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독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섞일雜 끓일湯 (Others)

부제는 '이런 초등학생'이다. 초등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두 개 썼는데, 이 글은 그 중 하나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생은 조연이고 감자가 주연이다.




예전에 음식에 관한 단상을 쓰면서 "고구마 싹은 예쁜데, 감자 싹은 정말 징그럽다. 칼로 깎아낼 때마다 진저리를 친다"라고 쓴 적이 있다. 진저리를 치면서 깎아내는 이유는 물론 먹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감자 싹에는 독이 있다.

그런데 한 발 더 들어가면 궁금한 점이 많이 생긴다. 감자 독은 얼마나 많이 먹어야 해로운 것일까? 싹이 달린 감자 밑동은 괜찮을까? 감자를 요리하면 독이 없어질까? 어떻게 요리하면 그렇게 될까? 동물도 감자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까? ...

우연히 다음과 같은 자료를 보게 되었다: 싹이 난 감자를 먹으면 왜 해로울까?

2010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인 정석원이 국립중앙과학관이 주최한 과학 전람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다. 정석원은 이은정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1년 3개월 동안 연구를 하고 보고서를 썼다.

우리가 감자의 싹과 독에 대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이 이 보고서에 들어 있다. 단, 연구에서 사용한 실험 방식, 예컨대 솔라닌을 검출하기 위해 질산 용액을 시약으로 사용한다든가, 용액의 색깔 변화 척도로 솔라닌의 함유량을 상대 비교한다든가 하는 점이 신뢰할 만한 것일 경우 그렇다. (분석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정밀하지는 않지만, 나는 나름대로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감자 싹의 독(솔라닌)은 질산 용액에서 붉은 색으로 반응한다.
  • 솔라닌은 물에는 녹지 않지만 식초에는 잘 녹아 나온다.
  • 솔라닌은 끓는 물(100도)에서는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250도 이상 고온에서는 거의 전부 파괴된다.
  • 감자 싹과 솔라닌은 온도가 높을수록, 햇볕이 닿을수록 더 많이 생긴다.
  • 감자에 싹이 났더라도 감자 본체 부분에는 솔라닌이 거의 없다.
  • 달팽이나 개미 같은 생물은 솔라닌이 많이 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식품 안전과 관련하여 정리하면, 싹이 난 감자는 싹 난 부분을 도려내고 먹으면 안심해도 좋으며, 높은 온도로 요리하면 더욱 안전하다는 게 되겠다.

이 보고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중요한 문제, 즉 솔라닌을 얼마나 먹어야 위험할까를 따져 보면 이렇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자료위키에 따르면, 솔라닌 독성은 다음과 같다.

▷ 솔라닌 함유량
  • 감자 자체: 7mg 이하 / 100g (감자 자체에도 솔라닌이 있는데, 요즘은 개량종이 많아서 그 양이 미미하다.)
  • 감자 싹: 80~100mg / 100g

▷ 중독량
  • 중독 증상 발현: 2~5mg / 체중 1kg
  • 중독 사망 위험: 3~6mg / 체중 1kg

이상의 데이터로 환산하면,

  • 보통 감자 하나(싹 없는 부분): 200g 정도 = 솔라닌 14mg 이하
  • 체중 70kg 성인에게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솔라닌의 양: 140~350mg = 감자 10~25개
  • 70kg 성인을 죽이기 위해 한 번에 먹여야 하는 감자의 양: 30개 가량 (중독 이전에 배터져 죽겠다)

감자 싹은 솔라닌 함유량이 감자의 10~15배이지만 무게가 가벼우므로 상당히 많은 양이 필요할 것이다. (감자 싹의 무게는 나온 자료가 없다.)

어쨌든 이런 자료로 보자면, 보통 성인이 감자 싹 한두 개를 날로 씹어먹었다 하더라도 솔라닌 중독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특별한 목적 없이 보통의 방법으로(싹 난 부분을 잘라내고 요리한다) 감자를 먹을 경우 솔라닌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별별 놈 다 있는 미국이지만, 거기서도 지난 50년 동안 감자 솔라닌 중독이 보고된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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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학생의 연구 보고서는 실험 하나와 그 결과에서 다음 연구 문제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치열한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는 구조여서 인상적이다. 찾아보니 이 연구 보고서는 해당 회차 과학 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합당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필자인 어린이는 감자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겠지만, 그보다는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연구 과정의 기초 얼개를 확실히 다졌으리라 싶다. [문제 제기 - 자료 조사 - 가설이나 연구 문제 설정 - 방법론 적용 - 결론]으로 이어지는 실증 과학의 공통적 과정 말이다. 이것이 더 큰 성과일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저 보고서를 쓰고 상을 받은 학생 이외의 다른 학생들은 이런 방법에 익숙할 기회가 있었는지 하는 점이다. 과학 연구의 기초 얼개는 폭넓게 보아 과학적 사고방식의 일부이므로, 과학자가 되고 싶은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모두 한 번씩 직접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중학교 1학년,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물론 미국 전체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과학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각자 일상으로부터 흥미로운 연구 문제를 설정한 뒤 자료 조사에서 결론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수행하도록 과제를 내었다. 선생님이 나눠준 자세한 과제 안내서는 학생들의 프로젝트가 과학 연구 방법론에 맞게 진행되도록 중간 단계를 구분하였으며, 각 단계 별로 마감날이 정해져 있었다. 프로젝트는 한 학기 내내 진행되었고, 학기 말에 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

물론 이렇게 모든 학생이 과제를 진행하고 그걸 일일이 지도하려면 선생님이 무척 고될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그렇게 진행했다.

이런 수업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어린이는 학교 밖의 사이언스 페어(science fair)로 나간다. 과제 안내서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학생이 다 하고 그 중에서 잘 하는 애가 뽑힌다.

지금 한국의 과학 교육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학생 때는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잘 할 만한 학생을 뽑아서 그 애에게만 기회를 주며 집중 지도한다.

이것은 한국 교육의 여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폐업하다시피 하는 엘리트 체육 방식의 학생 운동팀 같은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자칭 선진국으로 들어선 지 한참 됐으나, 과학 분야에서 아직 한 명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은 엘리트 과학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가 사회 전체가 과학적 마인드를 가져 볼 기회를 갖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만들어내면 치하하고, 연구 자체보다 그 연구로 벌어들일 돈에 더 열광하는 비과학적 분위기는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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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인하르트 2015/03/11 06:04 # 답글

    대학교도 장기간 연구해야 하는 것을 예산 때문에 잘 못한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말입죠.
  • deulpul 2015/03/11 17:59 #

    예산이 절대적이죠. 학문의 방향까지 결정합니다. 투자만 해야 하는 분야도 있고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분야도 있는데, 돈을 주면서 얼른얼른 논문, 제품, 특허 같은 성과물을 낼 것을 요구합니다. 기초과학이 잘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kalms 2015/03/11 12:42 # 삭제 답글

    대한민국 건국절이 1948년 8월 15일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설명이 됩니다.
    건국의 시조 이승만 박사는
    이 나라를 건국함에 있어
    나라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업적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국가 초기를 운영했습니다.
    그걸 보고 배운 사람들이 이 나라를 계속 그렇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장 노벨상이 나와야 하고 당장 올림픽 금메달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과학 교육이든 체육 교육이든 지금처럼 해야 합니다.
    물론 성과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지요.
  • deulpul 2015/03/11 18:03 #

    저변을 넓히고 강화하는 것보다 (행정 책임자의) 성과 위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전임 대통령은 주춧돌을 놓고 현임은 벽을 쌓고 완공은 다음 대통령이 하는 일 따위는 볼 수 없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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