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의 환멸 섞일雜 끓일湯 (Others)

충청도산인 이문구와 전라도산인 박상륭은 한 살 차이로, 문단 생활 내내 절친한 친구였다. 두 사람의 출신지를 밝혀 적는 이유는, 둘 모두 각자의 작품 속에 자신의 지역성을 강하게 비벼넣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출신지와 성격과 기질이 달랐는데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가 되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문단에 발이 넓고 문학 단체도 여럿 관여한 이문구가 한국 문학가들의 행태를 이모저모 관찰하고 기록해 남긴 글 중에는 친구 박상륭에 대한 것도 있다.

다음은 훌쩍 캐나다로 떠났던 박상륭이 <죽음의 한 연구> 원고를 짊어지고 찾아왔던 때 일에 대해 이문구가 쓴 것이다. 박상륭은 캐나다 생활 5년 만에, 아무런 연락 없이 느닷없이 서울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렇게 느닷없이 서울을 버리고 캐나다로 돌아갔다고 한다.


(상륭)은 엿새 동안 (한국에) 머물다가 캐나다에서 기다리는 처자 품으로 되돌아 갔다. 그는 여러 날 묵으면서 실컷 쉬고 갈 당초의 일정을 갑자기 바꾸어 도로 날아가버린 거였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터였다. 원래가 말이 많지 않은 사내라서 길게 해명하지도 않고 돌아가버린 거였지만, 박은 한마디로 '환멸을 느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6년 전 출국시에 견줘 너무도 광적으로 변질된 데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던 거였다.

그는 시류 풍조에 휘말려들어 거의 서구식으로 변질된 여러 가지 형태에 관해서 지적하면서 몹시 분개하고 개탄을 금치 못했는데, 특히 알 만한 사람들의 인심 동향에 대해서는 거의 절망적인 환멸을 느꼈다는 거였다. 아무리 조석변인심이라고 일러는 왔지만, 6년 세월의 풍화작용이 그토록 주효할 줄은 미처 예측도 못했다는 거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서울에 왔으면서도 고국의 진국 맛을 맛볼 수 없던 거였다. 다시 말해 그가 서울에 와서 피부로 느낀 인심은, 밴쿠버의 차이나타운이나 일본인 거리 또는 퇴락해가는 인디언들의 일상 풍경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던 거였다.

그는 10월 26일, 오후 7시발 대한항공편을 탔다. 밤새 날아와 새벽에 왔던 그는 저녁에 떠나 밤새 날아간 거였다. 그는 출국의 좁은 문을 나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자(이문구)도 뒷전에서 멍하니 건너다보기만 했을 따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로 시대 이야기', <문학동네 사람들>, 이문구 전집 10, p. 223)


우선 이문구가 쓴 문장들을 보면 "~했다는 거였다"라는 표현을 반복 사용하여, 자신의 직접적인 관찰과 느낌을 쓰기보다 박상륭 자신의 뜻을 간접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또 "한마디로" "다시 말해" 같은 문구를 거듭해 쓰고 있다. 이것은 모두 친구로서 또 관찰자로서 자신이 박상륭의 귀환 이유를 깔끔하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박상륭이 예정과 다르게 빨리 캐나다로 돌아가버린 것이 사실이라면, 그에는 이문구 말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또 가장 친했던 친구가 전한 바, 그가 '환멸을 느껴서'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나로서는 박상륭이 환멸을 느낀 이유가 흥미롭다. 그는 조국이,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광적으로 변질되어서'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고 한다. 이것은 요즘 외국에 살던 사람들이 한국을 다녀갈 때 느끼는 실망이나 아쉬움과 약간 방향이 다르다. 나를 포함하여, 요즘의 경우라면 한국이 너무 변하지 않아서, 또는 느리게 변해서 환멸을 느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염증의 원천이 어느 방향이든, 같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이문구로서는 외국에서 돌아온 친구가 한국 사회와 사람을 놓고 갖게 된 환멸이 잘 이해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차가 고속으로 달리더라도 그 안에서는 속도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박상륭의 환멸에 대한 서술이 직접적이고 명쾌하지 않은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이문구와 박상륭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그 비슷한 사정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흔히 벌어지는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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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의 환멸과 관련해 몇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박상륭이 캐나다로 간 것은 1969년이고 일시 귀국한 것은 1974년이다. 그가 한국을 비운 1970년대 초는 한국사에서 보기 드물게 외형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격렬한 변화가 벌어지던 시기다. 땅덩어리는 구각을 벗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그 땅에 박히는 독재 체제의 뿌리는 더욱 억세고 깊어졌다. 우둔하거나 정직한 사람들은 밀려나고 눈치 빠르고 수완 좋은 사람들은 머리를 굴려 기회를 잡았다. 이 시기 한국의 양상을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아사리판 혹은 야바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태는 인간 성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치열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 역시 치열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미덕들은 당장의 현금 앞에서 부정되고 편의주의, 권위주의, 기회주의, 배금주의, 황금만능주의가 그 빈자리를 채워갔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속도 또한 현실의 변화만큼이나 빨랐으리라. 이문구가 전한 박상륭의 표현으로는 '광적으로 변질'이다.

박상륭의 환멸이 특정한 사람이나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엿새 동안 체험한 서울 세태 일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러한 급속한 변화가 그에게 환멸을 주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추상적 시대의식은 개개의 인물과 사건을 통해 구체화할 것이므로 "특히 알 만한 사람들의 인심 동향에 대해서는 거의 절망적인 환멸을 느꼈다"라고 할 수 있었을 게다.

2.

그런데 이문구가 전한 박상륭의 환멸의 양상이란 '시류 풍조에 휘말려들어 거의 서구식으로 변질된 여러 가지 형태에 분개하고 개탄'했다는 것이다. 이 말만 보자면, 당시 박상륭은 서구식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한국식(전통적) 가치나 풍조를 긍정한 것 같이 된다.

이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특히 서구 선진국)에 나간 사람은 그 사회에서 한국보다 나은 모습을 여럿 보고 체험하면서 이를 조국에 되먹임하기 마련이다. 대개는 문화, 문물, 기계문명, 법치, 제도, 사회 시스템, 인간 의식 등의 영역에서 진화된 양상을 보고, 아직 그에 이르지 못한 조국을 한탄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 자란 땅이 빨리 그러한 진화의 경지에 이르도록 조바심을 내게 된다. 예컨대 언젠가 아는 분이 말씀하셨던,

조실 부모해 부모라는 게 뭔지 모르는 나이 어린 계집아이가, 좋은 엄마 아빠 둔 친구의 엄마 아빠 자랑을 듣고 돌아서서 아무도 없는 집의 싸늘한 방바닥에 가 앉았을 때의 기분 같은 것

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박상륭은 변화한 것에 대하여, 특히 서구식으로 변질된 여러 가지 형태에 대하여 분개하였다고 한다. 그가 당시(그리고 지금도) 한국보다 한참 윗길인 선진국이었던 캐나다로 가 살았던 것을 고려하면 잘 이해되지 않는다.

3.

서너 가지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첫째, 박상륭은 위 1의 결과 모진 성정을 갖는 방향으로 탈바꿈한 몇몇 친구에 실망하였을 수 있다. 특정한 인간들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그렇게 표현하였을 수 있다. 세상이 어떻고 문명이 어떻고 선진국이 어떻고 후진국이 어떻든,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되도록 옛 면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랄 수 있으니까.

둘째, 박상륭의 캐나다 생활이 서구 선진국의 장점을 체득할 정도로 긴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는 캐나다에서 주경야독으로 바쁘게 살았고, 시간이 나면 그 시간을 각종 종교서와 원고지에 심혈을 다하여 쏟아부었다. 역시 이문구의 애정 어린 표현으로 하자면 "주는 밥이나 죽이고 들어앉아 있기가 '거시기하니'까 없는 이론 만들어가며 '연구 및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밤낮없이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박상륭식 생활의 캐나다판 연장이면서, 생업 때문에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상륭은 캐나다 시절 많은 작품을 줄기차게 써서 한국으로 공수하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집이 세상에 나온 것도 그가 캐나다에 머무르고 있을 때다.)

작가요 정신 세계에 천착하는 도반으로서 박상륭에게 높은 건물이나 넓은 땅덩어리 같은 하드웨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작 보아야 할 크고 너른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기회를 미처 갖지 못하였을 수 있다.

셋째, 박상륭의 '연구 및 공부'는 주로 동양 사상에 치우쳐 있다. 일찌기 사서삼경을 파고 팔만대장경을 독파하였고 노장사상에 한국의 신흥 종교까지 관심 분야였으며, 캐나다에서도 티벳 지방의 고대 종교를 열심히 탐구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노정에서 신구약 성경도 줄줄 꿸 정도가 됐지만, 대개 그의 정신적 고향이 어디에 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가치관 혼란의 세상에서 아직 착근되지 않은 자발없는 양속(洋俗)이 범람하는 꼴은 그 자체로 환멸을 느낄 대상이 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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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규제하던 시대가 있었다. 소중한 외화를 '낭비'하지 못하게 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국민을 우물 안에 가둬둠으로써 얻는 이득은 그 말고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놀러 외국을 다녀오는 일이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된 것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가 끝난 '응쌍팔' 시절, 1989년의 일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세계화 바람이 몰아닥쳤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을 세계로 내몰았다. 그 결과 국민의 고통도 세계적 수준이 되었다. 고통은 국가를 거덜낸 IMF 사태로 시작된다.

이렇게 세계화의 바람을 쐬면서 한국인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상을 알게 되고, 우리의 불우한 위치를 남과 비교해 살펴보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이민만이 부조리한 한국적 현실에서 탈출할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마치 이문열의 '황제' 식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드물 것이다:

오오, 양이(洋夷)의 세계란 역시 야만스럽기 짝이 없구나. 내 오랑캐의 땅에서 허송세월한 것을 한탄하며 위대한 고국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이렇게 벅찬 수구초심의 감격을 갖지 못하는 것이, 외지(外地)를 떠도는 동안 사서삼경을 잃어버린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고국은 어디 사서삼경을 기억하고 있는가.

한국이 여전히 실망스러운 후진적 사회라는 것은 밖에서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니, 안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다만 밖에서는 실질적인 대안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실망과 환멸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바뀌고 있으나 법과 제도,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들의 전근대성과 거기에 휘둘리는 생각 없는 중생은 여전히 한국을 환멸스러운 상태로 묶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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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은 캐나다로 떠난 지 30년 가까이 된 1998년에 '영구 귀국'하였다. <대산문화> 2001년 상반기호에 실린 그의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첫 번째 거둔, 깨알 한 톨만한 성공과 달리, 두 번째 연 책방 때문에는 고배를 마시고, 전에는 오란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은 듯하게 여겼으나, 나이의 까닭이었겠지만, 지금은 갈 데까지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 한 각설이는, 고향이라도 둘러보자고 귀국해선, 문단의 동구되는 데서 지내고 있는데... (하략)


그러나 2005년의 기사를 보면, 그 즈음 그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과의 차이는 자주 돌아온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일년에 한 번쯤 들어온다'고 한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링크 생략) 2003년에 이문구가 타계하였을 때에도 그는 '캐나다에서 18시간을 날아왔다'고 한다.

2006년의 한 기사에는 "1968년(1969년의 오류)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 30여년 동안 머물렀고, 1990년대 후반 영구 귀국하려 했으나 여전히 캐나다와 한국에서 번갈아 체류하고 있다"라고 한다. 아마 지금도 이 상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박상륭이 여전히 재외(在外)의 상황에 머무르고 있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용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가족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혹여 그러한 이유 중 하나로 그가 예전에 느꼈던 환멸 같은 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인지, 과거와는 달라진 것인지 문득 찾아가 물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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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arquez 2015/11/25 09:20 # 삭제 답글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글감을 선택하셨을 것이고 이를 위해 자료를 찾으셨을터이고..다만 찾아가 물어보고 싶어진다..로 마무리하시네요..ㅎ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15/11/26 00:26 #

    어마 깜짝이에요... 감사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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