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실 2: 한강, 아 한강 연결連 이을續 (Series)

지방의 작은 마을이었다. 어떤 사고가 난 현장이었는지 부조리한 일이 벌어진 곳이었는지, 여러 곳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모여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 수가 300명(주최측 추산) 정도 되었다. 제각기 나무라기도 하고 고함도 치고 하였다.

우리에 앞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을 가운데에 있는 교회에 모여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 300여 명은 그리로 가서 합류하기로 했다. 줄을 지어 교회로 들어서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하 강당으로 내려갔다. 강당에는 50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환영의 뜻으로 박수가 터져나왔다. 강당이 꽉 찼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앞서 모인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듯한 사람이 나섰다. 흰 와이셔츠를 입은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어려운 길 오신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저희는 O월O일부터 삼삼오오 내려오기 시작해 이곳에 모여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도 자기 생활을 제쳐놓고 싸움에 나서서 헌신하는 분들입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환영을 받았으니, 앞서 오신 분들에게도 뜨거운 지지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게 어떨까요."

강당이 울리도록 우렁찬 박수가 터졌다. 나도 열심히 손뼉을 쳤다.

박수 소리가 가라앉자 남자가 계속 말했다.

"자, 우리가 이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노래부터 하나 부르고 시작하겠습니다. 노래는 OOO OOOO."

처음 들어본 노래였는데, 운동권 노래인 것 같았다. 선발대 사람들은 이미 여러 차례 불러 보았는지 어영부영 다같이 따라불렀다. 새로 합류한 사람들은 아무도 노래를 따라부를 수 없었다. 순간 불만스런 마음이 불쑥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남자가 다음 말을 하려는데,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손에 하얀 장갑이 끼워져 있었는데, 내 눈에도 낯설어 보였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만, 새로 오신 분들은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다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하나 더 하면 어떻겠습니까. 음... 그렇지, '소양강 처녀' 어떨까요."

흠? 소양강 뭐? 뜬금없이 왜 그 노래가 생각났는지 모른다. 군인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제안을 하자마자, 새로 합류한 일행 속에서 어떤 여자가 높은 소리로 외쳤다.

"그거 말고 '한강, 아 한강' 어때요? 호호호..."

소양강만 강이냐, 한강도 강이다(이것은 옛날에 강 노래를 메들리로 부를 때 끼워넣던 접속 멘트) 이건가?

'한강, 아 한강', 이것도 제목조차 처음 들어본 노래다. 노래는 못해도 아는 노래는 꽤 된다고 자부하는 내가 두 번이나 쫑코를 먹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이 여자는 다짜고짜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다. 노래를 아는 사람 몇몇이 함께 따라 불렀는데, 뭐랄까, 그 여자가 나 노래 잘해요! 하고 선언하는 분위기였다. 강당 안은 운동가요 때보다 더 썰렁해졌다.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나는 속으로 저 여자를 원망했다. '아니, 다함께 못 부르는 노래를 부르길래 다시 부르자고 했더니, 이게 뭐람. 길 닦아놨더니 애먼 놈이 지나가네.'

이렇게 염원은 물거품이 된 채, 여자의 높은 목소리가 클라이맥스로 올라갔다 내려온 뒤 노래가 끝났다. 나는 아마 모래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인데, 앞에 있던 와이셔츠 사내의 얼굴은 더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엄숙하게 말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신나게 즐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투쟁의 한 방법입니다, 투쟁! 이렇게 엄중한 문제가 앞에 놓여 있는데 의식을 담은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겁니다!"

그러길래 배가 살살 꼬인 내가 입바른 소리 한 마디 더 했다.

"투쟁도 좋지만 싸워도 서로 공감을 하면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다같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하는 게 더 좋겠죠."

그랬더니 이 남자가 갑자기 일어서서 짐을 챙기는 것이다.

"이렇게 지도가 안 되고 단합이 안 되면 나는 일 못합니다. (옆의 누군가에게) 가자!"

남자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아내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따라 일어섰고, 왼쪽에서도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 소재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좀 젊은 남자도 일어섰다. 그 양반 참 성질도 급하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당황하고 있는데, 남자 근처에 있던 어떤 사람이 말리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그 사람에게 말했다. 다들 들으라고 하는 것인지 목소리가 우렁찼다.

"이런 식이면 교회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겠습니다. 알아서들 하십시오."

세 사람은 열려 있던 강당문을 빠져나가 계단으로 올라갔다. 강당 안 사람은 모두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교회 종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종 소리치고는 좀 이상했다. 뎅뎅도 아니고 뎅그렁뎅그렁도 아니었다. 띠리리 띠리리... 마치 잠자리 옆에 놓인 시계의 알람 소리 같았다.

알람 소리였다.

이런 다행.




꿈은 현실의 해체와 재구성(해제):

꿈은 현실에서 재료를 취하지만, 긴 밤 동안 그 재료를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므로 호오나 선악은 뒤집히기도 한다.

여섯 달 전에 벌어진 큰 사건은 누구에게도 충격이었다. 진도 체육관을 가득 채웠던 혼돈과 절망은 멀리서 자세한 소식을 접하지 못한 내게도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대학 때 1년 위, 그리고 2년 위의 여자 선배 두 사람은 정말 노래를 기막히게 불렀다. 다들 힘도 좋고 의지도 충만하던 때라 술상 앞에 앉으면 한 노래 못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지탱하는 것이 객기라면, 각각 영문과와 국문과에 적을 두었던 이들의 탁 트인 노래는 우렁차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있었다. 이들의 노래를 듣고나서, 나는 내가 좋아하던 대학가요제 출신 아줌마나 누나들이 실은 노래 못 하는 대학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 주말 내내 '비와 당신'이 입속에서 돌았다. 박중훈이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부른 노래다. 영화를 볼 때는 영상과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그다지 주목하지 못한 채 넘겼었는데, 지금 다시 들으니 좋다. 어떤 분이 럼블피쉬가 부른 노래로 소개를 해주셨는데, 그 판도 참 좋다. 노래 잘 하는 사람 진짜 많네. 비 오면 크게 틀어놓고 들어보고 싶다.

그러나 '한강, 아 한강'이라는 노래는 들어본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데... 정말로 또렷하게 말하더라. '한강, 아 한강'...


Advertisement


 

덧글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