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자해 행위 섞일雜 끓일湯 (Others)

익명 블로그이지만, 이런저런 계기를 통해 이 블로그를 알게 된 주변 사람이 좀 있(을 것이)다. 이들은 블로그에 댓글 같은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또 실제로 만나도 블로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아마 알긴 알되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는지도 모른다.

자주 만나는 주변 사람이 블로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종종 서늘한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저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데, 그는 내 성향이며 정치적인 지향이며 생각의 작은 꼬투리까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 나는 개인 생활을 거의 쓰지 않지만, 그런 내용을 주로 쓰는 블로거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저 사람의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데, 그는 내 생활의 모든 것, 뭘 먹고 뭘 입고 어딜 갔었고 누구와 만났고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영화를 보고 무슨 음악을 듣고 무슨 병을 앓고 무슨 고민을 한다는 것을 모두 속속들이 알지 않는가.

정보가 재화라면, 자발적으로 손해를 보며 거래를 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종종 매우 불평등한 관계처럼 느껴진다. 일상이 면접 같다고 할까. 면접 당하는 사람은 면접관 개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면접관은 지원 서류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해 이미 상당히 알고 있다. 혹은 이를테면 맞선이나 소개팅 자리에 나갔는데, 한 사람은 옷을 단단히 여며 입은 반면, 다른 사람은 홀랑 벗고 부끄러운 것들까지 다 내놓고 있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도 상상하게 된다: 만일 내가 노소영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해 보자. 혹은 내가 어떤 직업 집단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 해 보자.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노소영의 친척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 직업 집단에 속한 부모나 형제를 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않겠지만, 그런 친척이나 부모 형제를 둔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웃으며 손을 잡겠지만, 내가 얼마나 밉거나 못마땅할 것인가.

상대방은 나에 대해 잘 아는데 나는 그에 대해 모르며, 더 나아가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을 계속하는 것은 자해나 다름없다. 사회적 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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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혹은 적어도 상당수가) 이런 자해를 한다면,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 정보나 의견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데서 발생하는 불평등한 관계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미덕은, 이렇게 집단 자해를 함으로써 가십적 불평등을 해소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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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하나도 안 읽었으면서도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마루야마 겐지를 좋아하는 것은 소설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일본 문학판에 대해 신랄하게 쓴 체험기 같은 수필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를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강단 있는 꼬장꼬장한 인간으로서 좋아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를 괴팍하고 독선적인 고집불통 인간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장편 <정오이다>를 영화로 만드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 쓴 글에 이런 부분이 있다.


러시 필름을 보고 실망했다고 하자 그들은 러시 필름은 원래 이렇다, 편집하고 목소리 더빙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진다고 했다.

시사회에 참석하여 완성된 작품을 보았다. 감독에게 감상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어중간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찍으면 이렇게 되리란 예상이 적중했다.

나는 화면이 아름다웠다고 느낌을 말했다. 그러자 젊은 감독은 갑자기 침묵하더니 혼자 도로를 건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로서는 자신이 있었을리라. 굉장히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칭찬을 해줬어야 했나,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 감독은 꽤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그가 적을 (또 하나)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자기 작품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다면 틀림없이 팬이거나 적어도 상당한 존경과 애정을 가진 사람일 텐데, 그를 챙겨주지 않았다. 사랑하던 사람이 돌아서면 보통의 적보다 몇 배로 무섭다.

게다가, 그 일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써내고 있다. 글을 보는 사람은 그 감독이 누군지 다 알 것이다. (찾아보니 한국에서 잡스러운 논란이 벌어진 영화 <新 雪國>(2001년)을 감독한 고토 고이치다.) 감독 쪽에서 보면, 마루야마를 미워할 이유가 두 번이나 생긴 셈이다.

자기 생각을 남들이 볼 수 있는 글로 써낸다는 것은 대개 이런 양상인 것 같다. 칭찬만으로 가득찬 글발이 아니라면, 하나 쓸 때마다 적을 하나씩 만들어 내는 꼴이 된다. 이것도 사회적 자해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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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기 검열의 과정에 들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글을 쓰던(치던) 손을 움츠리게 되는데, 그 결과 하던 말을 안 하지는 않고, 대신 되도록 순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건 사실 자기 검열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내용보다 표현에 먼저 반응하고 더 크게 반응한다. 똑같이 욕하는 것인데, 이자식 정도면 그냥 넘어가다가도 이새끼 그러면 못 참고 달려든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표현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한다. 뜻 전달을 가로막는 적대감의 외피를 불필요하게 형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 편이 옳을 것이다. 존재를 드러내려는 것이 글의 목적인 사람은 상관없지만, 뜻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그 표현에 두 배, 세 배 주의하는 편이 좋겠다.

그런 시각을 갖고 가끔 옛날 글을 보면, 내가 봐도 기분이 언짢아질 정도로 피가 뚝뚝 흐른다. 왜 그렇게 빡빡댔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마도, 깔 것은 서로 까고 그래도 그런 비판이 서로의 인간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쿨한 논리주의자들 같은 것을 이상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논리는 곧 잊혀지지만 감정은 오래 간다. 머리만 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머리와 심장을 다 갖고 있다는 점을 종종 잊는데, 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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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을 쓴다는 것은 이처럼 이중의 의미로 자해가 된다: 1) 정보나 의견의 일방적 공개, 2) 비판으로 적을 만들기.

그런데 자해 스타일과 정반대의 글쓰기가 있다. 자신에게 복과 실리를 듬뿍듬뿍 주는 글쓰기다. 나는 이것을 '신정아식 글쓰기'라고 부른다.

2007년에 <동아일보>는 '멀리 가는 책의 향기'라는 연재 칼럼을 실은 적이 있다. 사회 명사들이 돌아가며 쓴 이 시리즈는, 그들이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하는 성격의 칼럼이었다.

아래 글은 이 시리즈의 하나로 2007년 6월에 신정아가 쓴 글이다. 허위 학력이 드러나 사회적 물의가 벌어진 것은 같은 해 7월이니까, 바로 그 직전에 발표한 글이다.




이것은 자해적 글쓰기의 정반대로서 매우 모범적인 글이다. 글 쓸 기회를 빌어 처세를 도모하려는 사람들이라면 달달 외울 정도로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

그 핵심은 두 가지다: 1) 자신을 PR하기, 2) 주변 사람, 혹은 영향력 있는 사람을 챙겨주기.

같은 시리즈에 칼럼을 쓴 다른 사람들은 대개 책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책을 소개하기 위한 필요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런데, 신정아는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글에서 상당한 부분이 책과 아무런 상관 없는 자신 이야기다. 이 칼럼을 담당하는 기자는 신정아의 글을 받고 좀 곤혹스러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엉뚱하게 들어간 자기 이야기의 취지는 물론 PR이다. 자신이 별명인 '신다르크'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거나, 미국식 글쓰기에 익숙해서 사람들이 글을 읽고 나면 혼란스럽다고 했다거나 하는 부분은, 보통 사람이라면 손발이 오글거려서 공개적으로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야기다. 미국식 글쓰기 운운한 부분은, 실제로 미국에서 십수 년 살며 학위를 하고 돌아온 사람이라도 그렇게 쓰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정도의 강심장을 가져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뒤 벌어진 사태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경우는 강심장 정도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공을 가졌다는 점이 있긴 하다.

그보다, 내가 저 칼럼을 읽은 뒤 무릎을 친 것은 두 번째 부분에서다. 나는 필자가 이 짤막한 칼럼 하나로 세 사람을 챙겼다고 생각했다. 책을 소개해 줬다는 사진작가, 그리고 자신과 같은 업계에 속한 두 저자다. 책을 권해 줬다는 부분이 특히 특이한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라도 보통은 이렇게 거명을 하며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책을 독자에게 소개한다는 칼럼 취지와 직접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당사자들 처지에서는, 누군가가 신문 칼럼을 쓰면서 자신을 비판이 아니라 추천이나 우호의 의미로 거론해줬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책 홍보에 상당한 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필자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는, 이 칼럼을 읽자마자 필자가 아주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 허위 학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이 칼럼이었다.

어쨌든 이것은 보약 같은 글쓰기의 모범글이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핵심만이 아니다. 잘 보면 여러 가지 조야한 장치가 잔뜩 들어있다. 자해가 아니라 처세의 방향에서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다. 잘 연구하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물론 그 피가 흐르고 그 살이 자라나서 결국 독이 되는 주화입마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상식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밥맛 없는 인간으로 비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이 짹짹이는 것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줄 수 있는 사람들만 잘 챙기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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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이렇게 자해를 한 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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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alms 2015/01/26 14:04 # 삭제 답글

    드라마 '펀치'를 뒤늦게 시작해서 보면서
    박정환(김래원)이 조강재에게 하는 말을 보면서
    '저렇게 적을 만들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지만,
    그게 내 모습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말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것은...

    나의 적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그들에게 애정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동등하다고 동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쓴 소리를 하는 거고,
    거기에 자기 검열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십중팔구는 ... 아무 말도 못하게 됩니다.

    신정아는 좋은 예가 아닌 것 같고,
    조조의 책사들이라면 어떨까요?
    주유나 제갈양이나 방통 말고, 신욱 같은...

    꼭 주군이라서가 아니라.
    아니죠. 상대방을 주군으로 생각해 줘야 하나 봅니다.
    당연히, 나에게 쓴소리 하는 사람을 나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외로 나만큼 쓴소리를 많이 하지는 않더군요.
  • deulpul 2015/01/28 04:10 #

    신씨는 물론 부정적인 사례의 의미로 쓴 것이죠. 좋은 약은 맛이 쓰고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고 하지만, 쓴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공자는 "말을 듣기 좋게 하고 낯빛을 선하게 꾸미는 자치고 어진 자가 없다"라고 했고, 정자가 이를 받아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는 것이 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곧 어진 것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에서는 쓴소리나 하면 십중팔구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것이겠지요.
  • 수시렁이 2015/01/26 23:43 # 답글

    잘 읽고 갑니당
  • deulpul 2015/01/28 04:10 #

    감사요-.
  • Benjamin 2015/01/27 11:23 # 삭제 답글

    자해하실 때마다 행복함을 느낍니다.
    몇달전 우연히 알게된 블로그인데 RSS 리더기에 등록해놓고 글 쓰실 때마다 와서 정독하면서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deulpul 2015/01/28 04:11 #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 오황 2015/01/27 17:31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자해지만 본의아니게 처세인 글도 되겠네요.ㅎ
  • deulpul 2015/01/28 04:11 #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알려주시면 생각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 아인하르트 2015/02/01 07:21 # 답글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써서 공개(그것이 블로그가 되었든 신문지상이 되었든 책이 되었든)하는 것이 자해든 자위이든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 뭐 쓴다고 해도 기본적인 사실을 왜곡한다던가 잘 모르는 사실을 공부도 안 하고 쓴다던가 남에게 욕을 한다던가 자기는 우월하고 남은 열등하다 식으로 쓴다던가 하는 것은 별개지만요.

    그런 점에서 들풀님 글을 보면 여러모로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
  • deulpul 2015/02/04 19:21 #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는 일은 많은 경우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별개라고 말씀하신 것은 저도 하나하나 명심해 두어야 할 내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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