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 썼던 글입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힘에 부쳐서 4회 연재하다 그쳤습니다. 시리즈 설명은 이렇게 거창하게 붙였습니다:
글 네 편을 보완해서 이곳에 옮겨오고, 여력이 되면 지속할 생각입니다. 영화와 노래, 이렇게 매력적인 조합을 찾기도 쉽지 않잖아요.
'분수처럼 우는 이여, 눈물을 멈추라' - <센스 앤 센서빌리티>
성 편견의 위험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앙 리 감독은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가진 것 같다. 그가 손대는 작품의 영역은 넓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지만, 나는 그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를 이제까지 나온 그의 작품 중에서 최고로 치고 싶다. 원작의 섬세함이나 엠마 톰슨 같은 배우들의 연기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원작과 배우들을 갖고도 앙 리가 아니었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으리라 싶다.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된 이 영화(1995년 작)는 원작이 그렇듯 고전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생산하는 환희와 고통이 직조된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노래는 둘째딸인 매리앤이 부른다. 짓궂고 자발없는 친척이 언니의 사생활을 들추며 농담을 한없이 늘어놓으려는 낌새를 보이자, 다혈질인 이 처녀는 성질을 못 참고 벌떡 일어나 노래로 분위기를 바꾸려 한다. '피아노포르테' 앞에 앉은 케이트 윈슬렛이 슬픔과 안식을 노래한다. 잠을 자는 것으로서나 해소할 수 있는 이 가족의 묵직한 슬픔이 노래에 잘 스며들어 있다.
젊은 처녀가 부르는 노래를 늙은 총각이 듣는다.
매리앤이 1절을 끝내갈 때쯤 집에 도착한 브랜든 대령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에 이끌려 발을 옮긴다. 선녀가 내려와 노래를 하고 있다. 이성을 보고 첫눈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브랜든의 표정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매리앤의 노래는 브랜든의 중후하면서도 순수한 마음에 날아가 박히고 그 심장에 뿌리를 내린 뒤, 온갖 풍우를 겪고 상처를 입으며 조금씩 자라난다.
그리고 이 장면을 남몰래 지켜보는 큰언니 엘리노어가 있다. 맏딸이 가져야 할 미덕 같은 게 있어 그것을 끌어모아 사람으로 빚어낸다면 엘리노어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여기에 배우 자신에게서 나오는 체취까지 더했다. 엠마 톰슨의 엘리노어는 제인 오스틴이 그려낸 인물을 가장 잘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짧은 노래 장면에서도 그런 면모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캠브리지(뉸햄)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톰슨은 원작을 직접 어루만져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는 각색상을 주어 그 재능을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치하했다. 글을 쓰고 연기를 해서 둘 다 아카데미 상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톰슨이 유일하다.
노래 'Weep You No More Sad Fountains'는 16세기부터 전해내려 온 작자 미상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시는 누군가가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 슬픔을 거두고 이별을 받아들일 것을 조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 이전에 이미 가곡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노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존 다울런드가 곡을 붙인 노래다. 영화에서 쓰인 곡과는 다르다. 영화에서는 음악을 담당한 패트릭 도일이 새로 곡을 붙였다. 도일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상 음악상 후보로 올랐으나, 그 해 지중해에서 날아온 <일 포스티노>의 선율에 밀려 상을 받지는 못했다.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에서는 매리앤이 연주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p. 54). 앙 리는 도일에게 음악을 맡기면서, 매리앤이 부를 두 곡을 새로 짓든지 기존 음악 중에서 고르든지는 상관없지만 원작과 시나리오에 담긴 상실감과 환희의 미묘한 이중성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매리앤이 이 노래를 부르고 난 뒤에도 이 곡은 배경 음악으로 바뀌어서, 가슴 저린 장면이 나올 때마다 한숨처럼 삽입된다. 매리앤은 영화 뒷부분에서 피아노를 치며 또다른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 역시 도일이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출시된 CD에서는 두 곡 모두 케이트 윈슬렛의 슬프면서도 여리고 때묻지 않은 목소리가 아니라, 중후한 오페라 가수 제인 이글렌의 기름진 소프라노 목소리로 녹음돼 들어가서 많은 팬의 분노를 샀다(노래 1, 노래 2). 물론 이글렌의 노래도 여전히 아름답고, 이쪽이 더 좋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 나오는 음악 중에 사람 목소리로 연주한 것은, 주인공이 부르는 것이든 배경으로 깔리는 것이든 이 두 곡 뿐이다.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나오는 성악곡은 두 번째 노래의 소프라노 버전인데, 바로 제인 이글렌의 목소리다.)
여자 매리앤은 그렇게 두 번 노래를 부른다. 앞에서는 슬픔을 노래했지만, 뒤의 노래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녀의 운명도 노래처럼 그렇게 달라져 간다.
※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 1995, 감독: 앙 리, 출연: 엠마 톰슨, 케이트 윈슬렛, 앨런 릭먼, 휴 그랜트, 136분.
※ 보너스:
(* 영화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길거나 짤막한 노래가 궁금한 분들은 알려주십시오. 힘 닿는 데까지 함께 뒤적여 보겠습니다.)
영주송은 '영화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주인공을 시켜 부르도록 한 노래들입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주인공도 사랑스러울 텐데, 그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들려주는 노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요. 영화 주인공, 더 나아가 영화를 쓰고 감독한 사람의 문화적 모태를 짐작할 수 있는 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 분위기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노래들을 함께 다시 들어보고, 그 노래에 담긴 이야기도 되새겨봅니다.
글 네 편을 보완해서 이곳에 옮겨오고, 여력이 되면 지속할 생각입니다. 영화와 노래, 이렇게 매력적인 조합을 찾기도 쉽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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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처럼 우는 이여, 눈물을 멈추라' - <센스 앤 센서빌리티>
성 편견의 위험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앙 리 감독은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가진 것 같다. 그가 손대는 작품의 영역은 넓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지만, 나는 그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를 이제까지 나온 그의 작품 중에서 최고로 치고 싶다. 원작의 섬세함이나 엠마 톰슨 같은 배우들의 연기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원작과 배우들을 갖고도 앙 리가 아니었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으리라 싶다.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된 이 영화(1995년 작)는 원작이 그렇듯 고전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생산하는 환희와 고통이 직조된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노래는 둘째딸인 매리앤이 부른다. 짓궂고 자발없는 친척이 언니의 사생활을 들추며 농담을 한없이 늘어놓으려는 낌새를 보이자, 다혈질인 이 처녀는 성질을 못 참고 벌떡 일어나 노래로 분위기를 바꾸려 한다. '피아노포르테' 앞에 앉은 케이트 윈슬렛이 슬픔과 안식을 노래한다. 잠을 자는 것으로서나 해소할 수 있는 이 가족의 묵직한 슬픔이 노래에 잘 스며들어 있다.
Weep You No More Sad Fountains
Weep you no more, sad fountains;
What need you flow so fast?
Look how the snowy mountains
Heav'n's sun doth gently waste.
But my sun's heav'nly eyes
View not your weeping
That now lies sleeping,
Softly, softly, now softly, softly lies sleeping.
Sleep is a reconciling,
A rest that peace begets.
Doth not the sun rise smiling
When fair at e'en he sets
Rest you then, rest, sad eyes,
Melt not in weeping
while she lies sleeping,
Softly, softly, now softly, softly lies sleeping.
분수처럼 우는 이여, 눈물을 멈추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피 우는가
눈 덮인 산 너머로 하늘의 태양이
서서히 스러지는 것을 보라
하지만 나의 태양의 고귀한 눈은
당신의 눈물을 보지 못하리
조용히 누워 자고 있기 때문에
부드럽게, 부드럽게 누워 자고 있기 때문에
잠은 세상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가져오는 안식과 같은 것
해는 곧 지게 될 것을 알면서도
웃으며 떠오르지 않던가
슬픈 눈을 한 이여, 이제 쉬기를
그녀가 누워 잠든 동안
눈물 속에 녹아 버리지 말라
부드럽게, 부드럽게, 그녀가 잠든 동안
Weep you no more, sad fountains;
What need you flow so fast?
Look how the snowy mountains
Heav'n's sun doth gently waste.
But my sun's heav'nly eyes
View not your weeping
That now lies sleeping,
Softly, softly, now softly, softly lies sleeping.
Sleep is a reconciling,
A rest that peace begets.
Doth not the sun rise smiling
When fair at e'en he sets
Rest you then, rest, sad eyes,
Melt not in weeping
while she lies sleeping,
Softly, softly, now softly, softly lies sleeping.
분수처럼 우는 이여, 눈물을 멈추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피 우는가
눈 덮인 산 너머로 하늘의 태양이
서서히 스러지는 것을 보라
하지만 나의 태양의 고귀한 눈은
당신의 눈물을 보지 못하리
조용히 누워 자고 있기 때문에
부드럽게, 부드럽게 누워 자고 있기 때문에
잠은 세상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가져오는 안식과 같은 것
해는 곧 지게 될 것을 알면서도
웃으며 떠오르지 않던가
슬픈 눈을 한 이여, 이제 쉬기를
그녀가 누워 잠든 동안
눈물 속에 녹아 버리지 말라
부드럽게, 부드럽게, 그녀가 잠든 동안
젊은 처녀가 부르는 노래를 늙은 총각이 듣는다.
매리앤이 1절을 끝내갈 때쯤 집에 도착한 브랜든 대령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에 이끌려 발을 옮긴다. 선녀가 내려와 노래를 하고 있다. 이성을 보고 첫눈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브랜든의 표정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매리앤의 노래는 브랜든의 중후하면서도 순수한 마음에 날아가 박히고 그 심장에 뿌리를 내린 뒤, 온갖 풍우를 겪고 상처를 입으며 조금씩 자라난다.
그리고 이 장면을 남몰래 지켜보는 큰언니 엘리노어가 있다. 맏딸이 가져야 할 미덕 같은 게 있어 그것을 끌어모아 사람으로 빚어낸다면 엘리노어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여기에 배우 자신에게서 나오는 체취까지 더했다. 엠마 톰슨의 엘리노어는 제인 오스틴이 그려낸 인물을 가장 잘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짧은 노래 장면에서도 그런 면모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캠브리지(뉸햄)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톰슨은 원작을 직접 어루만져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는 각색상을 주어 그 재능을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치하했다. 글을 쓰고 연기를 해서 둘 다 아카데미 상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톰슨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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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Weep You No More Sad Fountains'는 16세기부터 전해내려 온 작자 미상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시는 누군가가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 슬픔을 거두고 이별을 받아들일 것을 조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 이전에 이미 가곡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노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존 다울런드가 곡을 붙인 노래다. 영화에서 쓰인 곡과는 다르다. 영화에서는 음악을 담당한 패트릭 도일이 새로 곡을 붙였다. 도일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상 음악상 후보로 올랐으나, 그 해 지중해에서 날아온 <일 포스티노>의 선율에 밀려 상을 받지는 못했다.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에서는 매리앤이 연주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p. 54). 앙 리는 도일에게 음악을 맡기면서, 매리앤이 부를 두 곡을 새로 짓든지 기존 음악 중에서 고르든지는 상관없지만 원작과 시나리오에 담긴 상실감과 환희의 미묘한 이중성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매리앤이 이 노래를 부르고 난 뒤에도 이 곡은 배경 음악으로 바뀌어서, 가슴 저린 장면이 나올 때마다 한숨처럼 삽입된다. 매리앤은 영화 뒷부분에서 피아노를 치며 또다른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 역시 도일이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출시된 CD에서는 두 곡 모두 케이트 윈슬렛의 슬프면서도 여리고 때묻지 않은 목소리가 아니라, 중후한 오페라 가수 제인 이글렌의 기름진 소프라노 목소리로 녹음돼 들어가서 많은 팬의 분노를 샀다(노래 1, 노래 2). 물론 이글렌의 노래도 여전히 아름답고, 이쪽이 더 좋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 나오는 음악 중에 사람 목소리로 연주한 것은, 주인공이 부르는 것이든 배경으로 깔리는 것이든 이 두 곡 뿐이다.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나오는 성악곡은 두 번째 노래의 소프라노 버전인데, 바로 제인 이글렌의 목소리다.)
여자 매리앤은 그렇게 두 번 노래를 부른다. 앞에서는 슬픔을 노래했지만, 뒤의 노래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녀의 운명도 노래처럼 그렇게 달라져 간다.
※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 1995, 감독: 앙 리, 출연: 엠마 톰슨, 케이트 윈슬렛, 앨런 릭먼, 휴 그랜트, 136분.
※ 보너스:
(* 영화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길거나 짤막한 노래가 궁금한 분들은 알려주십시오. 힘 닿는 데까지 함께 뒤적여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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