 옮겨가는 것을 쓰기 편해서라고만 하기에는 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만,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검열 당할 위험이 없어서 쓰기 편하다'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이것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느 경우든, 국경이 없는 인터넷 공간에서 외국 프로그램을 쓰는 것을 망명이라고 하긴 곤란하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됩니다.

    두 번째 말씀은 저도 늘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관대하죠. 의견이 다른 것에는 조금도 관대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잊는 데에는 턱없이 관대합니다. 울지 않는 아이는 젖 주지 않으며,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만 목소리를 낼까말까 하는 집단에게 늘 젖을 물릴 이유도 별로 없습니다. 귀찮게 구는 사람이 많아야 변화가 발생합니다. 물론 진상질은 안 권장.
  • 도로시 2014/10/11 02:38 # 삭제 답글

    일단 팩트가 틀린거 같은데요.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503716
    라인만큼 대거이탈은 아니지만, 카톡도 유의미한 사용자수 감소가 있다는게 대부분 커뮤니티에서 나눠지는 이야기던데...
    자연적인 증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니
    어떤 근거로 이야기하시는건지???
  • deulpul 2014/10/11 10:32 #

    근거가 궁금하십니까? 그럼 본문을 읽어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첨언하면, 연합뉴스와 뉴스토마토의 보도는 서로 다른 지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이 근거이며 검찰 발표(9월18일)부터 지금(10월5일)까지 카카오톡 '사용량' 변화를 지표로 쓰고 있고, 뉴스토마토 등의 보도는 야당 의원의 발표가 근거이며 랭키닷컴의 주 평균 '하루 사용자 수'가 1주일 사이에 어떻게 달라졌나를 지표로 쓴 것입니다. 기간도 다르고 통계량의 내용도 다릅니다.

    후자의 경우, 제시된 카카오톡 사용자 변화량(숫자)이 엄청난 것 같지만, 이를 %로 환산하면 1.5%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의 미세한 변화라면, 다른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예컨대 해당 기간에 포함된 휴일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같은 부분을 고려해야 검열 논란의 정확한 효과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해당 기간 동안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던 다른 메신저의 사용자도 모두 함께 감소한 현상 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정확한 효과를 알려면 해당 기간 앞뒤로 어떤 추이가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내용은 말씀하신 '대부분 커뮤니티'에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항들이겠습니다만. 연합뉴스의 경우 '업계 관계자'라는 고질적이고도 무책임한 표현을 씀으로써 신뢰를 떨어뜨린 자료라는 맹점이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일과 관련하여 거론되는 수치들을 보면 사용자 수, 사용량, 다운로드 수 등의 지표가 적당히 뒤섞인 채, 수치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해석 없이 유리한 대로 선별 사용되는 양상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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