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같은 여자 섞일雜 끓일湯 (Others)

대학로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다. 한참 걸어가다 휴대전화가 없어진 사실을 알았다. 상영관 안에서 떨어뜨렸거나, 아니면 끝나고 나오면서 잠깐 앉았던 승강기 앞 벤치에 두었을 것이다.

서둘러 돌아갔다. 벤치 근처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빨간 옷을 입고 주변을 청소하던 앳된 직원들도 알지 못했다.

내가 나왔던 상영관에 갔더니 이미 다음회 입장이 시작되어 손님들이 표를 제시하고 들어가고 있었다. 표를 검사하며 안내하는 남자 직원에게 상영관 안에 전화기를 떨어뜨린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다 둘러봤는데, 아무 것도 없었는데요."

그 짧은 시간에, 그 넓은 극장의 구석구석을 다 보기는 어려울 게다.

"혹시 모르니까 제가 한번 들어가 찾아보면 안 될까요?"

"벌써 다음회 입장 시작해서 곤란합니다. ... 잠깐 계셔 보세요. 제가 가서 다시 한번 볼께요. 자리가 어디시라고 그랬죠?"

나는 내 자리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는 상영관 사이 복도 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돌아온 그는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거기 아무 것도 없는데요."

없다니 할 수 없지만, 거기 말고는 떨어뜨릴 데가 없다. 두 시간 동안 다리를 배배 꼬느라 바지 주머니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 저기, 어쨌든 제가 한번 들어가 볼 수 없을까요?"

"바로 그 자리에 손님이 계셔서 곤란합니다. 제가 잘 살펴보기도 했구요."

우길 수도 없고 떼를 쓸 수도 없다.

"...... 네, 알았습니다."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서서 서너 걸음 옮기는데, 그런 내가 불쌍해 보였던지 그가 마음이 바꾸며 말했다.

"그럼 잠깐만 얼른 들어가 찾아보세요."

내 자리로 갔더니 정말 남녀 커플이 앉아 있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는 남자가 앉고, 그 옆에 여자가 앉았다. 영화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만 여기 전화기를 떨어뜨린 것 같아서요. 잠깐 봐도 괜찮을까요?"

남자가 말했다.

"지금 막 찾아보고 나가셨는데요... 아무 것도 없었는데요."

"아... 그래도 잠깐 다시 보았으면 해서요."

그랬더니 남자는 마지못한 듯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런데 옆의 여자는 흔쾌히 벌떡 일어서는 것이다.

영화관에 은은한 전등이 켜있긴 하지만 의자 밑은 어두웠다. 직원 말대로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옆에 사람이 서 있으니 마음껏 더듬어 볼 상황도 아니다.

10여 초나 됐을까, 실망스런 마음으로 막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좌석 주변이 환해졌다. 여자가 얼른 자신의 휴대폰 플래시(후랏시?) 앱을 켜서 주변을 밝힌 것이다.

아! 내 전화기는 남자가 (그리고 내가) 앉았던 자리 맨 뒷쪽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여자가 켠 그 은색 빛의 한 가운데 내 전화기가 들어와 있었다.

"저기 있네요!"

여자가 상쾌하게 말했다.


--- ** --- ** ---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얼마나 귀찮고 고달픈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내가 그런 꼴을 겪지 않은 것은 오로지 그 여자 덕분이다.

그 날 그 영화관에서, 옆자리의 남자친구와는 달리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선선히 일어나서 번개처럼 플래시 앱을 켤 줄 알았던 F5 좌석의 그 착하고 현명한 여자분에게 올 겨울 즐거운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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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슈3花 2015/10/30 08:57 # 답글

    저는 휴대전화가 아닌 장갑을 분실한 적이 있는데.. 다시 들어가보진 못했습니다. 여전히 미련이 남더라고요. 제가 직접 찾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ㅠ
  • deulpul 2015/11/19 20:38 #

    장갑 따위!... 는 농담이고요, 저도 쇼핑몰에서 장갑을 잃어버리고 나서 두 번, 세 번 걸음을 해 본 적이 있는지라 잘 이해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압박을 가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물론 진상삘이 나지 않는 선에서...
  • marquez 2015/10/30 17:27 # 삭제 답글

    작던 크던 고마운 경험을 하는 것 또 내 신경을 애써 써주는 일이야 말로 일상에 "상쾌함"을 주는 일이지요. 들풀님 표현처럼
  • deulpul 2015/11/19 20:39 #

    네, 그 점이 고마웠습니다!
  • NVAN 2015/11/03 02:10 # 삭제 답글

    통쾌합니다. 멋진 여잔걸요?
  • deulpul 2015/11/19 20:40 #

    그런데 설마 짜증이 나서 얼른 찾아가라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다. 그녀의 분위기는 분명 그런 것이 아니었어.
  • 미스티 2015/11/03 08:22 # 삭제 답글

    굉장히 센스있고 재치있는 여자분이네요.. 들풀님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셨나요?
  • deulpul 2015/11/19 20:40 #

    그렇습니다! 또 그렇습니다... 인사가 늦어지고 있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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