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세월호를 길어올리며
세월호 청문회와 관련한 칼럼이다. 이 글은 2004년 3월 24일 열린 미국 9.11 청문회에서 리처드 클락 전 국가안보위원회 대테러조정관이 한 발언으로 시작한다.

빨간 줄을 그은 이유는, 그 부분들이 원문에 없는 것이거나 원문보다 과한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부분을 원문에 좀 더 가깝게 옮기면 이렇게 될 것이다(원문은 더 아래):
이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외국어 번역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뉘앙스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어떠한 의지에 봉사하려는 동기에서 나오거나 혹은 그렇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뜻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는 사실과 다른 진술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칼럼은 클락이 "본 청문회에 서게 된 것을..." 이라고 말한 것으로 옮겼는데, 해당 영상을 보면 그는 앉아서 증언하고 있다.
칼럼에는 몇 군데 더 눈에 띄는 데가 있다.
나도 감동을 받긴 하지만, 클락의 발언을 놓고 정부라는 괴물이 시민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 청문회 당시 클락은 이미 부시 행정부를 떠난 상태라는 점도 그렇고, 정작 '정부'라고 할 부시 행정부는 그렇게 용서를 빈 적이 없다는 점도 그렇다. 경찰 출신 국회의원 권은희가 (더구나 경찰 옷을 벗고 나서) 국정원 선거 개입과 관련한 경찰의 수사권 남용에 대해 사과한다고 해서 정부가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클락의 발언인 정부의 실패(government's failure)가 갑자기 국가의 실패(state failure)가 돼버렸다. government와 state는 분명히 다르고, 국제정치학에서 '국가의 실패' 혹은 '실패 국가'는 (비록 통일된 정의定義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좀더 엄밀한 접근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정부의 실패가 실패 국가의 한 양상이긴 하겠지만, 이렇게 등치시켜 쓸 수는 없다. 클락의 말을 듣는 미국인은 물론이고 클락 자신도 9.11이 국가의 실패라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이 칼럼의 전체 주장에는 동의한다. 좀더 엄밀한 텍스트와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그런 주장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아쉽다.
리처드 클락이 발언한 내용의 원문은 이렇다.
내가 이 원문을 캡쳐한 곳은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해당 청문회 녹취록이다. 여기에는 이 청문회에서 나온 발언이 토씨 하나까지 모두 실려있다. 이 웹문서의 분량은 1280x800 풀화면으로 스크롤바 약 4mm, 종이로는 폰트 10의 작은 글자로도 A4 용지 192쪽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해당 녹취록이 이 신문에 실린 것은 청문회가 있던 당일 오후 7시다.
이렇게 기록하고 공개하고 퍼뜨리고 보관하지도 않으면서 세월호 청문회가 중요하다거나 세월호 사건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말짱 거짓말은 아닐지라도 심각한 이율배반이다. 중요한데 기록하고 보관하고 점검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청문회가 돈을 빌려주는 자리라고 쳐 보라. 그렇게 받은 차용증은 기를 쓰고 보관하고 집에 불이 나면 그것부터 갖고 뛰쳐나오지 않겠는가. 말빚이라고 왜 가볍겠는가.
세월호 청문회와 관련한 칼럼이다. 이 글은 2004년 3월 24일 열린 미국 9.11 청문회에서 리처드 클락 전 국가안보위원회 대테러조정관이 한 발언으로 시작한다.

빨간 줄을 그은 이유는, 그 부분들이 원문에 없는 것이거나 원문보다 과한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부분을 원문에 좀 더 가깝게 옮기면 이렇게 될 것이다(원문은 더 아래):
저는 이 청문회가 반갑습니다. 9.11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재발을 방지하려면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국민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마침내 9.11의 희생자 가족에게 사과를 할 수 있게 된 자리여서 이 청문회가 반갑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시거나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정부는 여러분을 실망시켰습니다. 여러분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렸고, 저 역시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실이 규명되고 난 뒤, 이 실패에 대하여 여러분이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시거나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정부는 여러분을 실망시켰습니다. 여러분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렸고, 저 역시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실이 규명되고 난 뒤, 이 실패에 대하여 여러분이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외국어 번역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뉘앙스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어떠한 의지에 봉사하려는 동기에서 나오거나 혹은 그렇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뜻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는 사실과 다른 진술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칼럼은 클락이 "본 청문회에 서게 된 것을..." 이라고 말한 것으로 옮겼는데, 해당 영상을 보면 그는 앉아서 증언하고 있다.
칼럼에는 몇 군데 더 눈에 띄는 데가 있다.
정부라는 거대한 괴물이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 수도 있다는 것은 명백한 반전이며, 누가 누구에게 왜 사과하는지 이토록 간명하게 밝히는 진정성은 사뭇 감동적이다.
나도 감동을 받긴 하지만, 클락의 발언을 놓고 정부라는 괴물이 시민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 청문회 당시 클락은 이미 부시 행정부를 떠난 상태라는 점도 그렇고, 정작 '정부'라고 할 부시 행정부는 그렇게 용서를 빈 적이 없다는 점도 그렇다. 경찰 출신 국회의원 권은희가 (더구나 경찰 옷을 벗고 나서) 국정원 선거 개입과 관련한 경찰의 수사권 남용에 대해 사과한다고 해서 정부가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그러나 앞서 길게 인용한 증언이 9·11이 일어난 지 3년 뒤인 2004년에 있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국가 실패(state failure)에 대한 검토와 반성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클락의 발언인 정부의 실패(government's failure)가 갑자기 국가의 실패(state failure)가 돼버렸다. government와 state는 분명히 다르고, 국제정치학에서 '국가의 실패' 혹은 '실패 국가'는 (비록 통일된 정의定義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좀더 엄밀한 접근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정부의 실패가 실패 국가의 한 양상이긴 하겠지만, 이렇게 등치시켜 쓸 수는 없다. 클락의 말을 듣는 미국인은 물론이고 클락 자신도 9.11이 국가의 실패라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이 칼럼의 전체 주장에는 동의한다. 좀더 엄밀한 텍스트와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그런 주장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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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클락이 발언한 내용의 원문은 이렇다.

내가 이 원문을 캡쳐한 곳은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해당 청문회 녹취록이다. 여기에는 이 청문회에서 나온 발언이 토씨 하나까지 모두 실려있다. 이 웹문서의 분량은 1280x800 풀화면으로 스크롤바 약 4mm, 종이로는 폰트 10의 작은 글자로도 A4 용지 192쪽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해당 녹취록이 이 신문에 실린 것은 청문회가 있던 당일 오후 7시다.
이렇게 기록하고 공개하고 퍼뜨리고 보관하지도 않으면서 세월호 청문회가 중요하다거나 세월호 사건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말짱 거짓말은 아닐지라도 심각한 이율배반이다. 중요한데 기록하고 보관하고 점검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청문회가 돈을 빌려주는 자리라고 쳐 보라. 그렇게 받은 차용증은 기를 쓰고 보관하고 집에 불이 나면 그것부터 갖고 뛰쳐나오지 않겠는가. 말빚이라고 왜 가볍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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