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잘못만이 아닙니다 중매媒 몸體 (Media)

한 기자가 국무총리 후보자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여 야당 소속 국회의원에게 넘겨주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한국 기자들이 윤리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잘 보여주는 좀 두드러진 사건일 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기자는 배터지도록 욕을 먹는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기자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이들은 매체 윤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도 죄라면 죄지만, 몰라서 안 하거나 못 하는 것을 놓고 죽어라 욕만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한국 언론의 매체 윤리 문제는 기자 개인들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언론 전체의 문제다.

그래서 더 심각하고 절망적이다.

개인이 문제라면, 그 사람만 다잡으면 된다. 안 잡히면 잘라내면 된다. 한 산업 종사자 전체가 직업 윤리에 대해 무지하거나 둔감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가 꾸준히 목격하고 있는, 매우 수치스러운 언어로 표현되기까지 하는 언론 종사자의 부정적인 모습들은, 이렇게 보편적인 무지와 둔감함이 상황이 시간과 장소를 잘못 만나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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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자들에게 매체 윤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고 회사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는 <신문과 방송> 2013년 8월호에서 한국 대학 10곳의 저널리즘 관련 수업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아래 그림과 같다(강조는 내가).




조사 대상 대학 중에서 매체 윤리 관련 수업이 있는 곳은 여섯 군데 뿐이다. 그 대부분도 미디어 법제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와 함께 엮여 있다. 수업 이름만으로 보자면, 매체 윤리에만 중점을 두는 듯한 수업을 제공하는 학교는 고려대와 이화여대뿐이다. 하지만 이 학교들의 수업이 다른 학교의 수업과 얼마나 차별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수업마저도 없는 학교는 어떤가. 예컨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2011년 수업 목록 자료를 보면, 매체 윤리는 1년 중에 한 학기 한 과목의 단 1주차 내용으로 들어가 있다. '저널리즘의 이해'라는 개론 과목인데, 그 수업의 10주째에 언론 윤리와 언론 법제를 다루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언론 관련법과 매체 윤리를 합쳐서 단 한 주(정확히 말하면 3시간 수업)로 끝낸다는 얘기다.

미국 대학에서 언론 관련 교육은 주로 저널리즘 스쿨에서 이루어진다. 저널리즘 스쿨 중 많은 곳이 'Journalism Ethics'와 같은 이름으로 매체 윤리 과목을 독립하여 개설하고 있다. 이 수업들은 기초나 개론 과목이 아니다. 대부분 다른 개론이나 취재 보도 실무 수업을 들은 뒤에야 들을 수 있는 중급 과목이다. 초반부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를 아우르는 윤리의 철학적 배경을 짚어보는 경우가 흔하고, 수업에서 제시되는 실제 사례도 사회와 현실, 저널리즘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있어야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더 하려다 귀찮아서 관뒀다.

저널리즘뿐만이 아니다. 많은 학교가 매체 산업의 여러 영역에서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 캔사스 대학 저널리즘 스쿨이 개설한 수업에서 직업 윤리를 다루는 것은 '와이어드 세계의 윤리' '윤리와 언론인의 직업 관행' '마케팅 윤리' '매스컴 윤리와 법률적 문제 심화' 등 네 개다. 위스콘신 대학 저널리즘 스쿨은 '전략 커뮤니케이션, 탐사 보도, 홍보(PR), 디지털 매체, 정부와 매체 등을 가르치는 수업에서 윤리를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테네시 대학 저널리즘 스쿨이 학과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Mission Statement는 다음과 같다:




미국 사회에서 저널리스트 지망생들에게 매체 윤리를 가르치는 모양이 대개 어떤 양상인지 짐작되시리라 믿는다. 이것은 단지 대학 교육에서 윤리를 가르친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인이라는 직업 집단 전체가 이런 윤리 의식의 태반 속에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물론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은 다르다. 미국의 저널리즘 스쿨은 매체 종사자를 키워내는 직업 학교 역할이 강하지만, 한국 언론 관련 학과는 직업 교육 기관도 아니고 연구 기관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을 한다. 학과들의 성격이 어쨌든 중요한 점은, 한국 대학생은 매체 윤리와 언론의 책임에 대해 차근차근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배정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론사 경영악화와 경쟁의 격화로 언론의 상업주의가 더욱 노골화하고 광고 수주 등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언론 행태가 두드러지면서 윤리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언론인이 전문직업인으로서 윤리의식을 갖추지 못한 채 조직이기주의나 개인적 이익에 매달리는 현실은 대학 교육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중략)

언론인이 전문직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직업윤리 교육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교과목도 찾기 어려웠다. 일부 대학에서 미디어법제 과목에 윤리교육을 포함시키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국내 대학의 저널리즘 교육은 직무 교육이나 교양교육, 윤리 교육 측면에서 어느 하나 제대로 내실을 다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 기자들은 언론 관련 학과 출신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이들은 우연히 학부 때 개인적으로 관련 수업을 찾아 듣지 않는 한, 매체 윤리라는 소리를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관련 학과 출신이든 아니든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미국 기자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이런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지!" 이럴 때의 '이런 것'이란 실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요령이나 편법 같은 것을 말한다. 우리 경우라면 '이런 것'에 해당하는 내용이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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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도 기자들에게 매체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수습 때나 직무 교육 때 윤리 강령 같은 것을 배우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건성으로 말하고 건성으로 배운다. 수습 기자는 아직 준비가 덜 됐고, 더구나 피곤하다. 중견 기자는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잔소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는 행동을 보거나 쓴 기사를 보거나 사고를 치고 물의를 일으킬 때 보면, 실은 하나도 몰랐다는 것이 드러난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모른다.

매체 윤리는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개인과 사회의 가치관과 연결되는 철학적 이슈로 이어진다. 매체 윤리에서 권위 있는 교과서 중 하나로 손꼽히며 9판까지 나온 <매체 윤리: 사례와 도덕적 추론(Media Ethics: Cases and Moral Reasoning)>은 하버드 대학 신학과 명예교수인 사회윤리학자 랄프 포터의 윤리적 판단 모델을 음미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실제 상황들도 판단하기가 만만치 않다. 윤리 강령은 글자 몇 개로 건조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수많은 판단을 겹치고 더해야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리 강령의 문구를 들여다 본 적이 있다는 것이 현실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판단을 직접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매체 종사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다 안다고 생각한다.

가르치지 않아도 필요하니 배우긴 배워야 한다. 많은 후배 기자는 선배를 보고 배운다. 좋게 말하면 도제식 교육이다. 실제로는 맹인이 맹인을 이끌고 가는 형국이다. 선배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선배 기자가 후배 기자를 가르치는 직무 교육 기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불행히도 매체 윤리의 영역은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언론사에서 신입 기자를 뽑아서 거지꼴을 하고 경찰서를 헤매게 하는 가학적인 수습 교육 시스템을 빨리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모두 바뀌는데, 그런 변화에 민감해야 할 언론 조직이 이런 전근대적인 직무 교육 시스템을 수십 년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대신 매체 윤리부터 먼저 가르쳐야 한다. 빡세게 그래야 한다. 그 다음엔 문장을 제대로('잘'이 아니다) 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두 가지 모두 미리 익히고 입사해야 정상이겠지만, 불행히도 한국의 교육과 충원 시스템이 그런 상황이 아니므로 뽑은 뒤에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런 것들은 경찰서를 돌며 형사 어깨너머로 조서를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한국 언론계의 큰 병폐이면서도 기득권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또 하나의 전근대적 제도, 출입처 체제에 익숙해질 여지를 처음부터 잘라버린다는 것은 덤이다.

어떤 직업에 속한 개체에게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치는 일은, 그 개체와 조직이 모두 몸을 보전하고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코흘리개는 그냥 놔두면 낭떠러지로도 기어가고 8차선 대로로도 걸어간다. 인지 능력이 생기자마자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와 어른이 모두 안녕할 수 있다. 개를 키울 때도 공을 주워오는 법보다 용변을 가리는 법을 먼저 가르친다. 어디에다 똥오줌을 싸야 하고 어디에서는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지 않으면 사람은 피곤하고 집은 냄새나며 개는 늘 얻어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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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나 사회 단체가 일반인을 상대로 하여 개설하는 매체용 글쓰기 교육 과정도 마찬가지다. 글감 찾는 법, 취재하는 법, 글 잘 쓰는 법, 사진 찍는 법 같은 것은 가르쳐도 매체 윤리는 가르치지 않거나 못한다. 이 점은 전에 쓴 글에서 한번 훑어보았다. 결국 학교, 회사, 사회가 총체적으로 매체 윤리에 무관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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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흔히 제4부라고 한다. 나머지 3부는 모두 권력 기관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제4부다. 영어로는 the fourth estate라고 하거나 좀더 직접적으로 the fourth power라고 한다.

차이가 있긴 하다. 3부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선출된다. 국민이나 그 대표자의 선택과 심판을 거친 뒤에야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간다. 하다못해 물청문회 자리라도 한 번 선다.

언론이라는 권력 기관의 구성원은 그런 절차가 없다. 자기들이 뽑고 자기들이 권력을 행사한다. 3부들은 모두 견제의 메커니즘이 있는데, 제4부는 그런 것도 없다.

이렇게 강력하면서도 통제 받지 않는 권력 기관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윤리적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어야 한다. 직업 집단은 윤리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그 구성원들은 그런 고민의 결과로 나온 직업 윤리를 체질화하여야 한다. 그래야 부패하지 않을 여지가 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고 하지 않는가. 통제가 없다면 압력이라도 받아야 하고 교육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기자들은 설 같은 명절에 출입처로부터 한우세트를 선물로 당연하게 받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거나 스스로 대견해한다.

기자들 잘못이 아니다. 안 가르친 탓이다.

(※ 기자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기자 개개인에게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시스템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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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긁적 2015/02/13 20:16 # 답글

    역시 이 블로그 오면 배워간다니까요 (...) 저도 이런 블로거가 되어야 하는데 ㅠ.ㅠ.
    좋은 포스트 감사합니다.
  • 긁적 2015/02/13 20:17 #

    다만 그 기자가 잘못한 것은 맞죠 ^^;;;;; 그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 것은 사회적인 책임이겠지만.
  • deulpul 2015/02/13 21:26 #

    물론이죠. 그래서 말미에 회색 사족을 달아둔 것이고요-.
  • 레미 2015/02/13 21:36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기자가 썩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데요, 그 기자가 확실히 어떤 잘못을 한 것이며 (즉, 그 기자가 위반한 기자 윤리가 무엇이며), 그 기자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올바른 것인지는 관련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 점에 대해서 좀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 deulpul 2015/02/13 22:41 #

    차제에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다른 사례와 더불어 따로 정리할 예정입니다만 미리 간단히 말씀드리면, 위 사건과 관련한 이슈는 세 가지입니다: 1) 발언을 녹음한 것, 2) 발언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은 것, 3) 녹음을 야당에게 전달한 것.

    1) 이 부분에서 이슈가 될 수 있는 것은 녹음이 아니라 비보도 요청(off the record) 여부입니다. 이완구가 기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비보도 요청을 한 게 아니라면, 정치인이 기자와 만나 대화하는 자리에서 녹음하고 이를 보도하는 일은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습니다.

    2) 이것은 해당 언론사의 뉴스 가치 판단의 문제입니다. 이런 판단을 거쳐 보도를 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을 때, 뉴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측은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3) 이것은 이 사건에서 가장 명확하고 논쟁이 여지가 없는 잘못입니다.
  • 닥슈나이더 2015/02/14 17:02 #

    비보도 요청을 했어도

    기자들을 협박하는 내용이라면.... 보도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짤라낸 데스크가 제일 큰 문제고 어쩌면... 기자는 확신범 일수도...

    기사 내야하는데 못내니... 그리고 낼 방법도 없으니... 정치적으로 해결 이라는 수순으로....
  • deulpul 2015/02/14 17:56 #

    @닥슈나이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비보도 약속을 하고 나서 약속을 깨는 일을 합리화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게 됩니다. 어쨌든 이번 경우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죠.
  • 미스티 2015/02/13 23:52 # 삭제 답글

    언론인의 윤리뿐만 아니라 정치인, 교육자, 공무원, 의료인, 기업인,,,,,,,,,,,,,,,,,,,,,등등. 한국사회에서 윤리 교육이 제대로 된 집단이 뭐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유교의 영향이 여전히 엄청난 한국 사회지만 정작 유교에서 강조(?)되는 윤리는 실종상태에요....
  • mooni 2015/02/14 00:33 # 삭제 답글

    2. 해당 언론사의 가치 판단 문제가 아니라, 취재 대상과 언론사 사주 간의 유착 관계로 기사가 막혔다는 정황이 나오기 때문에 문제이죠. 취재 주제 또한 이완구가 언론사와 유착 관계가 꽤 깊다는 내용이고!

    3. 이완구 같은 타입의 사람은 뒤끝이 셀 가능성이 높죠. '취재 대상 다 떨어져나갈 지도 모르는 위험 감수하고' 대박될 건수 잡았는데, 취재대상과 언론사 사주가 기사가 나가는 것을 막았다면... 회사에서는 끈 다 떨어진겁니다. 이 경우라면, 이직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계 퇴출이죠.

    이완구가 총리되면 그냥 끝장나는 것이죠.

    '취재하는 자'가 아니라 '취재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지만...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저 방법 밖에 없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너 죽고 나 죽자. 다만 니가 먼저 죽을껄' 같은 자폭 공격입니다.
  • deulpul 2015/02/14 06:29 #

    현장에 있던 다른 신문사들은 같이 녹음까지 하고서 왜 기사를 내지 않았을까요? 이완구가 이들 사주와도 유착되어 있거나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 공개가 안 된 것일까요? 이완구의 협박이 무서워서 <경향신문>을 비롯한 다른 신문이 기사를 안 썼을까요? 저는 기사를 쓰지 않은 네 신문 모두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은 언론사이고 그 결정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에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두 번째 단락 이하에 쓰신 말씀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첫째와 둘째 단락의 내용 모두 사실만 갖고 이야기해도 생각할 여지가 많은 문제입니다. 여하튼 윗글은 매체 윤리에 관한 것이고, 이완구-<한국일보> 사건은 다음에서 좀 살펴보기로 하죠.
  • mooni 2015/02/14 09:04 # 삭제 답글

    1.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우선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자실'이라는 존재부터 까기 시작해야합니다. 공적기관에 일반 회사 직원들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고, 다과/인터넷/난방/공간 제공을 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유착의 시작이죠. 이완구씨의 경우, 더불어 기자나 언론인들에게 '술자리 제공'에 특히 능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한국 상황 하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기 때문에... 비리를 저지르거나 제공하는 사람도 비리라고 못 느끼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죠. (노무현 전대통령이 5년 임기 동안 에누리없이 까인 제1원인이 기자실 폐쇄였고...)



    2. 이런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완구는 기자들 관리를 20년 넘게 해왔고, 나름 언론인들의 생리를 안다."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다음 과정을 거쳤으리라 예상됩니다. 이완구와 기자 사이에 기사가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개인적인 '연락'이 실패했고, 신문사 사주에게 연락한다. 이완구씨가 기자의 전화번호를 몰랐을리가 없죠. 그런 사람이면 이런거 녹음할 자리에 끼지도 못했을 겁니다.

    윤리가 문제이지, 기사 자체의 문제는 없으므로... 저 발언 자체는 '이완구의 일반적인 성향'을 나타낸 것이죠. 그냥 일반적으로 하는 소리였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 기사화할 가치를 못 느꼈을 가능성이 높죠.

    한국일보 기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인 트러블이 생겼거나, 청와대/국회 출입이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완구와 한국일보 기자가 서로를 안지 얼마 안 된다에 1표
  • deulpul 2015/02/14 09:13 #

    기자실은 옳은 말씀이고, 이야기하면 입만 아픈 문제입니다. 한국 언론 문제의 특징은, 이미 진단이 다 나왔는데도 그것을 고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저는 이것이 타성과 기득권의 복합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완구 부분은 위에서 말씀드렸듯, 예상이나 추측보다 밝혀지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mooni 2015/02/14 09:20 # 삭제 답글

    그냥 조용히 묻힐 수 있는 일이었는데, TV조선의 엄상섭 쓰레기가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줌으로써 살아났죠. 개인적으로는 기자 윤리가 넘쳐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이지, 부족해서...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걸로 봐선 막 입사한(!) 초보 기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 mooni 2015/02/14 09:24 # 삭제 답글

    그리고 한국의 자칭 언론사라고 하는 존재는 '회사'가 아닙니다. 내가 투자가라면 이런 회사 전부 문 닫는게 이득이라고 여길 정도로 경영이 개판입니다.

    TV조선이었나, 40억 들고 튄 분이 하나 있죠. JTBC&MBN 빼놓고, 종편 및 신문사 경영 상태는 개판 5분전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회사로 돈 벌려고 만든게 아니에요.
  • deulpul 2015/02/14 09:48 #

    말을 들으시기보다 하시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되도록 본문의 내용을 주제로 하고 사실과 근거들에 기반한 civilized discussion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k 2015/02/14 12:31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진로로 기자도 생각하는 학생인데 이 블로그에서 항상 많이 배워갑니다. 그런데 forth estate가 아니라 fourth estate아닌가요?
  • deulpul 2015/02/14 15:34 #

    그렇죠! 형편없는 실수를 했네요. 숫자는 영어로 쓰든 아라비아 숫자로 쓰든, 기수로 쓰든 서수로 쓰든 항상 틀린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수정하였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gimmesilver 2015/02/16 10:55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제 줄리안 어샌지에 관한 영화인 'fifth estate' 라는 영화를 봤는데 제목의 의미를 이 글 읽고 나니 이해했네요. ^^;
  • deulpul 2015/02/22 07:27 #

    반가운 말씀이군요. the fourth estate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히 쓴 게 있으니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목록에 넣어 두었습니다.
  • kalms 2015/02/16 12:22 # 삭제 답글

    우리가 유학을 보내는 또는 가는 이유가 이런 거 아닐까요?
    씁쓸하지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요?
  • deulpul 2015/02/22 07:43 #

    그렇겠지요.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르면 편할 텐데 알게 되니 괴롭다는 부작용입니다. 세상을 넓게 보는 사람들이 차라리 한국을 외면하는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또 한 가지는, 그렇게 다른 세상을 겪으며 배운다고 해도, 제자리 돌아가면 많은 경우 말짱 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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