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과 마스크 때時 일事 (Issues)

지난 여름 한국에 와서 놀란 일 중 하나가 여기저기서 복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거리에서도 종종 마주쳐서 가슴이 철렁하곤 했지만, 특히 집 앞에 있는 자전거 도로에서는 열에 일고여덟이 복면족이었다. 그냥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물 한 방울 샐 틈 없게 꽁꽁 여미고 다니더라. 그런데도 자기들끼리는 대화도 하고 소통도 하니, 낭중지추랄까 아무리 복면을 써도 그 사람됨이 어디 감추어지겠느냐랄까.

이게 햇볕 속의 자외선을 피하기 위한 노력임은 곧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낯설기는 여전했고, 더구나 모두가 그렇게 하고 다닌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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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폭력시위 594명 확인…복면·마스크 441명

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복면과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과격·폭력 시위를 미리 계획했다고 보면 된다"며 "자신의 얼굴을 감추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쪽으로 변해야 평화·준법 시위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깐. 경찰은 고도의 영상 장비는 물론이고 교통정보용 거리 CCTV까지 악용하여 시위자들을 채증한다. 인도에서 한 발짝만 나와도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찰 버스를 뒤집어엎는 것 같은 과격 폭력 시위를 미리 계획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평화 준법 시위 문화를 정착하려는 사람이라도 복면과 마스크를 쓰는 일이 유용할 수 있다. 게다가 날도 추워지고.)

시위를 노동에 비유하자면, 경찰 '관계자'가 말하는 평화 준법 시위는 에어컨 혹은 히터 잘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 노동 같은 것이다. 과격 폭력 시위는 영세 철공소에서 쇳가루를 마시거나 염색공장에서 화학약품을 뒤집어쓰며 하는 3D 업무 같은 것이다. 어렵고 더럽고 위험하다.

'3D 업종'에 흔히 따라붙는 단어는 '기피' 혹은 '기피 현상'이다. 피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편한 일 마다하고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하고 싶은 사람 없다. 이것은 상식이기도 하고 본능이기도 하다. 구글 자동완성에도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이 기피다. 빅 데이터로도 입증되는 상식인 셈이다.

시위가 상식이나 본능이 통용되는 영역이라면, '과격 폭력 시위' 뒤에 단골로 붙어야 할 말 역시 '기피'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구는 없다. 이른바 과격 폭력 시위는 인간이 상식과 본능을 넘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수행하는 의식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왜 기피해 마땅한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인가?

이들이 SMist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평화 준법 시위를 하라는 작자들은 정작 그런 시위를 하면 도무지 듣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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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의미를 널리 인정받는 80년대 민주화 운동. 심지어 당시 민주화 운동의 극복 대상이었던 자들이나 그 동아리까지도 입발린 소리로나마 칭송하는 그 민주화 운동.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차례로 달성했다고 평가할 때의 그 민주화 운동.

말이 좋아 민주화 운동이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총성 포성 능가하는 굉음이 거리를 메우고, 투석전 육박전 기동전 진지전 선전전 민심전 다 등장하고, 학생은 학업을 전폐하고 노동자는 노동을 전폐하고 단식투쟁도 흔했으니 식음까지 전폐하고, 화염병이 나르고 대적용 강력 최루탄이 도시를 덮고, 그 와중에 실제로 죽는 사람도 생기고.

베트남 전쟁 때 미국 국내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목은 '집 안의 전쟁(The War at Home)'이다. 80년대 한국 상황도 이에 못지 않다.

물론 당시에도 과격 폭력 시위를 나무라거나 엄단하겠다는 목소리는 지겨울 정도로 흔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목소리는 전두환의 그 쇳소리였을 것이다.

과격 폭력 시위 나쁘지. 평화 준법 시위 좋지.

하지만 80년대에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반독재 투쟁, 독재 쪽에서 보자면 이른바 과격 폭력 시위가 없었다면 한국의 독재 체제는 극복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상당 기간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역사에 합목적성이 있다는 헤겔 식의 역사관은 고통 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인 것이고, 또 그에 따라 군사독재는 언젠가는 극복되거나 종식되었을 것이지만, 그러는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고문당하고 재갈이 물리고 미행당하고 끌려가고 검열되고 해고되고 갈취당하였을 것인가.

적어도 그러한 일이 계속 연장되지 않은 것은 상당 부분 이른바 과격 폭력 시위 덕이다. 살벌한 무술경찰들이 진을 친 남대문 앞에 넥타이 부대가 저 먼저 쏟아져나온 적 없다. 간선도로들이 최루탄 파편과 돌멩이로 가득 메워지고 박종철이 고문당해 죽고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죽고 나서야 민심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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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과격 폭력 시위를 예찬하거나 고무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 갈등에서 비롯된 소리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이에 귀를 처막음으로써, 복면을 쓰고 투쟁을 해야만 소리가 들릴까말까 하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체제나 소통 시스템을 한탄하는 것이다.

80년대 이후 가장 크고 장기적이었던 이명박 정부 초기 광화문 촛불시위. 몇 달 동안 수많은 국민이 줄기차게 시위하고 사회 각계각층, 온 종교 기관까지 혼연일치로 떨쳐 일어났던 시위.

이 시위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시위 문화를 창조한 것'이었으리라. 새로운 시위 문화가 창조되든 말든, 이명박은 당시에는 납작 엎드려 뼈저리게 반성하는 척 했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두 해 뒤에는 촛불시위를 한 사람들에게 대갈 일성을 하고 나왔다.

2009년 상반기에 들불처럼 번져올랐던 서명운동 열풍. 민주주의의 총체적 후퇴를 걱정하는 이 서명운동은 대한민국 서명운동사에 유례없이 그 폭이 넓고 울림이 컸으나, 현실을 바꾼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는 4대강에서부터 미디어법 통과까지, 하려던 일을 근면하게 다 수행했다.

평화 준법 시위인 이 서명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그렇게 서명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었으리라.

2011년 말 미국에서 시작되어 열풍처럼 번진 오큐파이 운동(Occupy movement). 갈수록 악화하는 경제 불평등과 부의 편중 현상, 젊은층의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참다참다 일어난 항의 시위. 대체로 평화 준법 시위였던 그 운동으로 인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시위의 가장 큰 성과는 '그 시기에 그렇게 항의하는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리라.

딱 두 해 전인 2013년 12월에 벌어졌던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 그 의미는 적지 않았으나, 그저 그렇게 어영부영 끝났다. 김무성 같은 인간들에게는 조롱거리나 되었다.

저들은 말한다. 과격 폭력 시위는 안 된다고. 평화적이고 준법인 시위를 하여야 한다고. 그러나 정작 그런 시위를 하면 듣지 않고 바꾸지 않는다. 과격 폭력 시위가 안 된다는 일갈을 통역하면, 네놈들의 말 따위는 듣지 않을 테니 닥치고 있으라는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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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상황이 새롭지는 않다. 아니, 아주 흔해빠져서 신물나도록 지겹다.

거리를 가로막고 시위하는 것은 좋지 않죠
감옥에 가는 것도 좋지 않아요
주장을 펴는 더 점잖은 방법이 있긴 하죠
하지만 그런 점잖은 방법들은 언제나 먹히지 않아요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거듭거듭 말해요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말비나 레이놀즈, '그건 좋지 않아(It Isn't Nice)' 일부)

안 울면 젖 안 준다. 애가 울지 않더라도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플까 하여 알아서 젖을 물리면 애는 안 울어도 된다. 엄마는 모성으로 그럴 수 있지만, 허위 모성을 가진 권력자들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과격 폭력 시위, 안 됩니다. 시위는 평화적이고 준법적으로 해야 합니다. 오, 나도 100% 동의한다. 평화, 준법 시위 좋지. 갈등이 거리에서 3D 시위를 하는 방식으로 풀어져서는 곤란하다. 모두가 괴롭고 모두가 피곤하다.

그런데 전제가 필요하다. 다른 목소리를 듣고 제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그 전제다. 하다못해 주민소환제 정도는 갖추어야 갈등 표출과 수용의 준법화, 제도화가 가능할 것이다.

저들이 이런 걸 스스로 알아서 할까? 돈 없고 힘 없고 강단 없는 3무(無) 인간들의 지청구 따위, 듣지 않고 일방통행하니 이렇게 좋은데? 나는 의심한다.

말로 해서 안 되는데, 뜻을 포기하면 모를까 아니라면 몸으로 치댈 수밖에 더 있나. 안 울면 젖 안 주고 내팽개쳐 두는데 손을 부르쥐고 악을 쓰며 우는 수밖에 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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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비블리아 2015/11/27 19:51 # 답글

    횡설수설 길게 썼는데 그러니까 한줄로 요약하면 이거네요
    "우리 말 들어줄때까지 때려 부수자!!"

    국가의 정책을 바꾸고 싶으면 선거라는 확실한 수단이 있습니다. 본인이 바꾸길 원한다면 선거에 출마하면 되고 그럴 능력이 없다면 해당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에 투표를 하면 되요. 그 후보가 낙선한다고요? 그것도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결국 자신의 주장이 다수의 대중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죠. 자신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무조건 때려부수자고 하면 그게 폭동이죠. 거기서 더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쿠데타가 되는 거고요. 박정희를 그렇게 싫어하시는 분들이 박정희가 한 행위와 똑같은 행위를 주장하는 셈이네요.
  • waffiic 2015/11/28 10:21 # 삭제

    뭘 어떻게 요약하면 그렇게 되는지..

    나는 지금 과격 폭력 시위를 예찬하거나 고무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 갈등에서 비롯된 소리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이에 귀를 처막음으로써, 복면을 쓰고 투쟁을 해야만 소리가 들릴까말까 하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체제나 소통 시스템을 한탄하는 것이다.

    본문 좀 읽고 요약하세요. 님 맘대로 비약해서 폭동이니 쿠데타니 머리속에서 폭주하지 마시고요
  • pb shelley 2015/11/28 13:20 # 삭제

    워낙 복잡한 이슈이기에 이를 다각도에서 조심스럽게 다루는 게 당연한건데, 그렇기 때문에 subtle해질 수 밖에 없는 이 글의 전개 방식을 "횡설수설 길게 썼는데"라고 단칼에 판단하는 비블리아님의 댓글 첫 문장을 읽을 때부터 제 숨이 턱 막힙니다. 도대체 어떻게 읽으면 "때려 부수자"로 이 글을 짧게 요약할 수 있는 건지.. 이게 그 유명한 '전체 글의 기운 독해법'인가요? 그게 무엇이든 님의 자신감을 맞닥뜨린 제 감정이 참으로 복잡하지만 한줄로 요약하면 참 가소롭네요.
  • deulpul 2015/11/29 01:11 #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민의 표출의 중요한 계기요 절차지만,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갈등이 몇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선거로 모두 소화하고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2스럽게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설령 선거가 대의제의 원칙과 취지에 맞게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말이지요.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이 세상의 사회운동, 시민운동,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노동운동 등은 모두 5년 혹은 4년 동안 입닥치고 있다가 선거 때에만 모든 아젠다를 다 싸들고 와서 특정 개인에게 올인하기 위해 개발에 땀나게 뛰는 운동으로 바뀌어야 하겠지요. 더구나 당선만을 위해서 지키지도 않거나 못할 空約 남발을 서슴지 않고, 당선되자마자 公約을 다 지킬 필요가 없다는 뻔뻔한 개소리를 당연하다는 듯 짖어대는 사회에서 말입니다. 선거라는 절차도 중요하고 그것을 대의제의 취지에 맞게 갖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더하여 평소에도 다양한 민의를 수렴해야 하고, 더구나 모든 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 공약에 없어서 공공에게 검증받지 않았던 정책의 경우는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 비블리아 2015/11/30 00:02 # 답글

    저들은 말한다. 과격 폭력 시위는 안 된다고. 평화적이고 준법인 시위를 하여야 한다고. 그러나 정작 그런 시위를 하면 듣지 않고 바꾸지 않는다. 과격 폭력 시위가 안 된다는 일갈을 통역하면, 네놈들의 말 따위는 듣지 않을 테니 닥치고 있으라는 게 된다.

    말로 해서 안 되는데, 뜻을 포기하면 모를까 아니라면 몸으로 치댈 수밖에 더 있나. 안 울면 젖 안 주고 내팽개쳐 두는데 손을 부르쥐고 악을 쓰며 우는 수밖에 더 있나.


    라고 말을 써놓고 "폭력시위 하자는 게 아니다" 라고 써놓은 건 대체 어떤 화법입니까. 한 몸에 두 정신이 들어가 있는 가네바야시 세이콘 화법입니까?
  • 비블리아 2015/11/30 00:06 # 답글

    선거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선거가 해당 정당의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건 사실이죠. 선거에서 졌지만 우리는 이것을 원하는데 안들어준다. 그러니 들어줄때까지 때려부수자. 이러면 선거 왜 하나요?
    평화적으로 했더니 안되고 오히려 비웃기만 하더라.그러니 때려부수자... 결국 이거잖아요?

    그게 아니면 결론이 뭔데요?우리는 평화적으로 하고 싶었는데 저들이 말을 안들어주니 과격하게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지난 폭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 안달난 글로밖에 안보이는데요
  • deulpul 2015/11/30 23:06 #

    글의 논리를 잘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받아들이시는 분의 문제일 테고, 그보다 인터넷에 문자로 찍힌 글발 뒤에도 살아 숨쉬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부터 돌아보기를 권합니다. 일면식도 없고 말 섞어 본 적도 없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싸가지를 챙겨 오시면 고맙겠습니다. 적절한 방식으로 자기 의견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인간에게는 굳이 설명, 해명, 설득, 부연 따위를 거듭하고 싶지 않습니다.
  • 비블리아 2015/12/01 01:07 #

    애초에 "본문좀 읽고 오라" 느니 "글의 논리" 타령할 정도로 자뻑할 글을 쓰신 것도 아니라고 보는데요. 은근슬쩍 양비론을 펴는 척 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정부가 우리 말을 안들어주니 폭력시위는 피곤하지만 해야 한다" 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악을 써서 울어야 한다" 느니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느니 같은 사족을 왜 붙이시는지? 설마 악을 써서 울어야 한다는 뜻이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만 시위나가서 고함만 지르고 끝내자 라는 뜻은 아니었을 테고 말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문자로 찍힌 글발 뒤 뿐만 아니라 방패와 차벽 뒤에서도 쇠파이프나 벽돌로 뚜들겨 맞는, 숨쉬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왜 돌아보지 않으시는지 모르겠네요.
  • deulpul 2015/12/01 01:33 #

    바로 위의 댓글을 참조하십시오.
  • VIRTUE 2015/12/01 10:00 # 삭제 답글

    비블리아님. 블로거님의 글은 어디까지나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과 제도, 그리고 상식 수준의 국정수행을 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위를 하지 않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작성하였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선거로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선거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 계시구요.
    이번 시위로 인하여 국가 소유 차량과 전경들의 피해는 당연히 안타까운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결론은 폭력시위를 정당화 하고자 하는 것이 글의 핵심이 아니라 폭력시위가 일어날만큼 국민의 의견 반영이 안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글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무리 인터넷 글이라고 하더라도 기본 예의를 지켜가면서 글을 쓰셨으면 합니다.
  • 슈3花 2015/12/01 11:02 # 답글

    통찰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타당해서 슬프네요.
  • deulpul 2015/12/02 21:49 #

    시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새롭게 슬프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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