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코리아테크 차단과 열린 사회를 향한 소망 때時 일事 (Issues)

[페이크 뉴스 1] ---------------------------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1일 제35차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운영하는 텔레비전 방송 관련 웹페이지 접속을 차단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현재 KBS 뉴스 페이지에 접속하면 연결이 되지 않고 대신 "불법, 유해 내용이 제공되고 있어 접속을 차단한다"는 안내문이 뜬다.

방심위는 KBS가 북괴의 이른바 당 대회와 관련하여 북괴의 선전 내용을 수일간에 걸쳐 그대로 내보냈으며(예1, 예2), 이 내용이 국가보안법상 고무 찬양의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방심위 관계자의 관계자는 관계 기관에서 협조 요청이 있어 해당 유해 사이트를 차단 조치했다고 밝힐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크 뉴스 2] ---------------------------

영국인 언론인이 운영하는 북괴의 기술정보 관련 웹사이트가 북괴 당국에 의해 차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북괴에 대한 정통한 소식으로 명성이 높은 영문 웹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northkoreatech.org)가 최근 북괴 당국에 의해 접속 차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차단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관계 당국은 이 웹사이트가 북괴에 부정적인 내용을 싣고 있는 것을 문제삼은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이 웹사이트에는 북괴 당 대회를 취재하러 갔다가 추방당한 BBC 기자 관련 내용이 톱으로 올라와 있으며, 북괴의 언론자유 지수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내용도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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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가짜 뉴스들은 가짜답게 황당하고 허무맹랑하다. 하지만 진짜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이 아니라 한국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3월 24일 북한 기술정보 관련 웹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의 접속을 차단했고, 5월 3일에는 이에 대한 이의 신청도 기각했다.

이 조처의 법리적 문제점은 방심위에 이의 신청을 제기한 오픈넷의 논평에 잘 나타나 있다. 요약하면,

1. 해당 사이트는 북한을 찬양, 고무할 목적이 아니라 학술과 보도 목적을 위해 운영된다.

2. 객관적 정보로 인정 받는 전문 웹사이트로, 북한에 비판적인 내용도 실린다.

3. 북한 자료를 보도나 학술 목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찬양, 고무, 선전, 동조가 아니다.

4. 설령 문제가 있다 해도 문제 있는 정보뿐 아니라 웹사이트 접속을 통째로 막는 것은 부당하다.

5. 어떤 정보가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전혀 적시하지 않았다.

등이다.

마침 북한에서 당 대회가 열린 참이라, 한국 언론에서는 북한 소식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중앙방송 아나운서의 목소리, 당의 홍보 화면, 노동신문의 지면, 김정은의 육성 연설까지 여과없이 안방에 그대로 전해진다. 방심위 기준이라면 모두 접속과 송출을 막아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그 전파 규모는 관심 있는 소수만이 보는 기술 관련 웹사이트에 댈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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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처는 오픈넷이 지적한 법리적인 문제점 말고도 다른 몇 가지 우려를 갖게 만든다.

<생의 한 가운데>로 유명한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쓴 북한 방문기 <또 하나의 조국>이 한국에서 출판된 것은 1988년이다. 북한 체제에 긍정적인 저술이라고 하여 금서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린저의 방북 자체가 북한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녀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썼다 해도 그녀를 상대로 집중적으로 벌인 체제 홍보의 결과물일 것이므로, 그 서술이 북한에 우호적이 된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뿐만 아니라, 북괴는 머리에 뿔 달린 새빨간 악마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한국 사람 시각에서는, 북한 사람도 생물적으로 사람이라는 어처구니없이 뻔한 진술도 얼마든지 친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북한에 비판적인 부분도 적지 않고, 나름대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려는 대목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국민이 북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다.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대립하며 갈등을 벌이는 국가나 체제들이 자국 국민에게 상대국 관련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선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도 있지만, 적국을 미지의 악으로 각인하여 적대감을 고취하고 내적 통일을 기하려는 점도 있다.

전쟁은 평화.

이것은 조지 오웰이 쓴 <1984>에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정부가 내세운 슬로건 중 하나다. 상반되는 두 개념을 등호(=)로 연결한 이 명제는, 감시 국가 '오세아니아'에서는 별다른 모순 없이 완벽하게 성립한다. 그 논리를 아주 간략히 요약하면, 정부가 끊임없이 전쟁을 조장하고 전시 분위기를 고취하여야만 국민을 동원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그런 방식을 통해서 내부적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히 차단하고 봉쇄할 경우의 부작용은, 상대의 진면목이 전혀 알려지지 않으므로 일부에서 상대국에 대해 환상을 가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지리, 역사, 혈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더욱 그렇다. 팔레스타인에 환상을 가지는 이스라엘인이나 그 역은 나오기 어렵겠지만, 수천 년을 함께 지지고 볶으며 살아왔으며 아직도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남북한은 경우가 좀 다르다.

린저의 책이 나온 시기는 대학가에 북한 주체사상이 번지고 통일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때다. 주체사상이 밀어닥친 배경에는 북한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다시 그 배경에는 1) 남한의 강팍한 정치 사회적 상황과 더불어 2) 북한 관련 정보에 대한 철저한 봉쇄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가에서 벌어진 북한에 대한 논쟁이 대부분 "어쨌든 잘 알지 못한다"라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대학생이나 일반 국민 처지에서 접할 수 있는 북한 정보는 반공, 멸공 차원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관급 정보밖에 없었다. 북한의 구체적 실상에 대한 그림 없이 주체사상을 접한 대학생들은 북한 사회에 환상을 가졌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잘 알지 못한다'는 태도는 가장 합리적인 접근인 것처럼 여겨졌다. 보고들은 바가 없으니 어쨌든 잘 알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한다'는 유보적 결론 속에는 '따라서 경계하고 적대해야 한다'는 논리뿐 아니라 '따라서 무조건 적대하면 안 된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여기에서 북한에 대한 환상과 주체사상 추종의 가능성이 생겨났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차단하고 봉쇄한 방침이 낳은 것은 극단적인 반북 보수와 주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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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당시의 시대 논리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냉전적 대결 상황,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비정당성 같은 것들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 관련 정보를 틀어막을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런 이야기부터 해 보자. 지금 북한에 (80년대처럼) 환상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있더라도 그 당시처럼 많을까? '통일의 꽃' 임수경, '강철' 김영환처럼 직접 북한에 올라가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의 생각처럼 '아니오'라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 30년이라는 세월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환상은 시간이 가면서 더 커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 국민들(적어도 젊은이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과거와 현재에서 차이를 보인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라고 본다. 하나는 북한의 재앙과 같은 경제 실패요, 다른 하나는 북한 관련 정보가 꾸준히 개방되어 온 탓이다. 한국이 민주화의 고난을 겪으며 독재를 종식시키고 적어도 형식적인 민주화의 꼴을 갖춰가는 동안, 북한은 여전히 낙후된 전체주의 동원 국가였다. 자연 재해와 정책 실패의 결합으로 발생한 생활고는 국제적인 걱정거리가 됐다. 한국 국민은 대체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민간과 정부 차원의 교류 △언론의 북한 보도 확장 △탈북자 등 직접 체험자들의 증가 등으로 가능해진 일이었다.

물론 북한이 변화하는 모습, 평양 등 주요 도시에 들어선 정제된 건물, 핵 개발 잠재력, 의료-교육 등 체제의 차이에서 나오는 독특한 사회 인프라 등의 모습도 한국에 전해졌지만, 이러한 점들을 다 합쳐 고려하더라도 북한에 들어가 살고 싶은 한국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정보 공개가 북한의 실상을 일깨우고 환상을 타파한 것이다.

<자본론>이나 <세기와 더불어>(김일성 회고록)를 금서로 지정하면, 이 책들에는 책 자체의 가치가 아닌 새로운 가치가 생긴다. 책을 탐독하는 일이 바로 저항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더라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밤새워 읽게 된다. 이것은 권위주의 시대에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읽으라고 풀어 놓으면 이러한 가치가 없어지고, 실제로 읽는 사람은 별로 없게 된다.

닫으면 모순이 생기고 열면 자체 정제력이 생긴다. 이것이 열린 사회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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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코리아테크 웹사이트 내용을 보면, 이 사이트가 실제로 북한을 고무, 찬양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의 가짜 뉴스 2'에 나온 BBC 기자 추방 소식, 언론자유 최하위 소식은 실제로 지금 노스코리아테크에 실려 있는 뉴스다.) 그런데도 한국 정보기관이 이 웹사이트의 차단을 주도하고 방심위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첫째, 고무나 찬양의 의도가 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 관련 정보는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창구 하나로 무조건 통일하겠다는 의지다. 이것은 노스코리아테크가 보도 목적의 웹사이트이고 북한에 부정적인 소식도 실리는 점, 그리고 한국의 신문 방송도 그 수위가 노스코리아테크보다 낮지 않은 북한 소식을 직접 전달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그렇게 추정할 수 있다. 김정은의 연설 목소리가 그대로 실리는 KBS 방송은 놔두면서 이 웹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은, 정보가 자신들의 관리망 안에서 유통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밖에 볼 수 있다.

다양한 정보가 개방되고 유통되며 인간에 봉사하고 세상에 기여하는 인터넷 시대에 참으로 아재스럽고 병맛스러운 권위주의적 접근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 이렇게 정보를 적극적으로 차단하면 정보기관의 일이 수월해진다. 쉽게 말해 일을 안 해도 된다. 북한에서 중요한 계기가 벌어질 때마다 한국 정보기관은 흔히 뒷북을 치거나 삽질을 한다고 비판을 받았다. 다른 소스로 정보들이 유통되고 입수되면서 정보기관의 각종 정보 자원이 부실하지 않냐는 의문이 자주 나왔다. 이런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면 이에 대응할 필요도 없어지고, 심지어 잘못된 판단을 내려도 검증되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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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노스코리아테크의 보도에 차이는 분명히 있다. 둘 다 북한 소식을 전하지만, KBS는 거기에 살을 붙인다. 주로 부정적인 단어를 쓰는 코멘트다. 이를테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보여준 뒤 "김정은은 제1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명실상부하게 당을 장악하게 됐습니다"라고 하는 식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이 원 자료(raw data) 그대로 전달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늘 어떤 평가가 따라붙어 오는 데 익숙하다. 사실을 전한다고 하는 언론부터 그렇다. 사실을 전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사실을 놓고 자기들의 의견을 전달한다.

하지만 모든 지적(知的)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 자료다.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잡다한 견해로 오염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전달되어야, 거기에서부터 객관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보도나 학술이 그러한 작업의 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보도든 학술이든 가리지 않고 특정한 의견과 견해를 이식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이들에게는 불편한 접근일 것이다.

더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이 고무 찬양이라는 주장은, 그러한 사실이 고무 찬양할 만한 것이라는 강력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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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 린저는 남북한 모두를 방문했다. 북한은 정부가 초청했고, 한국은 사회단체가 초청했다. 린저가 친북 인사로 찍힌 이유에는 북한을 찬양했다는 것뿐 아니라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린저는 한국을 다녀간 뒤, 시인과 노동자가 잡혀가고 언론인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시민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썼다. 70년대 중반 상황을 놓고 지금은 누구나 다 하는 말이지만, 당시에는 친북 인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린저를 초청했던 사회단체는 고초를 겪었다.

그런 린저(로 기억한다)가 광화문에 있는 프레스센터인가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마침 정부 관계자의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취재를 끝낸 기자들이 탄 엘리베이터에 우연히 동승하게 되었다. 기자들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듯, 정부와 회견을 한 공직자를 욕하며 투덜거리더라는 것이다.

"뭐야, 결국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거 아냐!"

이 때 린저는 무릎을 쳤다. 아, 이게 북한이 갖지 못한 남한의 힘이구나. 북한에서는 기자가 당과 정부를 욕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친북 인사' 린저의 눈에도 이것이 남과 북을 가르는 중요한 경계선이었고 남한이 가진 압도적인 우월함으로 비쳤다.

한국이 전체주의 폐쇄 사회 북한을 닮아가지 말고, 그렇게 압도적인 우월함을 유지하는 상식적 민주 국가로 이어져 나갔으면 하는 것은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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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rthShore 2016/05/17 07:44 # 삭제 답글

    남한과 북한은,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남한의 현 정권과 북한 정권은, 서로 욕하면서 닮아가는 듯한 느낌을 자주 줍니다. 이야기가 다소 빗나가는 듯하지만, 한국 뉴스를 보면서 이게 정말인가, 혹시 농담이거나, 그냥 웃자고 만든 'fake news'가 아닌가 의심할 때가, 슬프게도 너무 잦습니다.
  • deulpul 2016/05/20 09:26 #

    양 정부, 양 정권의 동질성은 둘째치고라도, 서로의 존재가 각자(국가가 아니라 정권)의 생존 및 번창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아주 고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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