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엔틴 타란티노의 새 영화 <헤이트풀 8>을 아슬아슬하게 봤다. 1월에 개봉한 영화인데, 뒤늦게 보려고 했더니 상영하는 데가 딱 한 군데, 메가박스 코엑스다. 그것도 다음주 화요일까지다. 토요일 오전, 글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지하철이 그런 것이지만) 땀 뻘뻘 흘리며 찾아가 보았다.
이 극장 B관은 좌석이 30개인 미니 상영관이다. 울트라 파나비전 70mm 필름으로 찍고(1966년 이래 처음이다) 그런 사실을 강조하는 이 영화를 이렇게 작은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감독과 영화에게 모두 죄송한 일이지만, 관객 처지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곧 나올 DVD를 집에서 어떻게 틀더라도 이 극장 화면보다는 작을 게 틀림없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나를 푹 빠지게 만든다. 그의 작품을 유달리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뒤돌아 보면 그가 만든 영화는 거의 모두 대여섯 번씩은 볼 정도로 애착을 가졌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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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렇게 좋았지만, 나는 '증오의 8인'을 보는 동안 '증오의 3인'을 갖게 됐다. 각 장(章)의 제목은 영화의 그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Chapter 1. Lost Stage to the Artisanship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 이름이 나올 때, 대사를 한글로 번역한 사람 이름도 자막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미도' 같은 실명이 아니라 닉네임이어서 눈길이 갔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인지 모르겠다.
번역 자막은 내용을 잘 이해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된 것 같았다. 다만 주인공 8명 중 한 명인 남군 노장군을 자꾸 '장교'라고 해서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다. 'General(장군)'을 장교로 잘못 옮긴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다른 두 전직 군인도 모두 장교(각각 소령Major과 대위Captain)라는 사실, 그리고 대위가 상급자인 장군을 계속 '장교'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짜증나는 것이었다.
물건을 만들어 남 앞에 내어놓기 전에 흠집이 없는지를 치열하게 따지는 장인 정신 같은 것은 이미 다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실수가 영화 개봉된 지 한 달이 넘도록 그대로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Chapter 2. Son of a Gun, Literally
뒷쪽에 앉아서 영화를 보던 한 중년 남자는 상영시간 내내 잤다. 나의 뒤에 있는데도 그가 잔 것을 안 것은 코를 골았기 때문이다.
영화 보면서 잠잘 수도 있고, 코 고는 사람은 영화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이 셋의 조합, 즉 영화를 보러 와서 잠을 자면서 코를 곤다는 것은 뭐랄까... 진정 초보적으로 한심해서, 뭐라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초소극장이라 코고는 소리가 객석의 절반 정도를 채운 관객 모두에게 방해가 될 만한데, 모두 묵묵히 참아주고 있는 것이 더 희한한 일이었다. 한민족다운 인내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나는, 내 딴에는 오래 참다가 결국 일어서서 그를 깨우러 가려 했다. 그러자니 코골이를 딱 멈춘다. 잠시 뒤 다시 드르렁거리기 시작하고... 일어서려면 다시 멈추고...
Chapter 3. Ninnie's Havenosensory
영미권 출신이거나 그 문화에 오래 푹 젖어 산 사람이라면 제목 'The Hateful Eight'을 보거나 들을 때 어떤 느낌이 팍 올 것이다. 한국인은 '헤이트풀 8'에서 그런 느낌을 가지기 어렵다. 밥풀, 딱풀,
영화 제목을 우리말로 적절히 옮기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외국어 제목을 발음 그대로 어거지로 늘어놓기 시작한 지 꽤 됐다. 외국어 실력이 엄청나게 높아진 국민을 위한 배려인가 싶지만, 그보다는 그냥 귀찮아서, 그런 데 노력을 들이기 싫어서다.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등이 주연한 1960년대 서부영화의 제목은 'The Magnificent Seven'이다. 한국에서는 '황야의 7인'이 됐다. 이걸 '매그니피선트 세븐'으로 옮기면 얼마나 하품나는 꼴불견일 것인가.
타란티노의 새 영화가 그다지 크게 흥행하지 못한 데에는 '헤이트풀 8'이라는 헤이트풀스러운 제목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제목부터 미스터리다. 당겨도 갈똥말똥한데 제목에서부터 밀어낸다.
영화에서 증오의 8인은 (아마도) 다 죽는다. 현실 속 증오의 3인(이 대표하는 세태)은 영화처럼 해결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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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99 2016/02/22 02:15 # 삭제 답글
deulpul 2016/02/25 13: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