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떨어져유~ 섞일雜 끓일湯 (Others)

인생이란 때로 미묘하고 섬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우악스럽고 거친 일들이 씨줄 날줄로 엮이면서 전개되는 것 같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앞으로 커다란 돌들이 퉁퉁 굴러떨어지는 상황을 놓고 그 밖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지난 주 토요일, 대전에서 친지 결혼식이 있었다. 어머니와 누나를 모시고 차량을 빌려 다녀올 예정이었다.

오전 일찍인데도 중부고속도로는 차가 많았다. 토요일인데다가 공사로 한 차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병목 구간에서 한참을 밀린 끝에 겨우 1차선으로 정리됐다. 차량들이 속도를 냈다.

10여 분 달렸을까.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로 큼직한 돌이 여러 개 굴러내려온다. 오른쪽 언덕배기 위의 공사장에서 굴러떨어지는 돌이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의 앞길에 돌이 굴러들어오는 모습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뒤에는 다른 차가 가까이 붙어오고 있었다. 급정지를 할 수도 없다. 차선은 하나이니 피할 수도 없다. 갓길도 없다시피 하다. 2초 가량의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돌은 요행히 밟지 않는다 해도 차가 그 위로 무사히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컸다.

옆자리에 앉았던 누나가 비명을 질렀다. 돌에 충돌하는가 싶자 큰 소리가 났고 차는 계속 움직이는데 소리도 계속되었다.

다행히 차가 뒤집히거나 돌지는 않았다. 굉음을 내는 차를 옆으로 세웠다. 갓길이 없어서 바로 옆으로 차들이 스쳐 지나갔다. 문을 열고 나오기도 어려웠다.

내려서 보니 앞바퀴는 펑크가 나서 주저앉았고 뒷바퀴도 바람이 빠져 있다. 앞바퀴 쪽에 돌이 들어있는 것 같은데, 차체가 낮게 깔려버려서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터진 바퀴 옆으로 돌이 들어가 있다. 어딘가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국도로공사 경안지사 차량이 경광등을 켜고 쫓아왔다. 사고가 난 것을 보고 온 게 아니라, 일상 순찰을 하던 도중 도로 한가운데에 돌이 떨어져 있어 그것을 긴급하게 치우고, 앞쪽에 차가 비상등을 켜고 사람이 나와 있으니까 찾아온 거다.

사고가 난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언덕 위에서 평토 작업을 하면서도 낙석 방지용 울타리(펜스)를 치지 않았다. 아주 기초적인 안전 규정을 어긴 것이다. 고속으로 달리는 길이라, 경우에 따라 차가 뒤집히거나 2차 사고로 이어져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다.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사고 현장이다. 언덕 위에서 공사를 하는데도 그 옆이나 아랫쪽에 울타리를 치지 않았다. 앞쪽에 보이는 돌은 나한테 굴러떨어진 것 중 하나로, 도로공사 직원이 옆으로 치워둔 것이다.


도로공사 직원은 "공사를 어떻게 이렇게 하냐"면서 현장 관리자를 데리러 갔다. 도로공사 차량은 사고가 난 내 차 앞에서 경광등을 켜 안전 운행을 유도했다. 뒤에는 건설회사 차량이 붙어서 비상등을 켰다. 어머니와 누나는 불안한 채로 차 안에 있었다. 나와도 길가에 안전하게 서 있을 데가 없었다.


경광등을 켜고 서행을 유도하는 건설회사 차량 바로 앞에 사고가 난 내 차가 서 있다.
갓길은 없다.


렌트 회사에 전화를 하고 거기서 알려주는 보험사에도 전화했다. 젊은 공사 현장 관리자가 내려와서 차량 상태를 살펴보고 명함을 주었다. 견인차가 왔다. 차를 들어올릴 때 보니, 차 밑에는 더 큰 돌이 박혀 있었다. 공사장에서 파석되며 나온 돌이라 여기저기 날카로운 모가 난 돌이다. 타이어는 10cm 가량 찢어져 있었다.


견인차 직원이 차체를 들어올린 뒤 돌을 꺼내고 있다.


견인차에 끌려 근처 나들목으로 나갔다. 가내수공업이나 다름없는 작은 카센터에서 앞바퀴 교체를 했다. 뒷바퀴는 손상됐지만 급하게 교체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서 바람만 주입했다. 앞으로 두 시간 정도 더 가야 하는데, 이미 결혼식 시간이 됐다. 차를 돌려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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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카 사무실로 갔다. 렌트카는 자차 보험이 들어있지 않으므로, 차량 손상이 나면 빌린 사람(즉 나)이 다 물어야 한다. 이 경우는 현장 건설회사의 잘못이 명백하니까 내 책임은 면제될 것이다. 렌트회사 직원은 내가 받아온 명함을 보고 공사장 관리자와 통화를 했다. 차량 수리비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는 것으로(즉 건설회사가 렌트회사에 지불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나에게도 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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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는데도 렌트카 회사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해 보았다. 차량 수리비가 결정되고 해당 금액을 건설회사로부터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수리 내역을 물어보니 가르쳐주지 않으려 했다. 내가 사고 관련 당사자인데 차량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무엇 무엇을 갈고 무엇을 수리했다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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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현장에서 명함을 받은 공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먼저 사고가 난 뒤 현장에 어떤 조처를 했는지부터 물었다. 공사를 즉각 중지하고 낙석 방지 조처를 취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사항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때 보셨듯이 동승자에 나이 많은 사람까지 있었는데 사람이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게 참 다행입니다. 어쨌든 선생님측이 공사 안전 조처를 미흡하게 하여서 저희는 차량을 빌린 목적(결혼식 가는 렌트 차량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다)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를 그냥 날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차량 렌트비와 장거리 뛰느라 넣은 연료비(연료는 꽉 채운 상태 거의 그대로 렌트카 회사에 돌려줬다)는 선생님측이 물어주셔야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푼 안 되는 소액이지만 상징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담당자는 좀 불쾌하다는 듯이 "지금 렌트비를 달라는 말이냐"라고 말했다. 자신이 결정할 수 없으니 윗사람에게 물어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곧 전화가 왔다. 담당자의 태도는 180도 바뀌어 있었다. 사장도 아닌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당연히 지불해 드려야죠" 하고 말했다.

이런 황당한 일 좀 겪지 않고 살았으면 싶다. 렌트카에 블랙박스가 있었더라면 고속도로 위로 돌이 굴러떨어지는 그 초현실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여하튼 큰 일 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칫하면 중부고속도로 해당 지점은 내 인생에서 아주 결정적인 장소가 될 뻔했다.

어머니는 출발할 때 무엇을 잊고 나와서 차를 다시 돌렸던 일을 말씀하시며 자책하셨다. 안 그랬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이다. 현장 모습을 고려하면 사고는 필연이지만, 하필 내가 탄 차가 그랬다는 것은 오로지 우연이다.

생각해 보니 그 날 꿈자리도 좀 안 좋았다. 물론 안전 규정들을 잘 지켰다면 아무리 꿈자리가 사나웠더라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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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째째한 얼음왕자 2016/04/20 01:01 # 답글

    다친 분이 없어서 천만 다행입니다. 살다보면 별 황당한 일을 다 겪는데, 어떤 일은 생각할 수록 열받는 일이 있습니다. '돌 떨어져유~' 정도로 표현하시다니 격이 다르시네요.
  • deulpul 2016/04/21 12:10 #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질 만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virtue 2016/04/20 08:45 # 삭제 답글

    정말 위험천만한 일을 겪으셨네요~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아직 한국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옆나라 일본의 경우 동네에서 작은 맨홀 공사만 해도 전후좌우 안전펜스 설치하고 최대한 조용히 공사하려고 하는 모습은 부럽더라구요. 아무쪼록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이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시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deulpul 2016/04/21 12:17 #

    아마 공사 발주처의 지침이나 건설업체의 공사 시행 매뉴얼에도 그런 규정은 다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규정을 지키지 않는 건 과거-현재-미래가 똑같을 테니 그렇다치고, 상식적으로 위험하다, 나와 남을 위해서 그러한 위험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왜 못 하거나 안 하는지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 소년 아 2016/04/20 09:27 # 답글

    다치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돌이 제법 크네요.
  • deulpul 2016/04/21 12:17 #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초록불 2016/04/20 09:44 # 답글

    천만다행입니다.
  • deulpul 2016/04/21 12:17 #

    정말 놀랐습니다. 고맙습니다.
  • camino 2016/04/20 10:40 # 삭제 답글

    가족 모두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한국은 기본적인 것들이 도무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워낙 많은 사회이다보니, 그 정도로 그친 것이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사실 비용의 변상 정도가 아니라 공사 현장의 책임자가 책임을, 어떤 행테로든 져야 마땅한 일인 것 같은데, 그리는 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마 들풀님께서 확인하시는 것조차도 유별난 일이라고 여겼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곤 하면, 한국 사회는 오로지 요행만으로 유지되고 있는듯한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 deulpul 2016/04/21 12:31 #

    비슷한 마음입니다. 분명히 잘못한 일은 고치고 넘어가야 하지만 저의 경우 결과적으로 사고 피해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따로 책임을 묻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공사 시행측에 충분한 경각심을 주었는지는 저도 100% 확신이 없습니다...
  • 2016/04/20 14: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4/21 12: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천하귀남 2016/04/20 14:29 # 답글

    정말 다행입니다.
    문제는 저런 안전조치 미비의 뒷수습이 겨우 금액적인 피해액 보상이라 비용절감에 급급한 기업으로는 제대로 안하는 경우가 많은것 아닐까 합니다.
    미국처럼 명목적 배상이나 징벌적 배상제도를 더 강화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대륙법 체계라 그런것 없다라고 했지만 지금은 일부 법률에 그런 조항이 들어갔으니 안될것도 없겠더군요.
  • deulpul 2016/04/21 12:58 #

    법과 규정의 당위보다 이익이 더 우선시되는 상황에서는, 법규를 지키지 않을 때의 손익이 지킬 때의 손익과 비교하여 유리한 경우 이를 지키지 않겠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오래 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제가 만일 죽거나 다쳤다면 공사 관리 담당자는 형법으로 따져봐야 과실치사나 과실치상의 벌을 받을지 모르겠고 저는 죽음이나 부상에 대한 피해 보전으로 끝나버릴 텐데 이것이 피해 구제와 불법행위 예방의 측면에서 충분하고 바람직한 것인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지요. 이 점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 marquez 2016/04/20 16:19 # 삭제 답글

    동감입니다. '인생이란 때로 미묘하고 섬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우악스럽고 거친 일들이 씨줄 날줄로 엮이면서 전개되는 것 같다'는 말씀에.

    큰 일 날 뻔 하셨네요. 모두 무사하셔서 다행이고요.
    제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떠올려 볼 때, 인생이 이렇게도 흘러가는구나..만감이 교차할 찰라나 있었을까 싶습니다.
    무섭고 허무하고.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에게 까지 생각이 미치네요.

    인생은 한편 황당합니다.



  • deulpul 2016/04/21 12:56 #

    교통사고는 흔히 자신의 과실 없이 당할 수 있고 그 경우 피해가 더 크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부정적 로또랄까 우연성의 영역이라서 개인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긴 합니다. 다만 로또를 사지 않으면 당첨될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처럼, 안전을 위해서 사회가 합의해 둔 각종 원칙과 규정들을 따라주면 그런 우연이 벌어질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크고작은 사고와 재난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그런 데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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