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 배달의 민족 섞일雜 끓일湯 (Others)

사랑할 수 없으면 더 사랑하게 되고, 가질 수 없으면 더 갖고 싶고, 먹을 수 없으면 더 먹고 싶다. 대단한 것이 아닌데도 그럴 때가 있다.

짜장면은 워낙 좋아하지만(나는 한 달 내내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 중국 음식점의 다른 요리들은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날은 왠지 오후부터 [짜장면+탕수육] 조합이 슬슬 당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귀가하여, 가끔 음식을 배달시키는 식당에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밤 9시가 거의 다된 시간이다. 벌써 문을 닫았나? 집에 있는 식당 광고지를 뒤져 다른 곳에도 전화를 해 봤다. 역시 받지 않거나 안내 녹음만 계속 흘러나왔다.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 영업을 끝낸 모양이다.

아니, 그러자니 이놈의 탕슉이 갑자기 못 견디게 먹고 싶어졌다. 당장 먹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음식, 천하제일 진미 음식이 된 것 같았다. 고소한 튀김옷을 입고 새콤달콤한 소스에 찍힌 고기가 눈 앞에서 아롱이는 것 같았다.

음식에 천착도 일가견도 없는 나는 평소에 특정한 뭔가를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일이 드물다. 그러니 이 탕슉 사태는 분명 특이한 일이다. 먹을 수 없다는 상황이 그 가상의 맛을 몇 배로 튀겨 올린 것 같았다.

네이버 지도에서 집 부근 중국 음식점을 찾았다. 그중 배달이 될 만한 가까운 데에 전화를 했더니, 한 군데는 끝났다고 하고 한 군데는 배달은 안 되고 포장만 된다고 한다. 얼른 다음Daum 지도도 열어서 다시 찾아봤다. 큰 차이 없다.

이 날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지 못하고 울면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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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가 있다. 사무실은 조용하고 경관이 괜찮은 곳에 있는데, 이 곳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식당들이 배달을 잘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변에 아파트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건물 입구에는 식당(주로 중국 식당) 메뉴와 연락처를 적은 광고지가 수시로 나붙는다.

아직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을 무렵, 음식을 한 번 시켜본 적이 있다. 나중에 보니 버스 정거장이 무려 셋이나 지나서 있는 식당에서 왔다. 스스로 돌린 광고지를 보고 시킨 것이니 당연히 배달을 오는 것일 텐데, 이렇게 먼 거리에서 음식을 시켜도 되는 것인지 조금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탕수육 먹기에 실패한 이틀 뒤에도 의외의 식욕은 꺼지지 않았다. 집에 가면 어차피 또 늦을 테니, 사무실에서 시켜보자! 그런데 이 날은 눈이 왔다. 오랜만에 폭설이라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고생이었다. 아침에 타고 나온 버스의 운전사는 계속 경적을 울려댔다. 급정거를 하기 곤란하므로 사람들이 튀어나오거나 차가 끼어들지 않도록 미리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사거리에 신호 대기로 서 있는 동안, 건너편에서 아슬아슬하게 접촉 사고를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미끄러운 거리를 이륜차를 탄 배달원들이 누비는 것이다. 누빈다는 것은 그 숫자가 날씨에 상관없이 줄지 않았다는 뜻이지, 빙판길을 보통 때처럼 휘젓고 다닌다는 뜻은 아니다. 옆에서 보기에 매우 아슬아슬했고, 그들 자신이 느끼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뒤에 짐을 실은 스쿠터들은 속도를 내지 못했고, 어떤 배달 오토바이는 넘어질 뻔해서 주행을 멈추고 도로 갓길로 빠져 멈춰서기도 했다. 움직이는 오토바이도 거의 네 발로(그러니까 배달원들이 두 발을 땅에 대고) 움직였다.

눈길을 두 바퀴로 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게다가 눈이 달라붙어 가리거나 물이 맺히는 헬멧도 고역이다. 온몸을 긴장해야 하므로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달려도 힘이 몇 배로 든다.

그런데도 음식 배달 노동자들은 여전히 눈길에 나와서 음식과 빈 그릇을 나르고 있었다.




나는 이 날도 울면서 탕수육을 건너 뛰었다. 이것이 잘 한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배달원 쪽에서 볼 때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주문이 많아야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날이 궂은 날은 배달 주문이 좀 없기를 바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눈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몇 그릇 음식을 배달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날이 궂으면 사람들은 밖에 나오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배달 주문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식당 주인은 어쨌든 배달원이 평소처럼 배달을 하기를 원할 것이다.

다 사람 사는 곳이고,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드는 것인데, 날 궂은 날은 집밥 좀 해먹는 게 어떨까 싶다. 식당 사장님들도 그런 날은 배달원 좀 챙겨주시면 좋지 않을까. 언젠가 날씨 안 좋은 날 전화 주문을 받은 뒤 "직원이 위험해서 배달 못 갑니다"라고 말했다던 사장님 생각이 난다. 만일 내가 전화했을 때 그런 대답을 듣는다면, 비록 그 날은 짜장면, 짬뽕, 심지어 탕수육을 먹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그 집에서만 주문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종업원을 염려하는 사람이 음식을 허투루 만들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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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새벽안개 2016/02/18 20:17 # 답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예전에 폭설 내린날 짬뽕을 시켰는데 뒤늦게 빨간 국물을 흘리며 불어터진 짬뽕이 왔더라구요. 먹으면서 얼마나 미안하던지...
  • deulpul 2016/02/19 12:54 #

    한창 배고플 때 나온 음식이 기대에 못 미치면 그것도 참 난감하지요. 여러 모로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 suum 2016/02/19 01:55 # 삭제 답글

    저도 눈 많이 오고 비 많이 오는 날... 배달 음식 유난히 땡기는데...ㅋㅋ 이상하죠... 그런데 갈등하다 결국 못 시켜요. ㅎㅎ 저도 울며 자요. ㅋㅋㅋ
  • deulpul 2016/02/19 12:56 #

    이따금씩 나오는 눈물은 각막 보호와 안구 정화에 도움이 된다는 썰이 있습니다...
  • Admiral 2016/02/19 17:02 # 삭제 답글

    에, 전 고향집이 위치한 곳이 시내에서 좀 멀어서 짜장면 시켜먹어본 적이 일생 동안 손에 꼽아볼 정도네요. 부모님 사무실에 어릴 적 종종 놀려갔을 때는 짜장면집이 근방이라 가서 먹는게 더 편했고.

    요식업계 뿐만 아니라 신문업계 각 지역 신문보급소도 비슷하죠. 눈, 비 올 때는 차량 타고 배달 하기도 하지만 대개 오토바이 배달이고 그것도 춥고 어두운 새벽시간대 일 하는 거고 말입죠.

    눈, 비 오는 날에 오토바이는 탈 것이 못 됩니다.
    아무리 배달이 편리하지만, 저런 날은 식당 가서 직접 먹는게.
  • deulpul 2016/02/21 14:35 #

    친구, 지인들 모여 각자 짜장면/짬뽕에 요리 한두 가지 시켜서 신문지 깔고 먹는 게, 낭만까지는 아니더라도 독특한 재미가 있지요. 하지만 말씀대로 궂은 날에는 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즈음에 알게 된 것이지만, 어떤 중국 식당은 배달 음식과 식당 가서 먹는 음식의 값을 다르게 받더군요. 주로 짜장면, 짬뽕 같이 값싸고 자주 먹는 음식들이 대상인 것 같은데, 보통 1천원 차이가 납니다. 음식값의 20~30% 정도 되는 것이니 상당한 비중이죠. 이게... 배달이라는 추가적인 노력/비용이 들어가는 데 대한 할증인지, 아니면 '홀'에 와서 먹을 때 그런 노력/비용을 줄여주는 데 대한 할인인지는 모호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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