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글 섞일雜 끓일湯 (Others)

한국 문학에서 (아마도 드러난, 혹은 굵직한 일부) 표절 논란 사례를 정리한 한 기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강조는 내가):


황석영씨는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고 했다. 그는 “문제로 지적된 (자신의 소설 <강남몽>의) 4장 부분 또한 ‘신동아’ 2007년 6월호에 실린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 떠있는 각종 회상자료와 인터뷰 내용 등을 참조했다”며 “인터뷰를 바탕으로 근대화 기간 동안의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사실을 인용하면서 인물에 따라서 인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에 조명을 가하여 소설적 윤색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 황씨는 “이것이 표절에 해당하는가는 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략)

2005년 소설가 권지예씨의 9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작품집 <꽃게무덤>(문학동네)도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꽃게무덤> 중 ‘봉인’이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수필집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의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에 나오는 내용과 설정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은 박경철씨가 블로그에 올린 경험담을 담고 있다. 권지예씨는 박경철 의사의 글인 줄 몰랐으며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서 힌트를 얻어 썼다고 해명했다. 그는 “다음 책을 찍을 때는 출처를 명시하겠다”고 했다.


두 소설가의 머리 속에 '인터넷상에 떠있는' 혹은 '인터넷에 떠도는' 글은 그냥 갖다 써먹어도 된다는 관념이 박혀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 두 사람은 표절 혐의를 '인터넷에 떠도는'이라는 것으로 해명하거나 합리화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해명이 되지는 않으며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박경철의 글이라면 표절이 되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라면 표절에서 면책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거의 모든 방식으로 쓰인 글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문자도 저 스스로 찍히지는 않는다. 글은 누군가가 써야 쓰인다. '인터넷상에 떠있는' 혹은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가져다 훑어먹고 우려먹고 베껴먹어도 좋은 것은 아니다. 거기에도 엄연히 주인이 있다.

(한국의) 인터넷 세상 자체가 출처를 명기하지 않는 펌질 관행으로 안습인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아직 룰이 반성적으로 자리잡히지 않은 인터넷 초기의 문화였고, 또 일반 네티즌 사이에 벌어진 펌은 대개의 경우 직접적인 환금성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해악이 심대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말과 글에 이름을 실어 먹고사는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다.

글쓰기로 형성되는 업계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글'의 생산자는 대부분 국외자거나 비주류거나 마이너로 간주된다. 반면 황석영이나 권지예(는 잘 모르긴 하지만) 같은 기성 작가는 이런 업계에서 주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민과 양반, 혹은 중소 상공인과 재벌의 차이랄까. 따라서 인터넷에 떠도는 글과 아이디어를 흡입하여 써먹는 일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상대로 하여 저지르는 일종의 지적(知的) 착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 작가들이 인터넷의 글과 아이디어를 베껴서 자기 것처럼 내세우는 일은 넷 안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펌질보다 몇 배 더 질이 나쁜 일이라고 평가해 마땅하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본 낙선 응모작 내용을 그대로 베껴 냈다는 논란에 비하면 그나마 덜 뻔뻔한 착취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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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존재하는 정보의 가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인터넷에는 돈 되는 정보는 절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을 반영하는 명제라기보다, 유용한 글과 정보와 아이디어를 착취당하거나 도둑맞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상식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 버는 사람은 돈이 자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글이 자식이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이 자식이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비주류들은 자기 자식이 인터넷을 떠도는 근본 없는 존재로 전락할까 걱정을 해야 한다. 생각마다 자기 낙관을 찍을 수 있는 명망가들은 이런 걱정 안 하고 살 게다.

저작권법의 본질적인 목표는 저작권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예술의 발달을 촉진하는 것이 근본적인 법 정신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글이나 아이디어를 착취하고 절도하는 일은 창작과 표현의 의지를 꺾고, 결국 지식과 예술의 발달과 전파를 저해한다는 뜻이 된다.

인터넷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다. 착취와 절도가 일상으로 벌어지는 곳에서 금을 캐내어 늘어놓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을 따지기 이전에, 이러한 인식은 보편적인 규범이 되어야 옳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지식과 예술의 세계에 살거나 이를 지향하며 창조와 창작의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남과 그들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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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unho 2015/06/29 00:44 # 답글

    정말 치졸한 변명이네요. 인터넷에서 본 글이라며 어떻게든 표절을 핑계대려는 행동에서 그 말 자체의 치사함을 모르겠구나 하네요. 기본적으로 보고 그대로 필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 쯤이야 신경쓰지 않겠지도 싶네요 ㅎㅎ.
  • deulpul 2015/07/17 12:22 #

    그런데 인터넷 문건에 관한 한, 근본적인 의식부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악의는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큰 문제랄까요...
  • 2015/07/03 08: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7/17 12: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7/03 15:3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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