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모녀 사건의 출발점 때時 일事 (Issues)

부천의 한 백화점 주차장에서 고객이 주차요원을 무릎꿇림 시켰다는 소식이 국가 중대사가 되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 사건과 비슷한 맥락에 놓여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돈이나 직위로 다른 사람을 깔아누르고 위세를 부리는 모양, 이른바 갑질이다.

두 사건은 위세부림의 측면에서 비슷한 맥락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두 사건의 다른 점이다.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다.

1. 갑질의 주체

조현아 사건에서 주체는 대한민국 재벌 3세다. 보통의 한국인과는 재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 조양호는 한국에서 돈 많은 사람 100명을 뽑으면 늘 들어간다. 2003년에는 34위였고 2013년에는 67위였다. 50위권으로 평균 내고 비율로 따지면 한국인의 0.0001%에 해당한다. 숫자 잘못 쓴 것 아니다. 동그라미 개수도 맞다. 그런 집 딸이다. 게다가 그녀 자신의 재산도 만만찮다.

그리고 재벌 계열인 항공사의 부사장이다. 그것 말고도 기업 임원 직함이 몇 개 더 있다. 그녀가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우연히 재벌 집에 딸로 태어난 덕분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직위는 그렇다.

백화점 모녀 사건의 주체는 이 정도 위상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그들의 재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재벌집 식솔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냥 날 잡아 백화점 와서 몇백만 원어치 물건을 사는 정도(자신들 주장)의 사람들이다. 이것도 보통의 한국 사람에 비하면 상당한 재력이지만, 조현아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또 사회적 직위도 조현아 정도는 아닐 것이다.

2. 갑질의 객체

조현아 사건에서 1차적 피해를 본 사람은 대한항공 직원들이다. 조현아가 거리낌없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회사'라는 의식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물려받고 이제 자신이 부사장으로 있는 회사다. 직원들은 자기가 데려다 먹여 살리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었을 법하다.

백화점 모녀 사건의 객체는 지하 주차요원이다. 모녀와 특별한 관계가 없다. 고용-피고용 관계도 아니고 월급이나 팁을 주고받는 관계도 아니며 '또하나의 가족' 관계도 아니다. 그저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운전하는 고객과 주차 관리를 하는 직원이라는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관계만이 존재한다.

이렇게, 똑같이 위세를 부린 사건이거나 그렇게 알려진 사건이지만, 그 주체와 객체에서 두 사건은 사뭇 다르다.

이런 차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조현아 사건은 남의 사건이지만, 백화점 모녀 사건은 우리들의 사건이라는 점이다. 조현아 사건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피해자 쪽 시각만 가지면 되었다. 그러나 백화점 모녀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에 동시에 서도록 강요한다.

조현아 같은 방식으로 위세부림을 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재벌집에서 태어나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서 일찌감치 탈락이다. 하지만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99.9999%는 당신과 같다. 위안이 되지 않는가.

섭섭해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재벌집 딸이 아니더라도 위세부림을 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조현아처럼 위세부림을 하기는 어려워도, 백화점 모녀처럼 위세부림 하기는 아주 쉽다. 당장 차 끌고 백화점이든 마트든 지하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는 해가 비치지 않는 땅굴 속에서 하루종일 매연을 맡으며 주차 관리를 하고 푼돈을 버는 불쌍한 임시고용직 노동자가 당신의 갑질을 받아줄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지하 주차장이 있는 백화점으로 가기조차 귀찮다면, 대신 집 근처에 널린 밥집이나 술집 아무 데나 들어가면 된다. 거기에서 당신은 몇천 원을 내고 밥과 술을 먹는 대가로, 음식 시중을 드는 서비스직 노동자에게 위세를 부릴 수 있다. 반말을 할 수도 있고, 면박을 줄 수도 있고, 모멸감을 줄 수도 있다. 무슨 일로 화가 나 있다면, 밥집 노동자에게 얼마든지 풀 수도 있다.

일상 속에서 갑의 위세를 누리기는 이렇게 쉽다. 물론 이런 갑질의 기회는 밥집, 술집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창의력이 뛰어나다면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파트 경비원도 대상이 될 수 있고, 월세 내는 임차인도 될 수 있고, 화물 배달 온 택배 기사도 될 수 있고, 사무실의 인턴 사원도 될 수 있다. 아니, 많든 적든 돈과 권력으로 얽혀있는 관계라면 모두 갑질의 기회다.

나는 이것이 백화점 모녀 사건이 시사하는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조현아 사건 때는 화내고 욕만 해도 괜찮았다. 워낙 우리와는 다른 갑이었으니까. 그러나 백화점 모녀 사건은 우리에게 바싹 다가와 있다. 그 정도 갑질은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사건의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나돌고 있는 백화점 모녀 사건에서 건질 게 있다면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갑질에 대한 분노, 좋다. 그 분노가 우리 마음 속에 주리를 틀고 있는 백화점 모녀들에게도 향한다면, 이러한 소모가 무의미한 낭비로 끝나고 말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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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모녀 사건을 잘 챙기면 건질 게 하나 더 있다.

이 사건을 다룬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의 내용을 그대로 적은 한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백화점 모녀 중 어머니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돈을 기쁜 마음에 쓰러 와서 왜 주차요원한테 이런 꼴을 당하냐. 내가 왜 돈을 쓰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라며 “차를 빼 달라 길래 사람이 와야 가지 않겠냐고 했다. 처음엔 죄송하다고 하더니 차 뒤로 와서 권투 폼을 하더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차를 빼 달라길래 사람이 와야 가지 않겠냐고 했다'는 부분이다. 이게 백화점 모녀 사건의 출발점이다.

'차를 빼 달라'는 것은 주차요원의 지시다. 이 지시에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주차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주차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적(公的) 성격의 요구다.

반면, '사람이 와야 가지 않겠냐'는 것은 저 고객의 개인적인 편익을 반영한 주장이다. 한 마디로, 그건 네 사정일 뿐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규칙이나 그에 근거한 지시에 전혀 맞설 수 없는 논리고 주장이다. 사람을 기다린다면, 그렇게 해도 되는 구역에서 하면 된다. 거기가 멀어서 가기가 싫다면 백화점에 나오지 않으면 된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의 앞뒤로 차를 막고 '사람이 와야 가지 않겠냐'라고 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런 황당한 대꾸를 듣고 주차요원은 '죄송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죄송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규칙은 규칙이고, 그는 그런 규칙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벽창호인 고객에게는 규칙을 설명하고 이를 집행하면 된다.

물론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일은 주차요원으로서의 직업적 전문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랬다면 훨씬 더 세련되게 일을 처리하였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물의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정식 고용한 노동자를 전문화시켜 쓰지 않고 임시직 형태로 값싸게 고용해 부리는 고용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어쨌든 규칙을 정상 집행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 문제가 되었을 때, 백화점은 철저히 규칙의 편에 서야 하고, 규칙을 집행하려는 직원 편에 서야 한다. 그래야 일이 된다. 그래야 공공의 영역이 사익으로 얼룩져 개판이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은 '고객은 왕'이라는 미신에 여전히 사로잡힌 모양을 하고 있다. 기업(주) 처지에서는 뭐 그래도 상관없다. 자신은 황제니까. 고객이라는 왕을 모시며, 급여가 보상하는 것보다 훨씬 피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노동자의 몫이다.

고객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직원도 중요하다. 그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면, 기업은 일단 규정과 규칙의 관점에서 보면 된다. 무조건 굽신굽신하는 태도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유 불문하고 굽신대는 태도가 갑질과 진상을 더욱 키우는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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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스티 2015/01/13 23:28 # 삭제 답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새삼스럽게 느낀게 돈이면 다된다는 물질 만능주의가 생각보다 훨씬 심하게 한국 사회 곳곳에 깊숙이 퍼져있다는 것이네요. 한국을 떠난지 오래되서 그런건지 아니면 제가 하루에 700만원씩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능력이 안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끼리의 최소한의 예의가 점점 사라져가는것 같습니다.
  • deulpul 2015/01/14 02:50 #

    사실 크게 놀랍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치를 형성하여 오고 어떻게 롤 모델을 만들어 오고 어떻게 사람을 키워 왔는가를 생각하면, 답은 정해져 있으나 우리는 인정을 하기 싫어만 했던 것이죠. 지금 돌출된 특정한 사건들에 쏠린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우리가 잘못 밟아온 추세를 되돌아보고 좀더 상식적이고 순한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굴뚝같습니다.
  • Not sure 2015/01/15 04:55 # 삭제 답글

    한국을 떠나온지 25년이 지나 잘 모르겠지만, 백화점등에서의 갑질은 가지고 있는 차와 차림새에 따라 할수 있고 없고가 결정됩니다.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옷을 입고 가면 대우해주고, 소형차에 평범이나 이하의 차림새는 역 갑질을 당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할듯합니다.
  • deulpul 2015/01/15 11:54 #

    그 점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위세를 부리는 관계는 탄력적이어서, 상대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 부분을 갑-을 관계로 보기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 듯하고, 갑도 갑 나름이라는 꼴이 될까요. 과시하고 위세를 떨어야 더 잘 대접받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에 놓이는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 좀더 2015/01/16 15:10 # 삭제 답글

    "상식적이고 순한 세상"이라는 말이 저도 요즈음은 특히나 간절하게 느껴지네요. 엄청난 혁명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데요... 그저 좀더 상식적이고 순한 세상.... 그게 어찌 이렇게 어려운게 되어 있을까요.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어찌보면 진짜 참 새삼스러울것 없는 일들인데, 곪을대로 곪은 것들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는 걸 보고있는 참담함이랄까요. 그런 마음이 들어서요...
  • deulpul 2015/01/18 07:45 #

    말씀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들이지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부끄러운 일을 벌이는 주체들이 예전엔 그래도 욕 먹으면 부끄러워 하는 시늉은 했던 것 같습니다만, 요즘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데다 뻔뻔함까지 부록으로 덧붙어서, 전체적으로 사회적 염치의 역치가 한참 올라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에 있는 것치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들은 드물기 때문에, 그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뻔뻔함이 꾸준히 학습되어 온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예전과는 달리 그런 일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는 점은 긍정적인 것 같고, 한편 그런 에너지가 억측과 과장에 떠밀려 일회적인 광풍으로 몰아치며 소모되다 끝나기보다는 우리 현주소를 점검하고 자타를 경계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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