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적 표현 말씀言 말씀語 (Words)

이따금씩 비판을 받는 흔한 말습관 중에 '-하는 것 같다'는 표현이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도 한두 번 다룬 것 같은데, 쓰이지 않아야 할 곳에서까지 무차별적으로 쓰인다는 점이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이 표현이 언제나 문제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경우는 그 뜻으로나 쓰임새로나 꼭 맞는 표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1.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날씨가 좋을지 어떨지는 100%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이렇게 불확실한 일을 추정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건 어떨까.

2.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유쾌해지는 것 같습니다.
3. 친구가 찾아와서 기쁜 것 같습니다.
4. 며칠 내내 계속 비가 와서 우울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장에서는 '-하는 것 같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불확실함을 담은 표현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2~4에는 예컨대 각 문장 앞에 '그 사람은'이라는 말을 붙이면 아주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심정을 내가 추정하는 경우라면 잘 어울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이라는 말을 주어로 하면 즉시 곤란해지는 것 같다. 즉 화자 자신을 주어로 하여 심정을 표현할 때는 '-하는 것 같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3-1. 나는 친구가 찾아와서 기쁜 것 같습니다. (X)
3-2. 그는 친구가 찾아와서 기쁜 것 같습니다. (O)

좀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5. 새로 나온 라면보다 옛날 라면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5의 표현은 감정이 아니라 의견을 담은 문장인데, 그 의견이 확실하거나 강하지 않다는 뜻이 '-하는 것 같다'라는 부분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확실히,

5-1. 새로 나온 라면보다 옛날 라면이 더 좋습니다.

와 다른 문장이며, 그 차이는 의견의 강도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되도록

5-2. 새로 나온 라면보다 옛날 라면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5-3. 새로 나온 라면보다 옛날 라면이 더 좋다고 봅니다.

라는 표현이 더 나은 것 같다.* 어쨌든 5의 의미로 쓰인 경우는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상의 글에서 내가 쓴 '-하는 것 같다'는 표현은, 맨 마지막에 * 붙인 문장만 빼고 모두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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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에는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두 분이었다. 나는 3년 내내 그 중 한 분(임 선생님)에게서만 배웠다. 따라서 또 한 분(유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임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두꺼운 안경 속으로 눈을 굴리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반성하는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여러분이 역사를 빨리, 많이 배우도록 하기 위해 마음이 바쁘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단정적인 표현을 자꾸 쓰게 된다.

다른 반들을 가르치는 유 선생님은 나와 다르다. 그는 학생들에게 역사책의 내용을 가르치면서 항상 유보하는 태도로 말씀하신다. 수업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항상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유보적인 표현을 쓰신다.

오늘 점심 시간에 유 선생님과 함께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유 선생님에게 '저는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여지를 주지 못하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인데, 그게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반성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했더니 유 선생님은 '나는 오히려 임 선생님처럼 자신감 있게 딱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 부러운걸요' 하셨다. 어쨌든 여러분은 나의 수업이 이런 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듣기 바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무늬없는 토기가 어떻고 왕안석의 신법이 어떻고 하는 역사 수업의 디테일들은 유장한 역사처럼 흘러간 세월 속에 거의 다 잊혀졌으나, 진도와 상관 없는 이러한 말씀은 이렇게 대사로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생생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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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갈수록 확신을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적어진다. 예전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살다 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심지어 반대인 경우도 있다. 전적으로 맞다고 여겼던 것들이 전적으로 틀린 경우도 적지 않다.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할까. 항상 뼈대만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거기 붙은 살들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나의 생각을 100% 확신하기가 갈수록 어렵다.

그래서 내 생각을 말할 때 자꾸 유보적인 표현을 쓰게 된다. 어떤 주제로 불특정한 사람을 향해 쓰는 경우, 의견은 간명하고 뚜렷해야 하니까 유보적인 표현은 되도록 피하려고 하지만, 특정인과 글이나 말로 대화를 나눌 때는 이처럼 단정과 유보 사이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고민은 이 블로그의 댓글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가르쳤던 단정파 임 선생님은 다른 반을 가르쳤던 유보파 유 선생님보다 훨씬 젊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두 선생님의 교습 방식 차이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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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선생님이 그랬듯, 나 역시 자기 생각을 확신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러한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경우에 한해 그렇다. 그리고 상대가 있는 대화의 상황에서 그런 경우는 대체로 많지 않은 듯하다.

6-1. 당신 말은 틀렸습니다.
6-2. 당신 말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7-1. 이 글은 문제가 있습니다.
7-2. 이 글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8-1. 외계 생명체는 존재합니다.
8-2. 외계 생명체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사실의 서술 방식이고 후자는 의견의 서술 방식이다. 적지 않은 사람이 의견을 써야 할 자리에서 사실 서술 방식을 쓴다. <공산당 선언>이나 4/19 학생선언문도 아닌 상대방과의 대화나 토론에서 6-1, 7-1, 8-1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세상은, 그리고 그들 자신은 정말 저렇게 확신할 수 있는 존재일까 하는 의문이 종종 든다. 이런 의문은, 그런 단정적인 문장에 동반되게 마련인 설득력 없는 근거들을 볼 때 더욱 강해진다.

의견을 제대로 표현한 6-​2, 7-​2, 8-2 방식은 훨씬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 언어에 담긴 불필요한 공격성도 훨씬 덜하다. 이것은 언어라는 톱니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알력을 일으키지 않도록 적절히 윤활유를 친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1) 어떤 의견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2) 어떻게 의견을 표현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흔히 전자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말과 글로 구축되는 주장과 토론의 세계에서는 종종 사소한 표현이 큰 주제를 잡아 먹는다. ​사람들은 거대한 개념이나 낯선 단어를 동원한 정치한 논리보다, 글의 사소한 표현에 더 먼저, 그리고 더 크게 반응한다. (최근이 아니라 오래 전에) ​​강준만이 이야기했듯, 싸가지가 바로 메시지다. 옳든 그르든, 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경우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어떤 글을 읽고 나서, 말은 맞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동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럼으로써 결국 그 메시지가 결과한 것이 메시지 자신의 돌출 말고는 아무 것도 없게 될 때, 거기에는 글의 싸가지가 일정한 작용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유보적 표현에는 또 한 가지 미덕이 있다.

이런 유보의 언어들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상식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와 같은 것이다. 다종다양한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한 의견이 다른 의견과 병존할 수 있는 완충 공간을 성립시키는 것은 이러한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보형 진술의 미덕은 바로 이러한 상식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우리 사회에서 말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일방으로만 외쳐지고 마는 데에는, 오로지 단정의 뼈다귀만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이 큰 몫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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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타츠야 2014/10/28 13:22 # 삭제 답글

    그래서 내 생각을 말할 때 자꾸 유보적인 표현을 쓰게 된다. 어떤 주제로 불특정한 사람을 향해 쓰는 경우, 의견은 간명하고 뚜렷해야 하니까 유보적인 표현은 되도록 피하려고 하지만, 특정인과 글이나 말로 대화를 나눌 때는 이처럼 단정과 유보 사이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인터넷에서 빠른 정보를 접하게 될 때 이걸 과연 사실로 받아들여도 될지 아닐지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그래서 댓글을 다는 것도 신중하게 하고 있습니다.
  • deulpul 2014/11/04 18:17 #

    조금 포인트는 다릅니다만, 인터넷에 넘치는 수많은 오정보들 때문에 정말 지뢰밭을 다니는 것 같죠. 쉽게, 그리고 빠르게 확산되는 정보의 유통 구조가 그 핵심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요즘은 다른 부분에서 더 큰 문제점을 찾게 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신중한 자세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 quesaisju 2014/10/28 22:24 # 삭제 답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들풀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정돈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읽고 나니 다른 책에서 읽다 눈에 걸린 글귀가 떠올라 적어봅니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민영규 저 [예루살렘 입성기]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 deulpul 2014/11/04 18:19 #

    아, 지혜롭고 통찰 있는 사람들은 같은 내용을 써도 이렇게 풍부하고도 단아하게 표현하는군요. 좋은 말씀 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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