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부탁해 욀諷 찌를刺 (Satire)

양심을 잃어버린 지 15년째다.

인사동에 모여 있던 너의 동업자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양심을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했다. 일단 전단지 초안을 짜보기로 했다. 옛날 방식이다. 마음을 잃어버렸는데, 그것도 양심을 잃어버렸는데, 남은 동업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물타기 해명을 하는 것, 모호한 입장을 발표하는 것, 주변 눈치를 보며 닥치고 있는 것, 처음 듣는 일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내는 것, 아무나 붙잡고 그래도 한국 문학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 비슷한 일을 하는 남동생이 인터넷에 양심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와 잃어버린 장소와 양심의 내역을 올리고 비슷한 꼴을 보면 화라도 내달라고 게시하는 것. 양심이 갈 만한 곳이라도 찾아다니고 싶었으나 이 도시에서 권력이 되고 재력이 되고 기성이 되면 양심쯤 내버리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 문안 작성은 네가 해라, 오빠가 너를 지명했다. 글을 쓰는 사람. 너는 그런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다 들켜서 귀밑이 붉어졌다. 과연 네가 긁어온 어느 문장이 잃어버린 양심을 찾는 데 도움이 될지.

(너무너무 좋은 글귀라 필사해 둔 것이지만 내가 창작한 순수한 내 글이다. 나는 원작을 본 적이 전혀 없거나, 혹은 원작자에게 누를 끼칠까봐 원전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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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6월21일 01:45)

2010년의 한 기사 중에서:

필사를 하며 소설가로서의 삶에 눈을 떴다는 신경숙은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에서 필사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 볼 때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나는 이 길로 가리라. 필사를 하는 동안의 그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각인시켜준 독특한 체험이었다."


 

덧글

  • marquez 2015/06/21 00:09 # 삭제 답글

    허 그것 참..
    심란합니다
  • deulpul 2015/06/22 10:56 #

    저는 사실 그런 일 자체보다 그런 일이 이번에는 웬일로 크게 물의가 되고 있다는 점에 더 놀라게 되네요. 끝까지 두고봐야 하는 일이겠습니다만...
  • 견자밤마 2015/06/21 13:32 # 답글

    한국일보 기사들이 아주 시원시원 하군요.
    잘 읽고 갑니다.
  • deulpul 2015/06/22 10:58 #

    원래 문학 분야에 강점이 있는 신문이기도 하지요.
  • 2015/06/23 11:0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5/06/23 12:22 #

    외국 보도에서 그런 인용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한국처럼 무차별적으로, 또 공정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쓰인 경우는 왜 그런 방식의 인용을 썼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예컨대 어떤 여배우의 의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 같은 거죠. 물론 외국 보도도 천차만별일 테니, 적어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염두에 두는 매체들의 경우라고 해야겠지요. 이미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슬로우뉴스>에 쓴 글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http://slownews.kr/171
  • marquez 2015/06/23 15:45 # 삭제 답글

    <슬로우뉴스>에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뉴스에서 인터뷰하는 일반인들의 대표성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덕분에 좀 더 명료해졌습니다. 최근에 약간의 외국 자료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문장이라도 말끔히 정리된 문장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들풀님의 정성 가득 담긴 글, 매우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 deulpul 2015/06/26 14:03 #

    근데 오랜만에 보니 참 아쉽기도 합니다. 사람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지금 보니 여러 모로 부족하게 느껴지네요.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어려운 작업에 좋은 성과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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