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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다 태우고 서리 제거…300명의 ‘200시간’ 허비한 대한항공

분노와 사소한 정의감만 있고 기사를 기사로 만드는 필요하고 정당한 과정은 생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비슷한 기사가 흔하게 널렸는데도 특별히 들고 온 것은, 그런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궤변의 논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일부를 그대로 보자.


간신히 시간을 맞췄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8시25분 비행기는 출발하지 않았다. 10여분이 지났을 무렵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안전한 비행을 위해 항공기 서리제거 작업을 마치고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 작업은 30~40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라고. 항공기 안전을 위한 조처라는데 ‘감히’ 불만을 표시하는 승객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한 승객이 승무원을 불렀다. 그는 “비행시간 맞춰 빨리 타라고 난리칠 땐 언제고, 이제 승객들 다 태우고 항공기를 정비할 테니 30~40분씩 그대로 앉아 기다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승무원은 “항공기 안전을 위한 것이다. 서리제거 작업은 원래 손님들을 태우고 정비장으로 가서 하는 것이다. 양해해달라”고 대꾸했다. 겉모양새는 친절했지만, 찬찬히 뜯어보니 ‘너희들 안전을 위한 것이니 우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기다려라’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에 듣고 있던 기자도 가세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취재했고 지금도 취재하고 있던 기자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시내버스도 운행 전에 차량을 점검하고 유리에 성에가 끼었으면 버스기사들이 다 닦아내고 손님을 태운다. 항공기 동체에 서리가 내렸으면 미리 정비장에서 서리를 제거한 뒤 손님들을 태우고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승무원은 ‘원래 승객들을 태우고 이륙 전에 정비장으로 가서 서리제거를 하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정리하면,

1. 승객 탑승이 완료되자 비행기는 서리제거 작업 안내를 했다.
2. 한 승객이 왜 사람을 태우고 제거 작업을 하냐고 따졌다.
3. 승무원은 왜 그런지를 설명했다.
4. 기자도 가세해서 왜 버스처럼 하지 않냐고 함께 따졌다.
5. 승무원은 원래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반복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300여 명 승객 중에 진상 승객 두 명이 승무원을 상대로 꼬장을 부린 것이나 진배없게 들린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1. 운항중

기사에 따르면 비행기 출발 시각은 8시25분이다. 기자는 (설 연휴를 앞둔 때라 승객이 많으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왔으므로) 허겁지겁 표를 사서 "해외 여행의 '별미'인 면세점 구경도 못하고" 8시20분에 가까스로 비행기를 탔다. 물론 이 모든 일은 항공사의 잘못이 아니며,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승객(기자) 자신의 잘못이다.

승객이 허겁지겁 탔든 느긋하게 탔든, 비행기 출발 시각으로 정해진 것은 8시25분이고 이것은 기자를 포함한 승객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시각은 승객과 항공사 사이에 맺은 약속이며, 그 내용은 비행기가 정해진 시간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후의 사정은 전적으로 비행기(항공사)에 위임할 수밖에 없다. 출발 시각 이후 비행기가 어디를 날아가든 뛰어가든 그것은 비행기의 사정이며, 승객은 출발 시간에 출발하고 도착 시간에 도착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비행기가 왜 적도 항로로 가지 않고 극지 항로로 가냐고 승객이 따질 수 있는가.

조현아가 비행기 안에서 벌인 일이 현행법상 심각한 행위로 받아들여진 것은 왜인가. 비행기가 일단 문을 닫고 움직였으므로 '운항중'으로 볼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 아닌가. 승객을 다 태우고 정해진 시간에 문을 닫고 움직이는 비행기는 운항중이다. 그게 어디 가서 어떤 일을 할지는 비행기 운항에도, 안전에도 문외한인 승객이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문제의 승객이 "비행시간 맞춰 빨리 타라고 난리칠 땐 언제고, 이제 승객들 다 태우고 항공기를 정비할 테니 30~40분씩 그대로 앉아 기다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했다는 말은,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비행 시간은 약속이고 이미 정해진 것이니 게으른 승객들에게 빨리 타라고 난리친 것이고, 그 이후는 정비를 위해 30분 앉아 기다리든 하늘에 떠서 3,000분 앉아 기다리든,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승객의 일이다.

(☞ 수정된 기사에 따르면 해당 비행기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느라 예정 시간보다 늦게 출발했고 도착도 늦었다고 한다. 이 경우 승객이 불편하게 생각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래 [덧붙임]을 참고하십시오.)

2. 매뉴얼

이러한 상식을 뒤엎고 기자도 항의에 가세했다고 한다. 승무원이 승객 항의에 대해 설명해 준 것을 '대꾸했다'라고 표현했고, '너희들 안전을 위한 것이니 우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기다려라'는 말로 들렸다고 비틀어 표현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대목에서 매뉴얼을 떠올렸을 것이다. 승무원의 '우리가 하는 대로'란 '우리 내키는 대로'가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규정대로'라는 뜻이다. 승무원이 승객에 대해 갑(甲)이라서 니들은 닥치고 기다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 안전과 효율에 관계된 수많은 고려와 시험을 거쳐 입안된 매뉴얼에 따르는 대로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조현아 사건에서도 매뉴얼이 문제이지 않았던가. 분명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데도, 회사 임원의 고함 한 마디가 매뉴얼을 무력케하고 새로운 매뉴얼로 등극했다는 부조리한 사실은 이제 누구나 다 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매뉴얼대로 한다는 (취지의) 승무원 설명을 듣고도 계속 항의한 그 승객이나 기자는 (갑질이 아니라 매뉴얼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현아와 유사한 멘털리티를 가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세월호 사건

이 활극 기사에서 가장 황당한 부분은 세월호 사건을 등장시킨 것이다. 기자는 이 진상 승객과 합세하여 항의한 이유가 세월호 사건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린 교훈으로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뼈가 저리다못해 삭기까지 한 모양이다. 그런 교훈을 아무 데나 들이대고 싶어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안전 수칙 같은 것은 내팽개치고 책임 회피를 위해 혹은 무지에서 피해자들에게 얼토당토않은 가이드를 내리면서 나온 말이다. 비행기 승무원이 '가만히 있으라'라고 한 것은, 안전을 위해 그렇게 매뉴얼에 정해져 있으므로 그렇게 하는 동안 협조해 달라는 뜻이다. 세월호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대한항공 비행기에서는 가만히 있어야 산다. 이것은 상식적이고도 중요한 차이가 아닌가.

아이들은 사물을 용도나 재질로 구별하지 못하고 그 형태로만 구별한다. 차이를 인식할 줄 아는 것은 성숙함과 지성적임의 증표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건은 그 자체가 매뉴얼을 무시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다. 진상 승객, 진상 관리자가 아무리 악을 쓰고 압력을 가한다 해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야 안전이 보장되고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 세월호 사건의 중요한 한 교훈이다.

위 기사는 우리가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통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대가로 배웠어야 할 소중한 것을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함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배우고 돌아보기보다 싸우기 바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배우고 돌아보는 데보다 싸우는 데 더 관심이 컸다. 그러다 보니 그 교훈의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아무 경우나 싸울 때 써먹는 핑계나 빌미가 되어 버렸다. 싸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싸우기만 한다면 그런 비극의 역사가 우리 사회와 개인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

4. 비전문가

기자는 승무원에게 '버스는 성에를 제거하고 승객을 태우지 않느냐'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인천에서 홍콩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비행기는 버스와 다르다. 가는 길도 다르고 그 길의 상황도 다르고 안전에 대한 부담도 다르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한다. 반복하지만, 차이를 인식할 줄 아는 것은 성숙함과 지성적임의 증표다.

비행기가 승객을 태우고 출발 직전에 서리 제거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한기에는 서리 제거 작업과 출발 사이에 간격을 최소화해야 더 안전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방침이 정해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기자는 항공기 안전 운항에 전문가가 아니므로, 20~30분의 불편(사실 불편도 아니고 원래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미리 약정된 바이지만)을 없애기 위해 비행기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코치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진 아무개처럼 경비행기라도 몰아봤다면 대형 여객기의 겨울철 운항 안전에 관해 코멘트할 10% 정도의 경험치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당 기자는 그런 상황도 아닌 듯하다.

비전문가가 무지를 갑옷으로 두르고 억지를 창으로 들고 전문가와 싸우러 나서는 순간, 사회는 부조리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 비전문가가 이러한 싸움을 정의라고 생각하면 사회는 탈출구 없는 혼란의 순환에 갖히게 된다. 불행히도 그 비전문가가 권력 집단에 속한 경우 사회는 망조의 길로 나아간다.

5. 국제 규정

항공사가 그런 방식을 취하는 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기자도 곧 알게 된다. '휴대전화로 관련 내용을 검색'해 봤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륙 직전에 처리하도록 한 방침이 국제 규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자, 자기 주장/기분과 다른 (정확한) 기사에 대해 '항공사에서 보도자료를 받아쓴 듯한 종합일간지 기사'라고 폄하한다.

보도자료 받아 기사 쓰는 일에 관한 한, 해당 기자도 완전히 면책은 아닐 것이다. 한국 기자 100%는 적어도 기자 일생의 한 순간에 모두 그러기 때문이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는 않다. 기사에서 그렇게 비아냥댔으니까 한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규정은 규정이라는 것이다. 항공사 보도자료를 받았든, 백과사전을 베꼈든, 항공 안전과 관련한 3,500쪽짜리 영문 지침서를 보고 썼든, 규정은 규정이고 그 내용의 가치가 다를 수 없다.

6. 이해할 능력

기자가 검색해본 규정에는 '외기 온도 섭씨 10도 이하, 시정거리 1.5㎞ 이내에 안개나 진눈깨비 혹은 눈·비 등이 있는 기상상태'가 대응 조건이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봤으면서도 뭐라는 줄 아십니까.

지난 5일을 전후한 인천공항 날씨는 최저 영하 3~4도에 불과했고, 대부분 오전 중에 영상기온을 회복해 이날도 포근한 봄날 같았다. 따라서 수백명의 승객을 태운 채 서리제거 작업을 한다는 설명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한 걸 놓고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공개 자백할 게 아니라, 정 이해할 수 없고 의문이 든다면 취재를 해야 한다. 그러라고 월급 받는 게 기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쓰는 것은 나 같은 듣보잡 블로거나 할 일이다.

그런데도 기자는 승무원의 주장이나 '보도자료를 받아 쓴' 기사를 반박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떠한 자료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 독자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7. 진상

대한항공 인천발 홍콩행 비행기 안에서 두 정의의 사도가 벌이던 활극은 이제 조현아급 갑질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급기야 같은 의문을 품고 항의를 하던 손님이 사무장을 불렀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흉내내기라도 하듯 ‘메뉴얼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무장 역시 ‘항공기 안전’만 얘기하며 승객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갑질하는 데 왕후장상의 씨가 있다더냐! 아니면 세상에 대기업 오너만 갑질하란 법 있다더냐! 이코노미 타는 (것으로 추정되는) 승객도 갑질 할 수 있단 말이다!

안전 원칙을 이야기해도 우이독경인 진상 승객을 어떻게 설득하란 말인가. 진상이란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도 인정하지 않고 떼를 쓰며 억지를 부리는 인간들을 말한다. 이보다 더 정확할 순 없네.

8. 승객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특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항공편이 늦어지거나 결항될 때, 승객들이 바보같을 정도로 고분고분하다는 것이다. 화를 내거나 항공사 직원에게 항의하는 모습은 쉽게 보기 어렵다.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늦어진다'는 것은 한두 시간 지연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오에 출발하려던 비행기가 계속 늦춰져 밤 11시에 출발한다거나, 승객들이 다 좌석에 들어차고 게이트까지 닫힌 상태에서 대여섯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은 경우다. 좌석에 앉아서 꼼짝도 못한 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불편이고 고통이겠는가.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화를 내고 따지고 싸우려 드는 사람이 없다. 지연되는 동안 탑승 게이트가 계속 바뀌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지시된 게이트로 이리저리 이동한다. 기내에서 묶인 경우도 짜증이야 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무원과 드잡이를 하려는 사람은 없다. 모두 내가 직접 겪었거나, 혹은 직접 겪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런 상황을 겪거나 들으면, 한국 승객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 승객이 왜 그런 태도를 갖는가 생각해 본 일이 있는데, 아마도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한 믿음이나 공감대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1. 항공 여행에서는 (예컨대 대기 시간 단축 같은 것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2. 항공사 직원들은 규정과 매뉴얼에 따라 그들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3. 항공 여행에서는 늘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말하자면,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결항되는 것은 항공사 처지에서도 매우 불편한 일이며,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으며, 그 상황에서 항공사 직원들은 자기네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직원에게 항의하고 그들과 싸운다고 해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고 할까.

위의 기사에서 묘사된 활극은 결국 어떻게 끝났나. 두 승객이 불필요한 항의를 통해 자존감을 높인 것( = 공리의 약간의 증가) 정도가 사회적 성과일까. 그것 말고는 아무런 성과가 없으며, 이것은 처음부터 당연하게 예상되었던 것이다.

아, 기자는 이런 뻘기사를 하나 건지긴 했다. 평가하건대 +보다 -가 더 많은 기사라서 성과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9. 취재

이상은 그야말로 상식적인 이야기다. 무엇이 멀쩡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상식을 박탈하고 눈을 가리고 머리를 마비시키는지 진심으로 고민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저널리즘이다. 그래봐야 여전히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또 맞든 틀리든, 기자가 이런 문제를 발견하였고 이를 기사로 쓰려는 결정을 내렸다고 치자. 그런 의지와 독자가 기사를 읽는 일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일이 있다. 취재다.

해당 기자가 이 긴 기사를 쓰면서 취재한 것은 딱 하나 뿐이다 - 비행기 안에서 휴대전화로 검색한 것.

제대로 취재를 했더라면 항공사가 준수하는 매뉴얼, 규정의 원칙을 따져보고 이것이 적용되는 시스템이 정당한가를 짚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 말고 진짜 전문가 의견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랬더라면 이런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은 '나는 규정을 지키는 것이 짜증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 취재한 게 하나 더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내리면서 승무원에게 승객 수를 물어봤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승무원에게 “오늘 승객이 모두 몇 명입니까?”라고 물었다. 역시 상냥하게 답했다. “300명 정도 되십니다~”라고. 그래서 계산해봤다. 300명X40분=12000분. 12000분/60분=200시간. ‘원래 그런 서리제거 작업 절차’로 승객들의 여드레가 넘는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게 이렇게 계산할 일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런 시간이 아까우면 한국에 있으면서 홍콩 가든가, 아니면 버스 타고 가면 된다. 내가 보기에 그보다 더 아까운 시간이 있다:

기사를 읽고 나서 기자에게 "오늘 이 기사를 읽은 독자가 모두 몇 명입니까?"라고 물었다. 역시 무뚝뚝하게 답했다. "내가 어찌 암. 수만 명 되거나 말거나"라고. 그래서 계산해봤다. 3만명 잡고 기사 읽는 시간 3분. 30000명X3분=90000분. 90000분/60분=1500시간. '황당한 기사'로 독자들의 두 달 넘는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10. QC

이런 기사 자체보다 이런 기사가 나오는 시스템이 더 문제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정교하게 계산되고 치밀하게 관리되는 생산 공정이라도 불량품은 일정한 비율로 나오게 마련이다. 제조업체가 소비자의 신뢰를 받는가의 여부는 불량률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불량품이 사전에 걸러지느냐의 여부에서 결정된다. 심지어 생산 공정에서 불량률이 50%라도, 적절한 품질 관리를 통해 불량품을 모두 사전 검수하고 폐기 처분하면 소비자는 100% 우량품을 접하게 된다.

품질 관리란 그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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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2월11일 21:15)

인천공항의 운항정보 웹사이트를 보면, 당일인 2월5일 아침에 홍콩으로 간 대한항공 KE603편은 예정 출발 시각이 8시25분이었고 변경 시각이 9시19분인 것으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항공편은 예정보다 54분 늦게 출발했고, 이 지연 시간 속에 문제의 서리 제거 작업 30~40분이 포함된 모양이다.

당일에 같은 목적지로 출발한 비행기들을 보면, 항공사를 막론하고 제 시간에 떠난 게 없다. 정도 차이는 있으나 모두 하루종일 연발했다. 특히 문제의 KE603편과 출발 예정 시각이 비슷했던 캐세이패시픽 CX415편(8시50분)은 대한항공보다 더 지체되어 한 시간을 넘긴 뒤 출발했다. 이것은 당일 기상 상황에 따라 비행기들이 안전 조처를 취한 뒤 출발했기 때문이며 해당 시간대에는 특히 적체가 발생했음을 시사하는 자료일 것이다.

예정 시간을 넘긴 채 기다려야 하는 승객으로서는 답답하겠지만, 그런 상황은 항공 여행에 늘 존재하는 변수다. 규정을 따라야 하는 항공사들 역시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일이다. 가만히 있지 않고 매뉴얼 가져오라며 싸우고 항의해야 옳은 일인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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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해당 기사는 제목과 내용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원문에 없던 전문가 코멘트와 대한항공측 입장이 삽입되었고, 지연 상황이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었으며, 기자가 휴대전화로 검색해본 내용이 빠졌다. 진일보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호를 끌어댄 것이나, 대한항공이 승객을 무시하고 허투루 취급한다는 무리수는 그대로다. 당일 해당 기자가 다른 항공사 비행기를 탔더라도 '무시당하고 허투루 취급되는' 상황은 아마 똑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기사는 (굳이 쓰려면) 특정 항공사를 까는 기사가 아니라 해당 관행이나 규정을 검토하고 항공기들의 불필요한 지연 출발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기사가 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덧글

  • Jayhawk 2015/02/11 21:13 # 삭제 답글

    최근 들어 읽은 글 중 정말로 '성숙하고 지성적'인 글입니다.
    규정과 시스템을 믿고 따르면, 가장 합리적이고 이로운 상황에 도달하면 좋겠습니다.
  • deulpul 2015/02/13 06:23 #

    웬걸요, 설익은 불만투성이인데요. 병(丙)질, 정(丁)질이랄까요. 말씀대로 되려면 규정과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할 일이 많긴 합니다. 규정의 요체라 할 법을 국회에서 논의하고 통과시키는 양을 보면... 하지만 위 사건은 규정 승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식물성비타민 2015/02/12 00:08 # 삭제 답글

    와, 대단하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15/02/13 06:24 #

    인사 고맙습니다.
  • b 2015/02/12 00:43 # 삭제 답글

    본문과는 크게 상관없지만 마침 얼마 전에 읽은 항공기 결빙과 관련된 글이 떠올라 배경 상식 차원에서 링크합니다. 기자도 이 글을 읽고 나면 면세점에 대한 미련 따위는 쿨하게 버릴 수 있을 텐데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16&contents_id=78610
  • 긁적 2015/02/12 00:52 #

    어이구. 덕분에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deulpul 2015/02/13 06:25 #

    링크 고맙습니다. 역시 조금만 조사했더라도 위와 같은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긁적 2015/02/12 00:50 # 답글

    한 줄 요약 : 오늘도 기레기는 기렉기렉하고 웁니다....

    PS1 : 기자 덧글란 보니 합심하여 기자를 까고 있군요 ㄲㄲㄲ. 좋은 광경입니다.
    PS2 : 아니 저쪽은 편집부나 기타 등등 뭐 기사를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부서가 없나??? 없다면 심각한 문제고 있다면 '더'심각한 문제인데 말입니다 (.........)
  • deulpul 2015/02/13 06:47 #

    악에 미덕이 있다면 악이 아닌 측(선이 아니라)을 단결시켜 준다는 것이지요... 는 농담이고 이것은 멀쩡한 매체들이 온라인으로는 그 품질을 몇수 접고 들어가는 기형적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위 기사는 인쇄되어 배포되는 종이판에는 실리지 않았죠. 이 부분은 기회있을 때 자세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 블루 2015/02/12 01:26 # 답글

    워싱턴 네셔널 공항에서 이륙하자마자 추락한 에어 플로리다 90편은 (http://en.wikipedia.org/wiki/Air_Florida_Flight_90) 영하 4도의 날씨에 제대로 된 deicing 절차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 원인 중 하나가 되어서 발생했지요.

    "Contributing to the accident were the prolonged ground delay between deicing and the receipt of ATC takeoff clearance...."

    기자본인이 비행기타고 오다가 속된말로 "빡쳐서" 휘갈긴 기사로 제게는 받아들여집니다..
  • 블루 2015/02/12 01:31 # 답글

    8번 항목의 미국인 승객들이 얌전한 이유는 본문에서 언급한 이유외에도,

    - 여기서 따져봤자 여기 지상직원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 지상직원을 괴롭히는 것보다 정식으로 complain을 하는 것이 더 편하다

    라는 공감대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UA 같이 지연/취소로 악명이 높은 경우라면 따져봤자 아무것도 나오는게 없는걸 이미 아니까 단념하는 경우도 있겠고요. 기본적으로 이런 저런 말도 안돼는 요구에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기준과 처벌방침이 마련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deulpul 2015/02/13 13:52 #

    인용해 주신 사고 조사 내용, 즉 "서리 제거와 이륙 사이에 시간이 길어진 것이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라는 결론은, 왜 서리 제거를 굳이 이륙 직전에 해야 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직원과 싸워봤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본문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어쨌든 규정이 있음에도 '싸우면 뭔가 얻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과, 또 규정이 있음에도 '권위나 직위를 내세우거나 억지를 부리며 싸우러들면 그냥 챙겨줘야 속편하다'는 의식이 갑질과 진상질의 두 바퀴가 되어 존재하는 한, 불공정하고 불쾌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위험하기까지 한 일들은 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 대단히 중요하고, 더 나아가 그렇게 확실하게 선을 그은 직원을 존경하고 보호해주는 기업 문화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수시렁이 2015/02/12 11:03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deulpul 2015/02/13 07:09 #

    고맙습니다.
  • 애독자 2015/02/12 14:37 # 삭제 답글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구글 캐시를 찾아보니 최초 송고 당시 기사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rd5MlDvpPQkJ:www.hani.co.kr/arti/society/area/677931.html+&cd=2&hl=en&ct=clnk&gl=kr

  • br 2015/02/13 03:27 # 삭제

    와 전 바뀐 기사만 보고도 어이없었는데 최초 기사 보니 가관이네요
    본인이 짜증난다고 세월호니 갑질이니 자극적인 문구로 찡찡거리는것밖에 안 되는 수준의 글이 기사로 나가다니...
  • deulpul 2015/02/13 07:14 #

    링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원래 이 글에는 원 기사의 이미지본을 첨부하였으며, 그 이유는 수정된 기사만 보신 분들이 기사 내용과 다른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서였습니다. 그러나 해당 매체에서 스스로 기사를 수정한 마당에 원 기사를 떠서 걸어놓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미지본이 없었다면 알려주신 원본 링크가 더없이 소중하였을 것입니다. 재삼 고맙습니다.
  • ㅁㅁ 2015/02/13 11:34 # 삭제 답글

    기자 vs. 기레기
    잘 봤습니다.
    한겨레는 왜 저런 쓰레기 기사를 올리는 걸까요?
    쓰레기를 양산하는 기레기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 기레기를 고용하고 쓰레기를 퍼트리는 언론사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deulpul 2015/02/13 21:26 #

    저도 궁금합니다. 저는 '왜'보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가 더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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