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맥주집 깜짝 공연 섞일雜 끓일湯 (Others)

토요일 저녁, 아는 분과 혜화동 성당쪽을 산책하고 대학로 맥주집에 들렀습니다. 꽤 큰 집이고 사람도 많았습니다. 1층의 너른 홀 테이블이 거의 다 찼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한 테이블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돌아다 보니, 어떤 사람이 기타를 메고 의자 위에 올라서서 우렁차게 말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으로 유명한 두 사람, 김철민과 윤효상이었습니다. 오늘 공연이 흥행이 잘 안 돼서 화가 나서 술 마시는 중인데, 여기서 노래나 한 마디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일제히 시선을 돌린 사람들이 우우 박수를 치며 반겨 주었습니다.

저도 대학로 참 좋아하는데요. 얽힌 추억도 많고요. 하지만 이 두 사람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되지 않을 겁니다. 김철민과 윤효상은 대학로에서 25년 넘게 거리 공연을 했습니다. 전국구는 아닐지 몰라도 이 동네에서만큼은 인기 연예인이고 유명 인사입니다. 그런 사람이 술집에서 자청해서 노래를 하겠다니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두 사람의 정체성과 활동을 아주 좋아합니다. 공연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미국에서 유튜브로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가면 꼭 한번 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노래는 '내 나이가 어때서'로 시작됐습니다. 늘 하듯 김철민이 기타를 치고 윤효상이 드럼을 두들깁니다. 이 노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쨌든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니 분위기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제 자리에서는 윤효상은 보이지 않았고 김철민의 모습만 볼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두 번째 곡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손님 중에서 한 아주머니가 카운터로 가더니 주인에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하게 이야길 하러 왔지 공연 같은 걸 보러 온 게 아니다, 무례하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카운터 쪽이 소란스러워졌고, 두 사람은 노래를 중단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 계속해" 하고 고함을 치기도 했습니다. 손님 중에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시끄러운 공연을 마뜩찮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아주머니에게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두 사람의 유명세(?)와 다른 손님들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두 사람을 큰 소리로 나무랐습니다. "나도 공연 좋아하고 이런 노래 좋아하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사람 잘 타박하기로 유명한 윤효상은 조용히 있었고, 김철민이 '알겠다, 노래 안 하겠다'고 하고 의자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격과 취향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앉아 있는 술집에서 예정에 없이 갑자기 시끄러운 공연을 벌인 게 잘한 일일까. 그래봐야 서너 곡일 텐데, 그 아주머니는 그 정도를 참아줄 수 없었던 것일까. 비록 소수라도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나의 흥과 재미만을 위해 공연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나는 반갑지 않지만 다른 많은 사람이 즐거워한다면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일까. 공간에 대한 돈(술값)을 지불하였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즐거움에 앞서 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권리가 있다면 어디까지일까.

정답이 없는 질문들 같습니다. 저는 두 공연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 두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잠깐 공연을 했다면 좋아했을 테고, 평범하고 예상되는 삶의 일상성보다는 의외성을 더 선호하고 그에 즐거워하는 편이긴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주인인지 매니저인지 술집 관계자가 아주머니 일행 세 명에게 와서 사과 같은 것을 하였고, 어찌어찌 해서 김-안 두 사람은 다시 한 곡을 더 부를 수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 작은 장면에서도 쉽게 살아지지 않네요.



Advertisement


 

덧글

  • cipher0 2015/10/05 10:28 # 삭제 답글

    말씀하신대로 정답이 없는 문제 같습니다. 어느 쪽도 다 이해가 가고 동조하게 되는 면이 있어서요. 마침 지난 주 신촌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가게에서 트는 음악소리를 확 키워버리는게 느껴져서 - 어느 정도는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트는 정도는 이해합니다만 그걸 넘어서 머리가 아프고 대화가 어려울 지경으로까지 갔더랬습니다 -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요청했더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은 볼륨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고 변동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바람에 그냥 더 이야기하지 않고 계산하고 거기서 나와버렸던 일도 있어, 본문에서 말씀하신 사건들이 더 이리저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 deulpul 2015/10/10 22:11 #

    본문에서 예측 불가능성의 즐거움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런 이벤트가 아닌 일상적인 환경은 예측 가능해야 사람 살기가 편한 것 같습니다. 술집들은 어떤 집은 음악 소리가 커서 음악 듣기 좋은 집, 어떤 집은 조용한 편이어서 이야기하기 좋은 집 등으로 일관성을 지녀야 손님이 당황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안 벌어지겠지요. 그렇지 않은 곳은 실제로 그러신 것처럼 자리를 피하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 슈3花 2015/10/05 10:30 # 답글

    공연을 결심한 분들께서 '하겠다!'가 아니라 '해도 될까?'로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건 어땠을까요? 저라면 신나서 박수치고 즐겼을 것 같습니다만. 사는 게 팍팍하네요.
  • deulpul 2015/10/10 22:14 #

    두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동의를 구하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투표나 거수로 모두의 뜻을 확인한 것도 아니고, 대중은 목소리 큰 소수와 어영부영 다수로 이루어져 있게 마련이니, 그런 절차가 큰 의미는 없었겠지요.
  • marquez 2015/10/08 00:19 # 삭제 답글

    종종 "~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입니다"라고 쓰셨지요 어떤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습이다. 설명해주시겠어요
  • deulpul 2015/10/10 22:22 #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이 말의 의미를 나무위키(http://namu.wiki/w/%EA%B8%B0%EB%B6%84%20%ED%83%93)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XXX가 OOO로 보이는 것은 기분 탓입니다
    =(사전적 의미) XXX는 마치 OOO같지만, 아닙니다 -- 1)
    =(실제 의미) 강조하건대 XXX는 OOO입니다---------- 2)

    제가 여기서 이 말을 쓴 경우를 돌이켜 보니 주로 1)의 의미였던 것 같고, 은근한 긍정을 암시한 2)의 의미로 쓴 경우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궁금하셨는지가 궁금하네요.

  • 고양이 2015/10/23 12:39 # 삭제 답글

    정답이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만,,이걸 꼭 정답/권리/소수의견 존중..이런 쪽으로 접근을 해야하는 문제인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 아주머니 한 분을 제외한 모든(대부분의) 사람들이 흥을 느끼고 즐거워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면 그만인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유지를 침범해서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술집의 코드(예컨대 대화를 위한 적정 수준의 소음을 유지해야한다)가 법으로 정해진것도 아닐테고, 도대체 어디서 한 명의 목소리 큰 사람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가 산출되는지 궁금하기만 할뿐입니다. 배려와 센스가 없는 사람이네요. 제가 주인장이라면 그냥 그 아주머니만 환불해드리고 내보냈을거같아요 ㅎㅎ 아무튼 속상하셨겠어요.
  • deulpul 2015/11/19 20:21 #

    말씀 듣고 생각해 보니, 이런 일도 적절한 시스템의 정비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갈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이 술집의 안내판이나 메뉴판에 '종종 불시에 작은 공연이 열릴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명시해 놓았다면, 불필요한 갈등은 벌어지지 않거나 벌어지더라도 쉽게 해소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