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기고자의 담벼락 섞일雜 끓일湯 (Others)

한 신문의 지면에 실린 기명 칼럼을 읽다가 실소한다. 글의 4분의 1 가량을 다른 작품 직접 인용으로 채웠다. 그러는 데에 어떤 뜻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뜻을 표현하는 방식으로는 지나치게 무성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한 명언들로 채운 것 같은 나머지 부분을 합치더라도 칼럼은 감동도, 교훈도, 신선한 시각도, 논쟁거리도 주지 않는다. 값진 공간인데 그냥 낭비되고 말았다.

쓸 게 없으면 안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정 칼럼이나 정기 기고의 형식으로 어떤 필자의 의견을 주기적으로 싣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약간의 회의를 하게 된다. 쓸 게 없어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칼럼 기고를 하다 보면,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또다른 방식으로 체감하게 된다. 원고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순번이 되고 통지가 온다. 고민이 시작된다. 이번엔 뭘 소재로 하여 어떻게 써야 하나.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담당 기자와 마감 시간을 놓고 씨름을 하는 처지에 이른다.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1년 동안 죽어라 야구를 한 사람 중 최고로 뽑힌 MVP 타자도 타율로는 3할대다. 한국 매체들은 오피니언란의 거의 전부를 특정 직업군 종사자들에게 정기 기고를 맡기는 형태로 운영한다. 이들은 전문지식도 있고 생각도 많고 필력도 뛰어난 이들이겠지만,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홈런을 쳐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기 기고이니 쓸 게 없거나 준비를 못해도 써야 한다. 그러다보니 대학원생에게 칼럼 집필을 맡기는 교수까지 있다.

글을 정기적으로 받아도 되는 사람이 있긴 하다. 지면이 없어서 못 쓰는 사람들, 공간만 열어주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정육 같은 글을 줄기차게 써내는 사람들이 있다. 폴 크루그먼 같은 이가 그런 인간형일 것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런 공력을 갖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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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보라고 글을 써내는 것은 즐거움이자 고역이다. 이 고락(苦樂)은 글쓰는 과정에 수반되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서, 필자의 내부에서 늘 길항 작용을 한다. 그러다 고역이 즐거움을 완전히 압도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러면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글이 꽉 막히는 상황, 이른바 작가의 담벼락(writer's block)이다.

그게 얼마나 보편적이고 또 괴로운지는 몇몇 영화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호러 스릴러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이 음산한 산골 호텔로 자청해 들어가는 것은 막힌 글을 풀어내기 위해서다. 그가 하룻밤 내내 타이핑한 내용이 클로즈업되었을 때의 섬뜩함이란! 또 <소설보다 낯선>에서 엠마 톰슨의 좌절은 얼마나 보기 안쓰러웠던가.


글을 쓰다 미쳐버려라!

글을 쓰다 울어버려라!


안 써지면 괴로워하게 된다. 작가는 안 써지면 안 쓰면 되는데, 고정 칼럼 필자는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니 결국 이중의 자해를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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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란 개인의 의견을 쓴 글이다. 좋은 칼럼이 갖추어야 할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을 몇 꼽으라면, 나는 1) 주장의 분명한 근거를 갖출 것, 2) 흔한 시각과 다른 안목를 보여줄 것, 3) 논쟁을 촉발함으로써 사회적 토론에 기여할 것 등을 들겠다. 아쉽게도 명사들이 쓰는 많은 글이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1) 우선 자기 주장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없거나 약하다. 사실의 한쪽 면만을 채택하거나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이것을 근거로 삼는다. 정파적 입장이 강할수록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글의 설득력을 근본적으로 떨어뜨린다. 물론 필자와 비슷한 정체성과 접근방식을 가진 '같은 편'은 좋아한다.

2) 색다르고 의미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것, 이것은 대중매체 칼럼이 수행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을 굳이 다시 활자화할 필요는 없다. 독자들이 보지 못하거나 간과하는 시각을 짚어내는 감수성은 칼럼의 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튀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오로지 남과 다르기 위해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일도 없다. 분명한 근거와 안목으로 뒷받침되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대개 이런 시각은 전문성과 사유에서 태동되게 된다.

3) 논쟁 촉발성은 좀 위험할 수도 있지만, 민주 사회에서 사상이 자유로이 등장하고 교류되는 시장을 유지하려면 꼭 필요한 요소다.

이런 요소들을 갖춘 칼럼의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이 독설형 글이다. 정제되지 못한 정치 관련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글들은 객관적인 근거로부터 색다르고 의미 있는 시각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편파적 근거로부터 흔하고 의미 없는 시각을 재탕한다. 그래도 장사가 되는 것은, 같은 편끼리는 열광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당파성이 글의 자산이자 흥행 요소다. 따라서 독설이 강할수록 더 흥행이 된다.

실제로는 원래 증오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더 깊은 증오만을 생산할 뿐, 독자 개인에게도 또 공동체에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는다. 기여는커녕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자기편만 증오로 똘똘 뭉치게 하는 글은 진영의 폭을 넓히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이를테면 민주 사회에서 정권 교체의 유일한 수단인 선거 승리를 더욱 어렵게 한다.

이런 글들이 언론의 지면이나 웹사이트에 걸린 것을 볼 때면 입맛이 쓰다. 필자나 매체나 참 딱하다.

이런 글보다는 남의 작품을 4분의 1이든 3분의 1이든 베껴 내는 쪽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약간의 교양은 준다. 에너지 과잉으로 설익은 증오를 쏟아내는 것보다 에너지 고갈로 담벼락에 붙어서서 고민하는 편이 독자에게는 덜 해롭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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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uum 2016/03/16 02:43 # 삭제 답글

    공감 백만배 가는 글입니다. 끼리끼리 매체의 독설형 글에 대한 말씀은 정말 사이다!! 네요. 그러면서도 씁쓸 답답합니다.
    차라리 '에너지 고갈로 담벼락에 붙어서서 고민하는 편이...' 낫다는 말씀... 이토록 적절한 표현을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전해줄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16/03/30 15:10 #

    그런 분에게는 삼겹살에 소주 한 병 소줏잔 두 개가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 2016/03/17 09: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30 15: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3/30 19: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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