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 백일몽 섞일雜 끓일湯 (Others)

공사다망하고 더위에 지쳐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와중에도, 아쉽고 그리움에 가슴 조이다 못해 투덜투덜하게까지 되는 마음만은 축축 늘어지지 않고 여전히 깔깔하다. 제 눈의 대들보는 모른 채 남 예쁜 얼굴에 티끌만한 잡티를 고만고만 잡다보니 투덜 시리즈가 나올 판이다.

이태준의 책들을 계속 읽는다. 비소설 산문의 묶음으로 대표는 물론 <무서록(無序錄)>인데, 여기에 빠진 많은 글, 이를테면 신문 잡지에 실린 글까지 함께 모아 엮은 책이 있다. 제목은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이다. 그의 산문을 폭넓게 찾아 모아두었다는 점에서 뜻있는 작업의 결과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백일몽'이라는 글의 일부다(강조는 내가).


이러한 야시장에 활보대보(活步大步)하는 단발한 숙녀들이여, 오페라 박스에 칠피(漆皮) 구두 신은 처자들이여, 그대들은 야시에서 무엇을 사러 나왔나. 야시에서 무엇을 팔러 나왔나. 숙녀여 처자여, 붉은 것은 나의 ㅁㅁ다. (각주에는 ㅁㅁ가 판독 불가능한 글자라는 편자의 설명이 달려 있다.) 당신들은 숙녀 처자를 불명예로 아는 남녀동등권 승리자들이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밤에는 야시장에서 남자와 평등한 직업부인들이다.

아니, 남자보다 우월한 직업인이다. 그대들은 남자의 경제를 자유로 유린할 수 있는 특수상품을 타고난 우월한 직업인들이다.

남성이 다 특수상품을 가진 남성이요 비여성이다. 이것을 여성운동이라, 여성 해방이라 한다. 여성 부인(否認), 여성 박멸 운동을 여성 해방, 모성 부활 운동이라 한다.

오늘의 여자 교육이 모두 그렇다. 여자가 되지 말라, 남자를 닮아라, 그것보다도 우스운 것은 현모양처를 글자 그대로 해방하는 인식 부족의 현모양처 교육이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을 어느 정도 신봉하는 나는, 아무리 읽어도 뜻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책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더구나 명문장으로 이름난 사람의 글을 여러 번 읽어도 독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적지않이 이상하다.

위 글에서는 세 부분에서 막혔다. 물론 판독 불가능한 ㅁㅁ가 있는 "숙녀여 처자여, 붉은 것은 나의 ㅁㅁ다"라고 한 부분이 그 하나이고, "남성이 다 특수상품을 가진 남성이요 비여성이다"라는 부분도 문맥에 전혀 안 맞고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현모양처를 글자 그대로 해방하는 인식 부족"이란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이 책에서 '백일몽'은 책의 중간 정도에 실린 글인데, 이 때까지 읽어오는 동안, 또 그 뒤로도 이렇게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지는 않았다.

이 글은 1928년에 <동아일보>에 실린 글이다. 다행히 <동아일보>는 옛 신문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디지털판으로 보존되어 있어 쉽게 열람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28년 7월12일자 해당 부분이다.




① 책에서 "숙녀여 처자여, 붉은 것은 나의 ㅁㅁ다"라고 한 부분은 자세히 보면 "숙녀여 처자여 불은(부른) 것은 나의 失禮다"라고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숙녀, 처자를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그렇게 부른 게 실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판독 안 되었던 두 자도 드러나고 문맥도 잘 맞는다.

② 또 "남성이 다 특수상품을 가진 남성이요 비여성이다"라고 해서 머리를 뜯게 만들었던 부분은 "(여성은) 남성이다(.) 특수상품을 가진 남성이오 비여성이다"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남성이 모두 특수상품을 가졌다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여성이 아니라 특수상품을 가진 남성이라는 주장이다. 띄어쓰기를 잘못 옮겨서 뜻이 통 이해가 안 되게 된 사례다.

③ 원문의 '모권(母權) 부활 운동'을 '모성(母性) 부활 운동'으로 잘못 옮겼다. 그 의미의 차이는 둘째치고, 단어와 표현에 목숨 건 사람의 글인 데다 '발굴 수록'의 의의까지 부여한 책이니만치 (앞으로 다른 데 전재되고 인용될 가능성이 크므로) 원문에 더욱 충실하였기를 바라게 된다.

"현모양처를 글자 그대로 해방하는 인식 부족"의 원문은 "현모양처를 글자대로 해석하는 인식 부족"이다. 해석(解釋)이 해방(解放)이 되는 바람에 간명하고 소박한 글이 먹물기 진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모양이 되어버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편자의 서문을 다시 보니 이런 부분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산문 중 '백일몽'은 새로이 발굴된 수필이다. 1928년 7월11~12일 이틀 동안 동아일보에 실린 글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기 전인 1920년대 이태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이후의 다른 글들에 비해 사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특징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비록 작은 오류들이지만, 이태준 자신이 살아서 보았더라면 꽤 섭섭하게 생각했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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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9월1일 13:15)

전에 쓴 글 '베끼듯 수집하는 일'에서 나는 이태준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수련법으로 명문장 베끼기 같은 것을 제시하지는 않으며, 베끼듯 수집하라고 권한 것은 남의 작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필집 <무서록>에는 좋은 작품을 베껴보는 일을 권하며 '모방에 일면의 미덕이 있음'을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그 맥락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해당 원글 아래에 [덧붙임]으로 달아 두었다. 좀 지난 글이라서, A/S로 덧댄 내용을 보신 분이 많지 않을 것 같아 여기에도 좌표를 달아 둔다.

 

덧글

  • marquez 2015/09/04 00:16 # 삭제 답글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직장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이태준 작가의 문장강화가 있더군요. 조만간 읽어볼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 deulpul 2015/09/06 19:07 #

    출판된 판본이 여럿인데, 그 중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내용이 많이 빠진 문고판도 있습니다. 그런 책이 아닌가 확인해 보시기를요.
  • Northshore 2015/09/05 07:01 # 삭제 답글

    '숙녀여 처자여, 붉은 것은 나의 ㅁㅁ다'라는 문장의 ㅁㅁ을 찾아내기 위한 도정이 꼭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들풀 님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 저런 수고를 감내했을까, 새삼 감탄스러웠고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 deulpul 2015/09/07 02:58 #

    사실 수고도 아니고 재미 삼아 보다 보니 문득문득 눈에 띄는 것인데요, 저는 이런 것들이 '숫자로는 얼마 안 되는 착오들이 오로지 우연으로써 내 눈에 띌 뿐이다'라고 생각하려고 작심하기로 마음먹으려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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