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병원 못밝히는 K나라 정부와 언론 때時 일事 (Issues)

2014년 9월 말,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토머스 던컨은 귀국 사흘 만에 심한 감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댈러스의 한 병원을 찾아갔으나, 병원은 간단한 처치만 하고 돌려보냈다. 던컨은 이틀이 지나는 동안에도 증세가 좋아지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검사를 통해 그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던컨은 2주 뒤인 10월8일 숨졌다.

던컨이 죽은 지 이틀 뒤, 이 병원에서 던컨을 돌보았던 간호사 니나 팸에게 고열 증상이 나타났다. 즉각적인 격리와 검사를 거친 결과 그녀 역시 에볼라에 감염되었음이 드러났다. 다시 나흘 뒤, 또다른 간호사 앰버 빈슨이 바이러스 감염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작년 말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문제의 병원을 '댈러스의 한 병원'이라고 했다. 몰라서가 아니다. 이 글을 읽을 한국인 독자에게는 그 병원이 어디인지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염 사태가 한창 진행중이던 작년 가을께 미국 사람들에게는 이 병원이 어디인지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안전에 이렇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보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미국 언론은 사태 초기부터 이 병원을 '텍사스 보건장로병원(Texas Health Presbyterian Hospital)'이라고 정확히 밝혔다. 대중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진료를 위해 방문할 환자는 물론이고, 의료진을 비롯한 직원과 외부 관련자들이 스스로 조심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정보였다. 사태 초기에 <워싱턴 포스트>에는 이 병원이 어떤 곳인가 하는 기사까지 실렸다.

언론뿐 아니다. 미국 방역 당국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관련 홈페이지도 문제가 벌어진 병원 이름을 정확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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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계속 늘어나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다. 이 사태를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얼마나 번지고 있는지(진상) △얼마나 위험한지(위험성) △어디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발병 지역) 등일 것이다. 이런 관심은 단순한 흥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급속히 전파되는 전염병의 특성을 고려하면,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정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메르스 사태를 전하는 뉴스들을 보면, 이런 일이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매체들은 모두 해당 병원을 'B병원'이라고 표시한다. 환자가 소개되고 병원이 임시로 문을 닫는 지경인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병원 이름을 절대 밝히지 않는다.

어떤 언론은 B를 소문자로 하고 동그라미를 쳐서 'ⓑ병원'이라고 표현한다. B병원과 ⓑ병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소문자를 쓰든 대문자를 쓰든 상관없이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병원 이름 가리기는 관계 당국인 보건복지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상황을 제대로 알려 국민이 혼란을 겪거나 불필요하게 걱정할 여지를 없애야할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보도자료 앞에 큼지막하게 적은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입발린 구호가 무색하다.

한 기사에 따르면 복지부가 병원 이름을 감추는 것은 '일반 환자의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자의 대혼란'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지만,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것은 환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벌어지는 일이다. 정부는 정보를 감춤으로써 '대혼란'을 막을 게 아니라,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와 더불어 어떻게 대응하고 처신해야 할지까지 알려줌으로써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쉬쉬하고 정보를 감추면서 '알 놈은 알아서 알아라, 우리가 말할 수는 없다'라는 식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그저 면피나 하려는 한심한 작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하여 그런 꼴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부 작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언론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해당 병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 추정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의 주장에서 제기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정부 당국이 관리하고 추진하는 일이다. 보도를 한다고 해도 명예훼손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긴급한 공공 사안이다.

언론이 해야 할 사명을 돌아보지 않고 정부의 설득력 없는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모습은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보건복지부 기관지도 아니고 정부 공보도 아니다. 그러나 출입처의 공보 방침이 곧 보도 방침이 되는 언론 상황에서는 그런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재난 보도에서 정부 발표 자료만 따라하다 대형 사고를 치고 이에 대해 반성한다며 수없이 머리를 조아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전염병 사태와 같은 긴급한 사안을 놓고 정부와 언론이 병원 이름 밝히기를 포기하면서 지켜야 할 합당한 가치를 찾기 어렵다. 굳이 찾자면 해당 병원의 이해관계 같은 것이나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환자, 더 나아가 국민의 이해관계가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해당 병원의 이해관계가 중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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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어머니는 아는 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카톡 메시지를 받으셨다.



이 메시지의 내용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나돌고 사람들이 그에 귀를 귀울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당한 경로를 통해 그런 정보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B병원'이나 'ⓑ병원'이라는 아무 가치 없는 정보 조각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의도 성모병원'이라는 구체적인 이름과 함께 전달되는 메시지가 훨씬 더 의미 있는 정보가 된다. 심지어 그것이 그르더라도 말이다.

이 정보가 그릇된 것이라면, 이런 정보를 나돌게 하여 국민을 오도하는 장본인은 B병원 운운하는 보건 당국과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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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5월30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와 관련한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는 등 엄정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젖은 솔가지 꺾어 불을 때면서 연기 나는 것을 단속하겠다는 꼴이다.

공중 보건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 대중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이러한 불안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사안을 숨기거나 축소하고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대중은 불필요한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전염병 사태를 놓고 명확한 이유 없이 정보를 감추면서 유언비어를 때려잡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는 K나라 정부를 어떤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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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5/06/02 10: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03 11: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ooni 2015/06/02 13:19 # 삭제 답글

    발병 경위까지 다 밝힐 수 있는 시대인데...
    차라리 이름을 밝힌 다음, 나중에 보조금을 주는게 낫죠.
  • deulpul 2015/06/03 11:42 #

    그런 방안도 있을 수 있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지역 사회, 더 나아가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해 안전을 도모하게 하고 안심시키는 일에 최우선 가치가 주어져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병원이 잘못한 게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엄중히 물을 수 있어야 이른바 영(令)이 설 텐데, 여하튼 무언가 심하게 뒤집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미국 CDC 발표를 보면 환자를 치료하는 대응 병원들이 우수하고 뛰어난 곳이라는 홍보를 함께 해주고 있어서, 정부와 민간이 방역과 소통 모두에서 힘을 합쳐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 ilovemac 2015/06/03 10:50 # 삭제 답글

    정부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전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오히려 혼란을 더 키우는 격이라니....그나저나 역시 오랜만에 보는 들풀님 글은 너무 좋습니다.
  • deulpul 2015/06/03 11:47 #

    가치의 순위를 설정함에서 심각한 왜곡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이야 그럴 수 있더라도 정부 정책이 그런 꼴을 가져서는 곤란하지요. 반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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