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와 최철원 때時 일事 (Issues)

몇 년 전에 재벌 2세가 노동자를 야구 배트로 폭행하고 맷값을 수표로 지불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최철원은 SK그룹 창업자인 최종현의 조카이며, 현 회장 최태원의 사촌 동생이다. 물류회사 M&M 대표를 지낸 그는 2010년, 회사 합병 때 고용 승계 문제로 항의하던 노동자를 사무실로 불러 구타하고 맷값이라며 2천만원을 줬다. 이 일은 돈으로 세상을 사는 젊은 세습 자본가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져 공분을 일으켰다. 사건이 드러난 뒤에, 그가 평소에도 회사 직원들을 구타하고 위협하는 행각을 벌였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최철원 사건은 여러 면에서 조현아 사건과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재벌가 출신으로 기업 경영에 관여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종 취급하는 수퍼 갑질의 행태를 보이다 무리수를 두어 사법 처리 대상이 되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최철원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끝났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항소심에서 최철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 재판장 양현주)는 첫 공판이 열린 날 바로 선고를 내려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와 합의한 사실을 고려했고, 당일 선고가 형사소송법상 원칙이며 그렇게 판결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철원이 집행유예 판결로 실형을 면하고 재판이 일단락되자, 그로부터 13일 만에 그에게 두들겨맞은 폭행 피해자 유모씨를 기소했다. 업무방해와 일반교통방해 혐의였다.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부장 박철이다. 그는 이듬해 SK건설 전무급 임원으로 영입되었다. (이 때 그가 최철원 사건 담당 검사라는 설이 돌았으나, 최철원을 기소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부장 이기석이다.) 박철의 SK 영입과 관련한 배경에 대해 쓴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박철 전무는 부장검사 시절 최철원씨가 폭행 혐의로 구속된 후 폭행피해자였던 화물차 운전기사 유 모씨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해 사회적 비난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돌파력(?)을 보여준 바 있다. 재계에서는 박 전무의 이런 전력이 SK그룹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강한 인상을 남겨 이번 영입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박 전무 영입배경을 박 전무의 인맥과 연관짓는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인사에 대해 재계 주변에서는 SK그룹 윤진원 부사장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윤 부사장은 박 전무와 마찬가지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이며 박 전무의 고교‧대학 선배지간이다.

윤 부사장의 입사 시점은 지난 2008년으로, 2003년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기소된 바 있는 최태원 회장이 대법원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확정 받은 것이 바로 2008년이다.

(중략)

한편 SK건설 관계자는 박철 전무 영입에 대해 “윤리경영 강화측면에서 영입을 했을 뿐 세간에서 회자되는 그룹과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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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2일, 최철원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출두할 때 상황은 다음과 같다.






최철원이 한 말이 잘 들리지 않는데, 이 동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

'재벌 2세 기업인이 직접 야구 방망이를 들어 사람을 패고 그 값으로 돈을 주었다'라는 것은 '재벌 2세 임원이 비행기를 돌리게 하고 직원에게 폭언 폭행하고 내리게 했다'라는 것에 못지 않게 충격적이었고, 따라서 여론의 엄청난 질타를 받았던 사건이다.

그런데 최철원의 출두 장면 분위기는 조현아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우선 최철원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온다. 그는 포토 라인에 서서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사진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시간은 30여 초에 지나지 않아, 5분 가까이 붙잡혀 있었던 조현아와 차이가 난다.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하고 최철원이 자리를 떠날 때, 조현아 때와는 달리 그를 잡아채거나 가로막는 기자도 없었고, 사진기자들은 욕설을 하고 고함을 외치기는커녕,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수사 당국에 도착한 남자 최철원에게 기자들은 매우 얌전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울었던 여자 조현아에게는 악머구리처럼 달려들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4년 전에 비해 기자들이 더 사나와진 것도 아닐 테고, 최철원 사건에 비해 조현아 사건이 몇 배나 더 심각하고 충격적이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분명한 점은, 조현아와는 달리 반성하는 척하는 흉내도 내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던 최철원을 찍은 사진 중에, 사악한 마녀처럼 찍힌 조현아 사진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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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이 구속되었을 때, 한 기자는 이렇게 썼다.


결국 최씨는 12월 8일 구속 수감됐습니다. 하지만 구속이 끝이 아닙니다. 최씨와 같은 기업인이 노동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씨의 행동에는 “임금을 주었으니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된다” “싫으면 나가라”와 같은 삐뚤어진 생각이 반영돼 있습니다. 어디 최씨 한 사람뿐일까요? 노동자를 고마운 파트너로 대하기보다 “돈 주고 쓰다 버리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한국의 노사문화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맞는 말이다. 불행한 것은,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달라지기만을 바란다면, 이러한 한탄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리라는 점이다.

조현아가 구속되거나 처벌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그리고 언론은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내놓을 것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은 그 양상을 달리한 채 계속 나올 것이다. 기자의 말처럼, 어디 최씨, 조씨 한 사람뿐이겠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처럼 인식되는 나라에서, 정치 사건을 맡은 검사는 정당으로 영입되고 재벌 사건을 맡은 검사는 재벌 기업으로 영입되는 나라에서, 국민은 분노만을 즐기고 소비한 뒤 곧 잊고 언론은 그런 일을 부추기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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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ayhawk 2014/12/24 11:07 # 삭제 답글

    한바탕 소란이 끝나면, 그 후를 기억하는(정확히는 기억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 deulpul 2014/12/25 23:20 #

    사실 보통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놓고 생업을 폐하고 줄창 욕만 하고 있을 순 없죠. 관심의 양과 정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줄고 약화하는 것도 자연스럽긴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이익을 도모하거나 할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은 늘 있게 마련이고, 문제는 이러한 관심이 최소한 투표에까지는 이어져야 한다는 점과,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이 차분한 관찰자와 정보 제공자로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겠지요.
  • 123 2014/12/24 16:45 # 삭제 답글

    윗선의 지시때문에 그런거죠;; 검찰태도 보니까 조현아는 버림받았다는게 기자들한테 쫙 퍼졌을텐데 그러니까 진로방해를 하는걸껍니다. 원래 회장이나 총장급 되면 마이크묶은 기자 한명만 인터뷰하고 나머지는 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잖아요?
  • deulpul 2014/12/25 23:21 #

    무슨 말씀이신지... 언론사나 취재 현장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 미스티 2014/12/24 23:12 # 삭제 답글

    언젠가 이건희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었죠? 지금은
    기업, 행정, 정치 뿐만 아니라 사법, 교육, 언론 등등사회 전체가 5류가 된거 같습니다.
  • deulpul 2014/12/25 23:21 #

    그래서 참다 못한 정주영은 직접 정치를 하러 나섰죠. 지금 상황도 참 어렵습니다만, 예전 신문을 보다 보면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한심한 일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거나 꾸준히 싹을 키워온 구악들이라는 점도 있지요.
  • 그러고보니 2014/12/25 09:36 # 삭제 답글

    저는 사실 조현아에 대한 엄청난 분노의 일부분은 "어디 감히 여자가!"와 같은 여성비하 정서에 편승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가장 크게는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흥행하는 사회적 분위기나 세계 언론 여기저기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뻘짓을 했다는 점이 작용했겠지만요..
  • deulpul 2014/12/25 23:21 #

    말씀대로 부차적인 정도의 영역에서, 조현아가 여자라는 점이 조현아측, 언론, 관객 등 모든 주체에게 일정한 정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ㅇㅇㅇㅇ 2014/12/30 16:06 # 삭제

    조현아와 여성으로서 동질감이 느껴지시던가요? 하긴 포토라인 앞에선 조현아의 모습이 어떤 여성들에게는 동질감이 느껴질 만큼 처량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후미에 서술하신대로 객관적으로 조현아는 큰 잘못을 저질러서 국제적으로 국가망신을 시킨게 맞죠. 전 남자지만 좀 불쌍해보이는 감정도 일부 느끼기는 했거든요. 피해의식 아니냐...라고 적으려다가 다시 적었습니다. 여성이 비하당한다는 주장은 개별적인 현상에 가깝지. 추세라고 일반화시킬 주제가 아닌 것 같군요. 지루하군요. 남성/여성.. 조금만 냉정하게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대결구도인지 아실텐데요.
  • 그러고보니 2015/01/03 15:32 # 삭제

    ㅇㅇㅇㅇ / 제가 여성이라는 판단은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저는 서울 모처 대학의 학부에 재학 중인 복학생 남성입니다만, 이렇게 말씀드려도 지레짐작으로 제가 여자일 거라고 넘겨짚은 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제가 남자라고 해도 믿지 않으시겠지요. 근데, 제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여부가 제 말의 옳고 그름에 영향을 주나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ㅇㅇㅇㅇ님께선 "남성/여성"의 "어처구니 없는 대결구도"에 사로잡혀 계신 겁니다. 정신 차리세요. 제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제 말의 옳고 그름을 논리적인 방식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별다른 근거도 없이 저를 여성이라고 간주한 채 자신의 감정과 느낌만을 피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ㅇㅇㅇㅇ님이야 말로 "냉정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군대에서 똑같은 계급장을 달고 똑같은 지시를 해도 여자라고 "썅X, 보X년이 어쩌고" 하며 남성 장교들보다 훨씬 우습게 하는 동료 병사들을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제 주장이 전혀 무리한 일반화가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폭행왕 최철원이나 김승연이가 저 따위 행동을 했더라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생각해 보실 기회를 갖지 못했다니 딱한 분이로군요.
  • imsg 2014/12/30 16:33 # 삭제 답글

    '조현아, 마녀 맞잖아' 포스팅을 보고 들어와,
    몇개 글을 더 읽게 되었습니다.

    옳은 내용이지만 자칫 감정이 담기기 쉬운 사안들임에도
    객관적이고 깔끔하게 분석하셔서 읽기 좋은 것 같습니다.
    본 포스팅 관련해서는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구요.
    사건 담당검사가 하필 '윤리경영총괄'이라니... 아이러니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4/12/31 01:27 #

    윤리의 개념이나 내용이 우리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른 게지요...
  • 베테랑 2015/08/18 14:05 # 삭제 답글

    이번에 베테랑을 보게 되면서 찾게된 좋은글이 벌써 베테랑이라는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아는 사람들은 아는 그런 내용이였군요. 이제서야 알게된 저로서 좀 눈치가 없네요..

    그리고 그러고보니/ 분, 여성, 남성에대한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그거가지고 따질때가 아니고 사회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 해보시지요. 박근혜가 정치하는 현재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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