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 드레드 세상 미국美 나라國 (USA)



여기 언급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시간순).

에릭 가너: 43세 흑인. 2014년 7월17일 뉴욕 주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납세필증이 찍혀있지 않은 담배를 팔다가 경찰에 적발됨. 체포 과정에서 경찰에 목을 졸려 숨짐. 비무장 상태였으며, 숨을 쉴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무시됨. 동영상. 뉴욕 경찰은 목조르기를 금하고 있으나, 해당 경찰관은 사법 처벌되지 않음.

존 크로포드: 22세 흑인. 2014년 8월5일 오하이오 주 데이튼의 월마트에서 쇼핑을 하던 중, 공기총 구매를 위해 포장이 안 된 소총을 들고 전화를 하며 매장을 이동하다가, 총기를 갖고 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총격을 받고 사망. 동영상. 911 신고를 한 백인은 크로포드가 소총을 장전하고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돌아다닌다고 신고했으나, 나중에 이것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시인.

마이클 브라운: 18세 흑인. 2014년 8월9일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관 대런 윌슨(28세)의 총에 맞아 사망. 사건 직후, 그리고 대배심이 해당 경찰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내려진 11월24일부터 지금까지 미국 여러 곳에서 항의 시위가 진행중.

타미르 라이스: 12세 흑인 소년. 2014년 11월22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소년이 총을 들고 다닌다는 신고가 들어옴. 경찰관(26세)은 현장에 도착한 지 2초 만에 두 발을 발사하여 그 중 하나가 라이스의 상반신을 가격함. 나중에 라이스의 총은 장난감 총으로 밝혀짐. 라이스는 다음날 사망.

이 사건들에 연루된 백인 경찰관 중 기소되어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또 새로운 사건 소식이 전해온다. 12월2일 아리조나 주 피닉스 경찰이 마약성 진통제를 팔던(경찰 주장) 흑인 남성 러메인 브리스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호주머니에 든 약통을 총으로 오인하고 실탄을 발사했다. 브리스본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 역시 비무장이었다.

그리고 물론 작년 여름 미국을 뒤흔든 트레이본 마틴 사건이 있다. 사건 자체는 2012년 2월이었으나 2013년 7월 해당 백인이 무죄 평결을 받자 도처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각해 보면, 백인 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 피살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아니, 항상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일지도 모른다. 큰 파장을 몰고 온 퍼거슨 사건 직후 한 달 동안만에도 또다른 흑인 13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만화의 등장인물이(그리고 실제로도 적지 않은 사람이) 주장하듯, 이렇게 피살되는 흑인들은 다양한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렇게 오해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러나 경찰로부터 총격을 받거나 목을 졸려 사망할 정도의 일들이 전혀 아니다. 이런 사건은 결과적으로 미국 경찰이 흑인 범법자나 그렇게 생각되는 이들을, 죄에 합당한 사법 절차를 밟지 않고 즉결 심판의 형태로 거리로부터 싹싹 쓸어내고 있는 모양이 된다. 경찰이 판사, 배심원, 형 집행자를 모두 겸하는 저지 드레드의 세상인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총이 범람하는 미국 사회의 끔찍한 특성이 작용하고 있다. 총기가 많이 돌아다닐수록 안전하다는 총기옹호론자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이렇게 어이없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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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런 사건의 배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인종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을 남용하는 경찰의 잔혹함(police brutality)이다. 백인 경찰의 손에 흑인이 목숨을 잃는 사건들은 이 두 가지 측면이 결부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미국 경찰의 과도한 폭력성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분명한 것은 통제되지 않는 경찰력의 잔혹함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적 사태,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분위기 등에 대해 미국 사회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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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라디오 방송에서 대담자들이 나눈 이야기가 기억난다. 백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고 사회적 정체성도 쉽게 바꿀 수 있다. 백인이 머리를 길러 뒤로 묶고 가죽 잠바를 입고 부츠를 신고 쇠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그는 모터사이클을 타는 라이더 같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가 긴 머리를 짧게 깎고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정장을 입으면 사람들은 그를 비즈니스맨으로 인식한다.

흑인은 이게 되지 않는다. 절대 벗을 수 없는 단단한 옷, 흔히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그 옷을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옷을 입든 혹은 어떤 신발을 신든 선입관과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월마트에서 공기총을 사려고 했던 흑인은 백인의 신고를 받고 쫓아온 백인 경찰에 의해 매장에서 사살되지만, 자기 소유인 반자동 소총을 장전하여 들고 쇼핑 매장을 누빈 백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특정한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그 집단에 덧씌어진 굴레를 감당해야 한다. 그들의 삶에 문신처럼 달라붙어 있는 고통을 집단 밖의 사람이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 굴레 때문에 밉보이고 외면 당할 뿐만 아니라, 길거리나 월마트에서 어이없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이런 위기감과 피해의식을 다른 사람들이 완벽히 공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51년 전에 마틴 루서 킹은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행한 전설적인 연설 'I Have a Dream'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대체 언제 만족할 것이냐고. 경찰의 잔혹함 때문에 말조차 할 수 없는 고통에 떠는 흑인이 있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중략) 나에게는 나의 네 어린 딸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개별적인 특성으로 판단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폴리스 브루털리티'라는 말은 킹의 연설에 두 번 등장한다. 같은 말이 지금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킹의 시대와 지금은 큰 차이가 있지만, 그의 꿈이 완전히 이루어졌는가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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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천재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유치한 말을 반복하며 유행어나 만드는 코미디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과 의견에 유머 감각을 비벼넣어 전달하는, 요즘 말로 하면 스토리텔링의 달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이 단지 사람을 웃긴다거나 시사적인 소재를 쓰기 때문에 대단한 게 아니라, 그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속에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가 몇 겹의 장치로 들어가 있다는 게 대단하다. 그래서 사회를 조롱하고 부조리를 조롱하고,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는 사람들까지 조롱한다. 볼 때마다 대단하게 생각되는데, 이런 것도 자주 하다보면 전형성이 생겨서 쉽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신기한 영역이라는 뜻이다.

루이 CK의 코미디 쇼 중 한 장면이다(26:45~29:20). (설정에서 캡션을 조정하면 한글 자막을 볼 수 있다.)






경찰의 무리한 법 집행으로 흑인들이 연이어 목숨을 잃는 사태를 놓고, 이에 분노하는 백인도,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백인도, 오히려 흑인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백인도 있다. 어느 경우든, 루이 CK의 말처럼, 이들에게 흑백 피부색을 다시 선택하도록 한다면 검은색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어떤 이유든 흑인으로 살고 싶어하는 백인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미국 사회가 유색 인종보다 백인들이 살기에 더 최적화한 사회임을, 그리고 그들이 더 큰 사회적 특권을 갖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상대적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런 특권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비슷한 잘못이 반복된다는 것은 시스템과 프로토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된다. 잘못된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병이 깊다.


※ 톰 투머로우 만화: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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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2014년 12월7일 02:40

내용 일부 추가, 제목 수정

 

덧글

  • 아인베르츠 2014/12/06 15:59 # 답글

    이런 인종 차별적 문제를 볼때마다 궁금한게 있더라구요.

    1. 경관에 의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빈도는? 이 무고한 피해자들을 인종에 따라 분류하면 비율은 어떠한가.

    2. 인종을 구별하지 않고 무고한 피해자가 사망하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관이 처벌받는 비율은? 피해자의 인종에 따라 경관의 처벌 비중의 변동에 가시적인 차이가 있는가?

    3. 무고한 피해자들을 경관에게 신고한 이들의 인종과 피해자들의 인종적 차이 분포도는?

    ...같은것 말이죠. 혹시 이런 종류의 조사에 관해 정보를 얻으신 적이 있거나 이런걸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보신적은 없으신가요? 뉴스 사이트는 의외로 도움이 안 되더라구요...
  • deulpul 2014/12/06 16:28 #

    이런 데이터는 당연히 경찰이나 그들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집계해야 할 텐데, 놀랍게도 인종에 따라 분류한 데이터는 물론이고 전국 차원에서 경찰 공무집행 중에 벌어진 사망 사건과 관련한 데이터가 없습니다. 유죄-무죄, 혹은 죄의 경중을 따지기 이전에 사망 사건 수치 자체가 없습니다. 아마 거대한 땅덩이, 그리고 연방과 주를 비롯해 여러 단계로 나뉜 지방자치 행정 체제 탓이겠지요. 이 지경인데 2번, 3번도 있을 리가 없지요.

    얼마 전에 폭스 뉴스(빌 오라일리)는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하여, 실제로는 흑인보다 백인이 더 많이 경찰의 총에 죽는다고 주장했는데, 이 데이터 자체가 매우 불완전하고 왜곡된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게다가 평소에는 백인으로 쳐주지 않는 남미계 백인까지 포함되었죠. 전문가들은 미국 경찰이 공무집행 중 사망케 한 시민 통계를 잡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http://www.politifact.com/punditfact/statements/2014/dec/04/bill-oreilly/bill-oreilly-cites-faulty-data-claim-about-shootin/
  • 아인베르츠 2014/12/06 16:29 #

    ......정말 없는거군요.

    .....이정도 지경이면 인종차별에 대해 아직까지 말이 들끓고 문제가 발생하는건 당연하다고 생각되네요;
  • deulpul 2014/12/06 16:48 #

    그런 모양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질문들은 상황을 잘 구성하면 실험 방식으로 측정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험 상황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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