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광을 조심하세요 비칠映 그림畵 (Movies)

(예전에 쓴 글입니다.)

얼마 전 근처에서 공연한 <토스카>를 봤다. 흔하지 않은 기회라서 아는 분들께 함께 가자고 단체 공지를 띄울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오페라는 흔히 미친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아니면 그런 것으로 오해되기 때문이다.

... 라는 것은 물론 과장된 말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기도 어렵다. 어찌된 일인지,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살인광은 또한 오페라광들이기도 하다. 오페라 아리아 자체가 뜨거운 사랑과 격렬한 미움, 행복한 환희와 처절한 절망을 노래하는 것들이지만, 영화에서는 여기에 광기의 켜 하나가 덧씌워진다. 사랑의 아리아조차 피비린내 나는 소품이 되는 셈이다.

<킬러 인사이드 미>의 주인공 루 포드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딴 건 몰라도 사람 죽일 강단은 없을 것 같은 배우 케이시 애플릭이 살인광이다.




서로서로 다 아는 작은 지역 사회의 공직자답게 깔끔한 인상인 애플릭. 집에 돌아온 뒤 성악곡 음반을 걸어놓고 책을 읽는다. 엄청 두꺼운 책이다. 물론 원서겠지. 두꺼운 책을 읽는 행위와 뒤에 흐르는 클래식 성악곡이 어울려 일정한 분위기나 인상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저 장면에서 헤비메탈이 연주된다든가, 거꾸로 성악곡을 들으며 틱택토 놀이를 한다든가 하면 주인공의 성격을 일관성있게 구축할 수 없다.

이 장면의 노래는 아리아는 아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죽기 한 해 전인 84세 때 작곡한 성악곡 '마지막 노래 넷(Vier letzte Lieder)' 중 네 번째인 '해질녘에(Im Abendrot)'다.

영화의 끝부분에서는 자기 집에 불을 지르기 위해 인화 물질을 뿌리는데 그 배경 음악으로 카루소의 아리아가 흐른다. 장중한 테너 목소리가 휘발유의 증기에 섞여 위험하게 집안을 채운다.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에 나오는 유명한 곡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다.

남자한테 맞아서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제시카 알바와 그 남자의 재회 장면에 깔리는 점을 놓고 보면, 이 곡은 그 내용까지 고려하여 영화에 사용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오페라와는 달리 영화 속 살인광에게 해피 엔딩이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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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취향이 포스를 뿌리는 독특한 살인광으로 한니발 렉터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영화연구소(AFI)가 미국 영화 100년사에서 최고 악당으로 뽑은 이 캐릭터는 지성과 야성, 품위와 잔인함을 모두 갖춘 그야말로 궁극의 살인마다. 창작된 인물에 피와 살을 부여하여 생생하게 실제 인물로 구현해낸 안소니 홉킨스의 덕도 크다.

이런 인물은 고전음악에 탐닉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홉킨스는 <레드 드래곤>에서 아예 지역 교향악단의 후원자가 되어, 연주 중 실수를 하는 단원을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극단적인 덕력을 보여준다.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 <한니발>에서 렉터 박사는 이탈리아의 야외 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공연을 감상한다. 이 오페라 장면은 이 영화를 위해 따로 작곡 및 연출되어 삽입되었다. 가사는 단테의 <새로운 삶(La Vita Nuova)>에 나오는 '내 마음을 바라보며(Vide Cor Meum)'에 기초하였다고 한다. 2001년의 영화에 들어갈 2분 남짓한 장면을 위해 700여 년 전에 쓰인 텍스트로 음악을 만들고 무대를 구성했다. 700년 전이면 한국으로 치면 고려 후기다. <팔만대장경>이나 <삼국유사> 내용으로 따로 오페라 한 장면을 만들어 영화에 집어넣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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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렉터가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에 등장하는 흔한 살인자들과 격을 달리하는 것은, 심리학을 비롯한 인문학 일반에 탁월했다는 점과 사람 고기를 먹는 카니발리즘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제쳐놓더라도 인육을 먹으며 오페라를 즐기는 살인광은 한국에도 있다.

<악마를 보았다>는 정말 잔인하다. 최민식도 주인공(장경철)을 연기하는 일이 끔찍하고 고통스러워서 몰입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도 진짜 살인마 같은 연기를 보면 배우는 배우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좋아하는 살인광은 최민식은 아니다. 벌레 잡듯 사람 죽이는 것으로서는 최민식 못지않은 친구 최무성(극중 인물 태주)이다. 이 캐릭터는 사람을 먹기 위해 잡는다.




그가 살인에 동반하는 음악은 역시 오페라다. 없으면 살인이 안 되는지, 음악이 그치자 오디오를 점검하러 온다. 이 음악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가 만든 오페라 <카르멘(Carmen)> 1막에 나오는 유명한 곡 '하바네라(Habanera)'다. 원래 제목은 '사랑은 길들이기 어려운 새(L'amour est un oiseau rebelle)'다. 이놈의 사랑이란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도저히 길들일 수 없는 새 같은 존재라는 노래다. 하지만 식칼을 든 최무성한테 이 노래는 '살인은 길들이기 어려운 새'로 들릴 것이다.

오페라 아리아와 살인(자)이라는 공식이 적용된 장면인데, 너무 흔한 도식이어서인지 아니면 핏빛 충격이 너무 강한 때문인지, 이 음악을 짚고 넘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화가 나온 뒤 한 클래식 전문 기자가 쓴 글에서도 이 음악의 정체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이 글에 따르면, 영화 담당 기자를 통해 음악의 정체를 <악마를 보았다> '제작진'에게 물은 결과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제작진에게 확인하니 이 아리아는 '영화음악 라이브러리'에서 골라 쓴 것이라네요. 창작곡이지만 마치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들리게 만든 작품의 도서관 같은 것이죠.

멀쩡한 오페라곡을 '마치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들리게 만든 창작곡'이라고 한다면, 저승에 있는 비제가 소송은 못하더라도 아주 슬퍼할 게다.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일일까. 이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보면, 빌려와 영화에 쓴 음악으로 명시한 것은 "'사랑하고 싶어' 작사/작곡 박광현" 단 하나 뿐이다. 영화 초반에 이병현이 약혼녀에게 전화로 불러주는 노래인데, 딱 9초 동안 쓰였다. 이 곡 말고는 '크레딧'을 주지 않았다. 비제의 하바네라도, 살인을 마친 최민식이 기타로 전주를 연주하는 'The House of the Rising Sun'도 밝히지 않았다. 단 한 소절이 들어가더라도 영화 끝에 분명히 밝히는 외국 영화의 (옳은) 관행에 비추어 보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무성이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러 나서면서 오페라를 크게 트는 장면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헬기 편대가 공습을 나설 때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에 나오는 '발퀴레의 비행(Walkürenritt)'을 귀청이 찢어지도록 트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무심한 살인과 전쟁은 모두 광기가 밑에 깔려야 벌일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은 <지옥의 묵시록>의 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예술은 광기로 벌어지는 일들을 덮어 가리우는, 공사장의 포장막처럼 이용된다. 마음의 바닥에 흔적처럼 남아 있을지도 모를 최소한의 인간성 역시 함께 덮여 은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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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페라를 좋아하는 모든 영화 주인공이 살인마인 것은 아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다가오는 죽음과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에이즈 환자이자 동성애자 변호사인 톰 행크스가 마리아 칼라스를 듣는 장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붉은 조명 아래서 격하게 감동하는 톰 행크스를 지금 다시 보니, 집착적인 살인광 배역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하긴 이런 절망과 외로움 속에서는 무언가에라도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오페라의 힘은 이렇게 절망하는 영혼들에게 미칠 대상이 되어 주는 데에서 나올 테고, 그게 극단의 모서리에 선 이들을 다시 오페라로 이끄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왜 미치광이들은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지, 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광적인 주인공을 오페라 애호가로 꾸미는 것일까. 이것은 극중 캐릭터를 입체화하는 한 방식으로 볼 수 있겠다. 살인이라는 가장 비문명적이고 원시적인 행위를 벌이는 주인공이 고급스러운 문화 양식으로 간주되는 고전음악이나 오페라를 좋아하게 되면, 이 인물의 본질에 모순이 생기게 된다. 이 모순은 주인공의 성격을 입체화하고, 이로 인해 관객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스케일의 사이코패스였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시작된 전통인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바그너 오페라의 열렬한 팬이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어쨌든 살인마는 오페라를 좋아해. 영화 문법에서 진부한 관행이 되었을 정도니, 영화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현실에서도 오페라 애호가들은 뭔가 약간 정상이 아닌 사람인지도 모른다. 본인은 그렇게 여기지 않더라도 주변에서는 다르게 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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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isty 2015/04/13 00:02 # 삭제 답글

    아~ 토스카 놓쳤네요... 오페라 광까지는 못되지만 좋아하는데 저도 정상이 아닌가 봅니다. ^^
  • deulpul 2015/04/13 08:51 #

    무... 무섭습니다... 대중적인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니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시면 비슷한 기회는 언제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4월 말에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있네요.
  • punky 2015/05/06 23:18 # 삭제 답글

    요즘 한국에서 회자되고 있는 위플래쉬도 같은 맥락입니다. 광기와 음악... 그리고 천재..하지만 한국에선 모두 교육과 학습법으로 공론화시키더군요.
  • deulpul 2015/06/01 22:18 #

    아직 보지 못한 영화라서 목록에 넣어 두었습니다. 모든 길은 (사)교육으로 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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