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가요무대> 섞일雜 끓일湯 (Others)

KBS의 노래 프로그램 <가요무대>는 나와 어머니가 별다른 의견 차이를 보이지 않고 함께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채널 선택권은 보통 어머니가 갖는데, 이것은 내가 텔레비전 보기를 적극적으로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요무대>는, 내가 어머니 옆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온갖 불만을 툴툴거리며 늘어놓아 어머니를 정신사납게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드문 프로그램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본다기보다 듣는다. 어머니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보시고, 나는 옆방에서 귀로 듣는다. 음악 프로그램이니까 그런 식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이연실의 '목로주점',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나오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책상에 앉아서 뿜을 뻔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 '눈물 젖은 두만강' '봄날은 간다' 같은 곡 중에 끼인 이 노래들은 <가요무대>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난 방영분들을 훑어보니 70, 80년대 노래는 진작부터 이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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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무대>의 홈페이지에는 이런 소개 문구가 있다:

1985년부터 이어오는 잔잔한 향수와 추억이 담긴 전통가요의 명가 (뭔가 비문같은 것은 기분탓입니...)

문제는 이 '전통 가요'다. 이 말이 트로트나 뽕짝같이 어떤 장르나 카테고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편하게 '흘러간 노래', 즉 시간적으로 오래 전에 인기 있었던 노래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간주해 보자(그래야 이연실, 이장희의 등장이 무난해진다). 시간이란 계속 흐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일정한 분량의 노래가 꾸준히 '전통 가요'에 편입되게 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장희나 이연실을 들었던 세대는 <가요무대> 세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제작진의 고민이 클 것 같다. 여전히 존재하는 구 노령층의 수요도 고려해야 하고, 새로 등장하는 신세대 노령층(?)의 취향에도 맞춰야 하고... 방송 시간은 정해져 있고 감당할 노래는 자꾸 늘어나고... 선곡에 애를 먹을 듯하다. 시계열 프로그램에 숙명적인 고민이랄까. 물론 <콘서트 7080>처럼 시간의 한 부분을 토막쳐서 그에만 몰두하는 cross-sectional 방식의 프로그램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태지가 <가요무대>에 나올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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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ilverwood 2015/09/29 23:20 # 답글

    저도 어머니와 종종 이 프로를 함께 보는데요, 이따금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가 나오면 그렇게좋을 수 없더라고요. 언젠가는 8090 가요무대를 보며 제가 좋아하던 가수가 나올 날이 정말 머지않은거 같아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건지:)
  • deulpul 2015/09/30 23:16 #

    그러고 보니 제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가 종종 나오는 유일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네요. 평생 단 한 곡만 부르신 그 노래...
  • 슈3花 2015/09/30 09:24 # 답글

    초고령화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던데.. 가요무대에도 그 영향을 미치겠네요. 가요무대는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입니다. 방송을 보고 따라부르시는 부모님의 곁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 deulpul 2015/09/30 23:23 #

    이렇게 분명한 팬층이 있다는 사실이 30년 동안 꾸준히 방영되어 올 수 있었던 저력인 것이겠죠. 멀리 해외동포와 '해외 근로자'까지 팬이라지요.
  • marquez 2015/09/30 13:06 # 삭제 답글

    한국에 오셨나봅니다. 어머니와 좋은 시간 많이 보내시길 빕니다.
  • deulpul 2015/09/30 23:23 #

    고맙습니다. 곧 정식으로 인사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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