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의 갈등 섞일雜 끓일湯 (Others)



이것은 나의 강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메일을 쓸 때, 상대방이 나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종종 덧붙인다. 내 이메일을 보고난 뒤 어떤 반응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1번의 굴욕' 혹은 '1번의 갈등' 아십니까? 카카오톡 같은 온라인 대화 툴에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이 읽었는지를 보이는 표시가 있다. 1대 1 대화에서는 숫자 1로 표시된다. 상대가 아직 읽지 않으면 1이 남아 있다. 상대가 읽으면 숫자가 없어진다.

내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숫자 1이 사라졌는데도, 다시 말해 상대가 그 메시지를 읽었음이 분명한데도 아무 응답이 없으면 사람들은 불편해 하는 것 같다. 반응이 없으니 씹혔다고 생각하고, 섭섭하거나 괘씸하거나 굴욕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듯하다.

네이트온 메신저는 카카오톡이 PC 메신저에 진출하기 전에 사무용 PC 메신저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카카오톡이 진입하며 영역이 축소되어 오자, 2013년 가을에 새로운 판을 내놓으며 전면 개편을 했다. 사용자로부터 엄청나게 욕을 먹은 판갈이였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시지 확인 방식을 채택한 것도 이런 비판 대상이었다. 네이트온 새 판은 상대방이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는지를 카카오톡과 똑같은 방식으로 표시하게끔 했다. 기존 사용자는 이러한 변화에 크게 반발했다. 받은 메시지를 읽으면 그랬다는 사실을 보낸 사람이 알게 되니까, 반드시 답장을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에서 유추해 보건대, 사람들은 1) 이메일이든 문자든 메신저든, 뭔가를 보내면 곧 반응을 받기를 기대하고, 2) 거꾸로 내가 받으면 곧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바로 답을 하는 편이 좋긴 하겠으나, 사람이 그렇게 기계처럼 살 수는 없으니까 문제가 된다.

그런데 나는 사실 1)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문자 소통은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 시작은 완전히 일방적이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경우 사람들은 흔히 자기 상황을 상대에게 대입하게 된다)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형태다. 따라서 상대방이 당장은 물론이고 상당한 기간 동안 응답을 하지 못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보아야 좋지 않을까 싶다. 응답을 하지 않/못하는 것이 절대 무관심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 오히려 너무 관심이 커서 응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메시지를 보낼 때는 기대가 생기고 받을 때는 부담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런저런 생각에서 저런 말을 덧붙인다. 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오로지 그 뜻이다. 그런데 다 써놓고 보내기 전에 내가 읽어봐도 사실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정이 좀 떨어진다. 그냥 관계를 싹 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싶다.

둘째, 지나치게 상대방의 권한에 개입하는 듯 하기도 하다. 메시지를 받고나서 답을 할지 말지, 언제 할지는 받은 사람이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 거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꼴이 된다.

셋째, 어떻게 읽으면 이 말은 반드시 답장을 보내라는 뜻의 반어적 표현같이 들리기도 한다. 최악의 오해다.

그래서, 이런 말은 내 뜻을 잘 전달하기보다는 오해나 낳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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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동료들의 이메일이 등록되어 있는 메일링 리스트로 연말/새해 인사를 보냈다. 덕담을 하고 나서, 역시 응답으로 새해 인사를 따로 보내지 말도록 부탁했다.

동료들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내 말 뜻을 오해하지 않고 잘 받아들여 주어서인지, 아니면 신경도 안 써서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경우든 나로서는 원하는 대로 된 셈이었다.

그런데 딱 한 명이 답장을 보내왔다. 그러지 말라고는 했지만, 어쨌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렇게 인사를 해 주니 그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고마웠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역시 나도 다시 답장을 해야 할까, 안 하면 서운해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조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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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기 좋은 말을 쓰더라도 되도록 오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이를테면,

1) 이 이메일에 대한 답장은 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2) 이 이메일에 대한 답장은 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3) 이 이메일에 대한 답장은 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ㅎㅎ

1)은 왠지 화가 난 것 같고, 뭔가 기분 나쁜 것 같다. 그러나 2)나 3)은 는 ^^/ㅎㅎ 하나 붙였을 뿐인데 느낌이 확 달라진다. 훨씬 부드럽다. 쓴 사람의 진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상황에 따라 2)나 3)은 짜증 나는 조롱의 메시지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것은 이모티콘으로 불리는 작은 장치의 위력이다. 무심히 쓰이는 장치이고 심지어 습관이 되기도 하지만, 이들 요소는 문자 소통을 하는 사람의 심리에 개입하며 상당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장치를 쓰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아니, 최대한 피한다고 해야 옳겠다. 남에게 보이는 글에서든 개인에게 보내는 이메일 같은 데서든 거의 쓰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처음에는 이런 표현이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어떤 사람에게는 쓰는 것이 습관이 된 것처럼, 나에게는 쓰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유치하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다. 오래 전에 이모티콘 관련한 실험 연구를 해본 적도 있다. 인터넷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면, 이를테면 채팅방이나 댓글 대화 같은 상황에서 1) 이모티콘을 쓰지 않는 경우 2) 가볍게 쓰는 경우 3) 지나치게 쓰는 경우를 제시한 뒤, 사람들이 이러한 메시지나 발신자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아보려 했다.

결과는 통계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실험 설계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까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여러 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실험까지 해놓고도 논문을 쓰지 않고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그 즈음에 나온 한 연구에서도 이모티콘이 메시지 해석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왔다. 한편 이모티콘과 관련해 일찌감치 나온 한 논문은 이모티콘을 쓸 수 있는 소통 방식이 사용자에게 더 큰 만족을 준다는 점을 보였다. 말하자면 이모티콘은 쓰는 사람에게는 만족을 주지만 상대방에 대한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게 되겠다.)

특정한 상황을 설정한 뒤 수행되는 실험 연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민감하고 미묘한 문자 메시지가 오가는 실제 상황에서 이모티콘은 메시지에 부드럽게 기름칠을 하는 효과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건조한 글에 담긴 저런 오해의 가능성, 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작은 요소들을 생각하면, 이모티콘이나 자음 다발 쓰기를 회피하는 내 습관이 좋은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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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어렵다. 사람을 상대로 하여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은 참 어렵다. 묽게 쑤어낸 도토리묵을 손에 쥐어 상대방에게 건네주는 것 같다. 잘못하면 내 손가락 사이로, 또 상대방의 손가락 사이로 마음이 빠져나간다.

무릎 맞대고 앉아서 눈 그윽히 들여다보며 하면 훨씬 낫겠지만, 비대면(非對面) 소통이 훨씬 많은 게 요즘 세상이다. 문자라는 기호에 무형의 마음을 담아내는 일은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설령 당대 문장가가 있어 글자와 문장을 장악하였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까지 변수로 개입하는 이 소통 방정식을 완전하게 풀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대와 부담이라는 한 켤레 마음의 볼륨을 조금 줄이면 나아질까.


※ 전화 받아! 문자 해! 응답 해! 옛날 좀 놀았던 언니들은 다 아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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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Gatsby 2015/03/06 11:09 # 삭제 답글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소통'은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며 오해가 없음. 이라고 합니다.

    이모티콘을 포함한 언어양식 자체 보다도 사람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반응하는것도 좋겠지만 서로 배려하려는 마음, 이해하려는 마음이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만 같습니다^-^
  • deulpul 2015/03/06 14:06 #

    그렇겠지요. 이해와 공감이라는 큰 틀이 먼저일 테고, 소소한 소통의 방식은 그 다음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꽃을 들어 보이는(拈華示衆) 것만으로도 고도의 소통이 완성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래도 평범한 우리들은 마음을 전달하는 데 쓰이는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게 되네요...
  • marquez 2015/03/06 15:39 # 삭제 답글

    염화시중의 에피소드를 덕분에 알게되었네요.
    음악선곡 탁월하십니다!
  • deulpul 2015/03/07 04:09 #

    말씀 들으니 반갑습니다. 저 노래를 부른 F. R. David는 'Words'라는 곡으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이 노래 역시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h4ck3r 2015/03/14 06:55 # 삭제 답글

    저도 새해 문자 보낼 때는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같이 넣어서 보냅니다. 이모티콘 없이요. ^^
  • h4ck3r 2015/03/14 07:03 # 삭제 답글

    근데 deulpul 님은 글 많이 읽으실 것 같은데요. 다른 블로그의 글은 어떤 도구로 읽으세요? 예전에 구글 리더가 있을 때는 그걸로 많이 읽었는데 구글 리더가 없어지면서 저의 읽기도 같이 없어졌거든요.
    저는 데스크톱이랑 안드로이드폰을 쓰는데, 좋은 도구 추천 부탁합니다.
  • deulpul 2015/03/14 16:05 #

    아하, 저처럼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시고 오해를 사는 분이 또 있었군요! ...는 농담이고, 받는 분들은 그 마음 씀씀이를 잘 이해하였으리라 믿습니다.

    구글 리더가 없어진 뒤 어떤 대안이 있을까는 그 때 간단히 적어 본 게 있습니다(이 블로그를 구독하는 다른 방법 - http://deulpul.net/3938423). 그 글에 적은 것처럼 저는 netvibes를 통해 RSS 피드로 블로그들과 매체들의 실시간 뉴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화면과 인터페이스가 사용자 개인 취향에 맞는 다른 툴도 많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안드로이드에서는 '구글 플레이 뉴스스탠드'가 구글 리더 역할을 잘 대체합니다. 앱이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들고 강제로 들이미는 것들이 있어 좀 거슬리지만, 목표로 한 구독 블로그를 가져와 읽는 기능은 완벽하게 수행합니다. 역시, 인터페이스나 운영 시스템이 본인과 궁합이 맞는다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h4ck3r 2015/03/15 10:25 # 삭제

    추천 고맙습니다. 이제 예전에 구글 리더 종료할 때 백업한 파일만 찾으면 되겠어요. 그 당시 블로그들이 많이 살아있나 궁금합니다. ^^

    저도 2004년부터 나름 열심히 하다가 2011년에 결혼하고.. 깨작깨작대다가 결국 2012년에 멈췄는데요. 들풀.넷은 쑥스러운 말이지만 정말 위대한 블로그 같습니다. 저도 그때만 해도 영원히 블로그질을 할 줄 알았거든요. 무슨 글을 쓰든 끝까지 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예요.

    암튼 앞으로도 좋은 글 열심히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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