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고나서 쓰는 기사 중매媒 몸體 (Media)

어떤 블로거가 미국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대해 쓴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링크는 하지 않는다). 이 학교는 근처 주립대학교에서 교과 과정과 관련한 연구를 적용해볼 목적으로 세운 소규모 실험 학교다. 사설 재단이나 기관 소유가 아니라 주립대(공립학교) 소속이니까, 이 고등학교도 공립학교다. 그런데 교육청 관할이 아니라 대학 관할이라서 그 위치가 좀 독특한 모양이다.

내가 본 글은 이 학교가 어떤 곳인지, 입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졸업생들이 얼마나 유명한지 등에 대해서 쓰고 있었다. 해당 필자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가는 몇 개의 포스트를 거슬러 올라가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 즈음에 그의 딸이 이 학교에 입학을 했던 모양이다. 해당 포스트에는 그런 사실이 나와있지 않았다.

그런데 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학교 운영 예산의 거의 전부를 학부모나 동창의 기부금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학교는 교육청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재산세 등 지방세를 재원으로 하는 일반 공립학교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대학이 세웠으므로 원래는 대학으로부터 운영비를 받았는데, 1980년에 '재정적 지원관계에서 독립을 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주 정부에서 주는 '굉장히 미미한' 기본 지원금을 받긴 하지만, 학부형 및 졸업생의 자발적 기부금이 '주요 수입'이라는 것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한 학교의 운영비를 자발적 기부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좀 찾아봤더니, 이 학교의 운영비 중에서 학부모-동창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주 정부로부터 받는 '미미한' 지원금이다. 전체의 70%를 '굉장히 미미하다'라고 하기는 어렵고, 전체의 30%를 '주요 수입'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이 학교에 대한 언론 기사에서도 재원 대부분(mostly funded)이 주 정부 지원금이고, 대학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이나 학부모-동창 기부금은 부차적인 재원(supplemented)이라고 되어 있다. 글 쓴 블로거의 주장과 현실이 반대인 셈이다.

그는 1980년대에 대학과 부설 고등학교 사이에 지원 관계가 끊어진 것에 대해 '(고등학교가) 독립을 해버렸다'라고 표현했고,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대학이 끊었는지 고등학교에서 끊었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이런 서술은 부설 고등학교가 재정적 독립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대학의 지원을 거부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가 가진 궁금증은 이미 그가 보았음에 틀림없는 위키피디아에 답이 나와 있다. 그는 위키피디아의 사진을 글에 사용했는데, 바로 그 사진이 실린 위키의 해당 항목에는, 1980년대 초에 대학 당국이 고등학교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중단했다)라고 분명하게 씌어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다면 조금 더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주 정부가 대학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그 여파로 1983년에 대학이 부설 고등학교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던 것. 당시 이 고등학교는 재원이 없어 폐교될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마치 고등학교가 스스로 지원을 끊고 독립한 것처럼 서술했다.

그는 해당 고등학교의 장점을 보여주기 위해 꽤 공을 들여 조사를 한 것 같다. 자기 자식이 해당 학교에 입학하였으니 1차 자료도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초적인 정보들을 잘못 서술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인 이상, 주요한 정보들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글을 보는 사람은 잘못된 정보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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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위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고, 그보다는 나의 이야기다.

글 쓰는 일도 전쟁이다. 남과 싸우기 전에 나 자신과 먼저 싸운다. 사실이라는 벽돌들을 쌓아 주장이라는 집을 짓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문장 곳곳에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크고작은 전투를 끊임없이 치르게 된다.

내가 쓰고 있는 내용과 관련하여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사실이 존재할 때, 그리고 그 중에 한 가지 사실만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할 때가 그 중 하나다. 이 두 상반된 사실의 비중이 서로 엇비슷하다면 차라리 별 고민 없이 둘 모두에 대해 서술하게 된다. 나의 주장의 반증도 상당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내 주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실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보)일 때, 이 사실이나 증거를 제외하거나 무시하고 내 주장을 계속 서술해 나가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반례를 보이지 않은 것은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서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비윤리적인 글쓰기이다. 중요성이나 비중이 어떻든, 자기 주장을 펴기 위해 사실의 일부를 감추는 셈이니까. 주장을 담은 글을 쓰는 일이 자신과의 전쟁인 이유는, 이런 본능적 유혹과 꾸준히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사실에 대해 서술하면서 단어를 조금 바꾸면 내가 원하는 주장을 좀더 강조하는 표현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객관적인 단어보다 주관적이고 가치개입적인 단어를 쓰게 된다. 나도 자주 범하는 잘못이다. 이를테면 얼핏 비슷하게 보이는 '비판'과 '비난'을 그 주체와 대상에 따라 의도적으로 다르게 쓴다든가.

이런 모든 일은, 사실에서 주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장에서 사실을 고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주장을 절대화하려는(다시 말하면 상대의 주장을 절대악으로 보는) 태도가 그런 현상을 부채질할 것이다. 그 결과, 객관적 세계는 주관이라는 틀을 거치면서 원래 모습과는 다르게 변질되고, 그 상태로 읽는 이에게 전달된다. 읽는 이가 이러한 주관적 객관으로부터 새로운 객관의 세계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이러한 왜곡이 사상의 자유 시장, 주장의 자유 시장에서 검증되고 수정된다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보다는 '선택적 노출 - 지각 - 기억'이라는 일련의 편향적인 정보 수용 태도로 인해 왜곡의 각이 점점 크게 벌어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보고 겪는 모습이다.

그래서 애초의 출발점인 글 쓰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싸움이든 이기기보다 지기가 훨씬 쉽다. 편향되고 자극적인 근거만 모아 엮어서 쓰기는 쉽다. 이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다. 자신을 이기고 윤리적인 태도로 글을 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지금처럼 온 세상이 목소리들로 가득 차서, 앞다투어 목청을 높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들리지조차 않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오래 전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서 기자를 하다 은퇴하고 아동복지 관련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현직 기자 시절에, 자리에 앉아 기사를 쓰기 전에 꼭 화장실에 가서 오랫동안 손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고 말했다. 손을 씻으며 또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기사를 읽을 많은 사람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공정함의 의무를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나온 글이나 기사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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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5/01/07 18: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08 02: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미스티 2015/01/08 04:04 # 삭제 답글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누구든지 글을 쓸수 있게되었다는 순기능과 함께 아무글이나 무차별 공유된다는 역기능도 함께 고민해야 되겠죠. 글 쓰는 사람들의 책임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그 학교가 어느 학교인지 링크를 안해주셔서 정말 궁금하네요....
  • deulpul 2015/01/08 22:38 #

    세상에는 100% 좋은 일도, 100% 나쁜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 저로서는, 편리함의 대가로 치르는 비용이 무엇일까를 가끔 생각해보게 됩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낡은 금언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이제는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가 싶을 때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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