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송: 풀도 사라지고 소년도 사라지고 비칠映 그림畵 (Movies)

'그들은 비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나이가 차면 수염이 자라고 가슴이 나오는 것처럼, 사랑이란 것도 유전자 어디쯤 감추어져 있다가 때가 되면 저절로 발현하는 생물적 현상인지도 모른다. 인류에 속하는 각각의 개체가 가진 엄청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니 말이다.

자웅 동체가 아닌 인간의 사랑은 대개 다른 개체를 전제로 한다. 현실주의자들은 사랑이라는 정서적 재화가 거래되는 경쟁 시장에서 개체들이 갖는 속성 중 두드러진 평가를 받는 항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외모, 재산, 직업 같은 게 거기 속한다. 하지만 낭만주의자들은 이러한 사랑의 시장경제 체제를 믿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사랑의 부피와 질은 언제나 평등하고, 그래서 누구나 제 눈에 맞는 안경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이고 첫인상도 중요하니, 외모가 좋으면 더 낫긴 할 것이다. 못생긴 사람을 일부러 찾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그런데 그런 이들이 아주 없진 않다. 아쉽지만 영화 속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도 진실된 모색이 아니라 오락이고 게임이긴 하다. 그럼 그렇지.

버드레이스가 로우즈를 만난 것은 못생긴 여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로우즈가 못생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볼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영화 속 설정은 그렇게 되어 있다. 이 못생기고 군데군데 여드름까지 난 여자가 어설프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한다.







What Have They Done to the Rain?

Just a little rain falling all around,
The grass lifts its head to the heavenly sound,
Just a little rain, just a little rain,
What have they done to the rain?

Just a little boy standing in the rain,
The gentle rain that falls for years.
And the grass is gone, the boy disappears,
And rain keeps falling like helpless tears,
And what have they done to the rain?

Just a little breeze out of the sky,
The leaves pat their hands as the breeze blows by,
Just a little breeze with some smoke in its eye,
What have they done to the rain?

Just a little boy standing in the rain,
The gentle rain that falls for years.
And the grass is gone, the boy disappears,
And rain keeps falling like helpless tears,
And what have they done to the rain?
온 세상에 내리는 그 여린 비
아름다운 소리에 풀들은 머리를 들지만
여린 비, 그 여린 비
그들은 비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빗속에 서 있던 작은 아이
부드러운 비는 오랫동안 내렸지
이젠 풀도 없어지고 소년도 사라졌어
절망적인 눈물처럼 비만 계속 내리고
그들은 비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하늘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
그 바람에 잎들은 손을 마주 비비지만
가벼운 바람이 머금은 뿌연 연기
그들은 비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빗속에 서 있던 작은 아이
부드러운 비는 오랫동안 내렸지
이젠 풀도 없어지고 소년도 사라졌어
절망적인 눈물처럼 비만 계속 내리고
그들은 비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곡은 아름답지만, 가사는 심상치 않다. 아무리 봐도 사랑 노래는 아니다. 사랑보다는 짙은 사회성이 담긴 노래다. 원래 이 노래는 핵실험의 영향으로 황폐화한 자연을 고발한, 이를테면 반핵 가요다.

원곡은 포크송 싱어/라이터로 많은 저항 가요를 만든 말비나 레이놀즈가 1962년에 지었다. 조안 바에즈를 비롯해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더 서처스(The Searchers)가 부른 곡이다.


조안 바에즈


더 서처스



왜 로우즈는 이런 노래를 불렀을까? 아니, 영화를 쓴 밥 컴포트나 감독한 낸시 사보카는 왜 로우즈에게 이런 노래를 부르게 했을까? 그저 담담하게 들어간 것 같은 노래 한 곡이지만, 주인공들이 사는 시대를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차원 높은 은유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60년대 초반은 격동의 시기였다. 어느 시기라고 안 그러랴만은. 두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의 밤거리를 거닐며 함께 보내던 그 날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1963년 11월22일의 바로 하루 전이다. 다음날 암살 소식이 알려지자 로우즈는 충격에 빠지고, 버드레이스는 베트남으로 떠난다.

1960년대 초중반의 샌프란시스코는 각성과 저항의 정서가 넘실거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조안 바에즈와 밥 딜런을 동경하는 못생긴 식당 처녀가 부른 'What Have They Done to the Rain'은 이러한 정서를 간명하게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두 사람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버드레이스가 못생긴 여자를 찾아나섰을 때, 로우즈가 쉬는 시간에 식당 구석에서 기타를 뚱땅거리며 연습하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고, 이제 다시 동떨어진 곳으로 떠나려는 버드레이스에게는, 로우즈가 부르는 이 서툰 노래가 문화적인 개안(開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두 세계, 또 반전과 파병이라는 두 세계가 불쑥 만나 그 살을 비빌 때, 이 노래는 두 세계의 접경에서 양자를 정서적으로 완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우즈가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는 어색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런 노래를 심각하게 듣는 버드레이스가 귀 기울인 것은 그녀가 부르는 노래였는지, 그녀 자신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보여주는 낯선 세계였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바로 그 불확실성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고 보아야 하겠다. 서툰 피아노 소리와 담배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간에서 카메라가 아주 천천히 다가가고 멀어지며 그러한 불확실한 교류를 섬세하게 잡아낸다.

들판에 선 소년과 청년들이 사라지고 스러지는 대표적인 장소는 전쟁터일 것이다. 그래서, 감독 사보카가 지적하듯이 이 노래는 반전을 상징한 곡이기도 하다. 날이 밝으면 전쟁터로 떠날 젊은이가 듣는 이 노래는 그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일까. 그러나 운명은 버드레이스로부터 목숨 대신 다리 하나만을 빼앗았다. 버드레이스는 들판에 섰던 소년처럼 사라지지는 않았으며, 그래서 해피엔딩의 여지가 남게 되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버드레이스가 다리를 절며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샌프란시스코는 히피들의 세상이 되었다. 꽃과 나염 무늬 티셔츠와 장발이 거리에 꽉 찼다. 그렇게 핀 꽃들 중에서 로우즈도 있었다.


※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Dogfight)>, 1991, 감독: 낸시 사보카, 출연: 리버 피닉스, 릴리 타일러, 8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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