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연말에 여러 신문사가 뽑은 2015년 '올해의 책'을 정리하면서 색다른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 신영복의 책 <담론>이 일곱 개 신문사 중 세 곳(동아, 조선, 한겨레)에서 뽑힌 것 때문이었다. 책이 좋으면 여러 곳에서 뽑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필자가 일반적으로 보수 진영에서 기피하는 인물이라는 점, 그런데도 이 책을 선정한 신문 셋 중 둘이 보수지라는 점은 분명 특이했다.

사람들에게 울림과 교훈을 주고 영향을 미친 책이라면, 그 의미도 모호한 '진영'에 상관없이 그 해의 대표 서적으로 뽑아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매사에 정치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한국 신문에서는 그렇게 보편적인 잣대를 가질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장기수 사상범 출신 신영복의 책은 보수 신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영과 상관없는 성찰과 사유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담론>을 읽지 않았다. 책을 안 보고도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신영복 같은 이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신영복의 책을 읽고, 나아가 눈으로만 읽지 말고 마음으로 읽고, 더 나아가 지혜에서 나온 그의 제안을 실제 자신의 삶에 도입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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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을 두 번 뵈었다. 90년대 중반에 그의 부친 신학상 옹이 책 <사명당의 생애와 사상>을 내었을 때, 그 책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목동에 있던 선생의 집을 찾아갔다. (신옹은 아들인 신영복 선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날의 주인공은 책의 저자인 신옹이었고, 선생은 옆에서 말을 도와 주었다. 하지만, 노학자에게는 죄송한 일이었으나 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써낸 저자와 만난다는 일에 더욱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졸병 시절에 써낸 짤막한 기사에 등장하는 선생은 다음과 같다.


교육계에 40여 년 몸담아 온 申鶴祥옹(87ㆍ오른쪽)은 8월 말 조선때 승병장 사명당의 업적을 총정리한 4백35쪽 분량의 <사명당의 생애와 사상>을 내고는 곧 자리에 눕고 말았다. 워낙 연로한 데다 책을 펴내느라 혼신의 힘을 쏟은 탓이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신옹은 어릴 때부터 고향 출신 승병장인 사명당의 신화를 들으면서 자랐다. 일제시대에 한글을 연구하는 비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것도 왜군과 싸워 백전백승한 사명당의 후예로서 알게 모르게 키워온 민족적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담 속에서 왜곡ㆍ과장된 사명당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도 컸다. 학승으로서 국가를 구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간 사명당의 본모습을 그리려는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아버지가 지은 책의 제목 글자는 아들 신영복씨(<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ㆍ사진 왼쪽)가 썼다.


두 번째 뵌 것은 선배의 결혼식 때였다. 선생이 주례를 서시기로 하였는데, 목동 집에서 안국동 예식장까지 선생을 모시고 가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시간에 맞춰 찾아가니 이미 준비를 하고 계셨다가 나를 맞았다. 주말이라 차가 꽤 막혔다. 선생과 조심스러운 대화를 나누다, 차가 지체하자 눈을 감고 계시길래 더 방해해 드리지 않았다.

이 일에서 내게 두고두고 생각 켜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 때 나는 흔한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출퇴근하거나 지방 출장을 다니는 데 전혀 문제 없는 튼튼한 빨강색 애마愛馬였다. (새벽에 불광동으로 퇴근하던 김훈도 내 차를 운전병이 모는 찝차 정도로 생각하며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주례 선생님을 모시고 예식장으로 가는 차로는 격이 좀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검정색 큼직한 고급차에 실려 예식장으로 가야 제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례 선생님을 모시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신영복 선생을 모시고 가는 길에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겉껍데기 격식을 따지는 사람으로서는 마지막 인물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나의 차로 모셨다.

하지만 과연 선생이 그렇게 생각을 하셨는지는 확인해 볼 기회가 없었다. 지금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나는 아마 다르게 행동할지 모른다. 주례 선생님을 모시기에 적절하고 남 보기에도 그럴 듯한 고급차를 빌리러 나설지 모른다. 그러면서 그런 속물적이고 싸구려화된 나를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선생의 일이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선생은 차 뒷자리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지만, 내게 일생 계속될 고민거리를 화두처럼 던져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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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다.

그가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런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우리에게 다행이다. 하지만 빵 한 쪽 훔친 죄 없이 청장년기 20년을 옥에 갇혀 살았던 그 개인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볼 때는 결코 다행일 수 없다. 개인의 모임이 사회고 나라이므로, 한 개인이 권위적인 권력에 의해 뜬금없이 불행해지는 사회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다행일 수 없다. 선생은 그 존재로써 한 시대 대한민국 국민이 겪은 모순을 보여준다.

선생은 이 가벼운 세상에 묵직한 성찰과 사색을 남겼다. 말과 글로써만이 아니다. 선생의 삶 자체가 성찰과 사색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그것은 남은 사람들, 그리고 후세의 몫이다. 편안히 잠드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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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꽃다운청춘 2016/01/18 19:40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6/01/20 01:12 #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6/01/20 02: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21 11: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사유 2016/01/20 06:59 # 삭제 답글

    친구가 주소를 보내주어 읽어보았습니다. 깊이 공감되는 글이네요...고맙습니다.
  • deulpul 2016/01/21 11:11 #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는 농담이고 인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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