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배 섞일雜 끓일湯 (Others)

나는 한 직장에 재수를 하여 들어갔다. 기자들이 글을 쓰면 김승옥, 박태순, 송영 같은 소설가들이 리라이팅을 하던, 한국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직장이었다. 공채 1기를 뽑았던 첫 시험 때, 나는 면접에서 떨어졌다. 나 대신 다섯 명이 합격하여 기자가 되었다.

공채 2기를 뽑을 때 다시 응시하였고, 두 명을 뽑는 시험에 합격하여 기자가 됐다.

1기로 들어온 선배 5인 중에는 입사 전부터 아는 사람이 있었다. 썩 친하지는 않았지만 안면이 있고 이야기도 나누어 본 적이 있다. 학교도, 동네도 다른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준비생으로서 다른 학교에 가서 살다시피 하며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그렇게 된 일이다.

그래서, 입사를 하고 보니 좀 어색했다. 그는 나의 선배였으므로 나는 그를 오선배라고 불렀다. 그는 나를 아무개씨라고 불렀다. 대화할 때는 서로 낮춤말을 썼다.

내가 그를 선배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던 것은 입사 연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조숙해 보이고 목소리까지 허스키해서, 초년병 시절부터 상당한 연륜을 가진 중견기자 같은 느낌이 났다. 이런 특성은 그가 오래 몸담았던 정치부에서 기자 생활을 하기에 분명한 장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또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있어, 실로 종잡기 어려운 외모라 할 만했다.

어느 해 늦가을인가, 둘이서 밤 산행을 했다. 마감 끝나고 보은으로 달려가서 속리산을 올랐다. 속리산 마을에서 길을 잡아 나갈 때 이미 사위는 캄캄한 한밤중이었고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등산로에 들어서니 매표소가 나온다. 불이 꺼져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밤이니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매표소를 통과하여, 플래시를 비추며 걸음을 계속했다. 30여 미터 갔을까, 뒤에서 갑자기 사람 소리가 났다. 매표소에 불이 켜졌고, 그 앞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그런 작은 임시 건물에 사람이 자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직원은 우리가 지나는 소리에 잠을 깨서 불을 켜고 우리를 불러세운 것이다. 물론 입장료를 물리기 위해서다.

이것은 우리에게 불만스러운 생각을 조금 일으켰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 국립공원 입장료에는 관내 사찰 관람료가 포함되어 있었고,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가는 돈보다 절로 가는 돈이 더 컸다. 우리는 이 밤중에 법주사를 구경할 것도 아니고 그냥 산만 급히 다녀올 생각이다. 그런데도 보지도 않을 절 구경값까지 다 내라는 것이다.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자다 벌떡 일어나 표를 들고 쫓아나온 직원은 막무가내였다. 법주사 주지로부터 표창을 받아 마땅한 직원이었다. 어쩌면 그의 주장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로서는 등산객이 절을 볼지 안 볼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긴 했다. 캄캄한 심야에 절 구경을 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됐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사람의 말을 믿기보다 그냥 하던 대로 구경값을 다 물리는 것이 그에게는 정답일 수도 있었다. 우리쪽에서 봐도 그랬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입장료, 주어버리는 것이 여러 모로 편했을 일이다. 하지만 그땐 그런 게 안 편했다.

잠시 옥신각신하는데, 갑자기 오선배가 사자와 같이 포효하는 것이다. 그 소리가 고요한 속리산 계곡을 쩌렁쩌렁 흔들었다. 들짐승이 있었다면 오금을 못 펴고 제 굴로 도망쳐 들어갔을 것이다. 말하자면 뚜껑이 열렸다. 오선배의 포효에 담긴 내용은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걸음을 돌이켰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밤 속리산 문장대까지 무사히 올라갔다 내려왔다. 어떻게? 매표소를 우회 통과한 것이다. (군대에서는 전진 중 장애물을 만났을 때 이를 통과하는 방법으로 위로 통과, 아래로 통과, 우회 통과, 폭파후 통과 등의 방식을 가르친다.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직관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고 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전에 닥쳐보면 역시 매뉴얼.) 매표소를 위로, 아래로, 더구나 폭파후 통과할 수는 없으니 남은 것은 우회 통과다.

말이 좋아 우회 통과지, 이 일을 하면서 겪은 환난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매표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진 곳까지 돌아간 뒤, 거기서 등산로 아래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위태위태하게 내려가, 그 계곡을 타고 매표소를 '우회 통과'한 뒤, 역시 매표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진 곳까지 나아간 다음에야 등산로로 복귀했다. 이 일이 한밤중에 플래시를 비추며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냥 입장료 주고 편하게 올라가는 편이 훨씬 나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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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뒤, 이 야간 산행 일을 몇 사람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나로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날 오선배가 나를 불렀다. 조용히 얘기 좀 하자는 것이다. 갑자기 왜 이래? 그가 나를 소환한 것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회의실로 갔더니 대뜸 "왜 내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다니냐"는 것이다. 그는 둘만이 한밤중에 은밀히 겪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에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심경에 무심하였던 것이다. 나는 솔직하게 사과하고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 일은 나에게 정신이 번쩍 드는 큰 가르침이었다. 그냥 재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극적인 방식으로 깨달았다. 당신도 옥상이나 주차장 가서 다이다이 해봐라. 극적이지 않을 수 있나. 여하튼 이 일로 인하여 내 입이 몇 킬로그램쯤은 무거워졌다고 자평한다.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라고 믿는데, 오선배가 준 경계도 그런 면모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나온 말이 잘 흘러다니면, 그 사람에게 다시 말하고 싶지 않게 되지 않는가.

이 일이 두 사람에게 감정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우리는 여전히 먹고 마시고 일하고 떠들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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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뒤, 그가 암 투병중임을 우연히 알게 됐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아무도 그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병원을 수소문했더니 그런 환자가 있는데 퇴원을 했다고 한다.

9월 말쯤에 전화가 되었다. 그의 휴대폰 전화였는데 부인이 받았다. 오선배를 바꾸기 전에 잠시 병의 경과에 대해 물어보았다.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 들은 오선배의 목소리는 더 허스키해져 있었는데, 그것이 세월 탓인지 병 탓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찾아간다고 했더니,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지금은 사람을 안 만나고 있거든." 털털한 겉모양과는 달리 자기 이미지 챙기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변했다.

8월 말에 진단을 받은 오선배는 넉 달 만인 새해 1월 3일 저 세상으로 갔다. 광화문 구세군회관 건너편 작은 술집 '다다'에서 노래를 부르면, 목소리에 어울리게 꼭 '쑥대머리'나 '한네의 이별' 같은 걸 부르더니, 노랫말처럼 차가운 저 먼 곳으로 우리를 두고 갔다.

오선배, 환한 표정 사진 마지막으로 보고 찬 바람 맞으며 여의도 샛강변 걸어오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한 마디 했수. 왜 내 이야기 그렇게 하고 다니냐고 화내지 마시고, 뒤에 남은 일일랑 뒷사람들에게 맡겨두고 훌훌 잘 가시우. 너무나 일찍 간 오민수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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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uum 2016/01/06 02:08 # 삭제 답글

    <도리화가>라는 영화 보고난 뒤에 '쑥대머리' 노랫가락이 뱅뱅 뇌리에 맴돌곤 하는데... 너무 청승스러워 떨치고 싶은데 의지로는 안 되더군요. <한네의 이별>은 뭔 청승으로 20대에 그리도 즐겨들었는지...
    그냥 노래 곡명만 들었을 뿐인데 '오선배'님이 가까이 느껴지네요.

    그런데... 또 여기다 그 이야기를 온천지 세상사람들에게 하시고 계시군요... 그래도 이번엔 오선배님께서 따뜻하게 웃어주실 거 같네요.
  • deulpul 2016/01/06 11:25 #

    말씀 듣고 예고편을 본 뒤, 보고싶은 영화 목록에 넣어두었습니다. '한네의 이별'은 저도 좋아하는데, 들을 때마다, 우리 노래 한두 곡쯤 부를 수 있는 창법을 배워두지 않은 것을 후회하곤 합니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 게이러가죽 2016/01/06 02:32 # 삭제 답글

    따뜻한 글이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deulpul 2016/01/06 11:25 #

    고맙습니다.
  • 2016/01/06 14: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06 22: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자그니 2016/01/06 16:35 # 답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deulpul 2016/01/06 22:15 #

    자그니님, 고맙습니다.
  • marquez 2016/01/07 09:29 # 삭제 답글

    삶은 어디로든 찾아가면 먼 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는)것인데 죽음은 내 맘과 달리, 하늘 아래 어디로도 만나러갈 데 없는 완전한 막막함이랄까요. 위로를 전합니다.
  • deulpul 2016/01/17 16:10 #

    그것이 죽음이 일으키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날 희망이 영영 없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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