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키야! 섞일雜 끓일湯 (Others)

처분해야 할 작은 오디오가 있어 중고품 거래 사이트인 크레익스 리스트에 올려뒀다. 카세트 데크까지 더블로 있는 오래 된 제품이다. 요즘 카세트 쓰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CD 플레이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다만 라디오는 이퀄라이저를 거쳐 빵빵하게 잘 나오고, 외부 음원을 입력할 수 있는 인풋 단자도 있다. 이런 상태라도 누군가는 필요할지 몰라서, 거저나 다름없는 값을 붙여 내놨다.

빌(Bill)이라는 아저씨가 연락을 하고 찾아왔다. 라디오를 야외 일터에서 들을 수 있게 음량만 크면 된다고 했다. 그런 용도로는 딱이다.

밖에서 써야 하니 배터리로 돌려야 하는데, 나는 배터리를 넣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가 가져온 배터리들을 넣어 시험해 봤더니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접촉 단자가 녹이 슬어 잘 연결되지 않았다. 둘이서 씨름을 한 끝에 정상 작동 상태가 되었다.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돼서 아저씨가 물었다. (나보다 한참 위 연배로 보였지만, 편의상 그냥 반말 까자.)

"너, 어디서 왔냐?"

"한국."

"오, 한국! 나 한국에 가본 적 있다."

"정말? 농담 아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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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평범한 미국 사람 다수는 한국을 잘 모른다. 우리가 아프리카 소국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올림픽, 월드컵, OECD 이런 거 필요없다. 물론 국제 정세에 좀 밝은 사람들, 그리고 코리아 타운 같은 게 있는 대도시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내륙 지역의 노동자 계층은 그렇지는 않다.

이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면, 그 대부분은 한국이나 한국 사람과 얽힌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데 종종 놀라게 된다. 이것은 불행한 한국 현대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외국 학생과 지역 주민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도리스 할머니의 남편 레이먼드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 중국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됐고, 그 와중에 무릎을 다쳐서 평생 고생했다.

비슷한 시기의 어느 날 밤, 나는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다 히치하이크를 하는 노인을 태운 적이 있다. 노인이라서 태웠지만, 지금이라면 그렇게 쉽게 낯선 사람을 태우지는 않을 것 같다. 다행히 노인은 범죄자는 아니었다. 그의 집으로 데려다 주는 10여 분 동안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사람도 한국전 출신이었다.

이것이 기막힌 우연인가 싶기도 하지만, 1950년 당시 미국 인구와 한국전에 나갔던 미군 수를 고려해 보면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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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를 사러 온 빌은 물론 한국전 세대는 아니다. 그 역시 군인으로 한국 땅을 밟아봤지만, 시기는 70년대 중반이다.

혹은 그가 뻥을 치는지도 모른다. 잠깐 몇 마디 하고 영원히 헤어질 동양인에게 호감을 주(고 값을 깎)기 위해 그런 뻥 정도는 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그 때 배운 한국어 기억하는 거 있냐? 인사라든가..."

흰 콧수염이 수북히 달린 그의 입에서 지체없이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캐시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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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한 채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말한 그 자신도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40여 년 전에 익혀둔 욕설 한 마디가 이렇게 즉시 튀어나오다니!

"야- 진짜 오썸이다. 아무렴, 그건 다른 나라 말을 배울 때 첫 번째로 배워야 하는 말이구, 또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말이구말구!"

"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

안녕, 안녕하세요는 아는지 물었더니 생각 안 난단다. 이 사람, 한국에 있었던 사람 확실하다. 로제타 스톤 같은 프로그램으로는 이런 그림이 안 나온다.




빌은 자기가 어떤 부대 소속이었는지 설명했는데, 기지(캠프)나 지역명이 아니라 부대 편제 이름을 대서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양주쿤! 거기가 내가 있던 곳이다."

"오오, 거긴 내 고향인데."

동두천도 아니고 의정부도 아니고 양주! 그런데 옛날에 동두천은 양주군 소속이었으니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도 기막힌 우연이긴 하지만, 내가 살던 곳에는 미군 부대들이 많았고, 그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긴 했다.

그는 한국 있을 때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월급날 PX에서 돈을 다 쌓아놓고 포커를 치던 일, 한국인 씨빌리언(군속) 운전사 세 명이 모두 킴(金)인데 그 중 한 킴과 작당하여 술을 박스째로 빼돌려 퍼먹던 일, 부대 근처에 있던 양공주들... 그는 '프러스티튜트(prostitute)'라고 표현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누구든 질풍노도 같았던 젊은 날을 추억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를 머나먼 아시아의 한 나라 시골에 보낸 국제 정치 질서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나, 그는 그저 한 인간이었다.

"지금은 아주 달라졌다. 미군부대도 서울 남쪽으로 많이 옮겨갔고."

"그래?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사는 곳은 어떤 사람에게는 젊을 때의 추억이 서린,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중고 오디오를 차 뒤에 싣고 나서 그는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었다. 생면부지고 앞으로 다시 볼 기회도 없겠지만, 여하튼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행운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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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dmiral 2015/04/28 06:23 # 삭제 답글

    한국에 대해서 정말로 잘 아는 아저씨네요.
  • deulpul 2015/04/28 12:00 #

    그러게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를 붙잡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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