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사람을 찾지 마오 중매媒 몸體 (Media)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 생겼다.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다(예고편). 내용도 잘 모른 채, 그냥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어제 영화 제작진이 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글 때문이다: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된다. 중요한 부분을 다시 옮기면 이렇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OOO인데요, 지금 댁에 계시지요? 찾아 뵈어도 될까요?"라는 전화를 받으시고는 울먹이시며 자녀분 댁으로 거처를 옮기셨고 (중략)

할머니께서는 몇 년 전 TV에 소개된 이후, 수시로 찾아오는 취재진을 비롯한 방문객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으셨고, 이번에도 또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십니다. (중략)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할머니의 안부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관심에 대한 궁금증은 저희 제작진이 답해드릴 수 있도록 할 테니, 부디 할머니께 직접적인 취재나 방문 요청은 절대 하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할머니와 가족들을 포함한 저희 영화의 전 스탭들의 한 마음, 한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취재원을 독점하려는 영화 제작진의 욕심 같은 것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적인 호소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지금 정서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밀어닥친 매체 종사자들은 할머니를, 더구나 아직 탈상을 하지 않은 할머니를 인간이 아니라 취재나 촬영 대상으로 보고 다룰 가능성이 크다. 그들에게는 할머니의 삶보다 자신들의 일, 즉 채워야 하는 지면이나 방송에 내보낼 그림이 더 중요할 것이다.

할머니가 취재 대상이 되는 것은 할머니나 그 가족이 먹고 사는 일과 상관이 없다. 반면, 매체 종사자들이 할머니를 취재하는 것은 그들이 먹고 사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 한 측의 영리를 위해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측이 일방적으로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이른바 '국민의 알 권리' 같은 사안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개인은 헌법적 권리(제17조)인 사생활을 보호받고 취재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매체 종사자들은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생활을 보호해 주겠다' '전혀 문제 없도록 하겠다' 같은 약속을 하겠지만, 이런 약속은 인터뷰 시간을 정하는 바로 그 순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우선적인 목적은 지면이나 방송에 내보낼 인터뷰를 따는 것이지, 대담자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손을 쓸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결과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 언론은 취재 과정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지나치게 둔감하고, 목적의식에는 지나치게 철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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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7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비인간적인 대우에 항의하며 분신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 직후, <한겨레>의 한 기자는 문제의 아파트에 찾아가서 취재를 하며 겪은 일을 르포 형식으로 쓴 적이 있다. 거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기사에 나오는 'ㄱ씨'는 분신한 경비원과 함께 가해 주민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경비원이다.


지난 15일 압구정동 ㅅ아파트를 찾았다. ㄱ씨는 115㎡형(35평), 매맷값 14억원대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경비 초소에 있었다. 3.3㎡(1평)도 안 되는 초소는 1983년 아파트가 건축된 이후 한 번도 수리된 적이 없는데 천장을 보니 비를 막기 위한 합판 조각이 조잡하게 덧대어져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외주제작사 프로듀서와 카메라맨은 ㄱ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취재를 했고 울 것 같은 표정의 ㄱ씨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인 채 경비실 의자에 앉았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프로듀서와 카메라맨은 등을 보인 채 의자에 앉은 ㄱ씨와 실랑이를 벌였다.

“나, 찍지 마. 몰라. 내 목소리 다 나가는데.”

“아, 변조한다니까요.”

“할머니 사위가 변호사라든가 검사라고 했어요.”

“아버님(경비 아저씨)이 사실과 다르게 말한 거 있어요? 아버님께서 뭐 잘못된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닌데 왜 그러는 거예요? 동료분은 우울증 약도 드셨고 오죽했으면 남의 차에다가 불을 질러요? 안 그래요? 작은 일, 아니잖아요?”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엄청나게 용기 내서 한 거라고. 진술서 하나 때문에 경찰서 불려가고 조사 받고요. 나한테 불이익 다 돌아오는 거 아냐.”

“(허술한 경비 초소 벽을 손으로 몇 차례 치면서) 가만히 계신다고 이게 바뀌겠어요? 네?”

프로듀서는 약자가 침묵해선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 용기를 내라고 힘주어 설득했다. 이틀에 한번 출근해 1일 24시간을 꼬박 일해야 185만원(실수령액 168만원)을 버는 ㄱ씨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경비원과 프로듀서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끼어들지도 못하고 어정쩡 서 있던 나는 아파트 입구를 오가는 주민에게 말 한번 붙이려고 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비리를 감추려고 하는 권력자도 아닌 일반인이 취재에 응하지 않고 촬영을 하지 말라고 하면,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카메라를 계속 들이대면 그때부터 취재는 폭력이 된다.

'피디 저널리즘'이란 말이 있듯이, 피디도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한다. 따라서 그들도 취재 보도에 수반되어야 하는 윤리적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한국PD연합회가 만든 윤리강령 실천요강의 '교양프로그램 관련 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밑줄은 내가):




위의 피디가 보인 행동은 이런 조항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따려는 직업적 의욕, 그리고 그 뒤에 깔려 있을 정의감 같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일로 인하여 피해를 볼 수 있는 취재원의 처지를 충분히, 그리고 더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피디는 그림 잡고 인터뷰해서 한 번 내보내면 그로써 끝이지만, 'ㄱ씨'는 그 일 때문에 밥줄이 끊어질 수도 있고, 그의 가족은 밥을 굶어야 할 수도 있다. 20대 피디는 40대나 50대일 경비원이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짐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만일 인터뷰를 함으로써 해고를 비롯한 온갖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 자신이라면, 피디는 자신있게 매체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는가?

피디가 취재원에게 답변을 종용한 것이 정의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림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위로부터 박살나는 상황이기 때문인지 먼저 냉철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피디가 ㄱ씨에게 들으려고 한 이야기 대부분은 이미 그가 경비원노동조합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 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의감 때문이라도 마찬가지다. 저널리스트의 정의감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인 취재원을 윽박지르고 벽을 손으로 치고 실랑이를 벌이면서 실현해서는 안 된다. 한국 언론에는 언론인이 아닌 정의의 사도들이 너무 많다.


※ 호소문 이미지: 트위터 보쿠리코. 피디연합회 윤리강령: 해당 웹사이트(본문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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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인하르트 2014/12/18 22:38 # 답글

    꼭 필요한데는 들이대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 deulpul 2014/12/19 13:36 #

    뉴스 연성화에 대한 경계를 떠올리게 하는 말씀이네요. 대상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고, 더불어 방법을 점검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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