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안 보이는 거리 뷰 섞일雜 끓일湯 (Others)

어떤 차를 타고 의정부로 들어서니 내비게이션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수락산과 도봉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의정부에 진입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이런 말을 하다니, 여간 기특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실 진술에 충실하여야 할 내비게이션에서 주관이 개입된 언급이 나왔다는 것도 특이했지만, 그 주관이 나의 주관과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의정부는 남쪽으로 수도권의 명산 수락산과 도봉산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런 면모가 특히 극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의정부에서 서울을 드나드는 평화로-도봉로 길(과거 3번 국도) 서울 진입 직전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도봉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눈을 돌리면 반대쪽에는 멀지 않은 곳에서 수락산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화려한 도봉산과 수더분한 수락산의 형상은 마치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는 듯하다.

교통 수단, 특히 전철로 이 지역을 지나게 되면 도봉산은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뒤에는 거대 암벽으로 이루어진 주봉이, 앞에는 그보다 조금 낮은 미륵봉이 도열하는데, 내가(차량이) 움직이기 때문에 멀리 있는 주봉은 그대로이고 가까이 있는 미륵봉은 뒤로 서서히 밀려간다. 이 시각적 교차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그래서 나는 전철을 타면 웬만하면 이 구간은 앉지 않고 창문에 코를 딱 붙이고 간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비경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중요한 지점의 산록에 널찍한 미군부대가 들어서 있어서, 산악 경치 감상에 상당히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위의 사진들에 나온 캠프 잭슨이 그것이다. 이 기지는 미군 교육대로서, 미군과 카투사들의 단기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뭘 배운다면 저절로 공부가 되고 훈련이 될 것 같다. 부대 치고는 정말 명당에 자리잡았다.

이 기지가 산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 때문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한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이 지점의 앞뒤로 버스 정류장을 서너 개 지나면 온통 아파트가 가득이다. 캠프 잭슨도 곧 이전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렇게 해서 생기는 빈 공간이 건설업자와 부동산업자들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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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있을 때, 한국이 그리우면 네이버나 다음의 거리 사진(거리 뷰, 로드 뷰)을 들여다 봤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 촬영 장소를 화면에 찍힌 간판의 상호나 전화번호를 실마리로 해서 하나하나 찾아보던 일은 참 즐거웠다. 내가 살던 곳, 이를테면 위의 비경 포인트도 지도에서 자주 찾아보던 장소 중 하나다.

그런데 한국 지도로는 이 장소에서 주변 풍경을 볼 수 없다. 거리 사진을 열어보면 모두 뿌옇게 물칠을 해놓았다. 미군부대를 가리기 위해서다. 덕분에 이 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지도에서는 있어도 없는 존이부재(存而不在)의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아래는 각각 네이버와 다음 지도의 모습이다.)





그러니 구글을 볼 수밖에 없었다. 구글맵은 한국 지형에 친절하지 않아서, 바로 저 포인트를 지나가는 평화로는 스트릿 뷰가 없다. 대신 옆을 교차해 지나는 외곽순환도로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구글 사진은 좀스럽게 물칠 따위 하지 않는다. 사진이나 지도의 본령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같은 지점에서 네이버나 다음이 어떻게 표시하고 있는지도 흥미롭다.


세심한 네이버

대범한 다음



네이버는 물칠을 했고, 다음은 물칠을 하지 않았다. 다음이 저 지점에서 보이는 그대로 지도에 실은 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 실수나 귀찮음으로 인한 누락일 것이다.

이러한 일은 미군부대든 한국 부대든 그 비슷한 것만 있는 장소면 어디서나 벌어진다. 이런 곳에서 한국 지도는 열심히 물칠을 해서 거리 모습을 가리고, 구글은 신경 안 쓰고 그대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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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지산을 아십니까? 모르세요? 아니,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산이며, 남산보다도 그 자락이 넓고, 여의도 크기만한 산록 녹지대를 지닌 이 거대한 산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아래는 다음 위성 지도의 일부이다.)




조금만 더 넓혀서 보기로 할까요? (각각 네이버와 다음의 위성 지도이다.)






엄청난 규모다. 이런 녹지가 서울에 있었던가?

모르시는 게 당연하다. 이 산은 없는 산이기 때문이다. 둔지산이라는 이름은 남아 있지만, 실제로 산록이나 능선 같은 산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고 숲도 없다. 네이버와 다음 지도의 위성 사진을 보면 이곳은 거대한 녹지대인 것처럼 가장되어 있다. 완전히 페이크다.

이곳은 서울 용산구 일대의 미군부대와 국방부 등 군사 관련 관청 자리이다. 당연히 온갖 건물과 시설이 밀집해 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위성 사진에 위장막을 덮어씌운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들어 있는지 궁금하면 구글 위성 사진을 보면 된다. 그럼 이곳에 고층건물은 물론이고 야구장 네 개에 축구장도 몇 개나 되고 미식축구장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래는 구글 위성 지도에 해당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한국 지도만 보면 속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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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다 보여주는데, 왜 한국 지도는 물칠을 하고 위장막을 덮어씌우는 것일까. 지표면에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도 본연의 목적을 훼손해 가면서 말이다.

네이버나 다음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관련 법령이 있어서 이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법령이란 다음의 것이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군사기지법)

제9조(보호구역에서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누구든지 보호구역 안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제1호, 제3호, 제7호, 제8호, 제11호 또는 제12호의 경우 미리 관할부대장등(제1호의 경우에는 주둔지부대장을 포함한다)의 허가를 받은 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4. 군사기지 또는 군사시설의 촬영·묘사·녹취·측량 또는 이에 관한 문서나 도서 등의 발간·복제. 다만,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가 공공사업을 위하여 미리 관할부대장등의 승인을 받은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위에서 잡다한 사진들을 잔뜩 늘어놓은 이유는 그런 점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위성 사진은 일단 제쳐놓고 거리 사진만 갖고 이야기해 보자.

1. 거리에서 촬영하는 것이 법에 위배되는가?

위 법은 "누구든지 보호구역 안에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하여, 법이 금지하는 행위가 보호구역 내부에서 벌어질 때를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보호구역이란 군부대의 담장 안이 아니라 그 담장으로부터 일정 거리 만큼 떨어져 있는 지역을 함께 포함한다. 위 법에서 (군사분계선 지역 같은 전방이 아니라) 후방 지역의 '보호구역'은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5조(보호구역 및 민간인통제선의 지정범위 등) ① 보호구역의 지정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2. 제한보호구역
나. 가목 외의 지역에 위치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의 최외곽 경계선으로부터 500미터 범위 이내의 지역. 다만, 취락지역에 위치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의 경우에는 당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의 최외곽 경계선으로부터 300미터 범위 이내의 지역으로 한다.


말하자면 군부대 담장으로부터 500미터 범위 안, 도심 지역이라도 300미터 안에서 찍은 사진에 기지나 시설이 들어가면 위법이 된다는 것이다. 의정부는 그렇다치고 용산 같은 밀집 지역에서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말인지는 음미해 볼 여지가 있다. 지킬 수 없는 것을 규정해서 위반이 일상적으로 벌어질 여지를 두면 법의 값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용산구 용산동3가에서 주택가가 끝나고 군부대 진입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 2015년 8월에 찍은 다음 지도의 로드 뷰는 군사 시설의 담장까지 코앞에서 촬영해 보여줌으로써 위 법규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2. 도로나 지리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공개된 부분을 촬영하는 일이 군사기지법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위 법이 일정 지역에서 일정 행위를 금하는 것은 법의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이 법의 목적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을 보호하고 군사작전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가안전보장에 이바지함"이라고 되어 있다.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공로(公路)에서 보이는 군부대의 담장을 지도에서 실사로 보여준다고 해서 군사기지가 위험에 처하고 군사작전 수행에 지장이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망상에 사로잡히거나 편집증이 있지 않은 정상인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 시설 침해의 가능성 없이 도로 정보나 지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장면을 촬영한 것까지 보안을 이유로 규제한다면 과도한 규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조문 내용을 보면, 금지된 행위는 '군사기지 또는 군사시설의 촬영'이다. 법 취지로 볼 때, 이것은 기지나 시설을 촬영의 목표물로 하고 사진을 찍는 행위를 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리나 사람을 찍는 사진에 우연히 그 배경으로 위와 같은 시설물이 들어간 것은 법이 규제하려는 의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도한 규제가 법의 목적과는 달리 역효과를 낸다는 점도 중요하다. 웹 서비스 업체들이 거리 사진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촬영 차량의 카메라 높이는 어른의 키보다 30~40cm 높은 정도이다. 이 높이에서 근접 촬영하면 앵글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보이는 것은 대부분 담장과 수목 뿐이다. 주변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곳이 군부대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물칠을 해 두는 것은, 거꾸로 그곳이 군 관련 시설이라고 지도에 좌표를 찍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사 시설을 보호하겠다는 법조문이 실제로는 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만일 저 정도의 높이와 앵글로 찍은 거리 사진에서 속이 들여다보여 군사 시설의 보안이 문제된다면, 이것은 군 당국이 담을 높여야 할 사항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3. 한국 기업만 규제해도 되는가?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와 위성 사진과는 달리 구글의 지도는 위 법규의 규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아래는 위에서 다음 지도로 본 용산로3가 주택가의 구글맵 모습이다. 담장에 물칠은 물론 하지 않았고 출입구 정문까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구글은 외국 기업이고 기업이 등록되어 있는 나라의 법 적용을 받는 것이 옳지만, 어떤 나라에 들어가서 활동하려면 그 나라의 법을 존중하여야 한다. 더구나 한국에는 구글코리아라는 현지 지사도 있다. 정부 당국은 구글이 한국법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어떤 조처를 하였는지 궁금하다.

구글이 그런 규제를 따르지 않은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규범적인 측면과는 상관없이, 정부 당국이 규제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법 집행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를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다.

2012년에 한 국회의원이 제기한 주장에 따르면, 이런 문제에 대하여 국방부는 "'국제법 및 미국 국내법상 민간업체에 대한 통제가 제한되는 등 근본적인 조치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유든 이렇게 엉거주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면, 이것은 바로 규제가 국내 기업의(그리고 국내 기업만의) 활동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고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며 국내 소비자의 이용 불편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있음을 의미한다.

위성 촬영 이미지는 군사 시설의 면모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므로, 꼭 필요한 지점에 위장막을 덮어씌우는 일은 납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글 어스나 웹 지도 등 이러한 규제를 따르지 않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거리 뷰는 그 정도의 정당성도 끌어대기 힘든, 좀더 명확한 문제다.

북한의 무인 정찰기가 서울 상공을 지나다니고, 그렇게 찍은 사진이 구글 어스 사진보다 못하다고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다.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길거리 모습에 예외없이 덕지덕지 물칠을 하는 것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흔적 말고는 다른 의미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이곳이 군사 시설이라고 널리 공지까지 하는 게 바람직하겠는가.

이러한 일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는, 웹 서비스 업체의 거리 사진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 버전의 사진을 올릴 때마다 무의미한 물칠이라는 가욋일을 하릴없이 수행하여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주는 지도 본연의 목적에 어긋난다는 점 말고도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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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천하귀남 2016/03/21 17:31 # 답글

    그런 문제로 지금 해외의 한국 지도 데이터는 제대로된 정보를 저런 이유로 반출 못해 얼마나 개판일지 우려되더군요.
    http://brainage.egloos.com/5705938
  • deulpul 2016/03/30 15:22 #

    이게 이쪽에서 정보를 제공할 수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정말 한심하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네요. 특정 제품, 특정 서비스 사용자만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 익명 2016/03/21 18:34 # 삭제 답글

    오늘도 유익한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주제와 영 관련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네이버 거리뷰의 블러링을 누가 하는지가 꽤 흥미롭습니다. 에버영코리아라고 하는 시니어 채용 전문 기업이 외주를 맡는데(http://everyoungkorea.com/contents), 육체적으로 힘들 일 없는 일자리 특성상 은퇴 노인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입사지원자중에 은행장 출신이나 예비역 군 대령같은 왕년에 한가닥하던 분들이 즐비하다고 하더군요. 소문이 사실이라면 국내 최고 인재들이 '무의미한 물칠'에 동원되는 셈이지요.
  • deulpul 2016/03/30 15:24 #

    주제와 큰 관련이 있는 말씀이네요! 덕분에 작업이 이렇게 진행되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좀더 살펴보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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