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송: 하버드도 가르쳐주지 않는 거리의 교훈 비칠映 그림畵 (Movies)

'언제까지나 비눗방울 날리며' - <훌리건스>


피가 끓는 젊을 때는 미치기 쉽다. 무엇에든 그렇다. 연애에도, 연예에도, 이념에도 잘 미친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한때 유행하던 말로 하자면 미치니까 청춘이다.

미치는 대상에서 스포츠를 빼면 섭섭할 것이다. 하는 것도 그렇지만,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스포츠에는 대개 피가 철철 넘친다. 들이박고 치고 패서 흐르는 피가 아니라, 팀과 나를 이어주는 끈적끈적한 관계의 피다. 국적, 혈연, 지연으로 맺어진 민족, 부족, 씨족 의식이 끓는 피의 온도를 더 높인다. 그런 까닭에 사실 젊은 사람만 스포츠에 미치는 것은 아니다. 남녀는 몰라도 노소는 분명 함께 미친다. 나이 들면 점잖은 척 해야 하니까 엉덩이를 눌러붙이고 좀 참고 있을 뿐이다.

스포츠, 미국 사람들도 참 좋아하는데요. 하지만 축구는 대체로 별로다. 푸른 잔디 위에서 큰 공으로 하는 경기는 미식축구, 그들 말로 풋볼인 그 경기를 지존으로 친다. 그들에게 풋볼과 싸커의 차이는, 우리에게 축구와 핸드볼의 차이 정도다. 지금은 축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고 프로팀도 여럿 생겼지만, 우악스런 미국인들은 여전히 축구를 여자애들이나 하는 경기 정도로 본다.

영국 가서 그런 이야기 해 봐라. 여자애들 같은 훌리건한테 흠씬 두들겨 맞아서, 싸커볼 같이 둥글둥글하던 얼굴이 풋볼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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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버크너도 싸커를 잘 모르는 미국 청년이었다. 축구만 모르는 게 아니라, 세상 물정도 잘 몰랐다. 공부는 잘 해서 하버드 대학 학생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부로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졸업을 두 달 남기고 퇴학을 당했다. 빵빵한 집안 출신인 기숙사 룸메이트 놈의 잘못을 덮어썼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하버드 졸업장인데? 기를 쓰고 나서서 누명을 벗어야 하지 않는가? <데미안>에서 보듯 젊거나 어린 영혼들은 때로 보잘 것 없는 일을 두려워하고, 그 결과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맷은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룸메이트 집안의 위세는 그만큼 대단했고 맷은 이에 지레 눌렸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지만, 사실 어른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인지도 모른다. 자존심을 접고 권위에 복종한 맷의 태도는 어쩌면 가장 어른스러운 처신이었을 것이다.

대학에서 쫓겨난 맷은 누나가 시집가 살고 있는 영국으로 간다. 거기서 깡패들을 만난다. 사람 치고 돈 뺏는 깡패들이 아니라 축구에 미친 훌리건 깡패들이다. 맷이 이들과 어울리게 된 것은, 매형의 동생인 핏 던햄이 지역 훌리건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하는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맷은 핏에 이끌려 훌리건 조직에 서서히 섞여 들어간다.

누나와 매형이 사는 런던 동부의 뉴엄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팀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다. 그래서 핏 일당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 모두가 충성스러운 웨스트 햄 팬이다. 지역에 기반한 강력한 배타성과 충성도를 자랑하는 훌리건 조직이 미국에서 온 말랑말랑한 책상물림 청년을 좋아할 리 없다. 조직 리더인 핏이 데리고 다니고,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맷 자신도 열심히 따라다니므로 끼워주기는 한다. 그런데 조직 안에서 반발이 있다. 이 반발은 사태가 불행한 결과로 치닫는 동기가 된다.

'I'm Forever Blowing Bubbles(언제까지나 비눗방울 날리며)'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팀을 대표하는 노래, 이른바 클럽 앤섬(club anthem)이다. 맷이 이 노래를 처음 배운 것은, 경기를 앞두고 술집 펍에서 축구팬들이 일단 맥주로 몸을 달구는 자리에서다.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술집 안의 열기는 점점 더 높아진다. 물론 취기도 점점 더 오르겠지. 이윽고 술집 문을 박차고 나가기 앞서,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이 노래를 합창한다. 노소가 따로없이 모두 훌리건이 되는 현장이다.






I'm Forever Blowing Bubbles

I'm forever blowing bubbles,
Pretty bubbles in the air,
They fly so high, they reach the sky,
And like my dreams they fade and die.
Fortune's always hiding,
I've looked everywhere,
I'm forever blowing bubbles,
Pretty bubbles in the air.

나는 언제까지나 비눗방울을 불어
예쁜 방울을 공중에 날리네
높이높이 올라가 하늘까지 올라가
하지만 내 꿈처럼 서서히 흐려지다 사라지지
행운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지만
행운은 언제나 나를 피해 숨네
나는 언제까지나 비눗방울을 불어
예쁜 방울을 공중에 날리네


이 노래가 끝나면 구호가 따라붙는다. 보통은 "유나이티드, 짝! 짝! 짝!, 유나이티드, 짝! 짝! 짝!"이다. 짝짝짝은 물론 손뼉이다. 여기에 "Let's go fucking mental! Let's go fucking mental! La~ la~ la..." 하는, 구호인지 노래인지 모호한 반복 후렴구도 붙는다. 우리 말로 하면 "조낸 미쳐 버리자!" 쯤 되겠다. 영화에서 이 구호를 외치며 맥주컵들을 집어던지는 모습을 보면, 이게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실제 웨스트 햄 경기장에서 이 구호를 반복하는 팬들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미치거나 한참 모자란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스포츠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면 미치거나 바보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I'm Forever Blowing Bubbles'가 원래부터 웨스트 햄의 응원가였던 것은 아니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그 한 마디였었네..." 하는 노래가 원래 경기장 응원가가 아니었던 것과 같다.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18년. 존 켈릿이라는 사람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삽입곡으로 썼다고 한다. 원곡은 위에 인용된 웨스트 햄 응원가보다 더 길다.

노래는 1920년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여러 가수가 녹음해 음반으로 냈다. 그 중 몇을 들어보면 원곡이 아주 아름다운 노래임을 알 수 있다.







노랫말은 무척 허무하고 염세적이다. 누구나 아름다운 꿈을 추구하지만, 꿈은 잘 잡혀주지 않는다. 눈 앞에서 아스라히 아롱거리다 사라지기 십상이다. 마치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가지만 언젠가 반드시 터지고 마는 비눗방울처럼. 원대한 이상을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술집과 축구 경기장과 뒷골목 싸움터를 순환하며 에너지를 얻고 소진하는 훌리건의 삶은 아닌 게 아니라 비눗방울과 흡사한 듯도 하다.

이렇게 서정적인 노래가 전쟁터나 다름없는 축구 경기장에서 불리는 응원가가 된 연원은 확실하지 않다(한 설명은 이곳에). 그러나 노래가 웨스트 햄 축구팀(1895년 창단)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것은 틀림없다.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곡이 대서양을 건너가 영국의 한 축구팀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으며, 그 덕분에 100년이 다 되도록 살아남았다. 노래 팔자도 사람의 그것이나 다름없이 기구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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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훌리건스(Green Street)>에서, 부조리와 협잡의 세상에 낙담하던 맷은 이 노래를 부르며 서서히 웨스트 햄 펌(훌리건 조직)에 동화되어 간다. 훌리건들은 비록 단순하고 폭력적이었으나, 권력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눈치를 보며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좋으면 열광하고 수틀리면 분노하는 단순한 훌리건들은 하버드에 널린 속물, 그리고 그런 속물들이 주도하는 세상의 벽에 부딪쳐 어쩔 수 없이 좌절해버린 자신과는 달랐다.

그 자신의 말대로, 맷은 아이비 리그 대학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을 거리에서 배웠다. 난생 처음 코피가 터지고 머리가 깨어지면서 배웠다. 훌리건을 이해하고 자신이 훌리건이 되어 가면서 배웠다. 징클라르가 데미안을 통해 스스로를 깨치고 세상에 맞서게 되듯, 맷은 핏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깼다.

그는 무엇을 배웠는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서서 맞서야 한다는 것, 그러나 어떨 때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 둘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다.

이 노래는 영화에서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위의 펍과 그 뒤에 이어진 행진 장면, 두 번째는 웨스트 햄 펌의 2인자가 조직에서 쫓겨난 뒤 템즈 강 다리 위에서 술을 마시며 쓸쓸하게 부르는 장면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 노래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어떤 영화든 등장하기만 하면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게 하는 일라이저 우드(맷)가 홀로 미국 밤거리를 걸으며, 팔을 올려 손뼉을 치며 이 노래를 부른다. 맷는 혼자지만, 런던의 훌리건 동료들은 노래가 되어 맷을 둘러싸고 떠나지 않는다.

스포츠가 과학과 공학의 대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그 핵심은 고대 그리스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인간의 몸에 달린 근육과 뼈를 움직여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다툼을 벌인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혈연과 지연으로 짜인 소속감이 있다. 이 때문에 한 개인의 손짓 발짓에 나라가 들썩인다. 이 모든 과정은 대체로 놀랍도록 단순하고 원시적이다.

부조리와 협잡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서 낙담하며 살기 십상인 우리는, 이 같은 원초적 에너지를 수혈 받는 일이 정기적으로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래야 내가 지켜야 할 명예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런던을 배경으로 활개치던 훌리건으로부터 맷이 배운 교훈이란, 바로 스포츠 자체에서 나오는 원초적 건강성이 주는 교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훌리건스(Green Street)>, 2005, 감독: 렉시 알렉산더, 출연: 일라이저 우드, 찰리 헌냄, 1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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