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패치>의 '현장' 중매媒 몸體 (Media)

두 연예인이 욕설을 주고받았다는 시시껄렁한 사건이 한 달 가까이 뜨거운 뉴스가 됐다.

이와 관련하여 한 매체가 흥미로운 행보를 보였다. 해당 사건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 매체가 벌이고 겪은 일은 언론과 관련한 이슈를 생각해 볼 재료가 된다.

두 연예인(A, B)의 주장이 엇갈리고 논란이 커지자, 연예 전문 매체 <디스패치>는 그런 일이 벌어진 '현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캐기로 했다. 현장은 제주도의 한 바닷가다.

현장을 찾아간 <디스패치>의 두 기자는 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목격한 두 사람을 만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기사를 써서 올렸다.

나중에 이 기사가 목격자의 잘못된 증언에 토대를 두어 매우 편파적으로 쓰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해당 상황이 담긴 영상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입증됐다.

의욕을 갖고 취재해 큰 파문을 일으킨 기사가 오보로 판명나자 <디스패치>는 정황을 설명하는 '그래서, 제주도를 가야 했습니다'라는 글을 싣고, 또 페이스북에 '디스패치에서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냈다.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를 살펴보자.


1. 취재원

<디스패치>는 제주도에 내려가서 취재원 두 명을 만났다. 기사는 전적으로 이 두 사람의 증언에 의거해 썼다.

정상적인 시각, 말하자면 제주도까지 내려갔으니 뭐 하나는 꼭 건져와야 한다든가 하는 압박이 없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 두 사람은 한창 논란중인 일에 대해 결정적인 증언을 해 줄 취재원으로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두 사람 중 한 명인 장광자(할머니)가 한 말 중에서 기사가 맨 처음에 인용한 것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A를 '우리 딸'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녀가 A와 정서적으로 아주 밀착되어 있음을 뜻한다.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A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서, 이미 벌어진 욕설 사건까지 '믿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만일 이 할머니의 말만을 근거로 하여 증언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기사를 쓴다면 "욕설 사건, 실제론 없었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욕설을 주고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라고 한다. 그 때 물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부분에 대해 증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디스패치>는 이 할머니의 (주관적이고 치우친) 주변 증언을 A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용도로 썼다. <디스패치>가 사람의 심리를 읽어내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중 또 한 사람은 베트남 출신 해녀인 루엔키니다. 그녀가 한 말 중에서 기사가 맨 처음 인용한 것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B가 친절해서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이것은 그녀 역시 B와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음을 뜻한다. 역시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말투가 문제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만일 이 해녀의 말만을 근거로 하여 증언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기사를 쓴다면 "B 말투에 전혀 문제 없었다"가 될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 방향으로 기사가 나왔다.

심지어 이런 부분도 있다:




이런 사람이 짧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벌어진 '욕설 사건'을 얼마나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지는 상식적으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리하면, <디스패치>가 만난 두 사람은 모두 사건 정황을 객관적으로 증언해 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각각의 연예인과 심리적 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 한 사람은 사건 상황에 있지조차 않았고, 또 한 사람은 말을 잘 못 알아 듣는 사람이다.

매체는 그럼 이런 증언자를 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다. 어쨌든 이들은 사건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이라서, 비록 조각이나마 진실의 일부를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매체 본연의 일, 즉 '사실'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사실이란 '이런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장광자 할머니는 "..."라는 말을 했다. 한편 루엔키니는 "..."라는 말을 했다.

이렇게만 썼다면 어렵게 찾아가 만난 취재원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서 정확한 사실 보도가 된다. 이들의 증언 내용이 실제로 정확한가는 전적으로 증언자(취재원)의 몫이다. 독자는 그런 점까지 고려하며 읽을 것이다. (물론 기자가 이러한 증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데 <디스패치>는 이렇게 사실의 형식으로 인용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세 번 잘못을 했다.

1) 신뢰성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목격자의 증언을 사실인 것처럼 썼다.

2) 이를 가상 대화로 '재구성'했는데, 이것은 설령 기사 방향이 맞았다고 해도 큰 잘못이다. 있지 않은 일을 매체가 제멋대로 꾸며 쓴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토씨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정상이다. 연예인 A가 외국 연예인이었다면, 그의 변호사는 하지도 않은 말을 마음대로 꾸며 낸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3) 심지어 그런 가상 대화를 문자나 카카오톡 화면 같은 전화 스크린으로 표현했다. 이런 캡쳐본은 흔히 어떤 대화를 '인증'할 때 쓰는 방식이다. 조작이나 훼손 없이 화면 그대로 보인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가짜 대화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보는 사람은 완전한 사실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런 명백한 잘못은, 아래에서 볼 현장의 중요성, 현장으로 가야 할 당위성 같은 것을 고려하더라도 턱없는 것이고, 그래서 현장이라는 당위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역할을 한다. 현장에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고, 나아가 1)까지는 반성하는 <디스패치>는 2)와 3)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매체가 언론의 모습을 갖추고 또 그 역할을 하는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답을 내리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겠다.


2. 현장

<디스패치>가 제주도 현장을 찾아가 취재한 것 자체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영상이 공개되고 오보임이 입증된 이후 낸 글에서 이 매체는 이렇게 썼다:




<미생>의 현장주의자 한석율을 떠올리게 하는 말들이다. 나는 이러한 말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덧붙여야 할 것이 좀 있다.

현장은 중요하다. 뉴스는 현장에서 나온다. 현장에는 증인과 단서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 간다고 해서 언제나 증인을 만나고 단서를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모든 문제는 기차표, 비행기표를 사거나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가도 취재가 안 되고 애를 먹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열심히 해도 그렇다. 부담감 때문에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만들면 무리가 생긴다. 현장에 갈 때는 그런 생각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보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편집 시스템이 뉴스 판단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 뛰기 전에 생각하라는 격언과 관련이 있기도 하다.

또 빠뜨리면 안 될 것이 있다. 현장이 중요하지만, 현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에게는 현장을 뒤져야 한다는 사명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규범이 있다. <디스패치>의 이번 참사는 '현장'이라는 규범만을 염두에 두었을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규범은 외면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기초적인 자세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사실 <디스패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언론 일반의 문제다. 이 매체는 두 가지 점에서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하나는 소재가 잡스러워서 큰 관심을 모은 데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이슈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잘못을 너무 표나게 했다는 것이다.

<디스패치>는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늘 현장을 찾는 이유는, 팩트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장이 정답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장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냥, 기본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깨달았다면, 이번 일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값진 교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3. 부록: 매체 윤리

3월31일 <프레시안>에는 <디스패치> 기자들의 인터뷰가 실렸다. 욕설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 일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이에 대한 언급도 좀 나온다. 그 중 현장을 강조하는 대목을 조금 옮겨온다:




빨간 밑줄을 친 부분은 한국 언론에서는 취재를 잘 하는 기자의 모범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1990년에 영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BBC 방송에 출연하는 유명 배우 고든 케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중인데, 선정적인 타블로이드 신문 <선데이 스포트(Sunday Sport)>의 기자 두 명이 병실에 잠입해 들어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인터뷰에 따옴표를 친 것은 케이가 정상적으로 인터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병실 앞에는 '모든 방문객은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병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치료에 방해가 되거나 감염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기자들은 이러한 표지판을 무시하고 직원들의 눈을 피해 병실에 들어간 것이다.

병실에서 플래시가 펑펑 터지자 간호사가 쫓아들어왔다. 기자들이 떠날 것을 요구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결국 경비원들이 호출되어 두 기자를 쫓아냈다. 케이 측은 곧 <선데이 스포트>가 이 날 찍은 사진과 기사를 싣지 못하도록 소송을 제기했고, 1심은 이러한 소송을 받아들여 보도를 제한했다. <선데이 스포트> 측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2심 법원은 1심을 뒤집고 <선데이 스포트>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케이 v. 로버트슨)

언론이 잘했다는 거잖소?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2심 법원이 매체 손을 들어준 이유는 "영국에는 프라이버시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에는 지금도 프라이버시 관련법이 없다. 다만 2000년부터 발효된 유럽인권규약 제8조 사생활의 보호 규정을 원용해 적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말하자면 잘못은 했지만 법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 되겠다. 이 판결문을 보면, 2심 판사 중 한 명이 합의부 의견에 따르면서도, 미국과는 달리 프라이버시 관련법이 없는 영국 상황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위법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언론사 기자가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병실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취재하여 기사를 썼다가 소송을 당하고 패소한 바 있다. (바버 v. <타임> Inc.)

둘째, <선데이 스포트> 기자들은 의료진으로 꾸미지 않았다. 그저 병원 직원의 눈을 피해 병실에 들어갔을 뿐이다. 만일 의료진으로 위장하였다면 문제는 더욱 위중하였을 것이다. 이른바 기만(deception)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셋째, 법이 없어 처벌은 하지 못했으나, 이 일은 1994년에 영국 언론중재위원회가 언론인 윤리 규정에 병원 관련 부분을 삽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8조 병원

1) 언론인은 취재를 위해 병원이나 이와 비슷한 시설의 비공공 장소에 들어가기 전에 신분을 밝혀야 하며 책임 있는 병원 관계자로부터 허가를 얻어야 한다.

2)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규제는 병원이나 이와 비슷한 시설에 있는 개인을 취재할 때 특히 중요하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는 언론 선진국에서는 금하고 규제하는 일을 우리는 롤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잘못이 자꾸 벌어져도 이상하거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케이와 <선데이 스포트>의 소송에서 이 매체의 편집장은 병실을 쳐들어간 것이 '전통적인 특종(great old-fashioned scoop)'을 따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위의 <디스패치> 기자도 자신들이 '올드한 매체'라고 평가받는다거나 취재 방식이 전통적인 것이라는 말을 한다. 과거에 이러한 저돌적인 취재 방식이 기자의 덕목인 것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하든 성과를 만들어 냈으니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세상은 큰 영향력을 지닌 언론이 상대하는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좀더 세심하고 예민해졌고, 언론도 이렇게 세심하고 예민할 것을 법률과 윤리 규정과 사회적 공감으로 강제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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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Gatsby 2015/04/02 15:37 # 삭제 답글

    윤리는 중요합니다. 윤리는 우리가 들개나 승냥이 혹은 기계장치 속의 톱니가 아님을 그리고, 누군가의 자녀이자 부모임을 상기하게 합니다.
  • deulpul 2015/04/02 18:50 #

    좋은 말씀입니다. 그와 더불어, 목적뿐만 아니라 그러한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도 중요하다는 또다른 원론적인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지요. 결국 말씀하신 것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되겠지만요.
  • Merkyzedek 2015/04/03 10:59 # 답글

    달려드는 취재를 이야기할 때, 교수분들이 너희 선배는 출입처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는 것이 신고식이었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이야 그런 짓하면 보이콧 당하는게 전부겠습니다만.. 특종을 위한 기만취재나 밀어붙이기 식 취재의 경우 막상 기자들이 밀어붙이다가 법적으로 당해도 기자를 보호하는 시스템도 없는 중소미디어기업(웃음)에서는 발을 빼버리지요.
  • deulpul 2015/04/05 00:16 #

    그래서 편집 책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죠. 서구의 윤리 규정이나 관련 조언들을 보면,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흔히 편집 책임자와 상의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결정권자들의 경험과 양식을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기자 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그러한 일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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