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케인이 공산주의자에게 보내는 조사 미국美 나라國 (USA)

지난 2월 28일,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마지막 생존 미국인이자 평생 공산당원이라고 알려진 델머 버그가 사망했다. 미국 보수주의자이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2월 24일에 <뉴욕 타임스>에 버그를 추모하는 칼럼을 썼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동료 미국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원 안이 델머 버그.


버그의 인생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보수 정치인인 맥케인이 그를 위한 추모사를 썼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버그가 스페인을 찾아간 것은 안 해도 되는 일을 자청한 것이고, 맥케인이 이 칼럼을 쓴 것도 안 해도 될 일을 자청한 것이다.

철학과 신념, 그 일관성, 도량, 사고의 깊이, 문화적 소양 모두에서 이런 정치인이 있다면, 그가 비록 보수주의자라도 존경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의 집 재산 보면서 또 배가 아파진다.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공산주의자를 찬양한 이른바 용공 종북주의자로 매도되기나 하겠지.




존 맥케인: 한 공산주의자에게 보내는 인사
John McCain: Salute to a Communist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며
그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나의 문학적 우상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델머 버그는 스페인에서 사랑을 위하여 싸웠다. --


최근 <뉴욕 타임스>에 흥미로운 부고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지난 달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과 친구들 말고는 크게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델머 버그는 연예인이 아니니까. 그는 막대한 재산이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공직에 있었던 적도 한 번도 없다. 그냥 캘리포니아 주민이었다. 거기서 농장 노동자나 석수장이로 일했다. 사회단체에 관여하긴 했다. 지역 NAACP(흑인 인권운동 단체)의 부의장을 지냈다. 그는 월남전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1943년에 미국 공산당에 가입했고,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그 뒤 평생을 '비전향 공산주의자'로 살았다. 향년 100세.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 여단의 마지막 생존 참전자이기도 하다.

나이 일흔이 되지 않은 미국인들은 대부분 링컨 여단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이 이름은 1937~38년에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싸웠던 약 3천 명의 미국인에게 붙은 호칭이다. 그들은 공화파 쪽에 서서 싸웠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스페인 좌파 정부를 지키고,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부 반란군인 민족주의자들(프랑코파)에 대항하기 위해 참전한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반란이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군주정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파는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싸운다고 했다. 전자를 이끈 것은 파시스트들이었고, 후자는 공산주의자들(냉소적이거나 순진한 이들을 모두 포함한)이 이끌었다. 전 세계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상주의자들이 찾아든 것은 공화파 진영이었다.

링컨 여단은 원래는 대대로 불렸으며, 국제 여단 소속의 몇몇 자원병 분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국제 여단은 (공화파 정부를 지키기 위해) 수십 개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인 자원병 수만 명에게 붙은 이름이다. 이 자원병들을 조직하고 관리한 것은 소비에트가 통제하는 국제 공산주의 조직인 코민테른이었다. 반대쪽인 프랑코파를 후원한 것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이었다.

스페인은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세 이데올로기, 즉 공산주의, 파시즘, 민족자결주의가 피터지게 맞붙는 현장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데올로기 전쟁은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 20세기의 절반 이상을 휩쓸었고, 자유주의, 그리고 그 대표격인 미국이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면서야 끝이 났다.

링컨 여단에서 싸운 미국인 모두가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델머 버그를 포함한 많은 자원병이 공산주의자였지만, 어떤 이들은 그저 파시스트를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총을 잡았다. 심지어 버그와 같은 공산주의자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을 자유 수호자로 생각했다. 만나본 적도 없는 이들을 위해 거의 아는 바 없는 나라에 찾아가서 기꺼이 목숨과 팔다리를 내놓은 것이다.

당신은 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보다 큰, 그러나 불운한 명분에 매달려 싸움을 자청한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버그 같은 사내들은 자신들에게 공산주의라는 명분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명분은 세상을 화해시기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비극을 초래했다. 또 인간의 존엄성을 국가의 하위에 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나는 그들이 스페인에서 보인 용기와 희생에 늘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열두 살 때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고부터이다. 이 소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며, 그 주인공으로서 미국 중서부 선생(교수)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싸우다 죽은 로버트 조던은 나의 문학적 우상이 되었다. 소설에서 조던은 싸움의 명분에 가망이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공화파의) 지도력에 냉소적이며, 그런 지도력을 매수하려 하는 소비에트 간부들을 불신한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상당한 조던은 자신과 함께 싸우던 불쌍한 스페인 동료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다. 조던의 명분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된다.

죽음에 이른 조던은 "세상은 괜찮은 곳이고, 싸움으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지. 이제 떠나려고 하니 정말 아쉽군"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스스로 선택해서.

델머 버그는 아주 젊을 때 스페인에 참전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가장 치열하고 결정적인 전투 중 하나에서 싸웠다. 거기서 부상을 입었다. 동료가 죽어가는 것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명분에 바쳐진 것도 알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명분. 그리고 그는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시멘트와 석재를 만지는 일을 시작했고 이후 평생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싸웠다.

나는 버그가 믿은 대부분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하나 예외가 있다. 나는 던(영국 시인 John Donne, 아래의 싯구는 모두 그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함께 나오는 글들이다)이 썼듯 "누구도 인생 전부를 섬처럼 살 수는 없다"는 점을 믿는다. 누구나 "전체의 일부"이다. 또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약화시킨다. 내가 인류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믿는다.

버그도 그랬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종은 그 자신을 위해 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영면하시기를 빈다.

(존 맥케인은 공화당 상원의원(애리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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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G 2016/03/30 16:17 # 삭제 답글

    '김일성 만세' 대자보 사건이 생각나는군요.
    그리고 그 옆에 붙은 '전두환 만세' 대자보가 욕을 먹었던 것도 생각납니다.

    미국의 성숙한 시민문화가 새삼 부럽습니다.
  • deulpul 2016/03/31 18:40 #

    어느새 박원순은 김일성 만세주의자가 되어 있습죠. 그런 자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시장을 하고 있다니 이것은 서울시가 적화된 것이 아닌가...... 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그렇게 죽는 사람은 없고 서울시가 시행하는 복지 혜택은 다 받아 드시고.
  • G 2016/04/01 10:40 # 삭제

    정말 세상x 대한민국o은 요지경 입니다 ㅎㅎ
  • 호오 2016/04/02 09:59 # 삭제 답글

    서울시가 시행하는 복지정책을 받아드신다라...

    그 세금이 박원순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던가요?
  • deulpul 2016/04/02 13:25 #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한정된 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를 결정하는 것이 정책결정자고, 그래서 우리가 정책결정자들을 뽑는 선거를 한다는 사실은 민주 사회의 기초 상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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