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과 캐서린 두二 바퀴輪 (MCycle)



몇 년 동안 나를 잘 태우고 다닌 오토바이다. 이 기계와 인연을 시작하면서 흥미로운 사람도 많이 만났다. 처음 살 때부터 그랬다.

가까운 곳에서는 적당한 매물이 나오지 않아,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교외의 모터사이클 매장에서 데려왔다. 육중한 오토바이들이 즐비한 가운데 끼어 있던 놈이라, 가냘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내가 찾던 모델이 맞다.

샀다고 바로 끌고 올 수는 없었다. 나는 M(모터사이클) 면허를 받은 지 얼마 안 됐다. 고속도로를 바람처럼 질주하여 집에 데려 오기는 아직 무리다. 게다가 내가 타고 간 차도 있다.

"이거 집으로 배달해줘야 한다. 그렇게 되겠니?"

"집이 어딘데?"

"매디슨."

"그래? 잠깐만."

매니저는 안쪽을 보고 소리친다.

"어이, 존! 너 이번 주말에 매디슨 간다고 했지? 가는 길에 이 모터사이클 좀 싣고 가지."

스무네댓 살 정도로 보이는 존은 토요일 오전에 우리집으로 왔다. 오토바이는 적당히 낡은 픽업 트럭에 실려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매뉴얼대로 묶은 상태일 것이다. 그는 벨트형 고정띠를 풀고 적재함에서 땅바닥으로 철제 이동판을 내리고 오토바이를 천천히 후진시켜 땅에 내리는 일을 모두 혼자 했다. 경량급이긴 했지만 그래도 쇳덩이인데, 다루는 솜씨가 과연 모터사이클 매장 직원다웠다.

미리 약속했던 배달비에 10%를 더 얹어 팁으로 주고, 함께 담배를 피웠다(아직 끊기 전이었다). 주말이면 이렇게 자주 나온다고 한다.

"내가 사는 데는 재미가 없어. 여자애들도 별로 없고."

"그래? 와서는 뭐 하는데?"

"술 먹고 놀지. 놀기 좋잖아, 여기."

그래, 술 먹고 놀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라고 <플레이보이>가 뽑기도 했지. 존은 여기 사는 친구도 있어서, 와서 술 마시고 놀다가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한다. 나는 잘 몰랐지만, 이 도시는 주변에서 지루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아른아른 유혹의 손짓을 하는 해방구 역할도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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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은 중상이었지만 오토바이는 비교적 경상이었다. 기어를 바꾸는 레버가 잘 듣지 않았고, 오른발 쪽의 브레이크 페달은 크게 휘어졌고 상처가 났다.

몇 달 뒤, 몸을 추스리고 나서 오토바이를 끌고 서비스 센터에 갔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모터사이클 매장을 가진 곳이어서, 가끔 들를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경탄과 더 설명하기 어려운 탄식을 쏟아내게 하던 곳이다. 여기는 판매와 더불어 수리도 겸하고 있었다.

여기서 캐서린을 만났다. 서비스 센터 여직원이긴 했는데, 접수나 경리를 담당한 사람이 아니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니 수리장 쪽에서 젊은 여자가 아래 위가 붙은 푸른색 통작업복을 입고 나타났다. 오토바이 수리 기사였다. 나이는 20대 중반, 많아도 서른 살은 넘지 않았을 정도였으며, 이 서비스 센터의 정비공 다섯 명 중 하나였다.

"어디가 문제인데?"

"어...... 여기 보다시피 브레이크 페달이 망가졌고 기어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 잠깐 시험해 볼께."

오토바이에 휙 올라앉는가 싶었는데 바로 부르릉 하고 주차장으로 달아나버린다. 그 몸짓이 너무나 날렵해서, 낑낑대며 끌고온 내가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맞네, 기어가 잘 안 돼. 오토바이 맡기고 가면 자세히 살펴보고 견적을 알려주지."

며칠 뒤 캐서린은 전화 응답 녹음기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두 통화인데, 첫 번째는 견적을 내준 것이고 두 번째는 수리가 끝났으니 찾아가라는 통지다. 이 전화 녹음은 오랫동안 쓰지 않은 집 전화에 저장되어 남아있던 것을, 짐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오토바이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기사 자격증까지 따려면, 어렸을 때부터 모터사이클과 살다시피 했어야 할 것이다. 볼펜을 들고 수리할 곳을 써 넣을 때 보니, 양쪽 팔뚝과 손목 위가 온통 알록달록 문신이다. 모터사이클과 문신... 부모 속깨나 썩였겠다 싶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이곳에 들렀을 때 물어보니 캐서린은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인터뷰라도 해 두지 못해 아쉬웠다. 다른 뜻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면 그게 지게차 운전이 되었든 오토바이 수리가 되었든 남녀 구별없이 달려들고 허용하는 미국의 직업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미국의 직업 문화' 역시 멀지 않은 과거의 한 때 <노스 컨트리(North Country)> 같은 일을 겪으면서 형성되어 왔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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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김승훈 2015/09/20 14:37 # 삭제 답글

    오래전의 일과 오래전의 인연을 갑자기 떠올리신 계기라도 있었나요?
    저라면 이런일이 떠올라서 글로 남기는 일이 있더라도
    처음의 계기가 뭐였는지는 도무지 기억날 것 같지 않은데
    들풀님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ㅋ
  • deulpul 2015/09/21 01:01 #

    아, 이 글은 오랫동안 쓰지 않고 넣어둔 디지털 전화기(http://goo.gl/hUvLb8)를 꺼내어 정리하던 것이 계기입니다. 혹시나 하고 전원을 연결하고 녹음을 들어 보았는데, 위의 두 녹음을 포함하여 세 개가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더군요. 서너 달 전의 일이니까, 그동안 저 녹음을 놓고 주물럭거리기만 하여 온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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