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블루스 때時 일事 (Issues)

무디스(Moody's)는 신용평가업체다. 영어로는 credit rating agency다. 이 업종 이름에 들어 있는 세 단어가 이 회사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려준다.

1. 신용.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날릴 가능성이 높으면 신용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무디스는 어떤 대상에 대해 투자자가 돈을 날리지 않고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평가해 준다. 투자, 채무 등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 영역은 주로 금융 부문이다.

2. 평가. 무디스가 하는 일은 평가다. 평가에는 주관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이 회사는 (자신의 사업 수익성을 위해서라도) 많은 데이터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평가 결과를 내놓겠지만, 어쨌든 결과가 완전히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회사 나름으로 그렇게 본다는 뜻이다.

3. 업체. 무디스는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다. 정부기관도, 공기업도, 연구소도, 국제기구도 아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평을 얻고 있어서, 스탠더드 앤 푸어스, 피치와 함께 3대 신용평가업체로 손꼽힌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Moody's Corporation (NYSE: MCO) is the parent company of Moody's Investors Service, which provides credit ratings and research covering debt instruments and securities... Moody's Investors Service is a leading provider of credit ratings, research, and risk analysis.


대부 상품과 유가증권들에 대한 신용 평가와 리서치를 제공한다든가 위험도를 분석한다든가 하는 것을 서비스 내용으로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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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평가' '업체'인 무디스의 평가 내용을 절대화해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 것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다. 무디스를 비롯한 평가업체들은 언제든 깡통이 될 수 있는 절대 위험의 금융 상품과 회사들에 줄줄이 최고급 등급을 붙여주었고, 그러면서 막대한 수익을 챙겼음이 밝혀졌다. 채권을 발행한 금융사 자체가 이 채권이 망한다는 데 걸었는데도 이에 트리플 에이를 붙여 순진한 투자자를 끌어모아 준 적도 있었다.

당시 미국 금융산업은 주택금융(모기지)을 빌려준 금융사, 이 금융사들의 채권을 2차로 상품화한 투자은행사, 이러한 상품에 안전 등급을 매겨준 신용평가업체 등이 먹이사슬을 만들어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받으며 세계를 상대로 하여 돈장사를 했다. 주택금융 폭탄이 터지자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급전직하로 추락했으나, 이들은 회전문을 드나드는 위치를 활용해가며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에 나온 증언 몇 가지를 돌이켜 보자.


찰스 모리스 (<2조 달러어치의 붕괴> 저자): 투자를 하러 온 연금조합 등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죠: "이건 (위험한) 서브프라임 상품이군요. 왜 여기에 투자를 해야 하죠?" 그럼 무디스, 스탠다드 앤 푸어스 같은 데서 온 사람들이 강조합니다. "이건 AAA 상품이에요."

빌 애크먼 (헷지펀드 매니저): 이렇게 발행된 (불량) 증권들 중에서 신용평가 회사들이 승인하고 직인을 찍지 않은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빌 애크먼: 무디스와 S&P는 평가 보고서를 써주는 것으로 수익을 내는 회사들입니다. 구조화된 증권에 대해 AAA 등급을 많이 내줄수록 이들의 분기당 수익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이건 <뉴욕 타임스>에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이봐요, 당신이 나에 대해 긍정적인 기사를 써 준다면 50만 달러를 주겠소. 그렇지 않으면 땡전 한푼 주지 않겠소."


무디스를 비롯한 신용평가업체가 내놓은 평가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점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 의회에서 금융 위기의 원인에 대해 조사를 벌일 때, 조사위원장은 신용평가업체들이 투자자의 믿음을 저버리고 엉터리 상품에 우수 등급을 주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신용평가업체 임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자기네의 평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저 자기네의 '의견'이므로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랭크 파트노이 (캘리포니아 대학 법금융 교수): 상원과 하원에서 신용평가 회사와 관련한 조사를 벌일 때 나는 참고인으로 증언했습니다. 그 때 불려나온 신용평가 회사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전문으로 다루는 저명한 변호사들을 이끌고 나타나서는, 자기네가 AAA 등급을 줄 때 그것은 단지 자기네의 의견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데븐 샤르마 (스탠다드&푸어스, 의회 조사에서): S&P의 등급은 우리의 의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스티븐 조인트 (피치, 의회 조사에서): 우리가 매기는 등급은 우리 의견입니다.

레이먼드 맥대니얼 (무디스, 의회 조사에서): 의견이죠. 그저 의견일 뿐입니다.

스티븐 조인트 (피치, 의회 조사에서): 우리의 등급은 의견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데븐 샤르마 (스탠다드&푸어스, 의회 조사에서): 우리가 매긴 등급은 해당 증권의 시장 가치나 그 가격의 변동성, 투자 적합성 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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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생 상품 같은 구체적인 금융 상품에 대한 것이고, 한 국가에 대한 평가는 좀 다르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지 않고 좀 더 공신력이 있다든가 말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에도 참고해볼 만한 사례가 있다.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던 안정된 민주 국가 아이슬란드는 2000년부터 각종 탈규제 정책을 도입하면서 빚잔치를 벌이다 국가 부도 상황을 맞았다. 7, 8년 만에 주요 은행들은 파산했고 실업률은 세 배나 치솟았다. 전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경제 위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슬란드 금융사들이 망하기 직전까지도 미국의 신용평가업체들은 이 나라 경제에 최고 점수를 매겨 주었다. 다시 <인사이드 잡>의 한 장면이다.


KPMG 같은 미국 회계법인들은 아이슬란드의 은행과 투자 회사들을 감사한 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으며, 미국의 신용평가 회사들은 아이슬란드 경제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지그리두어 베네딕츠도티어 (아이슬란드 의원): 신용 평가사들은 2007년 4월에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신용 등급을 최상급인 AAA로 격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길피 조에가: 정부가 이 은행가들과 함께 홍보 행사를 벌이며 돌아다닐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다. 신용평가업체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공신력이 있어야 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이사였던 프레데릭 미쉬킨은, 2006년에 아이슬란드 상공회의소로부터 12만4천 달러(약 1억4천만 원)를 받고 이 나라의 경제가 탄탄하다는 논문을 써 주었다.


▷ 당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뛰어난 제도, 낮은 부패율, 법치를 자랑하는 선진국이다. 이 나라 경제는 신중한 규제와 감독이 전반적으로 강력히 가해지는 가운데 금융 자유화를 이루었다."

프레데릭 미쉬킨: 네, 그건 실수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신중한 규제와 감독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음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그 기간에...

▷ 그렇다면 당신이 사실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프레데릭 미쉬킨: 어... 누구나 자신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지요. 일반적으로 아이슬란드의 제도가 훌륭하다는 시각이 보편적이었습니다. 매우 선진화된 나라라서...

▷ 누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까?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프레데릭 미쉬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중앙 은행 같은 데를 신뢰하게 된 거죠. 제대로 일을 안 한 것으로 드러나긴 했지만요. 분명히...


아이슬란드가 경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탈규제의 장밋빛 환상 속에서 돈잔치, 빚잔치를 벌이다 위기를 맞은 데에 이러한 평가들이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업체의 '평가'는 그들이 스스로 말하듯 '의견'일 뿐이며, 투자와 관련되므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겠지만 역시 그들이 스스로 말하듯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무디스는 노무현 정부 때 한국에 대한 평가 점수를 박하게 주어서 노 정부의 애를 태웠다. 그 때 무디스가 낮은 점수를 준 이유는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북핵 위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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