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운 손택 섞일雜 끓일湯 (Others)

아는 분이 책 한 권을 건네 주셨다. 수전 손택이 쓴 <타인의 고통>이었다. 2003년에 출간된 <Regarding the Pain of Others>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2004년에 나왔고, 내 손에 온 것은 2011년에 찍은 7쇄다.

감사한 마음으로 읽다가, 나는 곧 옛날 훑어본 기억을 떠올려 원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유는 나중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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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맨 첫 문장이다. 한 문장을 적당히 표현하기 어려워 두 문장으로 자른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라고 하여 손택이 울프 책에 대한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옮겼다. 게다가 'unwelcomed'를 옮기면서 '전혀'라는 부사까지 붙임으로써, 원문과 거리가 있는 새김을 오히려 더 강조했다.

2.

손택은 "may not be possible"이라고 했는데, 번역본은 이를 "오고갈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옮겼다.

3.

울프와 변호사는 모두 교육받은 계급에 속해 있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남자와 여자라는 점이다. 이게 원문이다. 번역본은 '울프와 변호사가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의 성이 다르다'고 옮겼다. 두 사람이 왜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4.

원문은 남성들이 싸움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그로부터 영광이나 만족을 얻지만, 여성 (대부분)은 그렇게 느끼거나 그런 영광과 만족을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번역본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전혀 느껴본 적도 없고 누려본 적도 없는"이라고 하여, 성향이나 성질에 관한 서술경험에 관한 서술로 잘못 옮겼다. 여기에도 원문에 없는 '전혀'를 붙여서 뜻을 불필요하게 강조했다.

5.

Winter가을로 옮겼다. 겨울은 두 해에 걸치기 때문에 1936~37년이라고 했다. 가을에 대해서는 물론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6.

원문을 옮기면 "이러한 사진들로 야기되는 심정적 격동을 드러내는 가장 빠르고 건조한 방법은, 이렇게 살이 찢기고 돌더미가 무너진 잔인한 폐허 장면들을 참아낼 수 없다고 토로하는 것이다"가 된다. 부정적인 뉘앙스다. 이 부분은 남성들도 비슷한 방법을 쓴다는 점, 즉 다음의 인용문으로 연결된다.

번역본처럼 옮겨 놓으면 이런 뉘앙스도, 유기적 연결의 의미도 없어진다.

7.

내가 이 책의 원문을 찾아볼 동기를 갖게 된 부분이다.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은 나말고도 좀 더 있을 것이다. 주어-동사처럼 주요한 부분이 뒤에 나오는 한국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영어식으로 중문, 복문을 펼쳐놓아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1) 원문은 전쟁을 비난하는 것이 그렇게 무익하거나 뜬금없는 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는데, 2) 번역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고 여겨지게 됐다"라고 반대로 옮겼다. 1)에서 무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이유는 역사적 상황(1차대전) 때문이며, 그렇게 무익하거나 뜬금없지는 않은 일이라고 여겨져서 심지어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까지 반전 논의에 참여했다는 말이다.

무용하고 부적절하게 여겨졌다는 오역은 문장 안의 맥락과 맞지 않으며,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부분과도 호응하지 않는다.

8.

이것도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대목이다. "극도의 혐오감이 수사학적으로 진부해지지는 않았다" 혹은 "반복되는 구절을 통해서 훨씬 더 풍부해졌다"라는 문장이 앞뒤 맥락 속에서 바로 이해되는 사람은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

이 단락은 울프가 비록 전쟁에 대한 태도에서 남녀 차이를 파헤치긴 했으나, 결국 그녀 역시 흔한 전쟁 반대론에 불과했다는 손택의 평가가 드러나는 곳이다. 그런데 번역본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은 그렇다 치더라도) 손택이 울프를 그저 높이 평가한 것처럼 옮겼다. 원문의 뜻과 반대로 번역한 셈이다.

원래의 뜻은, 전쟁에 대한 울프의 혐오 역시 20년 넘게 지속되어 온 흔하고 타성적인 반전 수사의 범주를 넘지 못했으며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not ... any less ...'를 주목할 만하다.

"And photographs..."로 시작되는 그 다음 부분도 중요하다. 사진 일반에 대한 손택의 생각을 담은 이 부분은 울프와 직접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번역본은 "이 사진들은 그녀(울프)의 주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 들려주고"라고 옮겼다. 손택의 주장은, 전쟁 희생자를 담은 사진은 그 자체로 일종의 수사며, 상황을 단순화하고 반복하며 선동하는 도구가 되고, 그 결과 보는 사람들 사이에 공감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9.

위에서처럼 옮겼으니 그 뒤도 계속 그런 쪽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손택이 울프를 비판적으로 보며 "공언했다"라고 쓴 부분을 "짐짓 믿는 체 한다"라고 (잘못된) 해석을 덧붙여 옮겼다.

10.

번역책에 따르면 손택은 울프를 극찬한 꼴이 된다. 실제로는, 울프가 남녀 차이와 관련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상당한 고찰을 하였으나 결국 전쟁 사진의 영향을 공통으로 받음을 인정함으로써 다시 '우리'에 귀착했다는 비판이다. 원문의 'But'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게 '그래서'라는 순접으로 이어져 있다.

마지막 문장에서 손택이 말하는 'we'는 울프가 비판하다 결국 돌아간 남녀는 물론이고, 울프가 '우리'라고 여긴 여성들 전체도 해당한다("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는 문제에 관한 한, 어떠한 '우리'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상의 측면은 책 전체에서 손택이 울프를 일관되게 비판하는 관점을 취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11.

원문에서 '이런 사진들이 겨냥하는 '우리'란 누구인가'라고 한 것을 '이런 사진을 보는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돌려 번역하여, 사진이 적극적으로 왜곡을 시도한다는 의미를 흐려버렸다.

원문에 따르면 이러한 '우리'에 해당하는 이들이란 1) 생존을 위해 싸우는 나라 없는 백성들이나 약소국에 공감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2)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에 그저 입발린 관심이나 표명하는 사람들도 포함한다. 숫자로는 후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어쨌든 두 범주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원문과 달리 번역책에서는 1)이 아니라 2)라고 하여 1)을 배제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유권자'도 맥락 없이 낯선 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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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 본 부분은 번역책의 맨 처음 다섯 페이지(19~23)에 나온 것이다. 책 전체를 이렇게 대조해 본 것은 아니다. 원문에 없는 역자주 등을 보면, 책을 옮기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 이런 노력이 원문을 좀더 제대로 옮기는 데 투여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한 책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이 책도 번역서인데, 아주 잘 옮긴 책이라고 생각한다.)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이 된다. 하나가 없이 다른 하나는 있을 수 없다. 생각이 흐리멍덩한 사람이 훌륭한 글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한두 문단은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독자는 이내 길을 잃게 마련이다. (중략)

의자에 앉아 책이나 잡지를 들고 조는 사람은 글쓴이 때문에 불필요한 수고를 너무 많이 한 사람이다. 독자가 둔하고 게을러서 생각의 연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독자가 길을 잃는 건 대개 글쓴이가 충분한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이다.


나는 위의 손택 번역책을 지하철에서도 읽고 그늘 아래 벤치에서도 읽고 책상 앞에서도 읽었다. 세 경우 모두 읽다 졸았다. 내가 둔하고 게으른 것이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손택이 대문장가는 아니더라도 평생 글로 소통한 필자임을 떠올리면, 그녀가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따로 노는 문장들을 세상에 내어놨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명료하지 않은 혐의는 손택이 회수를 건너오는 과정에 두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번역책을 볼 때마다 원문을 대조하며 읽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다. 책을 읽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 때 원문을 찾아보게 된다. 한국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적인 번역투여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드는 노력보다 아랫도리 윗도리 맞추는 데 더 큰 노력이 드는 경우도 있고, 문장이나 단락이 각기 따로 놀며 호응하지 않아서 맥락을 도통 알 수 없는 때도 있다. 한 마디로, 읽어도 알 수 없는 책들이다. 이럴 경우 책을 내던지거나, 아니면 원문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원문을 찾아보는 일은 결코 즐겁지 않다. 찾으면 구멍 술술 뚫린 양상을 발견하게 마련이고, 그 다음에는 '내가 이런 번역책으로 받아들여 온 외국산 지식과 문화가 얼마나 겉핥기였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들기 때문이다.

위의 손택 책도 마찬가지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이 이런 번역책을 보고서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 번역책을 읽고나서 쓴 감상문을 흔하게 찾을 수 있고, 심지어 번역책 내용이 (문장이 다시 교열된 뒤이긴 하지만) 대학의 논술 시험 자료로까지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법, 손택이 말하려고 한 취지만 알면 되지 않겠소? 그렇게 철골 구조 세우듯 뼈다귀만 챙기기로 하자면, 부피의 두터움에 살고죽는 인문과 교양이란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350쪽이 넘는 <타인의 고통>도 석 줄 정리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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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6월12일 10:40)

이 번역책의 서지 정보 페이지에는 요즘은 어느 번역서에나 흔하게 달려 있는 독점권 명시 구문이 있다.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무슨무슨 에이전시를 통해 독점 계약한 무슨무슨 출판사가 소유한다는 식이다. 저작권 소재를 천명하기 위한 선언이지만, 이런 번역판을 볼 때마다 또다른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남들은 못하도록 권리를 독점하였다면 제대로 해야 할 책임이 생기는 것 아닌가. 남은 못하게 하고 자신은 제대로 안 한다면 어쩌자는 말인지. 권리 행사도 좋지만, 번역 독점 권리를 가졌다면 제대로 번역할 부담도 오롯이 함께 져야 한다는 점을 출판사들이 잊지 말았으면 싶다.

 

덧글

  • 2015/06/11 20:1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5/06/11 22:43 #

    그렇답니다. 놀라운 일이거나 아니면 하나도 놀랍지 않은 일이겠지요.
  • 2015/06/12 15: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13 01: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게이러가죽 2015/06/13 06:21 # 삭제 답글

    일본을 독일로 번역해서 독일이 두 번 나오기도 하네요.
  • deulpul 2015/06/14 10:59 #

    하하... 본문 7번 내용이군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만. 오역은 크게 나누면 1) 단순한 실수로 인한 것과 2) 이해 부족(혹은 서둘기)에서 오는 것이 있겠지요. 책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점은 둘 다 마찬가지이지만, 1)은 피해는 크지 않더라도 부실을 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2)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내용의 왜곡이라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Benjamin 2015/06/14 10:04 # 삭제 답글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이된다' 이 책의 제목은 글쓰기 생각쓰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2956 ) 라는 책이 맞나요? 인용하신 내용이 아주 맘에 들어 저도 읽어보고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확인차 (그리고 다른 독자들에게 정보도 남겨줄 겸) 여쭤봅니다.
  • deulpul 2015/06/14 11:49 #

    맞습니다. 바로 그 책입니다. 본문에 언급하거나 더구나 인용까지 할 때면 대개 출처를 밝히는 데, 이 책은 이유가 있어서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출처 정보를 명시하지 않아서 계속 찜찜했는데, 이렇게 댓글에서 덧붙이는 형태로 하니 딱 좋네요! 저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분들을 위해서도 고맙습니다.
  • 2015/06/14 10: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14 11: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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