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국회의원 숫자 늘려봐야 뭐합니까 때時 일事 (Issues)

문재인이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400명 정도 돼야 한다고 했단다. 한 기사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인구 수 대비 국회의원 비율이) 낮다”며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직능 전문가를 비례대표로 모시거나 여성 30% (비례대표 보장)도 가능해 진다”고 덧붙였다.


몇 가지를 짚어 보자.


1. 국회의원 수

문재인은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의원 수가 적다고 했다. 주요 국가가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OECD 전체 34개 나라를 놓고 비교해 보자. △ 의원 수와 △ 인구를 고려한 수(의원 1인당 인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국제의회연맹에 실려 있는 각국 의원 수 자료와 위키에 나와있는 따끈따끈한 인구 자료를 합쳤다. 상하 양원이 있는 양원제 국가의 경우, 상원의 특성을 무시하고 그냥 의원 수를 다 더했다. 정렬 순서는 맨 마지막 열인 의원 1인당 인구 순이다. 그 수치가 낮을수록 인구 대비 의원 수가 많다는 뜻이다.

표를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분명 그 수가 적은 편이긴 하다.


2. OECD?

그런데 왜 OECD 국가들과 비교를 해야 하나? 이 나라들이 선진국이라서?

'OECD 국가들이 선진국이고 그런 나라는 의원 수가 많기 때문에 우리도 그래야 한다'라는 말이라면, 이게 성립하기 위해서 두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1) OECD 국가들은 의원 수가 많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었다. 혹은
2) OECD 국가들이 선진국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의원 수가 많아야 한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증명하기가 불가능하거나, 할 수 있더라도 아주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만일 1)이나 2)가 입증될 수 있다면,

3) 의원 수가 많은 나라는 선진국이다.

라는 좀더 보편적인 가정 역시 성립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OECD 범위를 넘어서, 인구 대비 의원 수가 한국보다 많은 나라들을 보자. (예전 글에서 재활용.)




의원 수가 많다고 해서 다 잘 살고 번영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3. 세계로 비교해 보면?

세계 나라들의 의원 수 분포는 다음과 같다. 국제의회연맹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도표다.




빨간 세로선이 한국이 있는 지점이다. 한국보다 의원 수가 적은 나라가 압도적으로 많다(83.8%). 인구를 고려해도 의원 수가 한국보다 적은 나라가 여전히 훨씬 많다.

따라서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혹은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의원 수가 너무 많다'라고 할 수도 있다.

요컨대 OECD '주요국'을 들어 한국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은 별다른 근거를 찾기 어려운 자의적인 설정이라는 것이다.


4. 400명?

왜 400명인가? 이것도 아주 자의적인 것이다. 국가 기관을 이렇게 주먹구구로 셈하여 늘리거나 줄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5. 밥값부터 하십시오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하는 의미 있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런 점을 놓고, 정치인들이나 언론은 의원 수 늘리기에 반대하는 여론을 '국민 정서상'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국민이 뭐가 옳은지도 모르고 감정적으로만 싫어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국회의원 수 늘리기에 반대하는 여론은 정서나 감정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누적된 나태, 파렴치, 부조리, 세금으로 지불되는 밥값도 하지 않으면서 밥값 늘리기에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작태 같은 사실들이 그런 정서를 만들어 왔다.

너무 박하게 평가하는 것 아니요? 그런가요? 예를 딱 하나만 듭시다.

국회의원은 국민 대신 회에 나가 의에 참석하며 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안 그런다. 본회의가 열릴라치면 지각은 고사하고 아예 나타나지 않는 의원들 때문에 회의가 열리지 못하기 일쑤다. 사람 수가 모자라 개회가 안 되니까 의장단은 제발 좀 참석해 달라고 칭얼대는 방송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정부 행정을 감시하라고 국무위원들 모아놓고 여는 회의에서도 그런다. 300명 중에 개회 정족수 50여명도 못 채워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들이 어디 가서 뭐 하고 자빠졌는지 국민은 모른다.

어쩌다 그렇게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1분만 참석해도 하루종일 참석한 것으로 쳐 준다. 점심 처먹고 오후 회의에 안들어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들어와서도 늘어지게 잔다. 아니면 국정 돌보라고 만들어 준 개인용 컴퓨터며 휴대 기기로 벗은 여자 몸이나 찾아본다.

에이, 한두 명이 그러겠지. 한두 명? 성원이 안 되어 회의가 안 열립니다요.

에이,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회의만 그러겠지. 시시껄렁한? 국회에서 열리는 회의중에 시시껄렁한 회의가 어디 있겠나만은, 여하튼 그런 게 있다 치고 좀더 중요한 회의는 다르겠지?




이 사진은 2014년 5월21일 국회 본회의장 모습이다. 임시국회 회기중이었다. 이게 어떤 임시국회인가? 세월호 참사가 터져 온 국민이 경악하고 분노하는 상황에서, 이를 엄하게 따지고 조사해 보자고 여야 합의하여 연 임시국회다. 그것도 밀고당기고 실랑이를 하면서 어렵게 성사시킨 회의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에 초당적 협력을 다 할 것이라고 하면서 연 것이다.

이들이 초당적 협력을 한 일은 실제로는 따로 있었다.

텅 비었다. 개회 시간은 10시였는데, 의원들이 들어오지 않아 제 시간에 열리지도 못했다. 10시30분 되어서야 가까스로 최소한의 사람 수를 채워 회의가 열렸다. 의원들은 한 시간 반쯤 지나 12시가 되자 밥 먹으러 나갔다. 오후에는 사람이 더 적었다. 밥 먹고 안 들어오는 인간들 때문이었다. (관련 방송)

곧 있을 선거 때문이라고 했다. 6월4일 지방선거다. 자기들 뽑고 뽑히는 선거도 아니다. 그런데도 수백 명 꽃다운 목숨이 하릴없이 억울하게 숨져간 세월호 따위보다 선거가 더 중요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저희들이 세월호 사건에 가장 분노하고 가장 염려하는 것처럼 입발린 소리들을 앞다투어 내놨다.

이런 국회의원 400명, 500명, 600명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의원 수를 늘려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지금 금뱃지를 달고 있는 인간들부터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거나 대폭 갈지 않으면, 저희들 밥그릇 늘리고 국민 부담만 커지는 결과가 될 뿐이다.


6. 그럼 체질 개선하고 늘리면 될까?

불행히도 그렇게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질 가능성은 거의, 아니 전혀 없다.

3월 중순에 심상정 역시 의원 수를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현 세비를 줄이고 운전기사 같은 특권을 없애며 해외출장 같은 것을 투명하게 하면, 수를 늘리더라도 비용을 지금 상태로 묶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전제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회의 중에 자빠져 자거나 아예 안 들어오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줄어든다면 나는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비 줄이고 특권 없애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아는가? 이들이 정파에 상관없이 일치 단결하고 작당하여 세비를 올리고 특권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따가운 비판을 받았던 의원연금(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도 밀리고 밀리고 밀려 2014년에야 폐지되었으며, 그것도 과거는 그대로 두고 새로 적용만 하지 않는 형태로 폐지됐다. 국회의원은 겸직을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조사하면 겸직자들이 언제나 나온다. 겸직 걸렸으니 정리하라고 통고해도 배째라 하고 안 한다.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는 모두 국회의원 세비를 줄이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30% 삭감' '무노동 무임금' '모두 내려놓겠다' 말은 화려했다.

말만 화려했다. 대선 끝난 뒤 세비 삭감 공약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삭감은커녕, 지금껏 해온 대로 꾸준히 올리고 있다.

이런 판이다. 심상정 등 일부 의원이 세비 삭감이나 특권 축소 방안을 내놓더라도, 씨알도 안 먹힐 것이 분명하다. 국회의원의 보수와 특권을 줄이겠다는 각종 안들이 심심하면 발의되어, 오로지 홍보용으로만 활용되고 모두 법안 통과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사장되는 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밥값을 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하면서 특권층으로 군림하는 모럴 헤저드 체질부터 바꾼 뒤 숫자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그러니 국민으로서는 지금도 그 수가 너무 많다고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근거도 없이 외국 국회의원 숫자만 본받으려 하지 말고, 자전거나 지하철 타고 일상적으로 출근하는 외국 국회의원 모습 같은 것도 좀 본받는다면, 증원 필요성을 국민이 좀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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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여의도 2015/04/07 03:36 # 삭제 답글

    머리가 아파 집에서 뒹굴고 있었는데... 시원하네요. 칼보다 강할뿐 아니라, 두통약보다 펜(자판?)이 센가 봅니다.
  • deulpul 2015/04/07 17:16 #

    매체 비권장 단어들이 몇 개 들어간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5/04/07 13: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4/07 17: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어어로 2015/04/07 15:42 # 삭제 답글

    숫자가많아진다면 한명당 책임지는 국가자산이 적어지면 다행아닐까요
  • deulpul 2015/04/07 17:27 #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1) '숫자가 늘어나면 이들 1명당 먹여살리는 국가 비용이 줄어든다'라는 말씀이라면, 숫자를 늘리더라도 전체 비용은 동결하고 기존 특권을 줄여야 한다는 말인데 이게 쉽지 않음은 본문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만일 2) '숫자가 늘어나면 의원 1인당 관리감독하는 국가자산(행정부 예산?)이 적어져서 효율적이다'라는 말씀이라면, 이들이 지역구나 관련 분야에 예산을 쓸어가기 벌이는 일을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오황 2015/04/11 00:30 # 삭제 답글

    여야 막론, 정치판 정치인들 행태를 보고 있자면 관심을 뚝 끊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네요...정치판도 세대교체를 통해 점차 나아지는 모습 볼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deulpul 2015/04/12 16:10 #

    관심을 끊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첫째, 우리가 지켜보고 감시하지 않으면 저런 짓을 더 마음놓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을 고르고 뽑는 것은 결국 유권자이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유권자뿐입니다. 이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 끊임없이 지켜보고 평가해야 조금씩이라도 바뀝니다. 선량(選良)이라는 말과는 달리 選惡 집단처럼 되어 있는 국회, 정말 양(良)자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뽑히고 모이는 집단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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