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뭘로 아나 중매媒 몸體 (Media)

조야한 언어로 제목을 붙여서 죄송합니다.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유나이티드 항공, 승객들 뭘로 아나

한 항공사의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어 하룻밤이 지나는 바람에 승객이 불편을 겪었다는 기사다. 이런 일이 아주 드문 것도 아닌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항공사를 까겠다는 의지가 잔뜩 담겨서, 그런 절절한 뜻을 기사 곳곳에서 읽게 된다.




(1) '승객들 뭘로 아나': 제목에서부터 멱살 잡고 나섰다. 보도 기사가 아니라 사설의 모양을 하고 있어, '전 기사의 사설화' 양상을 잘 보여주는 또 한 사례다. '유나이티드 항공, 결항으로 승객 불편' '유나이티드 항공, 결항 대책 미흡' 같은 제목을 달면 어떨까. 기사의 내용을 잘 반영하긴 하지만 주먹질의 강도가 떨어진다. 다시 말해 조야한 언어를 동원해서라도 까겠다는 강한 결심이 읽힌다. 듣도보도 못한 매체들이 지역 상공인 후려칠 때 흔히 쓰던 제목을,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 중 하나에서 보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유나이티드 항공 결항으로': 급하게 쓴 기사인지, 곳곳에 매끄럽지 못한 표현이나 비문이 등장한다. →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비행기가/항공편이 결항하여

(3) '제대로 된 안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6) '항공사로부터 제대로 된 가이드 없이', (9) '이들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11)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일로 항공사를 비판하는 단정적인 표현들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 표현들은 모두 실제로 벌어진 일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표현이며, 그 뒤에 이러한 단정을 뒷받침할 충분한 사실도 제시되지 않았다. '제대로' 같은 말이 기사를 모호한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제대로' 된 안내를 하는 것인가? 이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객관적인 기준이 있긴 하다. 항공사 매뉴얼이 그것이다. 항공사 직원들이 그 규정대로 일을 진행하였다면, 이렇게 주관적인 방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대신 이런 사태에 대해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1) 항공사 직원들이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였는지 2) 그렇게 처리했는데도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 규정이나 매뉴얼에 허점이나 불합리는 없는지를 살펴보고 지적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랬다면 차분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기사가 되었을 것이다.

(4) '승객들이... 떨면서 승객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비문. (3)과 연결하여 →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불안과 추위에 떤 승객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5) '초중고생들이 수십명이': 조사 '-이'가 중복하여 쓰임. → 초중고생 수십 명이 그 뒷부분도 항공사로부터 제대로/규정에 따른 안내를 받지 못한 채

(7) 사진의 출처가 없다. 이 현장 사진은 누가 찍고 어떻게 입수한 것인가? 승객 중 한 사람이 제공한 것인가, 아니면 기자가 직접 찍은 것인가?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실수인가, 고의인가?

(8) '정모양', (12) '김씨': 승객이 한 말을 직접 받아 적었으므로, 발언자를 할 수 있는 한 특정하여 그 말의 신뢰를 보여야 한다. 당사자들이 이름 밝히기를 꺼렸다면 그러한 사실을 밝히고 최소한 나이라도 명기하여야 한다. (12)에서는 '김모씨'도 아니고 그냥 '김씨'라고 했다.

(10) 지연 시간 동안 항공사에서 식음료를 제공하지 않아 굶었다는 내용이다. 항공기 지연 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는 관련 법규정이나 항공사 자체 규정에 따라 다르다. 한국 항공사는 이런 서비스가 좋은 편이지만, 미국 항공사들은 좀더 인색하게 구는 데도 많다. 이런 부분을 살펴봤더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본문에 없어서 번호를 매겨 지적을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해당 사건에서 가장 기초적인 사실이자 근본적인 문제인 '왜 결항 사태가 발생했나'는 기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항의 원인은 항공사가 취한 조처가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건인데도 말이다. (항공 관련 규정에는 지연 및 결항의 원인에 따라 고객 대처를 다르게 하도록 한 조항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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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윤리적 측면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이 두 가지 더 있다.

첫째, 유나이티드 항공의 서비스를 부적절한 제목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를 싣지 않았다. 항공사가 잘했나 못했나를 떠나서, 이것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둘째, 추정이지만, 이 기사는 이 일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이 쓴 것 같다. '~에 따르면' 같은 형태로 정보의 근거를 밝히는 방식을 쓰지 않고, 기자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면, 기자가 이 일의 이해당사자라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것은 흔히 이해관계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로 표현되는 일이다. 저널리즘에서 COI와 관련한 원칙은,

1) 되도록 이런 상황에 들어가는 일을 피하라(즉, 자신의 이해관계가 관련된 기사는 쓰지 말라)
2) 어쩔 수 없이 쓰게 된다면 그런 이해 충돌 사실을 밝히라

는 것이다. 왜 이런 원칙이 존재하는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위 기사가 이런 배경에서 쓰인 것인지는 추정일 뿐이며, 아닌 경우 이 비판은 당연히 의미가 없다. (이 경우에는, 제시한 사실들의 근거를 밝히지 않고 직접 본 것처럼 쓴 기사 서술 방식이 문제가 되겠지.)

나는 유나이티드 항공사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며, 이 항공사를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했을지는 나도 겪어봐서 잘 안다. 이명ㅂ 다만, 개인 간에 주고받는 가담항설이 아닌 매체 보도문이라면, 그러한 비판을 하기 위해 고려하고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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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ignal 2015/01/04 23:59 # 삭제 답글

    좋은 기사 잘봤습니다.
  • deulpul 2015/01/05 19:20 #

    기사는 아니지만,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fff 2015/01/06 10:08 # 삭제 답글

    좋은 글 덕분에 기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deulpul 2015/01/07 18:13 #

    고맙습니다.
  • kalms 2015/01/07 17:06 # 삭제 답글

    댓글에까지 좋아요를 누르고 싶어지는, 그런 좋은 글이네요.
    저도 덩달아 감사합니다. ^^
  • deulpul 2015/01/07 18:13 #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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