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는 사라지고 웃음만 남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2월 19일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났다. 인류에 좋은 유산을 남기고 갔다.

그는 여러 소설을 썼지만, 그 자신은 소설을 부업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전에 펴낸 마지막 소설은 <누메로 제로(Numero Zero)>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소설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올해 말께 밀라노에서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영문판으로 208쪽이니, 전작들에 비해 그 분량이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의 엄청난 부피에 질렸던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에코를 한 장 한 장 아껴 읽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다. 작품에 대한 평도 썩 좋지는 않았다. 예컨대 <가디언>.

그러나 작가가 누군가! <뉴욕 타임스>의 서평 기사는 이렇게 썼다:


<누메로 제로>는 에코가 쓴 첫 소설이자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 이후 나온 여섯 번째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엉성한 요소나 주제에서 벗어나는 장면도 몇몇 있다. 그러나 작자의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에 저항하기는 어렵다. 나는 회색 수염이 덥수룩한 83세 교수가 책으로 가득 둘러쌓인 성소에 처박혀 자판을 치면서 낄낄거리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밀라노에 있는 에코의 아파트에는 3만 권의 장서가 있다. 우르비노 외곽에 있는 그의 시골집에는 2만 권이 더 있다.)


이 부분을 읽노라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가 떠오른다.


고양이는 "알았어" 하고 말하더니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꼬리부터 없어지고 맨 마지막에 웃음이 사라졌다. 웃음은 고양이의 몸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에코의 몸은 사라졌지만, 그의 웃음은 우리 곁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게 틀림없다.

<누메로 제로>는 사기, 협박, 음모론, 대중매체, 뉴스, 그리고 독자 대중의 맹목적인 믿음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력한 이들을 협박하기 위해 신문을 만들고, 그런 신문이 허구와 맞물리며 대중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토리는, 그 비슷한 일을 흔히 벌이는 사이비 언론이 존재하는 어떤 나라 사람들에게는 마냥 소설적 허구로만 읽히지는 않을 듯싶다.


(이미지: CC-BY)


한국어 번역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에코, 음모론, 대중, 신문... 저자와 내용으로 보자면 돈을 받지 않고라도 번역할 만한데, 틀림없이 어떤 출판사가 어떤 '에이전시'를 끼고 독점 계약하여 번역해 낼 게니, 그저 제대로 옮겨 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동안 에코의 책을 많이 펴냈던 출판사(열린책들)가 올해 6월에 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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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마존에 공개된 영문판 <누메로 제로>의 첫 장이다. ('누메로 제로'는 넘버 0이라는 뜻이다. 영문판은 이탈리아 제목을 그대로 썼다.)


제1장
1992년 6월 6일, 토요일, 오전 8시


아침부터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꾸륵 꾸륵, 아기가 트림을 하는 소리를 두 번 내고는 끝이다.

나는 옆집 문을 두드렸다. 그 집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밸브를 잠가두셨나 보네요, 하고 옆집 여자가 말했다. 내가? 나는 밸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여기 산 지 얼마 안 됐고, 한밤중이나 되어야 집에 들어온다. 맙소사, 그런 걸 모르다니요!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우면 수도랑 가스 밸브를 잠가두곤 하잖아요? 나는 안 그런다. 그건 좀 부주의한 걸요. 저랑 같이 가보시죠, 어디에 밸브가 있는지 알려드릴 테니.

옆집 여자는 싱크대 아래 여닫이 문을 열고는 그 안에 든 것들을 한쪽으로 치웠다. 이윽고 수돗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거봐요, 아저씨가 잠가두신 거네요. 죄송하군요, 그 생각을 못 했어요. 아휴, 독신남들(singles)이란! 옆집 여자는 나갔다. 싱글즈라고? 이젠 영어까지 하는군.

침착하자. 도깨비 같은 것은 영화에나 나오지, 실제론 없으니까. 난 몽유병 환자도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있는지조차 몰랐던 밸브를 찾아 잠가둘 리는 없다. 혹은 샤워꼭지가 새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발데모사(스페인의 섬 지방)에 갔던 쇼팽이 그랬듯 그 소리를 듣느라 밤을 새곤 했으니, 어제는 잠을 좀 푹 자려고 밸브를 찾아 잠근 뒤 잠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 지겨운 낙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종종 잠에서 깨서 침대를 빠져나와 화장실 문을 닫곤 했으니까.

어떤 전기 작용도 아니고(밸브는 손으로 돌려야만 돌아가는 것이었으니까), 쥐의 소행도 아니다. 쥐가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뻑뻑한 밸브를 돌릴 정도의 힘은 없었을 것이다. 수도꼭지는 구식 형태고(이 아파트의 모든 시설은 최소한 50년은 된 것이다) 주변은 녹투성이다. 그러니까 누가 손을 댄 것이다. 사람 손. 또 내 아파트에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에드거 앨런 포가 쓴 추리소설)에 나오는 오랑우탄이 타고 올라올 정도의 굴뚝도 없다.

생각을 해 보자.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일단 기적의 가능성은 제쳐 둔다. 신이 나의 샤워꼭지에 특별한 은총을 베풀 이유는 없으니까. 그게 홍해(紅海)도 아니고 말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원인에 따른 현실적인 결과일 것이다. 어젯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수면제 한 알을 물과 함께 먹었다. 그때 수돗물은 분명히 나오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아니다. 친애하는 왓슨, 밸브는 밤 사이에 잠긴 게 틀림없네. 물론 자네가 그런 건 아니지. 누군가가 내 아파트에 있었고, 그는, 혹은 그들은 내가 깰까봐 조심했던 것이다. 그들 자신이 만드는 소리 때문이 아니라(그들은 쥐죽은 듯 조용하게 움직였을 테니까), 물이 떨어지는 소리 때문이었던 게다. 그 소리는 그들에게도 거슬리는 것이었을 테고, 그 소리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뒤척이지 않는지 궁금하게 생각했을 게다. 그들은 눈치 빠르게 옆집 여자가 했던 것과 같은 조처를 취했겠지. 즉 밸브를 잠근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내 책은 전과 다름없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이 책들을 한 장 한 장 조사하고 나서 이렇게 표시 안 나게 해 두려면 이 세상 비밀 경찰의 절반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서랍이나 복도 찬장을 열어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일 그들이 뭔가를 찾아내려고 했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 손댈 것은 딱 하나 뿐이다. 컴퓨터를 이잡듯 뒤지는 것이다. 그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내 컴퓨터의 모든 파일을 다 복사해 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복사한 문서들을 이것저것 열어보면서, 그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찾아내려 했을까? 뻔하다.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신문과 관련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우리가 편집국에서 진행하는 모든 일과 관련한 메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따라서 내가 브라가도시오(Braggadocio)의 작업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면 그걸 어딘가에 기록해 두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브라가도시오는 화자와 함께 가짜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료다. 그의 이름 Braggadocio는 원래 허풍이라는 뜻.) 그 뒤에는 내가 모든 것을 종이쪽이 아니라 디스켓에 저장해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겠지. 어젯밤에 그들은 물론 내 사무실도 뒤졌을 테고, 거기서도 어떤 디스켓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 디스켓을 호주머니에 보관하고 있으리라는 결론을 이제서야 뒤늦게 내렸을 것이다.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다니, 그 자의 외투를 뒤져봤어야 하는데, 하고 그들은 탄식하고 있겠지. 그래서 멍청하다? 웃기는 얘기다. 만일 그들이 똑똑했더라면 처음부터 이런 쓰레기 같은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또다른 행동을 취하리라. 적어도 도둑맞은 편지를 발견하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들은 거리에서 나에게 무심코 부딪치는 척 하면서 소매치기를 하겠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 디스켓을 우체국의 임시 보관 서비스로 부치고, 언제 찾아올지는 나중에 결정하면 된다. 아니, 대체 내가 지금 뭘 생각하는 것인가. 벌써 한 사람이 죽었고 시메이(Simei)는 이미 떠났지 않은가. 그들은 내가 무엇을 아는지, 아니 뭔가를 알기나 하는지조차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만일을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도 나를 쉽사리 제거할 것이고, 그럼 모든 게 끝이다. 언론에 나가서 내가 그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내가 그 일에 대해 알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되었나? 그건 모두 디 사미스(Di Samis) 교수의 잘못이며, 내가 독일어를 안다는 사실 탓이기도 하다.





수십 년이나 지난 디 사미스와의 일을 떠올리는 건 무슨 까닭인가? 나는 내가 대학 공부를 끝내지 못한 게 디 사미스 탓이라고 늘 불평해 왔으며, 졸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지금의 일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 안나(Anna)도 결혼한 지 2년 만에 나를 떠났다. 그녀 말로 하자면 내가 인생 패배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체 무슨 말을 했어야 하는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 게다.

내가 졸업을 하지 않은 것은 독일어를 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의 할머니는 (오스트리아의) 티롤 주 남부 출신이었는데, 어린 나에게 독일어를 가르쳤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나는 독일어책을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했다. 당시는 독일어를 안다는 것 자체가 직업이 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읽고 번역하는 일은 괜찮은 부업이었으며(지금과 달리 그때는 책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독일어 번역은 프랑스어나 영어 번역보다 수입이 좋았다. 오늘날은 중국어나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들이 그런 대접을 받겠지. 어쨌든 번역을 하거나 졸업을 하거나이다. 두 가지 모두 다 할 수는 없다. 번역이란 추우나 더우나 집에 처박혀서 슬리퍼를 신고 일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일을 배우게 된다. 왜 구태여 강의실에 나가겠는가?

나는 독일어를 전공하기로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이미 다 아니까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당시의 권위자는 디 사미스 교수였다. 그는 다 허물어져 가는 웅장한 바로크 건물에 학생들이 '독수리 둥지'라고 부르는 공간을 차려놓고 있었다. 거대한 계단을 올라 이 건물의 넓은 아트리움에 이르면, 그 한 쪽은 디 사미스 교수의 연구실이었고, 다른 쪽은 그가 '아울라 마그나'(aula magna, 대강당)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50명 남짓 들어가는 강의실이었다.

디 사미스의 연구실에 들어가려면 펠트 천으로 만든 슬리퍼를 신어야 했다. 입구에는 조교들과 학생 두세 명이 신을 수 있는 만큼의 슬리퍼만 있을 뿐이었다. 슬리퍼가 없으면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모든 것은 번쩍번쩍하게 윤이 나도록 닦였는데, 벽장에 꽂힌 책마저도 그렇게 보였으며, 자기 수업을 하나 얻기 위해 까마득한 옛날부터 기다려온 고참 조교들의 얼굴도 그렇게 보일 정도였다.

강의실의 높은 천장은 아치형이었고 창문은 녹색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한 고딕 양식이었다. (왜 바로크 건물에 고딕 창문이 달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확한 시간이 되면(이라는 것은 정시에서 14분 지난 시각을 말하는데) 디 사미스 교수가 나타났다. 그 뒤로는 조교들이 따랐다. 가장 나이 든 조교는 교수의 1미터 뒤에서 걸었고, 그보다 젊은 50세 이하 조교들은 2미터 뒤로 처졌다. 선임 조교는 교수의 책을 들고, 젊은 조교들은 녹음기를 들었다. 당시의 녹음기는 엄청나게 컸으며, 마치 롤스-로이스 자동차처럼 보였다.

디 사미스는 홀에서 강의실로 향하는 10미터 거리를 마치 20미터를 가는 듯이 걸었다. 직선이 아니라 커브를 그리며 걸었기 때문이다. (포물선 형태인지 타원 형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럴 때 그는 "우리가 가노라, 우리가 가노라!" 하며 선언하듯 외치곤 했다. 강의실에 들어와서는 조각으로 장식한 연단 뒤에 앉아서, '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다'(소설 <모비 딕>의 첫 부분)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조교가 녹음기를 설치하는 동안 교수는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띠우고 있었는데,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내려오는 녹색 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마치 시체 같았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된다. "무모한 나의 동료 보카르도 교수가 최근에 내놓은 주장과는 달리..." 수업은 이렇게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 녹색 빛 때문에 나는 축축한 졸음에 빠지곤 했는데, 그의 조교들 눈에서도 비슷한 졸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 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갈 때, 디 사미스 교수는 녹음기의 테이프를 되감게 하고는 강단에서 내려와, 민주적인 교육자인 것처럼 조교들과 함께 맨 앞줄에 앉는다. 이제 그들 모두는 방금 끝난 두 시간짜리 강의를 테이프로 다시 듣는 것이다. 교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만족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 강의가 성서의 독일어판 번역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루하다는 뜻.) 내 친구들은 이 모양을 보고 어이없다는 투로 '그 참 장관이로군' 하고 말하곤 했다.

2학년 말이 되자 나는 수업에 이따금씩 나가며, 하이네(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아이러니를 주제로 하여 졸업논문을 써 볼 구상을 갖게 되었다. (하이네가 사랑의 슬픔을 적절한 냉소주의로 극복해 나간 방식은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다. 이 즈음 나 역시 사랑을 할 준비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러나 디 사미스 교수는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게 틀림없었다. "제군들, 제군들, 자네들은 현대 작가에 성급하게 몰두하고 있군그래."

디 사미스 교수 밑에서 논문을 쓰기가 어려울 것임은 뻔했다.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페리오(Ferio) 교수였다. 그는 좀더 젊었고 낭만주의 시대를 전공했으며 지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선배 중 한 명은, 어쨌든 디 사미스 교수를 제2의 지도교수로 넣어야 하며, 페리오 교수에게 직접 접근해서도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랬다가는 디 사미스 교수가 그런 사실을 즉각 알아차릴 것이고 영원히 그의 미움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페리오 교수 쪽에서 먼저 논문을 쓰자고 나에게 요청하는 듯한 모양을 취해야 했다. 그래야 디 사미스의 미움이 페리오 교수에게로 향하고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었다. 디 사미스는 페리오를 싫어했다. 그 자신이 페리오를 교수로 임명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상적인 세상과 정반대로 진행된다. 대학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한다.

나는 페리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당시 디 사미스는 자신의 '아울라 마그나'에서 매달 학술 모임을 열었다. 그는 유명한 학자들을 쉽게 초청할 수 있었으므로, 그 발표을 듣기 위해 많은 연구자가 모이곤 했다. 이 자리를 활용해 페리오에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회는 관례에 따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초청 연사의 발표가 끝나면 토론 순서가 이어지는데, 교수들만이 토론에 참가할 수 있다. 토론이 끝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다. 연사는 근처 식당에서 식사 대접을 받는데, 그가 이 식당까지 가는 길을 모든 사람이 동행하는 것이다. 라 타르타루가(La Tartaruga)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19세기 중엽풍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곳이다. 웨이터들은 연미복을 입고 음식을 나른다. '독수리 둥지'에서 식당으로 가려면 지붕이 설치된 넓은 회랑을 지나고 오래 된 광장을 가로지른 뒤, 근사하게 생긴 건물을 돌아서 또다른 작은 광장을 건너야 한다. 식당으로 향하는 연사가 회랑을 걸을 때 고참 교수들이 그를 둘러싸고 함께 걷고, 부교수들은 1미터 거리를 두고 따르며, 더 젊은 교수나 조교들은 2미터 뒤에서 따른다. 함께 따라나선 용감한 학생들은 이들의 뒷쪽으로 다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는다. 오래 된 광장에 이르면 먼저 학생들이 떨어져 나간다. 근사한 빌딩의 모퉁이에서는 조교들이 걸음을 멈추고, 부교수들은 작은 광장을 지난 뒤 식당 입구에서 작별을 고한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초청된 연사와 고참 교수들 뿐이다.

이런 식이라서 이 행사에 참석하더라도 페리오 교수가 나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학교에 대한 애정도 식었으므로 나는 수업에 들어가기를 그만두었다. 대신 로봇처럼 번역에 매달렸다. 번역 일을 하자면 의뢰해 오는 요청을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독일의 관세 협약체인 '관세동맹'의 창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세 권짜리 책을 청신체(淸身體, Dolce Stil Novo)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왜 독일어 번역을 그만두었는지는 이해가 가실 것이다. (지겨워졌다는 의미.) 하지만 대학으로 돌아가기는 이미 늦었다.

문제는 학업을 중단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부를 멈추면서도, 언젠가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논문을 완성하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이미 패배자이다. 안 될 것 같으면 깔끔하게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을 그만둔 뒤 나는 엥가딘에서 독일 아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했다. 너무나 멍청해서 학교를 갈 수 없는 아이였다. 그 지역은 날씨가 좋았고 세상과 적당히 격리되었으며 수입도 괜찮았으므로, 나는 1년 동안 이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엄마가 복도에서 나에게 안겨오는 것이었다. 언제든 내가 그녀를 가질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녀는 뻐드렁니를 가졌고 코 밑에는 수염이 거뭇거뭇했다.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사흘 뒤 나는 해고되었다. 이유는 아이의 학업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뒤 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되어 생계를 유지했다. 잡지에 글을 쓰고 싶었으나, 지역 신문 몇몇에서만 내 글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지역에서 열리는 공연이나 여행사 따위에 관한 기사를 쓰고 쥐꼬리만한 급료를 받았다. 무용수들이 무대의상으로 갈아입는 곳에 끼어들어가 공연을 보고, 쇼가 끝나면 그들을 따라 유제품을 파는 카페로 갔다. 무용수들은 나에게 큼직한 카페 라떼를 시켜주었으며, 돈이 여유가 될 때는 계란 후라이도 함께 시켜 주었다. 내가 총각 딱지를 뗀 것도 이때다. 상대는 가수였는데, 살루조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 우호적인 리뷰 기사를 써 주는 대가로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나는 여러 도시에서 살았다. (밀라노로 이사해 온 것은 시메이로부터 연락을 받고 난 뒤이다.) 그러는 동안 출판사 서너 곳에서 감수 일을 했고(큰 출판사는 아니었고 대학 출판부 정도였다), 백과사전의 항목을 편집했다(날짜나 제목 따위를 점검하는 일이다). 독학하는 사람이 그렇듯, 패배자는 언제나 승리자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승리자가 되고 싶다면 오로지 한 가지 일만 파고 그 외의 것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박학다식의 즐거움은 패배자로 가는 지름길이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이 알수록, 사정은 더욱 나빠지게 마련이다.

나는 출판사가 내게 던져준 원고를 읽으며 몇 해를 보냈다. 출판사 직원 중에서 막 도착한 무명 작가의 초고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거물급 출판사도 있었다. 원고 한 권을 리뷰하면 5천 리라(1992년 당시 원/리라 환율로 따져 약 3,300원) 정도를 받았다. 침대에 늘어져서 하루종일 원고를 맹렬히 읽고, 백지 두 장에 리뷰 의견을 적었다. 자기확신에 찬 필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내가 가진 최고의 비꼼을 날리는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성가신 일이 끝난 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자기 운명을 모르는 불쌍한 필자에게 '부정적인 소식을 전해드려 매우 유감입니다만...' 운운하는 편지를 즉시 발송한다. 책으로 출판되지 않을 초고를 읽는 일도 직업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 즈음에 안나와 함께 벌인 연애 사업도 있었다. 이 일은 끝나야 할 즈음에 끝이 났다. 안나와의 관계가 끝나고 나서 나는 여자에게 어떤 흥미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혹은 그런 흥미를 느끼기를 극구 부인했다.) 또다시 파행을 겪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치료적 목적으로만 섹스를 모색했다. 이따금씩 가볍게 만나는 관계, 사랑에 빠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관계,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인사하며 헤어지는 관계, 그리고 종종 대가도 지불하는 관계. 이래야 욕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패배자가 꿈꾸는 꿈을 꾸었다. 언젠가 나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줄 책을 한 권 쓰리라.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나는 대필 작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표현하느라고 대필 작가(ghostwriter)라고 부르지만, 지난 세기에는 네그레라고 불리었다. (검은 작가라는 뜻의 프랑스어 Nègre littéraire를 의미하는데, 흑인이라는 뜻으로도 쓰일 수 있으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필 작가라는 말이 되었다는 뜻.) 내가 대필을 한 이는 추리소설 작가였는데,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자기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꾼 작자였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배우들이 미국식 이름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중의 장막(필명을 쓰는 작가의 대필 작가라는 의미에서)이 드리운 그림자 뒤에 숨어 일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추리소설을 쓰는 일은 쉬웠다. 그저 챈들러(미국의 추리소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 스타일을 흉내내기만 하면 되었고, 최악이라 하더라도 미키 스필레인(미국의 범죄소설 작가) 정도면 됐다. 그러나 내 자신의 책을 쓰기 시작하자, 내가 사람이나 사물을 묘사할 때 늘 어떤 문화적 암시를 담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오후에 걸어다닌다'는 식으로 쓸 수는 없었다. 대신 그가 '카날레토(이탈리아의 화가)의 그림 같은 하늘 아래'를 걷는다고 쓰게 되는 것이다. 이건 단눈치오(이탈리아 작가 가브리엘 단눈치오)가 잘 쓰던 방식이다. 그는 예컨대 콘스탄자 랜드브룩이라는 여자가 어떤 특징을 가졌음을 묘사하기 위해 '그녀는 토머스 로렌스(영국의 초상화가)가 그린 그림처럼 보였다'라고 쓴다. 엘레나 무티라는 여자 인물에 대해서는 '그녀의 차림새가 모로(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초기 작품 특징을 상기시킨다'라고 하고, 안드레아 스페렐리라는 등장 인물은 '보르게세 미술관(이탈리아 로마의 미술관)에 있는 이름 없는 남자의 초상화를 떠올리게 한다'라고 하는 식이다. 소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가판대에 깔린 미술사 잡지들을 겉핥기식으로라도 훑어봐야 할 지경이다.

단눈치오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면, 나 역시 (그의 스타일을 흉내내면서) 엉망인 작가가 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사람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는 습관을 제거하기 위해, 나는 글을 절대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간단히 말해 내 인생은 별 볼 일 없었다. 그리고 이제 이 나이에 들어서, 시메이의 초청을 받은 것이다. 안 될 게 뭐 있나. 이 역시 해볼 만한 것이리라.

뭘 해야 하지? 내가 밖에 나가 쑤시고 다닌다면 분명히 위험이 따를 것이다.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더 낫다. 부엌에는 크래커 박스와 고기 통조림이 몇 개씩 있다. 어젯밤 먹던 위스키도 절반 정도 남아 있다. 하루이틀 조용히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술을 몇 방울 마시고 나서 (오전에 많이 마시면 마음이 마비되므로 오후에 조금 더 마시기로 하고) 내 디스켓은 물론이고 이 모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돌이켜 볼 것이다. 모든 일을 명료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정신을 집중시킨다.

(제1장 끝.)


본문에도 번역에 대한 언급이 좀 나오지만, 번역을 하노라면 원저자의 의도랄까 마음 속을 헤집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에코를 밀착해 따라가는 일은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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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arquez 2016/02/27 09:07 # 삭제 답글

    ㅎㅎ 이거 아주 재밌는데요.. 저자의 의도를 사려깊게 헤집으신 들풀님 노고 덕분에 흥미가 더 합니다.저자가 저자다 보니 흐름도 아주 빠르고 웬만한 사람은 헤아리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서를 좀 읽어보자고 미국서 올때 소설 30여권을 짊어지고 왔는데 책장 한켠에 주욱 꽂아놓고는 내 주제로는 감히 먹을 수 없는 음식 쳐다보 듯 하고 있습니다. 읽기시작하면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재미도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애써 외면하고 도서관서 다른 책을 빌려와 읽고 마니, 어쩌면 이것도 이미 패배한 자의 한 징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서를 읽는 것과 우리 말로 옮기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고 어휘를 선택하고 문장을 구성하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애쓰신 덕분에 아주 잘 읽었습니다. 캐릭터 묘사에 문화적 암시를 담는 못말리는 습관에 대한 얘기도 재미있고요.

    그런데,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럴싸해 보여도 결국 패배자의 징후인 것들에 대해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이것은 에코의 의견이기도 할까요? 궁금해집니다.
  • deulpul 2016/02/28 21:58 #

    에코가 소설에서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패배자의 특성은 코믹하면서도 어딘가를 아프게 찌르는 뭔가가 있군요... 말씀처럼 이것은 에코의 목소리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목소리라서 약간의 혼란을 갖게 되는데, 에코가 인물에 자신의 생각을 완전하게 투영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에코의 생각이라면, 세계적인 스케일로 성공한 승리자로서 평범한 사람들을 너무 잔인하고 가혹하게 몰아부치고 있는 셈이 되겠지요. 그런 에코는 디 사미스의 현현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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