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자적인 언어 말씀言 말씀語 (Words)

2005년 한국 영화 <마파도>의 한 주인공은 형사다. 이문식이 연기한 이 형사는, 영화에서 높임말과 관련한 특이한 언어심리를 보여준다. 그는 자기보다 몇 살 어린 폭력배가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사실을 용인하지 못한다:

  • 그리고 너... 형한테 꼬박꼬박 반말 하더라?
  • 아, 그리고 내일... 존댓말도 챙겨 나와라, 싸가지 없는 새끼야.
  • 그런데 너 끝까지 형한테 반말 찍찍 지껄일 거야?

하지만 그 자신은 자기보다 수십 년 더 산 할머니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낮춤말을 쓴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언어적 모순은 많은 한국인에게 자연스럽게 비친다. 한국어에서 높임말을 할 대상은 대개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지만, 그 말고도 다른 기준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말로 말글 생활을 하는 한국인에게조차 높임말이 종종 어려운 이유는, 높임말이 단순히 말을 쓰는 데 필요한 여러 변화 중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대화 쌍방의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노릇을 한다는 점에 있다. 즉 높임말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를 정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다. 이 사회적 위계는 나이, 권세, 직급 같은 기준에 따라 결정되며, 높임말은 이런 상하 관계와 거기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언어로 구현하는 기능을 한다.

한국인은 이런 기준에 의해 상하가 정해지는 대로 높임말과 낮춤말 적용 대상을 신속하게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권세가 크거나 직급이 높다고 생각하는 쪽은 남에게서 높임말을 들으려 하고 자신은 남에게 낮춤말을 하려 한다. 식당에서 밥시중을 드는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중년 남성 고객을 떠올리면 딱이다.

이러한 기대가 원활히 달성되지 않을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한국적 갈등이 발생한다. 30대 남자 둘이 인터넷 채팅을 하다 번개를 하기로 했다. 마음이 통해 신나게 술이라도 한 잔 하려고 만난 게 아니다. 사회적 위치는 가리운 채 글로만 소통하는 채팅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높임말을 하지 않았다고 다투었고, 급기야 실제로 만나 끝장을 보기로 한 것이다.

끝장이 나기는 났다. 두 사람은 주민등록증을 들고 싸우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폭행해 사망케 했던 것이다.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또 회사에서 회식을 하던 도중, 두 살 차이가 나는 40대 남자들이 반말을 하는 문제로 싸움을 벌여 그 중 한 명이 회칼로 상대를 죽인 사건도 있고, 번개 모임을 하던 중 22살짜리 여자가 21살짜리 여자를 '나이도 어린 게 반말한다'고 폭행한 사건도 있다.

나이라는 기준만을 놓고 다투는 것은 그래도 단순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좀더 복잡한 상황은 위의 세 가지 기준이 서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을 때다. 이를테면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이 직급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을 때이다. <마파도>에 나온 형사의 언어 중추에서는, 나이 어린 폭력배에게는 나이라는 기준이 작용하고, 나이 많은 할머니들에게는 권세라는 기준이 작용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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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떤 분이 언론 종사자(기자)를 상대하며 겪은 일을 쓴 것이다. 오래 전에 담아둔 내용이라서 링크는 죽었다.


예전에 제가 포천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근무하던 곳에 무슨 행사가 있었는데 그 행사를 취재하러 오기 위해 길을 묻는 전화를 하는데 제가 공교롭게 받게 되었습니다.

나 : 감사합니다..0000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기자 : 아...ㅁ일보기자인데요? 거기 어떻게 가야하죠?
나 : 지금 어디십니까?..
기자 : 아..여기가 000...
나 : 아 그곳에서 조금 더 오시면..000
기자 : 그다음엔 어떻게 가야지?(갑자기 반말로 바뀝니다.)
나 : 여보세요..왜 갑자기 반말이세요?
기자 : 아...미안합니다...그다음엔 뭐가 있지요?
나 : 그다음엔....
기자 : 그리고 그다음엔 뭐가 나오나?(또 반말을 합니다.)
나 : 아 여보세요..왜 또 반말하시죠?
기자 : 아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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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떤 공식 자리에서 기자 출신의 한 남자를 만난 일이 있다. 여럿이 둘러 앉은 원탁 자리였는데, 이 남자는 나를 포함한 좌중 사람 모두에게 반말을 썼다. 자리에 앉기 전에는 서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서로에게 존대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만난 한국인이 으레 그렇듯 나이나 학번을 서로서로 따져보는 시간이 왔다. 기자 출신의 그 사내는 역시 반말을 섞어가며 자신을 소개했는데, 나보다 두서너 학번 어린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한 뒤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몇 학번이야?"

뭐, 내가 좀 동안(童顔)이긴 했다. 지금은 팍 삭았지만 당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상대에게 저렇게 호방하게 반말을 툭툭 내던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마침 나를 알고 있던 다른 친구가 내가 몇 학번이라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별로 당황하지도 않고 "어~ 선배네요?" 라고 한 마디 했다. 그리고,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그는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반말을 썼으며, 나는 그에게 끝까지 존대를 했다.

나는 그 사내가 원래 무례한 사람이라기보다, 그가 속했던 직업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 직업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니니, 잘못 배운 탓이라 할 만 했다. 나중에 이 남자가 언론사에 있었던 기간이 한두 해 남짓이라는 말을 듣고, 한두 해 만에 사람이 이렇다면 십수 년 있으면 대체 어떻게 되려나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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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을 통해 보는 텔레비전 뉴스 영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나온다. 기자는 적어도 질문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는다. 인터뷰 당하는 사람이 대답을 이리저리 하노라면 중간에 맞장구를 치는데, "응, 응, 응" 한다. 가만히 보면 반말도 아니고 존대도 아닌 희한한 언어를 쓰고 있다. 나이 어린 기자들이 이런 말을 쓰는 데에는, 한국 사회에서 상하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 중 나이 이외의 것들이 의식, 무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자들의 이같은 언어 습관이 경찰서 출입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설이 있다. 입사한 뒤 수습 기자로 일선 경찰서를 드나들 때, 험한 피의자를 다루는 경찰관들을 옆에서 보면서 이같은 권위적인 태도를 학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기자는 피의자를 취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흉악한 피의자라도 기자에게는 소중하고 고마운 취재원일 뿐이다.

기자는 약자에겐 약하고 강자에겐 강해야 한다고 하고, 그래서 상대방 직급이 높을수록 '님'을 붙이지 말라는 관행적 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지침을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저버리고 함부로 말해도 좋다는 뜻으로 여긴다면 아주 잘못 배운 것이다.

똑같은 과정을 거친 많은 기자가 모두 그렇게 망가지는 것은 아니므로, 개인 차이도 크다고 해야 하겠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취재 대상이 되어주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밥을 벌어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고마운 시민들에게 구사하는 일부 언론 종사자의 정체불명 언어는 일반인이 기자 집단을 곱지 않게 보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 글은 몇 해 전에 써둔 것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리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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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자작나무 2014/11/06 18:13 # 삭제 답글

    글 취지에 공감합니다. 뭐 "그건 정말이지 '일부'일 뿐이라고요"라고 말하는 건 전체 논지를 제대로 겨냥하지 못하는 반박이겠지요. ^^
    다만, 분명히 얘기하고 싶은게 있다면요. 초면에 죄다 반발했다는 그 '전직' 기자는 짐작하건데 기자생활 1~2년만에 그렇게 망가졌다기 보다는, 그렇게 망가졌기 때문에 기자생활을 1~2년밖에 못했거나, 기자생활을 1~2년밖에 못해봤기 때문에 선무당이 됐다고 보는게 더 그럴듯한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람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족도 붙여봅니다.)
  • deulpul 2014/11/07 02:00 #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전체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하겠고, 본문에서 인용한 사례들 역시 그런 상식을 위반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것은 언론 종사자들이 갖는 권위 의식이고, 특이한 언어 행태는 그런 의식이 반영되는 한 사례로 생각합니다. 맨 앞에서 존댓말 자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생각해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좀더 생각을 넓히면, 딱 부러지게 반말을 하는냐 마느냐보다, 언론 종사자이기 때문에 갖게되는 (종종 비윤리적인)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의식이 그 배경에 존재하는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런 의식은 언론 주변에서 늘 벌어지는 일들, 예컨대 택시기사와 시비를 벌이며 내가 누군줄 아냐고 큰소리치는 청와대 출입기자, 경찰 음주 단속에 걸리자 같은 식구끼리 왜 그러냐며 빠져나가려는 기자, 기업 향응을 받아 여행을 가는 일을 두고 그 자체는 검토되지 않고 누가 가고 누가 안 가냐가 더 중요한 언론, 청와대에 거액 운동 시설이 들어가서 출입기자들이 (함께) 쓴다는 사실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대통령이 쓴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는 언론의 모습 등에서 일상적이고 일관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과 행동에서 겸손하고 직업적 품위를 잃지 않는 언론 종사자도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사실은, 그 원인을 개인 특성에서 찾는 데서 더 나아가 독자와 시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직업 저널리스트를 만드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고 있나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피렌체 2014/11/08 10:53 # 삭제 답글

    언어습관, 존댓말, 반말 관련한 글이라 근래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어 글을 남깁니다. 회사에 저포함 남자 3명이 입사동기입니다. 나이는 제가 중간이고 제 위는 3살 아래는 한살차이입니다.
    어느 날 나이가 제일 어린 동료가 4살많은 동료에게 집에가자!라는 말부터 함께 식사나 대화 중 반말을 섞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동료는 계속 존대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저에게도 그러기 시작했구요.
    동기라고 생각해서 그런것일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본인보다 많은 사람들은 말을 낮추지 않는데 어린 사람이 그런 언어습관으로 이야기 한다는 게 아무리 동기라도 그리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말하지 말라고 하면 왠지 어색한 기운이 감돌 것 같구요.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저희들끼리만 있을땐 서로 반말섞여가며 편하게 지내야할까요
    아님 존칭쓰자고 제안해야 할까요?
    별것도 아닌 고민상담이지만 왠지 지혜를 주실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 deulpul 2014/11/14 15:01 #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하지만 우리에겐 흔한 상황에 처하셨네요. 한국인다운 마인드로 말씀드려 봅니다. 우선 나이 어린 동료가 두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형'처럼 손위 관계가 정리된 호칭을 쓴다면, 형-동생 사이에서도 친하면 무람없이 반말을 하기도 하니 그런 차원으로 생각하고 넘기셔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그게 아니라 '아무개씨'로 부르면서 반말 한다면, 피렌체님도 그렇지만 특히 더 나이 많은 동료는 지속적으로 심리적 내상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고, 이런 상황은 더 나아가 인간관계가 꼬이는 일로 악화할 수도 있습니다. 날 잡아서 마음을 열고 대화하여 교통정리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최선은 형 호칭으로 위계 관계를 반영하고 모두 반말로 동료 관계를 반영하는 형태 같습니다만("형, 밥 먹으러 가자!"), 세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다르게 정리할 수도 있겠지요.

    또는 호칭이나 존댓말 등에 아예 신경을 끄는 방법도 있다, 내가 남을 안 챙겨주는 일은 곤란하니 그건 하되, 남이 나에게 어떻게 나오느냐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지만, 저를 포함한 한국인에게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큰 의미는 두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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