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우는 자원봉사 섞일雜 끓일湯 (Others)

작년 가을에 시작한 자원봉사 튜터 일이 두 학기째를 지나고 있다. 지역에 있는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짝이 되어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사는 동네 주민 대부분은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이다. 자연히 초등학생 또래 아이가 많은 편이다. 주민센터는 이 아이들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튜터링도 그 중 하나다. 교습을 신청한 아이와 자원봉사 선생님을 연결해서 개인 교습이나 소규모 수업 형태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주민센터 회의실에서 공부를 한다.

내가 여기 참여한 것은, 자원봉사 선생님이 부족하니 생각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전체 이메일을 보고 답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청 서류를 작성할 때, 지원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는 몰라도 꽤 자세하게 적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추천자도 두 명 세워야 했고, 범죄 기록을 조회하는 과정까지 있었다. 이것은 아동 관련 범죄 전력이 없나를 점검하기 위해 법이 요구하는 절차다.

가르치고 싶은 과목을 써낼 때, 나는 수학, 역사, 미디어라고 썼다. 아이(부모)들도 튜터를 신청할 때 배우고 싶은 과목을 써낸다. 가장 수요가 많은 과목은 단연 영어다. 외국 출신 아빠 엄마를 따라 온 아이들이 많고 이들에게는 말을 익히는 일이 가장 시급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영어는 물론이고 역사, 지리, 과학, 미국 문화, 미디어 독해까지 혼합되어, 마치 <동아전과>와 같은 모양으로 공부를 한다. 크리스마스 앞주에는 캐럴도 배웠다. 선곡에는 물론 'Look out the window'가 들어갔다.

나랑 연결이 된 어린이 둘은 중국에서 왔다. 3학년, 4학년인 두 아이는 모두 1~2년 단기 체류하는 연구원들의 자녀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알게 됐는데, 대학원생처럼 상당 기간 체류하면서 아이를 이곳의 교육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편입시키는 사람들보다 연구원 같은 단기 체류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아이를 더 보내고 싶어했다.

두 아이(A와 B라고 하자)는 희한하게도 모두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왔다.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라서 훨씬 친근하게 느껴졌다. 두 가족은 미리 알던 사이는 아니고, 여기 와서 친해진 사람들이다. 같은 지역 출신이라서 그런지, A와 B는 학년이 다른데도 아주 친한 동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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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낯선 지역 사람들을 대할 때 흔히 그들을 한 범주로 묶으려고 한다. 중동 사람은 이렇다든가 히스패닉은 저렇다든가. 그러나 사람이 어디 살든 개별 인간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보편적으로 존재함을 고려하면, 이렇게 묶는 것은 우악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아이도 그렇다. 같은 지역 출신이고 심지어 살던 도시도 같지만, 교습 과정에서 아이들이 보이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4학년인 A는 굉장히 소극적이고 수줍음을 탄다. 묻는 말에도 잘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엔 좀 힘이 들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아주 활발하고 적극적인 아이였다. 나는 A가 원래 소극적인 게 아니라, 영어로 어떤 말을 해야 할 때에만 소극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는 질문에 대한 답을 흔히 "음~~~~~~~~"으로 시작한다. 말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음~~~'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만약 같은 대답을 중국어로 하라고 하면 청산유수로 말할 것이다.

애들은 어른보다 말을 빨리 배우고 쉽게 적응한다고 하지만, 낯선 데 던져진 아이는 어린 대로 나름 얼마나 고생일 것인가. 학교에서 선생님 말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고, 애들이 뭐라고 하는지도 하나도 모르겠고. 말 대신 눈치를 살피며 따라해야 한다. 멀쩡하던 자신이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A가 원래부터 소극적인 아이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 뒤로, 어떤 말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쓸 때면 좀더 참을성있게 기다리게 되었다.

A가 말은 잘 못해도 바보가 아니라는 것은 독해를 시켜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저보다 2년 위인 6학년용으로 나온 영어책을 읽히고 독해 문제를 풀게 하면, 거의 완벽하게 답을 써냈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농담을 한다. 모르는 척 하지 말아. 네가 안다는 것 다 안다고!

3학년짜리 B는 정반대다. 수업 내내 재잘댄다. 가만히 들어보면 다 말이 된다. A랑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에 왔는데도 말을 훨씬 잘 한다. 질문도 제가 먼저 끊임없이 던진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내용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일이 잦다. 공부하는 중에도 수시로 앞에 나가 칠판에 뭔가를 그린다. 그래도 함께 공부하긴 훨씬 편하다.

두 아이가 수업에 오는 모습도 다르다. A가 아무 것도 갖지 않고 몸만 달랑 오는 데 비해, B는 언제나 가방에 공책과 필기도구를 꼭 챙겨서 가져온다. 나랑 만난 첫날, 자기가 쓰는 공책을 보여주었다. 표지에 'My Poems and Funny Stories'라고 적혀 있었다. 안에는 자기가 썼다는 영어 동시들과 그 시 내용에 맞는 그림들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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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를 데려갈 때 잠깐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간다. 지난 학기 마지막 수업 때는 한 부모가 직접 빚었다며 만두를 두 봉지나 주었다. 옆에는 56도짜리 북경 이과두주 작은 병 하나도 들어 있었다. 이 독한 술을 접해본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하루는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이었는데, 낯선 부부가 들어왔다. 아주머니가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엉겁결에 함께 인사를 하며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중국인인데 지나다가 인사를 하러 들렀다고 한다.

"아, 그런데 어떻게 한국말을?"
"저희는 조선족입니다."

이곳에서 미국 교포는 많이 봤어도 중국 동포는 처음 봤다. 적지 않게 있더라도,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 부부는 한 아이 부모와 이웃인데, 한국인이 아이를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

이들과 내가 연결되는 접점은 국적도 아니고 지역도 아니다. 어슴푸레하게 존재하는 핏줄 뿐이다. 그 흔적이 비록 희미하더라도 여전히 붉은 빛이어서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게 하나 싶어 마음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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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이번주에 학교를 빠지고 플로리다로 놀러 갔다. A는 1월 초 학기가 시작했는데도 미시건의 친척 집에서 놀다 왔다. 학교 출석 과정에 묶이지 않는 것은, 학제가 다른 곳을 옮겨다니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더 많이 배울지도 모른다.

A는 2월에 중국으로 돌아간다. B는 이번 여름이다. 세상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중국 동북부 끝의 한 도시에서 태어난 두 어린이가 미국에서 나와 잠깐 만났다가 다시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노라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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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하태석 2015/02/04 23:44 # 삭제 답글

    당신은 아름다워요.
  • deulpul 2015/02/05 14:43 #

    광고인 줄 알고 지우려 했더니 링크가 없...
  • 하태석 2015/02/06 23:51 # 삭제

    평소 느끼던 생각이었답니다.
    배우는 게 많았답니다.고마움의 표시라고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광고인 줄' ...웃었답니다.
  • deulpul 2015/02/08 04:56 #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마음이 밝아지네요.
  • misty 2015/02/05 05:28 # 삭제 답글

    당신은 아름다워요. x 2 :)
  • deulpul 2015/02/05 14:43 #

    아무래도 자원봉사 모집 캠페인에 나오는 말 같군요...
  • kalms 2015/02/05 11:04 # 삭제 답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재밌어 보이네요.
    그들에게는 절실한 어떤 것.
    내게는 약간의 준비 시간과 소통..
    물론 약속을 하고 이행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겠기에...
    개인적인 스케쥴(약속)과 충돌할 때 갈등하는 건 또 다른 스트레스일까봐
    망설이고 있지만...
    재밌을 거 같아요.
    의미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느낌. 그것도 재미의 정의 중 하나 아닐까요?
  • deulpul 2015/02/05 14:49 #

    아주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재미있으니까요. 직업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이런 일은 비교적 적성에 맞게 선택할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도 대상자뿐 아니라 봉사자에게도 효용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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