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가 되려면 나이를 까라 섞일雜 끓일湯 (Others)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

소설가 이순원의 칼럼이다. 여러 신문이 1월 초에 일제히 발표한 신춘문예 당선자 중 한 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잡음에 대한 글이다.

글의 주제와 직접 관련한 부분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그런데 (신춘문예) 응모자의 이름과 주소뿐 아니라 나이까지 밝히라는 대단히 야만적이고도 폭력적인 응모요강도 있다. 작품 공모에서 ‘나이를 까서’ 나이가 많으면 불이익이라도 주겠다는 뜻인지, 프로필 사진을 첨부해 ‘얼굴을 까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걸로 미리 굴욕감을 줄 거면 그런 신문사들은 신춘문예는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겠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데려다가 일 시킬 사람 뽑을 때 받는 입사 이력서에서도, 나이를 요구하는 게 차별의 공식화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하물며 입사 심사도 아니고 개인의 문학적 재능을 살펴보는 데 왜 나이나 생년월일을 요구하는가. 응모 작품을 평가하여 좋은 작품과 작가를 뽑는 데 응모자의 나이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런 행위를 조금이라도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다.

굳이 생각을 하여 보자면,

1. 영역을 가리지 않고 나이로 줄부터 세우고 보는 위계 의식의 흔적

→ 한심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

2. 반대로, 모든 영역에서 나이를 퇴락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조로 의식의 발현

→ 이것도 별로 할 말이 없다.

3.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해 오던 관행

→ 이것은 더욱 더 할 말이 없다.

4. 신춘문예란 문학에 뜻을 둔 신진 작가를 뽑는 것이고, 따라서 앞으로 많은 작품을 의욕적으로 생산하여 한국 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젊은 문학가를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의 반영

→ 이것은 얼핏 보면 말이 될 것 같지만, 두 가지 의미에서 큰일 날 소리다.

첫째, 이것은 심사 과정에서 나이로 차별을 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목적으로 나이를 제출케 하고 심사에 반영하는 신문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응모작은 최종 당선작을 낙점할 때까지 작품 본문 이외의 모든 부분은 철저히 뜯어내고 심사하여야 하며, 지금도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 경우 제출 받은 나이는 아무런 쓸모도, 의미도 없다.

둘째, 심사 과정에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기준이 필요하다고 해 보자. 그래도 역시 어불성설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소설가 김훈의 예를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첫 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을 쓴 것은 1994년, 그의 나이 만 46세 때다. 그가 쓴 수필집 대부분도 그 이후 나왔다. 대중적으로, 또 문학적 평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칼의 노래>는 53세 때 작품이다. 나는 그가 50평생 세상을 살면서 보고 겪고 이루어낸 체험과 관조가 그의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학가인들 안 그럴 것인가.

김훈이 20대 청년 시절에, 신춘문예 당선을 위해 '신춘문예용 소설'만을 열심히 습작하고 응모하였더라면, 그도 신춘문예의 젊은 당선 작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쓰인 소설은 지금 그가 뒤늦게 쏟아내는 작품들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혹은, 신춘문예로 등단은 하였으나 전업 문학가로는 웬만해서는 먹고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글을 때려치우고 자전거 대리점을 차리든지, 아니면 의용 소방대원으로 전업하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문학에서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아쉽게도 그런 감수성이 무뎌져 간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다행히 세상사는 대부분 trade-off의 양상으로 전개되며,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감수성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곳에는 또 다른 문학적 자산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의 평형성을 유지시켜 준다.

요컨대, 문학이라는 창작의 영역은 나이 같은 수치로 그 품질과 생산성을 따질 만큼 정량적 상품화가 이루어진 곳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봐도, 문학 작품을 응모하는 사람에게 나이를 써 내라고 하는 것은, 입사 응모자에게 나이와 종교를 써내라고 하는 것보다 더 폭력적이고, 그 전에 하이고- 의미 없다. 혹시 신춘문예를 진행하는 신문사들이 나이를 요구하는 데에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내게도 알려주시면 좋겠다.

신문사 처지를 생각해 보아도 안타까운 일이다. 4월 묘목에 물이 좍좍 오르듯 생기 넘치는 팔팔한 소설을 써낸 50대 소설가, 세상 단맛 쓴맛 다 보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나처럼 관조적인 시를 써낸 20대 시인... 이런 사람을 불현듯 만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당선자에게 수상 소식을 전할 때, 혹은 당선자가 신문사로 찾아올 때, 그 사람이 어떤 연령대의 사람인지(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놓고 간질간질한 기대를 하는 일은 얼마나 흥미로울 것인가. 왜 이런 문학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국영기업 인턴사원 모집 이력서 같은 꼴을 하는지 모르겠다.

대체로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영역을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고 지나치게 중요하게 평가 받는다. 애나 어른이나 다 똑같고,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다 똑같다. 그래서, 나이 어린 놈은 어린 대로 아프고, 나이 든 놈은 든 대로 아프다. 자해하는 사회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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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월10일 02:00)

지난 2014년 연말에 신춘문예를 진행했던 일간지와 특수지 등 신문 23곳의 응모 요강을 살펴보았다. 주소, 전화번호 같은 기본 연락처는 당연히 필요할 것이고, 응모 분야나 원고 분량 및 편수 같은 사항도 당연히 필요한 내용일 것이다. 이같이 공모 진행을 위해 필수적인 항목들이 아닌데도 신문사가 응모자에게 요구한 것은 본명(필명을 쓸 경우), 나이(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성별 등이다. 그 상황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빨간 부분이 신문사가 요구한 내용이고, 연노랑 부분은 요구하지 않은 내용이다. 빨간 부분이 많을수록 불필요한 정보를 많이 요구한 셈이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신문사는 <경향신문>으로, 다른 어떤 신문사도 요구하지 않는 성별까지 요구했다. 중앙 일간지 중에서는 <조선일보>와 <한국일보>가, 지방 일간지 중에서는 <강원일보>가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작품을 접수 받았다. 응모 분야를 제한하여 다른 신문과 좀 차이가 있는 <불교신문>과 <머니투데이>도 불필요한 인적사항을 요구하지 않았다.

각 신문사의 2014년말 신춘문예 공지 내용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새 창으로 열림).


 

덧글

  • 아인하르트 2015/01/10 04:44 # 답글

    신춘문예 쪽에선 유명할 조선일보에서 안 받는다면
    구태여 다른 언론사에서 그런 정보들을 요구하는 까닭을 모르겠네요.
  • deulpul 2015/01/10 22:19 #

    모든 보수주의자들의 신조인 '문제가 없으면 쓸데없이 손대지 말라', 영어 관용구로 If it ain't broke, don't fix it의 마인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어요. 손대야죠.
  • 가녀린 얼음요새 2015/01/12 21:48 # 답글

    경향과 조선의 차이가 말해주는 바가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국내 진보 지식인들이 민주주의, 자유, 평등의 가치를 외치면서도 그것을 정치적 구호로만 이용하고, 일상의 토대로 삼는데 실패했음을, 혹은 무관심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든 자신이 먼저 실천해야 일관성과 설득력이 생기는 법이죠.
  • deulpul 2015/01/13 03:58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렇게까지 거창하게는 생각지 않고(차별을 한다는 증거는 없으므로), 그저 진영에 상관없이 타성으로 해온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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