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이 뛰어난 실업자 섞일雜 끓일湯 (Others)

조지 오웰이 영국 탄광 지대의 끔찍한 노동자 상황을 둘러보고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쓴 것은 1937년이다. 인류의 지혜를 독점하여 구현해 온 듯하던 유럽은 곳곳에서 전체주의를 독버섯처럼 피워올리며 또다른 야만스러운 전쟁으로 휩쓸려 가고 있었고, 대공황으로 악화된 실업 사태가 대서양 양안을 검게 물들이던 때였다. 문명은 근대스럽게 발달했으나 그 혜택은 바닥에 이르지 못했고, 사람의 값을 제대로 쳐 받기에는 일러도 한참 일렀다.

1930년대라는 역사를 형성하는 배경과 조건들은 그 시기에 고유한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관찰하고 쓴 오웰의 글이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 있다는 것은 희한하고도 슬프다. 특히 실업의 상흔을 고발하는 부분과 그런 세상을 개혁하겠다는 자들의 위선을 질타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사회주의라는 말이 나오면 내빼기부터 하는) 이런 유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얘기를 꺼내보면 "사회주의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는 말이 안 되는 듯한 대답을 하곤 한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 부실한 주장 같지만, 상당한 무게를 지닌 말이다. 기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의 홍보에 가장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그 신봉자들인 것이다.(이한중 옮김)


저 1930년대식 '사회주의'란 말을 빼고 거기 21세기식 '진보'나 '보수'를 끼워넣어도 말이 여전히 성립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진보를 자위대로 전락케 하는 것은 자칭 진보주의자들이요, 보수가 꼴통으로 줄달음치게 하는 것은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다. 일부를 기준으로 할 때 역시 여전히 "기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책에는 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행바꿈은 내가):


실업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를, 특히 여자보다는 남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무기력감은 아무리 지성이 뛰어나다 해도 떨쳐버리기 어렵다.

나는 필력이 정말 뛰어난 실업자를 우연히 만나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만나보진 못했지만 이따금 잡지에서 작품으로 접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 아주 드문드문하긴 해도 그런 사람들은 종종 뛰어난 글 한 편이나 단편소설을 써내곤 하며, 그런 글은 추천사만 요란한 대부분의 작품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자기 재능을 좀처럼 발휘하지 않는 걸까? 누구보다 시간이 많은 그들이 왜 차분히 앉아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독뿐 아니라(노동계급의 집에선 고독하기도 어렵다)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업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는, 무엇엔가 전념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기대감'을 발휘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한중 옮김)


오웰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므로 글 쓰는 작업에 주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어디 글에만 한정되겠는가. 실업으로 인해 안락도, 고독도, 마음의 평화도 없는 사람 중에 편안히 붓을 들고 그림 그릴 자 어디 있으며, 느긋하게 악기를 들고 음악을 짓고 연주할 자 어디 있겠는가.

어느 시기, 어떤 공간에서든 수많은 젊은 감성과 꽃다운 재능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무한히 써내는 일에 소모되고 소진되어 버리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나 그들의 공동체를 위해서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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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오황 2015/09/16 06:36 # 삭제 답글

    에세이나 소설 추천해 주실수 없나요
    필력이나 가독성은 들풀님의 글 정도면 됩니다!!
  • deulpul 2015/09/17 23:51 #

    꼭 정리해 볼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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